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에 소개한 동양고전 50

선시 소개 제3편/ 보우, 서산

김현거사 2015. 8. 26. 16:19

 선시(禪詩) 소개 제3편/ 보우(普雨), 서산(西山)

 

 허응당 보우(虛應堂 普雨, 1509?-1565)

 

 지금 봉은사가 전국 수(首) 사찰로 떠오른 것은, 문정왕후와 선종판사(禪宗判事) 보우스님의 인연에서 비롯된다. 이때 조선에서 다시 선교 양종을 부활시키고, 봉은사에서 승과가 시행되었다. 이 승과에서 서산대사 휴정(休靜)과  사명당(四溟堂) 유정(惟政)을 발탁했다. 사명은 선사를 다음처럼 찬탄하였으니, '대사는 동방의 작은 나리에서 태어나 백세(百世)에 전하지 못하던 법을 얻었다. 지금의 학자들이 대사로 말미암아 나아갈 곳을 얻었고 불도가 끝내 끊기지 않았으니, 대사가 아니었더라면 영산(靈山)의 풍류와 소림(少林)의 곡조가 없어질 뻔하였다.'

스님은 46세에 봉은사 주지를 서산대사에게 맡긴뒤, 청평사에서 7년을 머무셨다. 스님의 저서는 <허응당집(虛應堂集)> 2권과 <나암잡저(懶庵雜著)> 등이 있는데, <허응당집>은 스님이 23세 때 금강산에서 수행하기 시작한 때부터 임종시까지의 시 620편을 엮은 것이다. 서산대사와 사명당이 교정하고 발문을 썼다.

 

인제 백담사에 '진불암(眞佛庵)'이란 스님 시가 돌에 새겨져 있다.

 

진불암(眞佛庵)

 

겹겹 구름 속에 암자가 있는데, 처음부터 사랍문은 달지 않았네.

축대 위 삼나무는 늦푸름을 머금고, 뜨락의 국화송이 저녁 노을 띄었네.

서리 맞은 나무 열매 떨어지는데, 스님은 여름 지난 옷을 꿰매고 있네.

고상하고 한가로움 나의 본뜻이기에, 돌아갈 길 잊은채 입 다물고 완상하네.

 

 

 

 

 

 

 

 

 

 

 

 

 

 

 

 

  

 

 

 

 

  

 

산중즉사(山中卽事)

 

승방은 원래 고요한 것이지만, 여름이 되어 더욱 청허(淸虛)하다.

혼자 있기 좋아하매 벗들은 흩어지고, 시끄러움 싫어하매 벗들은 흩어진다.

산 비 그친 뒤 매미의 울음소리, 새벽 바람 끝에 솔바람 이다.

긴 봄날에 동창 앞에 혼자 앉아, 아무 마음 없이 옛 글 읽는다.

 

청평(淸平)에서

 

약초 묘목 밟을까 사슴을 싫어하고, 맑은 시내 더럽힐까 뚜꺼비 쫒는다.

이끼 긴 오솔길에 찾는 이 없으니, 세상과 먼 청평(淸平)을 다시 더욱 깨닫겠다.

청평에 머문 뒤로 즐거움이 절로 많아, 일년 내내 지나도록 칭찬 비방 전혀 없다.

때로는 시냇가로 한가히 혼자 나가, 시원히 누더기 벗어 여라(女蘿) 덩굴에 건다.

 

상운암에서 자면서(宿上雲庵)

 

친구 없이 홀로 봄 산 깊숙히 찾으니, 길가의 복사꽃 지팡이에 스치네.

부슬비 내리는 밤 상운암에서 자노라니, 선심(禪心)과 시상(詩想)이 빗 속에 그윽하다. 

 

자원방래(自遠方來)한 벗에게

 

주지 방에 찾는 사람 없고, 봄바람에 혼자 사립문 닫고 있어,

손님 맞은 의자는 티끌에 덮히고, 추녀에 걸린 옷에 구름이 일어난다.

