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에 소개한 동양고전 50

선시 소개 제2편/ 태고, 나옹, 함허

김현거사 2015. 8. 22. 07:46

 

 선시(禪詩) 소개 제2편/ 태고(太古), 나옹(懶翁,), 함허(涵虛)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 

 

 백운(白雲)·나옹(懶翁)과 함께 여말3가(麗末三家)로 불린, 스님의 성은 홍씨. 법명은 보허(普虛), 호는 태고(太古)이다. 열세 살에 회암사 광지스님의 제자가 되었고, 1337년 가을에 불각사(佛脚寺)에서 <원각경 圓覺經>을 읽다가 "모두가 다 사라져 버리면 그것을 부동(不動)이라고 한다."는 구절에 이르러 지해(知解)를 모두 타파하였다.

 1382년 12월 23일 세수 82세 때, 문인들을 불러 “내일 유시에는 내가 떠날 것'이라 말한 후, 목욕갱의하고 단정히 앉아 다음 게송을 읊고 입적했다. 

 

 임종게(臨終偈) 

 

사람의 목숨은 물거품처럼 빈 것이어서 팔십여년이 봄 날 꿈 속 같았네. 
죽음에 다달아 이제 가죽 푸대 버리노니, 수레바퀴 붉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네. 

 

 태고암가(太古庵)

 

내가 기거하는 이 암자는 나도 잘 몰라. 깊고 깊고 좁고 좁고 은밀하나 옹색함이 없다.

 

*삼각산에 암자를 짓고 붙인 이름이 태고암이다.

 

하늘과 땅을 덮개 삼아 앞뒤가 없고, 동남북 어디라도 머물지 않네.

구슬 누각, 백옥 전각 비할 바 아니고, 소림사의 풍습과 규정도 따르지 않는다.

팔만 사천 번뇌문을 다 부수니, 저 구름 밖 청산이 푸르구나.

 산 위의 흰구름은 희고 또 희고, 산중의 샘물은 흐르고 또 흐르네

비 오고 개이는 것 번개처럼 빠른데, 누가 있어 저 흰구름을 이해할 것인가.  

천 구비 만 구비 쉬지 않고 흐르는데, 누가 있어 이 샘물 소리를 이해할 것인가.

생각은 내기 전에 이미 틀렸고, 게다가 입은 열려 할 때 난잡하기만 하다.

 

*모든 판단은 인과(因果) 분별에서 오는 것인데, 분별은 마음이 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볼 수 없는 것이 마치 손가락이 자기 스스로를 가리키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마음을 볼 수도 알 수도 없음이 원래 실상(實相)이요, 주(主)도 객(客)도 없는 고로, 실상을 무상(無相)이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깨달은 이는 경(經)에서 얻을 법(法)은 하나도 없다고 하는 것이며, 이것을 (空)의 증득이라 하고, 실상을 깨달은 것이라 한다.

 

비 오고 서리 온 봄가을이 얼마인고! 어찌 깊고 한가한 일을 금일에사 알았나.

거칠어도 밥이요 정갈해도 역시 밥이니. 추한 밥 정한 밥, 사람마다 자기 입맛 따라 취하느니,

운문(雲門)의 호떡이나 조주(趙州)의 차(茶) 한 잔도 어찌 이 암자의 무미(無味)의 식사만 하랴.

 

*맛 없는 밥이 진짜 맛 있는 밥이라는 역설로, 태고암의 초탈한 생활을 노래하였다.

 

본래부터 이러함이 옛 가풍이거늘, 누가 감히 그대에게 기특하다고 하겠는가. 

