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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가 이순신 장군의 고향이었다.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듯이 수지에 산지 10년 넘었지만 수지 좋은 줄 모르고 살았다. 그냥 성복동은 신분당선 전철역에서 강남역 가기 편리하고, 신봉동은 광교산 형제봉에서 내려오는 계곡이 탁족하기 좋다는 정도만 알고 살았다. 그런데 작년 11월에 수지문학회에서 고기리 이순신 장군 할아버지 이백록(楓巖公)의 묘소와 장조카 이완(李莞) 장군 묘소를 참배했다. 그때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가 못했지만, 고기리가 이순신 장군 덕수 이씨 세거지라니 언젠가 꼭 참배하리라 생각해왔다. 보통 이순신 장군은 서울 충무로에서 태어났고, 외갓집이 있던 아산에 현충사 묘소가 있다는 건 알지만, 수지 고기리가 고향인 건 모른다. 조선 중기까지 남귀녀가혼(男歸女家婚)의 영향으로 남자가 결혼한 뒤 처가에서 상당 기간 거주하는 풍습 때문에..

제작 중 2021.12.05

나의 살던 고향은

남들은 고향이라면 뻐꾹새 우는 앞산과 부엉부엉 밤 부엉이가 우는 뒷산 이야길 하지만, 나의 살던 고향은 서울 하고도 중심지인 중구 명동 2가 95번지라 나에겐 시골 추억은 없고, 대신 명동에 대한 추억만 남아있다. 나는 지금 미도파 백화점 길 건너편 2층 적산가옥 다다미 방에서 고고성을 울렸으니, 그 일대는 1950년대 60년대 戰後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의 거리'였다. 유명한 작가와 배우, 가수의 아지트였고, 오후 3시 다방에는 원고를 청탁하는 잡지사, 신문사에서 오는 전화로 시끌벅적했다. 낮에는 다방, 밤에는 대폿집을 찾아온 예술인 중에 '명동백작'이라 불렸던 소설가 이봉구, '목마와 숙녀'를 쓴 박인환, '풀'과 '푸른 하늘을' 등을 쓴 김수영, 쉬지 않고 담배를 피워대며 허무를 노래했던 공초 오상..

제작 중 2021.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