산의 과일은 남의 땀에 맡기고, 밭의 오이는 스스로 살이 쪘는데,

갑자기 천리 밖 벗이 왔나니, 담소의 기쁨이 무르녹았다.

 

후배스님에게 공부하는 법을 보임(示小師等做工勉力)

 

선방에 물뿌리고 청소하는 이는 이 도를 알고자 하는가,

구하는 것이 일찍이 다른 데에 있지 않네.

동쪽 울타리에 국화 심고 밭둑에 채소 심으며,

서쪽 개울에 적삼 빨아 푸른 등넝쿨에 걸어 말리네.

추우면 화로불에 다가가 고요한 선실에서 졸고

더우면 맑은 물 찾아가 푸른 물에 목욕하네.

어리석은 사람은 이런 자신이 천진불인줄 모르고

이 몸 밖에서 부질없이 부처님을 찾네.

 

차시(茶詩)

 

그 누가 나처럼 이 우주를 소요하리. 마음 따라 발길 마음대로 노니는데.

돌 평상에 앉고 누우니 옷깃 차갑고. 꽃 핀 언덕 돌아오는 지팡이 향기롭네.

바둑판 위 한가한 세월은 알고 있지만, 인간사 흥망성쇠 내 어찌 알리.

조촐하게 공양을 마친 뒤한 줄기 차 달이는 향기 석양을 물들이네. 

 

산과 나 다 잊어라(山我兩忘) 

 

내가 산이고 산이 나인 이치 사이에 빈틈이 없으니, 누가 산(山)이며 누가 나인가.

내가 산과 다르다고 집착하면 아상(我相)에 떨어지고, 산은 알고 내가 없으면 미망(未忘)에 떨어지리.

곧바로 알음알이 던져버리고, 문득 근본 우주가 하나임을 보아라.

내 눈에 가득 들어오는 모든 것, 동쪽 숲 봄에 흠뻑 취해 선(禪) 삼매에 빠져 있다. 

 

임종게(臨終揭)

 

허깨비가 허깨비 고향에 찾아와서, 오십여년 동안 미친 놀음을 하다가,

인간 영욕사 놀음 다 마치고, 중의 허물 벗고 창창한 하늘로 가노라.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5)

 

 호는 청허(淸虛)이며 오래동안 묘향산에 머물었으므로 서산대사라 칭한다. 법명은 휴정(休靜), 성은 최씨이다. 사명당의 스승이며, 선교 양종판사(禪敎 兩宗判事), 임진란 때는 임금 선조는 의주까지 도망갔으나, 73세의 늙은 몸을 이끌고, 팔도십육종 도총섭(八道 十六宗 都摠攝) 직책으로 대흥사에서 승병을 총지휘 하였다.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에서 영정을 보면서,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 (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 라는 시를 사명대사와 처영대사에게 전하게 하고, 앉은 채로 입적했다. 

 저서로는 문집인 <청허당집> 4권 2책과 경전에서 중요한 구절을 뽑아 후학을 위해 풀이한 <선가귀감>을 비롯, <삼가귀감(三家龜鑑)>, <설선의(說禪儀)> 등이 있다 .묘향산 안심사(安心寺), 금강산의 유점사(楡岾寺)에 부도(浮屠)를 세웠고, 해남의 표충사(表忠祠), 밀양 표충사, 묘향산 수충사(酬忠祠)에 제향하였다.

 

눈 덮인 들판을 갈 때에는 (踏雪野中去)
 

눈 덮인 들판을 갈 때에는, 모름지기 어지럽게 걸어가지 말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향로봉 시(香爐峯 詩) 

만국의 도성은 바걸거리는 개미집이요, 천하의 호걸들은 우굴대는 초파리 떼로다.

맑고 그윽한 달빛을 베고 누우니, 끝없는 솔바람 그 묘음(妙音)이 즐겁도다.

