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2편

우리나라 최초의 꽃가꾸기 지침서/ 강희안의 <양화소록>

김현거사 2016. 3. 14. 10:16

 

 우리나라 최초의 꽃가꾸기 지침서 /강희안(姜希顔)의 양화소록(養花小錄)

 

 돈과 권세가 인생의 목적인양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아닌 사람도 있다. 세종 때 강희안(姜希顔 1418~1465)이 그런 사람이다.

 그는 세종대왕의 부인 소헌(昭憲)왕후가 이모이고, 집현전 직제학을 거쳐 정인지와 훈민정음 제작에 참여했고, 용비어천가 주석을 붙였으며, 동국정운 편찬에도 관여했다. 시와 글씨 그림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는 칭을 받았고, 서거정 성현 김안로의 저서에 그의 신묘함을 언급한 글이 있다. 현재 전하는 유품은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  ‘소동개문도(小童開門圖)’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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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관수도
 

 본관은 진주이며, 이조판서 석덕(碩德)의 아들이고 좌찬성 희맹(希孟)의 형이다. 세종 1년에 태어나 세조 9년까지 향년 44세를 살았는데, 인물이 담박 고아하고 명예나 이익을 꺼리었고, 재주를 자랑하지 않았다. 그가 노송, 만년송, 오반죽, 국화, 매화, 난혜, 연화, 석류화, 치자, 사계화, 산다화, 자미화, 귤나무 등 16종의 꽃과 나무를 물 주고, 옮기고, 감상하는 법을 수록한 '양화소록(養花小錄)'은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서다. 

 그러나 양화소록이 어찌 한갖 나무나 풀 가꾸는 데만 해당되랴? 사람의 천성을 키우고 가꾸는 양민(養民)의 뜻을 은연중 가탁한 것이다.

 

 양화소록 자서에 이런 글이 있다.

'화초 하나하나가 성질이 달라서 습한곳을 좋아하는 것도 있고, 건조한 곳을 좋아하는 것도 있고, 찬 것을 좋아하는 것도 있고, 따스한 것을 좋아하는 것도 있어, 가꾸고 물 주고 햇볕을 쬘 때 한결같이 엣법을 따랐고, 옛법에 없는 것은 견문을 살려서 하였다.

 하찮은 식물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랴! 내가 양화소록을 쓰는 까닭은 산중에 묻혀 소일거리를 삼음이요, 한편으로는 즐기는 사람과 취미를 함께 하고자 함이다.

 

노송(老松) 

 

 소나무는 사시에 늘 푸르며, 2-3월에 솔순이 돋아나고 송화가 피고 솔방울이 열린다. 송진은 맛이 떫고, 땅속에 들어가 천 년이 지나면 복령(茯)이 되고, 또 천 년이 지나면 호박(琥珀)이 된다.

 노송을 감상하는 법은, 가지와 줄기가 구부러지고, 묽은 등걸이 많고 잎이 가늘고 짧으며, 솔방울이 매달린 가지에 만년화(萬年花)가 붙고, 바위 틈에서 자란 놈이 상품(上品)이다.

 소나무는 옮겨 심으면 잘 자라지 않으니, 굵은 뿌리를 끊고 흙으로 잘 덮어두었다가 다음 해에 옮겨 심으면 잘 산다.

 

오반죽(烏班竹)

 

 오반죽은 굳세지도 유하지도 않으며 풀도 나무도 아니다. 다른 대에 비하여 열매가 없는게 다르지만, 마디나 눈은 대개 같다. 혹 모래밭에 무성히 자라고, 바위 땅에도 자란다. 가지가 잘 뻗고 향기를 풍기며, 짙푸른 빛깔이 장엄하다.

 대는 품종이 여러가지다. 반죽(班竹)이 여러 해가 되면 오죽(烏竹)으로 변하고, 오반죽은 한냉한 곳에서도 잘 살아 남는다.

