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

'아나벨 리'

김현거사 2012. 3. 26. 23:19

지금 남해 미조리는 3층자리 빌딍도 있고 식당과 다방,넓직한 수협 공판장 앞 물결 위에 멸치 도미 우럭을 잡아온 배가 가득하고,버스 타고와서 생선 사가는 관관객 밀려다니는 곳이다.그러나 1966년만 해도 한가한 바닷가에 돌담 사이 집 몇 채 있던 아름다운 어촌이었다.

그해 6월,나는 부산 항만사령부 운전병 제대 한 후에 영문성경 책과 원고지 들고 이곳에 찾아가 머물었다.  

외로운 곳에 피는 꽃이라 더욱 아름다웠던지 모른다.말동무 귀한 어촌 아이라 더 그랬던지 모른다.그 집 외동딸 금순이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동무들을 달고와 도시 아저씨가 자기집에 하숙하고 있는 것을 자랑했고,항상 내 산책길에 기꺼이 따라나서곤 했다.남편을 바다에서 잃은 젊은 과수댁은 내외하느라 밥상과 물그릇 들이고 나는 심부럼을 금순이를 시켰고,아버지가 없어서 그랬을까?수줍어하면서도 금순이는 나를 몹시 따랐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꼬마 숙녀 금순이를 데리고 내가 자주 가던 곳이 있었다.등대 우측에 해풍에 잘 자란 푸른 풀밭 너머로 가면.반월형 아담한 만(灣)이 있다.물가에 그럴싸한 바위들이 있어 물결이 호수처럼 잔잔하고,흰구름 아래 비취빛 파도는 끝없이 백사장에 밀려온다.   

인적 드문 그곳에서 금순이와 나는 바위 사이로 도망가는 게를 잡기도 하고,모래 속에서 우툴두툴 껍질이 보석처럼 신비로운 조개를 잡기도 했다.금순이는 허연 광목 저고리에 까만 홑치마 차림이지만,들어난 햇볕에 구리빛으로 탄 통통한 팔은 이 세상 어느 소녀보다 사랑스럽다.하느님이 소녀에게 가난과 건강미를 동시에 부여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함께 수영도 했다.두 사람 다 수영복이 없는지라,속 빤스가 수영복이다.금순이는 시원하게 나가는 크롤 헤엄이고 삼천포 해수욕장 겨우 몇 번 가본 나는 두팔로 헤우는 엉성한 개구리 헤엄이다.섬아이들은 걷기 전에 수영부터 배우는지 금순이는 수영에 관한한 내 스승이었다.두 사람은 파도 속에서 입술이 파래지도록 놀았다.물속의 가리비조개와 조약돌도 주웠다.푸른 파도 속에서 예쁜 인어와 논 셈이었다.물에서 나오면 우리는 발을 통통 굴러 귀에 들어간 물을 털고,각자 다른 바위 뒤로 가서 빤스를 벗어 물을 짜 입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금순이 생각나 40년 뒤에 미조리에 가보았다.나는 60대 노인이었다.미조에서 가장 오래된 집에 가서 갈치회 시키고 안주인에게 금순이를 아느냐고 물었더니,이름도 기억 못한다.에드가 알란 포우의 '아나벨 리'처럼,금순이는 추억 속 바닷가 왕국으로 가버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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