 

 낮닭 우는 소리를 듣고

 

백발이 되어도 마음은 희여지지 않는다고, 옛사람이 일찍이 말했었지.

내 지금 대낮에 닭 우는 소리 한번 듣고서, 장부의 할 일 다 끝내었네.

홀연히 나를 발견하니, 모든 것이 다 이러하도다.

이제 보니 천언만어 경전들이, 원래는 하나의 빈 종이조각 이었네.

 

두 사람 모두 꿈 속의 사람들이지(三夢詞)

 

주인은 손에게 꿈을 이야기 하고, 손은 주인에게 꿈을 말하네.

지금 꿈을 이야기 하는 두 사람, 그 모두 꿈 속의 사람들이지. 

 

 천계만사(千計萬思)

 

천 가지 만 가지 생각 모두가, 숯불 위에 내리는 한 점 눈송이네

진흙 소가 물 위로 가니, 천지와 허공이 갈라지는구나.

 

가을의 노래(賞秋)

 

원근의 가을 풍광 하나같이 기이하니, 한가로히 걸으며 석양에 긴 휘파람 부네.
온 산에 붉고 푸른 모든 아름다운 빛깔, 흐르는 물, 새들의 울음소리가 그대로 시를 설하고 있네.

 

노수신(盧守愼)에게 행적을 밝힌 글(上完山盧府尹書)

 

갑자기 창 밖에 두견새 우는 소리 들으니, 눈 앞의 청산이 바로 고향이네.
물을 길어 오다가 문득 머리를 돌리니, 청산이 무수한 흰구름 속에 있네.

 

사야정(四也亭)에서 

 

물은 스님의 눈처럼 푸르고, 산은 부처님의 푸른 머리일세.
달은 변치 않는 한 마음이고, 구름은 만 권의 대장경일세.
 

 

내은적(內隱寂)

 

두류산에 암자가 하나 있으니, 암자 이름은 내은적이라.
산 깊고 물 또한 깊어, 노니는 객은 찾아오기 어렵다네.
동서에 각누대가 있으니, 자리는 좁아도 마음은 좁지 않다네.
청허라는 한 주인이 천지를 이불 삼아 누워서.
여름 날에는 솔바람을 즐기고, 누워서 청백의 구름을 보나니.


두류산 내은적암(頭流山 內隱寂庵)

 

스님 도반 대여섯이 내은암 앞에 집을 지었네.
새벽 종소리와 함께 즉시 일어나고, 저녁 북소리 울리면 함께 자네.
시냇물 속의 달을 함께 퍼다가, 차를 달여 마시니 푸른 연기가 퍼지네.
날마다 무슨 일 골똘히 하는가. 염불과 참선일세.

 

차시(茶詩)

 

晝來一椀茶 夜來一場睡  낮이 오면 차 한잔  밤이 오면 잠 한숨
靑山與白雲 共說無生死  푸른 산 흰구름이 생사가 없음을 말하네
白雲爲故舊 朋月是生涯 흰 구름 옛 벗이요 밝은 달은 생애로세
萬壑千峰裏 逢人卽勤茶 만학천봉 산속에서 사람 만나면 차를 드리지
松榻鳴山雨 傍人詠落梅  나무는 산에 오는 빗소리 울리고, 옆 사람은 매화 떨어짐 읊조린다
一場春夢罷 侍者點茶來  일장춘몽 끝나니, 시자는 차를 다려 오는구나.

 

달마를 기리노라(達磨讚) 

 

구름을 잘라서 흰 장삼 만들고
물을 베어서 푸른 눈동자 만들었나?

불룩한 배 속에 옥구슬 가득 품었는지
신령스런 빛 북두칠성까지 비치네 

 

갈대 배를 푸른 물에 띄우니
가벼운 바람 떨치어 불어온다
달마(胡僧)의 두 푸른 눈에 비하면
천불(千佛)은 모두 하나의 티끌일 뿐.

 

임종게(臨終揭)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라.

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으니,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러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