 오뉴월에 비가 내리면 신죽(新竹) 가운데서 줄기가 곧고 잎이 짧고 가지가 빽빽한 것을 골라서 분에다 심되, 곁뿌리는 끊고 좌우가 가지를 묶어 줄기가 움직이지 않도록 한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잎이 말라죽고 만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대를 매우 좋아하여 항상 서너개의 화분에 직접 심어 옆에 두고 감상하였다. 하얀 도화지가 생기면 대나무 한두 가지를 그려 그것에 깃든 뜻을 드러내곤 했다.

 

국화

 

송나라 범석호(范石湖)는 그의 국보(菊譜)에서 이렇게 말했다. '산림에 묻혀 사는 사람들이 국화를 군자에다 비유하여 말하기를, 가을이 되면 모든 초목이 시들고 죽는데, 국화만은 홀로 싱싱히 꽃을 피워 풍상 앞에 거만하게 버티고 서 있는 품격이 산인(山人) 일사(逸士)가 고결한 지조를 품고, 비록 적막하고 황량한 처지에 있더라도, 오직 도(道)를 즐기어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는 이렇게 써 있다. '국화는 성품을 도와주는 약으로 사람의 몸을 가볍게 하고 장수하게 한다. 남양(南陽) 사람들은 국화꽃 핀 우물가 물을 마시고 백세를 살았다고 한다.'

 당나라 왕민(王旻)은 '산거록(山巨錄)'에서 이렇게 말했다. '검붉은 줄기와 노란 꽃이 넝쿨져 뻗은 것이 참된 감국(甘菊)이고, 다른 것은 다북쑥 종류이니, 쑥은 맛이 쓰고 국화는 맛이 달다.'

 '화목의기(花木宜忌)'에는 '국화 뿌리는 물을 가장 싫어하니 물을 주지말고, 뿌리 곁에 물 한 그릇을 떠놓고, 종이를 잘라서 한쪽 끝은 국화 뿌리를 싸감고, 한쪽 끝은 물그릇에 담아두면, 자연히 물이 스며들어 뿌리가 촉촉하게 젖는다'고 적혀있다.

 

 매화

 

 매화는 운치와 품격이 있으므로 고상하게 여긴다. 특히 줄기가 구불구불하고 가지가 성글고 야윈 것과, 늙은 가지가 괴기하게 생긴 것은 더욱 진귀하다. 

매화의 품격 네가지를 꼽으면, 1. 가지가 무성한 것 보다는 성근 것이 귀하고, 2. 활짝 핀 꽃 보다는 반쯤 핀 듯한 꽃이 귀하고, 3. 어린 나무보다는 고목의 매화가 귀하고, 4. 나무가 살찐 것보다는 마른 나무가 귀하다.

 매화를 접붙이는 법은 복숭아나무를 화분에 심고 매화나무에 매단다. 매화가지와 복숭아나무 가지를 거죽을 벗기고, 두 나무를 합쳐서 생칡으로 단단히 동여맨다. 두 나무의 물기가 통하여 거죽이 완전히 서로 얼러붙은 후에는 본 매화나무를 잘라 버리니, 이것을 의접(倚接)이라 한다.

  우리 할아버지 통정공이 어려 지리산 단속사에서 책을 읽었다. 그 때 절 마당 앞에 손수 매화 한 그루를 심어 놓고 시 한 수를 지었다. 공이 과거에 합격한 뒤에 여러 관직을 거쳐 정당문학 벼슬에 올라 지금까지도 그 매화를 `정당매(政堂梅)'라 부른다.

 

 * 단속사 터는 산청군 단성면에 있는데, 절은 잡초 속에 묻혔지만, 석탑과 초석과 매화나무는 남아있다.

 

 난초

 

'설문(說文)'에 이런 말이 있다. '난이 골짜기에 수부룩하게 나서 검붉은 줄기와 마디에 푸른 잎이 윤택하고, 한 줄기에 한 송이 꽃이 피고, 간혹 두 송이에 두세 꽃잎이 피어 그윽하고 맑은 향기가 멀리 풍기어 부여잡을 정도이다. 꽃빛은 흰빛, 자주빛, 연한 푸른 빛이다. 꽃은 이른 봄에 피지만, 추운 겨울에도 고결하게 핀다.

