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모 시

김현거사 2015. 9. 20. 07:39

 

욕지도

 

가을이면 나는 시퍼런 고등어 되어

욕지도 간다

거기 하얗게 돌담 덮은

박꽃아가씨 보러 욕지도 간다

바람과 몸 섞고 얼굴 붉히는

동백아가씨 보러 욕지도 간다

파도가 그리움 난도질하는 섬

호롱불이 별처럼 외로운 섬

그 고요한 바람소리만 들어도

우리가 도심 뒷골목에 두고 온

그 시시껄렁 된장같은 일상 잊어버리고

은쟁반 바다가 올린 소라처럼 싱싱한 욕지도

완전 자연산 욕지도가

섬 자체로 술안주 깜이다 싶어

가을이면 나는 시퍼런 고등어 되어

등지느라미 칼날같이 세우고

욕지도 간다

 

미조에 가면

  

미조에 가면 다시 미조에 가면

아무리 버렸다 버렸다 해도

파도에 자맥질하는 바위처럼  

잠겼던 미련 불쑥불쑥 솟아나네

 

미조에 가면 다시 미조에 가면

아무리 숨었다 숨었다 해도

모래밭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게처럼

숨었던 기억 여기저기 나타나네

 

그때 솔향기 가득하던 산 

풀꽃 이름이 뭐였더라

그렇게 세찬 바람 불어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어떤 이름 같이

그 자리에 피어있던  

그 풀꽃 이름이 도대채 뭐였더라

 

이제 파도가 모두 쓸어가버린

미조에 가면 다시 미조에 가면

그때 그 사람 얼굴을 비치던

그 달만 혼자 남아있네

 

가거도

 

가는데까지 가다가

파도가 숨 차서 멈춘 섬

수평선 끝에 가거도가 있다. 

금새우난 위 청띠제비나비 나르는 섬이

싸파이어 바다 끝에 있다 

뿔소라와 홍어애국 올린 밥상

단돈 5천원에 내놓고

‘가라고 가랑비가 오능가?' 

무심한 손님 농지거리에  

'있으라고 이슬비 와뿌네’

이리 대답하는

사람 그리운 민박 새댁 사는 섬이

초승달처럼 서해 끝에 있다

 

 

돗돔

 

        

그는 노을이 피를 토하는 마라도 근해

 

오백 미터 이상 심해에 산다.

 

몸무게 백 킬로 체장 이 미터

 

등줄기 가시도 한 뼘을 넘는다

.

그는 상어를 통채로 삼키고

 

소라를 통채로 깨무는 잇발을 가졌다

 

어느 날 나는 이 바다의 제왕이

 

단돈 백만원일개 장사꾼에게 팔려

 

한 점 한 점 살점을 도륙 당하는

 

처참한 현실을 본 적 있다.

 

 

 

오륙도 등대

 

그는 항상 저만치 멀리 떨어져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쉽게 닥아가고 쉽게 헤어지고

울고짜는 유행가 가사가 되고마는데

그는 일년 삼백육십오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파도와 폭풍에도 꺼떡없이

밀려가거나 쓸려가지 않고

누구도 닿지못할 위태로운 바위돌 위에서

밤마다 깜빡깜빡

깊고 푸른 신호를 나에게 보내고 있다

 

섬진강에서

 

해당화는 강물에 발목 씻고 있다

강은 유리거울이다

지리산이 통채로 비치고 있다

모시처럼 하얀 백사장에 노을이 각혈 토하면

늙은 서방처럼 평상에 비스듬이 들어누운 감나무 아래

평상에 술상 채려지고

어디를 몇굽이 돌아왔는지

지분 냄새 짙은 육십대 전라도 주모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구나'

툭사발 깨지는 진도아리랑 뽑을 적에

개다리 소반에 젖가락 장단치던 객은

'하마 달 뜨려나?'

게슴치레 취한 눈으로 

파란 재첩국처럼 안개 고인 대밭에

달 뜨기 은근히 기다리는 눈치다


 

그리운 지리산

 

 봄

 

섬진강 푸른 물에 매화가 피면

화개동천 십리길에 벚꽃이 곱고

이른 봄 고리수나무 물이 오르면

그리운 지리산에 봄이 오지요

 

칠불암 가는 길 안개 덮히면

노오란 산수유꽃 이슬에 젖고

고요한 풍경소리 바람에 자면

그리운 지리산에 봄이 오지요.

 

세석평원 노고단에 원추리 피면

바래봉 팔랑치에 철쭉이 곱고

아득한 천상화원 꽃비 내리면

그리운 지리산에 봄이 오지요

 

여름

 

지리산 山影 어린 계곡에 서면

함양이라 옛고을 정자도 많고

농월정 반석 위에 옥류 흐르면

그리운 지리산에 여름 오지요

 

오도재 높은 嶺에 흰구름 뜨면

둥구마천 물방아 물빛도 곱고

천불만불 기암절벽 녹음 덮히면

그리운 지리산에 여름 오지요

 

칠선동 깊은 골에 물소리 나면

沼와 潭도 좋거니와 秘瀑도 장관  

신선은 어디 갔나 洞을 거닐면

그리운 지리산에 여름 오지요

 

가을

 

경호강 맑은 물에 은어가 뛰면 

서리 온 원지 논에 참게 살찌고

덕산장 주막거리 술이 익으면

그리운 지리산에 가을 오지요. 

 

대원사 밝은 달 물에 비치면

단풍 든 감나무에 홍시가 곱고

향불에  비구니스님 가슴 태우면

그리운 지리산에 가을 오지요.

 

무재치기 폭포 지나 치밭목 가면

써리봉 중봉 너머 천왕봉이고 

산 첩첩 비단이네 단풍 고우면

그리운 지리산에 가을 오지요

 

겨울

 

산촌의 밤이 깊어 눈이 내리면

청학동 서당 마다 등불이 밝고

댕기머리 훈장님 천자문 외면 

그리운 지리산에 겨울 오지요

 

청학이 나르던 곳 달이 밝으면

청학봉 백학봉에 은빛이 곱고

불일폭포 하얀 빙폭 수정궁 되면

그리운 지리산에 겨울 오지요

 

봉마다 白玉일가 삼신봉 가면

꽃중에 꽃이거니 雪花가 곱고

아득한 천왕봉에 눈바람 불면

그리운 지리산에 겨울 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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