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

고엽(枯葉)

김현거사 2012. 6. 24. 19:57

            고엽(枯葉)

 

  누구에게나 젊은 시절 애창하던 노래 하나는 있을 것이다. 손자가 넷이나 달린 나 역시 그렇다. 나 역시 古家의 이끼처럼 고색 찬연한, 총각 때부터 애창한 노래가 있다. 

 '고엽(The autumn leaves)'은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노래다. 당시 젊은이들은 누구나 이 노래 몇구절은 부를 줄 알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유행은 지나갔고, 사람들은 <고엽>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이젠 이 노래는 듣기 힘든다. 간혹 어디서 이 노래가 나오면, 사람들은  '아! <고엽>' 하며, 이 잊혀진 가을노래를 기억한다.

  <고엽>은 샹숑이다. 아마 우리나라에 알려진 가장 대표적 샹숑일 것이다. 이 노래는 이벹트지로나 에딧삐아프, 이브몽탕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노래다. 나는 이벹트지로나 에딧삐아프가 부른 <고엽>을 들을 때마다, 고음에서도 그렇게 섬세하게 떨리는 그 바이브렡에 매번 감탄한다. 그들의 성대가 내는 목소리는 바이올린 현처럼 섬세하고 곱다. 음색이 비단실 같이 가늘고 아름답다. 청량한 밤하늘에서 학울음을 듣는 것 같다. 목소리가 우리를 천상인지 지상인지 알 수 없는 황홀한 음의 오솔길로 안내한다. 과연 천재가 따로 있구나 하고 감탄케 한다.  이 세상에 저렇게 매력적인 여인도 있구나 싶어, 홀린듯 노래하는 여인의 입술만 바라보게 된다.

이브몽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의 부드러운 불어 발성으로 이 노래 듣노라면, 빠리가 과연 예술의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노래는 부드러우면서 쓸쓸하다. 연인이 있던 없던 연인을 그립게 한다. 추억에 잠기게 한다. 그의 표정은 빠리잔느 답다. 어딘가 세련되고 지성적이다. 그의 절제되고 호소력 있는 콧소리는, 어쩌면 저렇게 남자가 멋있게 나이 들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고엽>은 특히 노래 시작되는 도입부가 좋다. 피아노 전주곡이 사정없이 우리의 가슴을 친다. 그걸 피아니씨모라 하는가. 한 음 한 음 똑똑 떼어서 둔탁한 망치 치듯 지나가는 높은음 사이로 몇번씩 반복적으로 높은 데서 낮은 데로 숨 막히게 내려가는 피아노 기법을 혹시 기억 하시는가. 우리 가슴을 통채로 후벼 판다. 어쩌면 전주가 이리 매정하게 남의 마음을 그리움으로 아프게 들쑤셔놓는가 싶다. 참으로 세기에 하나 나올까 말까한 명곡이다.

 원체 유명한 곡이었다. 그래서 영어로도 많이 불리었다. 낫킹콜, 패티페이지, 도리스데이, 프랭크씨나트라, 앤디월리암스, 톰존스 같은 수많은 추억 속의 그리운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다. 영어로 들으면 가사의 뜻을 음미할 수 있어 좋다. 가사는 시로도 손색이 없다. 바이런이나 키이츠같은 유명 시인의 시 같다. 원래는 자크풀르베르의 시다. 이 시는 영어로 번안되면서 내용이 약간 수정되었으나, 첫대목부터 읽는 사람을 멜랑코리에 빠트려 버린다. <창가에는 낙엽이 떨어지고 있다. 낙엽은 붉고 노란빛이다. 나는 당신의 입술을 본다. 그 여름의 키스들을 생각한다. 내가 잡았던 햇볕에 탄 손목을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이 가버린 지금, 날들은 길어져만 간다. 나는 곧 겨울의 노래를 듣게 되나니. 사랑하는 이여! 당신이 가장 그리운 때는 바로 낙엽이 떨어지는 때 입니다.> 

 나는 <고엽>이란 노래를 평생 좋아해왔다. 간혹 노래방에 가서 영어로 이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The falling leaves, drlft by my window'  이 노래 첫구절에서, 금방 타임머신을 타고 먼 옛날에 가서 내린다. 하얀 탱자꽃 피던 집이 있었다. 그 집엔 한 소녀가 살았다. 나는 이 노랠 부르며 그 집 앞을 얼마나 서성거렸던가. 소녀를 단 한번도 만난 적 없다. 말 한번 건네본 적 없다. 세월은 가고, 소녀는 어딘가로 떠났다. 이제 소녀가 가버린 고향은, 더 이상 고향이 아니다. 더 이상 꽃은 신비롭지 않고, 달빛은 애잔하지 않다. 예전처럼 강물도 다정하지 않다. 그러나 노래는 사무치게 가슴에 남아있다. 소녀는 이제 <고엽>이 되었다. 샹숑이 되었다. 그렇다. 세월에 사람은 실려 가고, 노래만 남은 것이다.

 

     Edith Piaf 

 

Yves Mon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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