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당, 나의 법당
나의 성당은 강이요, 법당은 산이다. 나는 강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몸을 낮추고 아래로만 가는 겸손을 본다. 물고기와 자라를 품속에 안고 키워주는 사랑을 본다. 우리를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여 눕게하시는 주님의 은총을 생각한다. 나는 산을 바라보면서 산은 하나이며 둘이 아님을 본다. 높고 낮음이 한몸임을 본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법신이라고 갈파한 부처님의 지혜를 생각한다. 나는 산과 강을 법당과 성당처럼 여긴다. 거기서 부처님과 주님을 생각한다. 나는 산에 귀의하고 강에 기도한다. 나에겐 산과 강이 신성한 전당인 셈이다.
나는 꽃 피고 새 우는 이 세상을 천당으로 생각한다. 여기가 부처님의 연화장이고, 주님의 '하늘 나라'라고 믿는다. 비 갠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 흰구름 뜬 산을 볼 때, 야생화들이 산을 수놓은 것을 볼 때, 산목련이 순결한 향기를 풍길 때, 나는 산을 천당이라고 생각한다. 푸른 파도가 넘실대며 내 앞으로 몰려오는 것을 볼 때, 여명의 아침 바다가 금빛으로 물들 때, 하얀 갈매기가 떼지어 나르는 것을 볼 때, 어부가 크다란 고기를 잡아올리는 것을 볼 때, 나는 바다를 천당이라고 생각한다. 황금빛 물든 들판을 볼 때, 농부가 흙 속에서 감자를 캐는 것을 볼 때, 마을마다 감나무에 붉은 감이 주렁주렁 달린 것을 볼 때, 지붕 위에 커다란 호박이 영글고 있는 것을 볼 때, 나는 농촌을 천당이라고 생각한다. 헐벗고 굶주린 자에게 누군가가 먹을 것과 포도주를 주신 것에 감사한다. 나는 이 세상을 성스러운 곳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을 천사라고 생각한다. 여인을 성모 마리아, 혹은 부처님의 어머님이신 마야부인이라 생각한다. 나는 모세를 존경하고, 달마를 존경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형제라고 생각한다. 악인도 선인도 형제라고 생각한다. 주님의 꽃인 장미를 사랑하고, 부처님의 꽃인 연꽃을 사랑한다. 그 밖의 이름없는 꽃도 사랑한다. 땅과 물과 불과 바람처럼, 생명 없는 모든 것도 윤회의 고리에 함께 묶인 형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꽃과 풀을 친구로 사귀면서, 원래 아름답고 추한 것이 없다고 믿는다. 꽃에 선악이 없고, 美醜가 없다고 믿는다. 사람 역시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믿는다. 그것은 말이나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우주에 내재하면서, 우주를 다스리고 우주에 형식과 의미를 부여하는 로고스라고 생각한다. 상대적인 시비분별이 끊어진 태초의 소리, 불교의 '옴'이라는 단 한마디 眞言일 수도 있다고 믿는다. 도가의 '道'일 수도 있다고 믿는다. 나는 광야에서 '말씀'에 귀 기울인 선지자를 존경한다. 그 분은 산과 강 앞에서 명상에 잠겼을 것이다. 그 분은 초목의 기도를 들었을 것이고, 미풍의 속삭임을 들었을 것이다. 그 분은 부처님일 수도 있고, 모세일 수도 있다. 혹은 선가의 수도자일 수도 있다. 대지는 어머니 품처럼 자비롭다. 모든 것은 반목과 대립 속에서도 조화롭다. 기독교는 그것을 '은총과 축복'이라고 표현했고, 불가에서는 보배로운 비처럼 우리에게 허공에서 한없이 내리는 '자비'라고 표현했다.
나는 산과 강을 찾아가 명상에 잠기곤 한다. 나는 미풍의 속삭임을 들어보고, 물소리 새소리를 들어보고, 초목의 기도를 들어본다. 성스러운 선지자들을 생각해본다. 그때 나는 성스럽고 고요한 평안을 느끼곤 한다. 나는 내가 혹시는 죽음이 그늘진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이처럼 거룩한 전당에 초대된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