한 오라기 털 끝 위의 태고암, 넓다해도 넓지 않고, 좁다해도 좁지 않다.  
겹겹 극락정토 그 속에 감춰 있고, 넘치는 진리의 길 하늘에 곧바로 닿았으니,
삼세여래도 모두 모르고, 역대 조사도 얻을 수 없구나.  
어리석고 어눌한 암자의 주인공은, 꺼꾸로 행하고, 무궤도 무원칙을 행하며,

청주(靑州)에서 지은 해진 삼베적삼 입고, 송라 그림자 절벽에 기대 서 있으니,
눈 앞에 법도 없고, 사람도 없고, 다만 아침 저녁 푸른 산만 마주하네.
할 일 없이 이 곡을 읊으니, 서쪽 인도에서 온 음률이 분명하도다. 
세상에 누가 있어 이 노래에 화답할까, 영산(靈山) 소림사가 부질없이 박수를 치는구나

어느 누가 태고 때 줄 없는 가야금 가져와서, 이 구멍 없는 피리 소리에 화답하랴.

그대 보지 못하는가. 태고암의  태고스러운 일은 항상 지금같이 밝고 뚜렷한데, 

백천삼매(百千三昧)가 그 안에 있어, 인연따라 모든 사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항시 적적하다.

 

*과거 현재 시간이 지금 이 시간에 있다는 시간의 초월상을 말하고 있다.

 

이 암자는 노승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티끌처럼 많은 부처 조사(祖師)가 풍격을 같이 한다. 

결정코 말하나니, 그대는 의심치 말라. 지혜나 알음알이로 헤아리기 어렵도다. 
돌이켜 뒤돌아 보고 비추어봐도 오히려 어둡고 망망하며, 당장 직하(直下)로 떨어져도 자취에 걸리네. 
그 까닭 물어봐도 큰 잘못 돌아오고, 여여부동 가만이 있어도 완고한 돌이 되네.
'내려 놓아라,  망상 하지 말라'가 여래의 대원각(大圓覺)이니, 

오랜 겁을 지나면 문호(門戶)를 벗어나는가. 잘못 떨어져 이 길에 머물고 있네.  
이 암자는 본래 태고(太古)의 이름이 아닌데, 오늘이 있으므로 태고라 부르네.
하나 가운데 일체가 있고, 일체 가운데 하나가 있고, 하나를 못 얻어도 항상 분명하여라. 
모날 수도 있고, 둥글 수도 있으니, 흐름 따라 빈 것이 채워지는 변화 모두가 깊고 현묘한 진리이다.

그대가 만약 나에게 산중 경계를 물으면, '솔바람은 소슬하고 달빛은 하늘에 가득하다' 하리.  
도도 닦지 않고 참선도 닦지 않아, 침수향 다 탄 향로에는 연기도 없네.

뼈에 사무치게 새겨진 청빈함이여, 살아 갈 길(活計)은 본래부터 스스로 있었네.

그런대로 그렇게 지내는 거지, 어찌 구구히 태울 향을 구하랴. 

뼈에 사무치게 맑고, 사무치게 가난해도, 살길(活計)은 본래부터 스스로 있네. 
한가하면 태평가를 높이 부르며, 쇠소(鐵牛)를 거꾸로 타고 인간계 천계서 노니노라.

아이들 눈에 보이는 것 모두 광대놀이지만, 이리저리 해보지만, 눈과 피부만 피곤하네.

이 암자는 그저 치졸하고 졸망함이 이러하니, 알만한 일을 하필 다시 밝히랴. 

춤을 마치고 삼대(三臺)로 돌아간 후에도, 푸른 산은 여전히 숲과 샘물 마주하네.

 

*이 태고암가를 고 중국의 선승 석옥화상(石屋和尙)“참으로 공겁(空劫) 이전의 소식을 얻은 것으로 ‘태고’라는 이름이 틀리지 않았다. 오래도록 글을 주고 받는 일을 사절해 왔는데, 붓이 저절로 춤을 추어서 말미에 쓰게 된다”며 발문을 써준 것이,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상권에 수록되어 있다.