 난을 분에 옮긴 후에는 잎이 점점 짧아지고 향기도 좋지않아 국향(國香)의 뜻을 아주 잃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심히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호남 바닷가의 산에서 난 것은 품종이 좋다.

 초봄에 꽃이 피거던 등불을 켜놓고 책상 위에 난분을 올려 놓으면, 잎의 그림자가 벽에 박혀 야들야들한 게 구경할 만하며, 글을 읽을 때 졸음을 쫒기도 한다.

 난잎은 한 해에 다 자라나지 못하고 다음 해 늦여름에 가서야 완전히 자라난다. 잎이 자라날 때는 늘 물을 주고 음지에 두어 건조하지 않게한다. 거둬 둘 때 너무 따뜻하게 하지 말고, 사람의 훈김에 뜨지 않게한다.'

 

 연꽃

 

 주렴계는 '애련설(愛蓮說)'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연꽃을 사랑함은 진흙 속에서 났지만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어도 요염하지 않고, 속은 툭 터지고 밖은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가 없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으며, 우뚝 깨끗이 서 있는 모습이 멀리서 바라볼 만하기 때문이다.'

 연을 심는 법은, 우분(牛糞)을 친 진땅에 입하(立夏) 전 3-4일에 연뿌리를 캐어 마디를 따서 머리를 진흙에 꽂아 심으면, 그 해에 바로 꽃이 핀다.

 벼슬을 그만두고 속진에 젖은 옷을 활활 벗어 버리고, 저 한가로운 강호(江湖)에 나아가 소요하지는 못할지라도, 공사(公事)를 마치고 물러 나오면, 시원한 바람과 맑은 달빛 아래 연꽃 향기 드높고, 창포 그림자 너울거리며, 개구리밥 사이로 어족(魚族)들이 활발하게 뛰노는 것을 본다.

 이때 앞가슴을 활짝 헤치고 휘파람도 불고, 시도 읊으며 이리저리 거니노라면, 몸은 비록 명리(名利)의 굴레에 얶매였다 할지라도, 정신은 세속 밖에 우유(優遊)하여 정서와 회포를 마음껏 펼 수 있다.

 

 치자화(梔子花)

 

 치자는 네 가지 아름다움이 있으니, 꽃 빛깔이 희고 기름진 것이 그 하나요, 꽃향기가 맑고 풍부한 것이 그 둘이요, 겨울에 잎이 변하지 않는 것이 그 셋이요, 열매가 노란 빛으로 물드는 것이 그 넷이다.

 

산다화(山茶花) 

 

 우리나라에 네 종류가 있는데, 단엽홍화(單葉紅花)로 눈 속에 피는 것은 동백(冬栢)이라 하고, 단엽분화(單葉粉花)로 봄에 피는 것을 춘동백(春冬栢), 서울에서 심어 기르는 것을 천엽동백(千葉冬栢), 꽃술에 금빛 조알이 붙는 것은 이른바 보주다(寶珠茶)란 것이다.

 

 꽃을 취하는 법

 

화훼를 취하는 것은 마음과 뜻을 닦고 덕성을 함양하고자 함이니, 운치와 격조, 절조가 없는 꽃은 완상할 만한 것이 못되니 가까이 하지 않을 것이다. 가까이 하면 열사(烈士)와 비부(鄙夫)가 한 방에 같이 사는 것과 같아서 풍격이 전혀 없다.

 

꽃을 기르는 뜻

 

화목이 지닌 물성(物性)을 법도로 하여 덕()으로 삼기 위함이다. 은일을 자랑 하는 국화, 품격이 높은 매화와 난초, 고고하고 절개 있는 창포, 굳건한 덕을 지닌 괴석. 이들은 마땅히 군자가 벗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