 

보제존자(普濟尊者) 나옹(懶翁, 1262-1342)

 

 나옹(懶翁)이란 게으른 어르신(翁)이란 뜻이다. 경북 영해(寧海) 사람으로1344년 양주 회암사에서 4년 좌선 후에 깨달음을 얻었고, 1348년 원나라 연경에서 인도 고승 지공스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무학대사의 스승이며 고려 공민왕의 왕사(王師)였고, 법호가 '대조계 선교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 복국우세 보제존자(大曹溪 禪敎都總攝 勤修本智 重興祖風 福國祐世 普濟尊者)란 긴 이름이다.

양주 회암사에 무학, 나옹, 지공 세 분의 부도와 비석이 있고, 여주 신륵사에도 나옹스님 사리를 봉안한 부도와 비가 남아있다.

 

 토굴가(土窟歌

 

 청산림(靑山林) 깊은 골에 일간 토굴(一間 土窟) 지어놓고, 송문(松門)을 반개(半開) 하고 석경(石徑)에 배회(俳徊)하니, 녹양춘삼월하(錄楊春三月下)에 춘풍(春風)이 건 듯 불어, 정전(庭前)에 백종화(百種花)는 처처에 피었는데, 풍경(風景)도 좋거니와 물색(物色)이 더욱 좋다.

그 중에 무슨 일이 세상에 최귀(最貴)한고. 일편무위진묘향(一片無爲眞妙香)을 옥로중(玉爐中)에 꽃아 두고, 적적(寂寂)한 명창하(明窓下)에 묵묵히 홀로 앉아, 십년(十年)기한정코 일대사(一大事)를 궁구하니, 종전에 모르든 일 금일에야 알았구나

일단고명 심지월(一段孤明 心地月)은 만고에 밝았는데, 무명장야 업파랑(無明長夜 業波浪)에 길 못 찾아 다녔도다. 영취산 제불회상(靈鷲山 諸佛會上) 처처에 모였거든, 소림굴 조사가풍(小林窟 祖師家風) 어찌 멀리 찾을소냐.

청산은 묵묵하고 녹수는 잔잔한데, 청풍(淸風)이 슬슬(瑟瑟)하니 이 어떠한 소식인가. 일리재평(一理齋平) 나툰중에 활계(活計)조차 구족(具足)하다.

청봉만학(千峯萬壑) 푸른 송엽(松葉) 일발중(一鉢中)담아두고, 백공천창(百孔千瘡) 깁은 누비 두 어깨에 걸었으니, 의식(衣食)에 무심(無心) 커든 세욕(世慾)이 있을 소냐. 욕정이 담박(欲情談泊)하니, 인아사상(人我四相) 쓸 데 없고, 사상산(四相山)이 없는 곳에 법성산(法性山)이 높고 높아, 일물(一物)도 없는 중에 법계일상(法界一相) 나투었다.

교교(皎皎)한 야월(夜月) 하에 원각산정(圓覺山頂) 선듯 올라, 무공적(無孔笛)을 빗겨 불고 몰현금(沒絃琴)을 높이 타니, 무위자성진실락(無爲自性眞實樂)이 이중에 갖췄더라.

석호(石虎)는 무영(無詠)하고 송풍(松風)은 화답(和答)할제, 무착영(無着嶺) 올라서서 불지촌(佛地村)을 굽어보니, 각수(覺樹)에 담화(曇花)는 난만개(爛慢開)하였더라. 나무 영산회상 불보살(南無靈山會上 佛菩薩).

 

*마이산 비룡대 아래 나옹암(懶翁庵)이 있다. 금당사에서 5백 미터 떨어진 수직 절벽에 위치한 토굴로 나옹스님이 득도한 자연 암굴이다. 

 

 청산은 나를 보고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말없이 살라하네 푸르른 저 산들은, 티 없이 살라하네 드높은 저 하늘은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세월은 나를보고 덧 없다 하지 않고  우주는 나를 보고 곳 없다 하지않네
번뇌도 벗어놓고 욕심도 벗어 놓고  강 같이 구름 같이 말없이 가라하네

 

죽림(竹林)

 

만 이랑의 대나무가 난간 앞에 닿아있어, 사철 맑은 바람 거문고 소리 보내준다.

대나무는 울창하되 하늘 뜻을 통하고, 그림자는 뜰을 쓸되 티끌은 그대로다.

 

산에 사노라니[山居]

 

白雲堆裡屋三間  흰 구름 쌓인 곳에 오두막 세 칸인데

坐臥經行得自閑  앉고 눕고 나댕겨도 스스로 한가하네. 

澗水冷冷談般若  시냇물 졸졸졸 반야경을 설하고

淸風和月遍身寒  맑은 바람 밝은 달빛에 온 몸이 싸늘하다.

 

문이 없다(無門)

 

眼耳原來自沒從 눈과 귀는 원래 자취가 없거늘(* 눈과 귀로 들어온 인식의 허망함)

個中誰得悟圓通 누가 그 가운데서 원통을 깨우칠 것인가. 

空非想處飜身轉 텅 비어 형상 없는 그곳에다 몸을 굴리니

犬吠驢鳴身豁通 개 짓고 나귀 우는 울음 모두가 활통하거니

 

임종게(臨終揭)

 

七十八年歸故鄕  칠십 팔 년 살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니

天地山河盡十方  천지 산하 우주가 다 고향이.

 

 함허 기화(涵虛 己和, 1376-1433)

 

 세종 때 충주 사람이다. 21세 때까지 시 최고의 교육기관이던 성균관에서 유학을 공부했고,  출가한 후, 회암사에서 도를 깨쳤다. 불교, 유교, 도교 포함한 삼교일치(三敎一致)를 주장하였으며무학대사의 수제자였다. 

<원각소(圓覺疎)>, <반야경 오가해설의(般若經 五家解說誼)> 등 저서를 남겼고, 비는 봉암사에 있고, 부도는 가평 현등사에 있다.

'현등사 사적기'에는 스님이 운악산을 지나다가 길을 잃었는데, 흰 사슴이 나타나 폐허가 된 현등사로 인도하여, 거기 오래된 전각과 탑, 쓸만한 큰 나무가 있는 이 절을 중창하라는 불·보살의 감응이라 여기고 절을 중건한 후, 왕실 원당을 세웠다고 한다. 강화 전등사 옆 정수사에서, 지금 불가에서 유명한 금강경 서문을 썼다. 그 일대를 함허동천(涵虛洞天)이라 부른다. 

 

 

산을 헤아리며(擬山)

 

달빛에 거닐다가 우르러면 산은 높고, 바람 쐬며 귀 기울이면 물소리 차그워라.

도인의 사는 방법 이러할 뿐이거니, 무엇하러 구구히 세상 인정 따르랴.

 

 산중에 사는 맛

 

산 깊고 골도 깊어 찾아오는 사람 없고 왼 종일 고요하여 세상 인연 끊어졌네. 

낮 되면 무심히 산속의 굴에 피는 구름 보고, 밤이 오면 부질없이 중천에 뜬 달을 보네.  

화로에는 피어오른 차 달이는 연기니당상에는 향기로운 전서(篆書) 글씨처럼 꼬불꼬불 피는 연기로다 .

인간사 시끄러운 일 꿈에도 꾸지 않고, 단지 선정(禪定)의 기쁨 속에 앉아 세월을 보낸다.

 

세상 밖의 높은 자취

 

거친 음식 누추한 집은 선비의 취미요, 세상 사람이 버린 헌 옷 주워 빨아서 지은 가사장삼과 검은 주장자는 스님의 위엄이다.

다시 기억할만한 사연 있는가? 봄 바람 가을 달에 눈섶 들고 흥미 보일 뿐.

 

산중 취미

 

천자가 타는 옥수레와 금가마가 귀한 것이 아니요, 천자가 거느리는 삼군(三軍)과 즐기는 팔일(八佾)이 영화로운 것 아니다.

가장 좋기는 바위 곁에서 바라보는 공중의 달이요, 누워서 솔바람 소리 들으며 눈으로 경계를 깨닫는 것.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