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에 소개한 동양고전 50

선시 소개 제6편/ 한암, 효봉, 경봉

김현거사 2015. 9. 10. 08:00

 

 선시(禪詩) 소개 제6편/ 한암(漢岩), 효봉(曉峰), 경봉(鏡峰).

 

 한암스님(漢岩, 1876-1951)

 

 한암은 경허스님의 제자다. 강원도 화천 출신으로 1897년 금강산 장안사에서 출가하였다. 24세 때에 성주 청암사에서 경허스님 <금강경> 설법을 듣다가, ‘모든 상 있는 것이 허망하니,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보면, 즉 여래를 본 것이니라. (凡所有相 皆是虛忘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는 구절에서 개안(開眼)했다. 

37세 때 맹산 우두암에서 확철대오, 1921년(46세) 건봉사 조실로 추대되었고, 1923년(48세) 봉은사 조실로 추대되었다. 50세 가을, '내 차라리 천고(千古)에 자취를 감춘 학(鶴)이 될지언정 춘삼월에 말 잘하는 앵무새는 배우지 않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오대산 상원사로 이거, 1951년 3월 22일  세수 75세, 법랍 54세로 좌탈입망(坐脫立亡) 할 때까지 산문을 나오지 않았다. 제자로 탄허, 보문, 난암이 있다.

 

제목 없음(無題)

 

푸른 솔 깊은 골에 말없이 앉았나니, 어제 밤 삼경 달이 하늘에 가득하네.

백천(百千) 삼매(三昧) 무엇에 쓰랴? 목 마르면 차 달이고, 피곤하면 누워 자네.

 

또(又)

 

나그네 먼 고향 가기 잊었는데, 감자는 달고 나물 또한 향기롭네.

달이 떠올라 산마다 고요하고, 바람 불어 나무마다 시원하네.

영마루에는 한가한 흰구름 희고, 뜰 위는 낙엽이 노랗네.

모든 것에서 참모습을 보나니, 하늘에 닿는 득의가 길다.

 

오도송(悟道頌)

 

*35세 때 평안도 맹산군 도리산에 있는 우두암에서 홀로 참선수행하던 중, 아궁이에 불을 지피다가 홀연 큰 깨달음을 얻고, 다음 오도송을 읊었다.
 

부엌에서 불 지피다 연히 눈 밝으니, 이로부터 옛길이 인연따라 분명하네.

만일 누가 달마스님이 서쪽에서 오신 뜻을 나에게 묻는다면,

바위 밑 샘물소리 젖는 일 없다 하리. 

 

두번째 오도송

 

脚下靑天頭上巒 다리 아랜 푸른 하늘이고 머리 위는 땅
本無內外亦中間 본래 안과 밖은 없고 중간도 역시 없도다
跛者能行盲者見 절름발이가 걸을 수 있고 장님이 앞을 보니
北山無語對南山 북쪽 산은 말없이 남산을 대하고 있도다.

 

* 남긴 일화

 

 경성제대(京城帝大) 교수로 일본 조동종(曹洞宗)의 명승이던 사또오가 월정사로 한암 스님을 찾아 뵈웠을 때다. 급히 한암 스님이 계시는 상원사(上院寺)로 사람을 보내어 월정사로 내려와 사또오를 만나라고 전하니, 김장 준비 울력을 하던 스님이 일언지하에 거절하여, 할 수 없이 사또오 교수가 상원사로 올라갔다.

사또오 교수가 인사를 올리고, '어떤 것이 불법(佛法)의 대의(大義)입니까?' 하고 물으니스님은 묵묵히 놓여있던 안경집을 들어 보였다.

 사또오가 또 물었다. '스님은 대장경과 모든 조사어록을 보아오는 동안 어느 경전과 어느 어록에서 가장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까?' 그러자 사또오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면서 한말씀 하셨다. '적멸보궁에 참배나 다녀오게.' 이에 사또오가 또 물었다. '스님께서는 젊어서 입산하여 지금까지 수도해 오셨으니, 만년의 경계와 초년의 경계가 같습니까, 다릅니까?' 그러자 스님은 '모르겠노라.'고  잘라 답했다.  

 이에 사또오가 일어나 절을 올리며, '활구법문(活句法門)을 보여 주시어 대단히 감사합니다.'고 말하자, 사또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마디 하셨다. '활구라고 말하여 버렸으니 이미 사구(死句)가 되어버렸군.'

사또오는 이때 상원사에서 3일을 머물다 돌아갔다. '한암이야말로 일본에서 찾을 수 없는 큰스님'이라고 극구 칭송했다.

 

효봉스님(曉峰, 1888-1966)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나와 조선인으로는 최초로 판사가 되었다. 평양 법원에서 근무하다가 자신이 ‘사형선고’ 내린 것에 회의를 품고 가출, 엿장수로 변신하여 3년여를 떠돌다가, 38세에 금강산 신계사 보문암에서 석두화상을 은사로 삭발하였다. 

 ‘엿장수 중’, ‘판사 중’, ‘절구통 수좌’, ‘너나 잘해라 스님’등 별명이 있다. '절구통 수좌’라는 별명은, 수행을 했다 하면 절구통처럼 꼼짝하지 않고 철저히 했으므로 붙혀진 별명이다. ‘너나 잘해라 스님’은 제자들이 누구누구 잘못이 있다고 하면, 항상 '너나 잘해라'고 말하여 붙혀진 별명이다.

6.25 때까지 해인사 방장으로 계시다가, 1966년 10월 15일 밀양 재약산(載藥山) 표충사(表忠寺) 서래각(西來閣)에서 입적(入寂)하니, 세수(世壽) 79세, 법납(法臘) 42년이다.
구산, 탄허, 경산,
성수, 법정스님의 스승이다.

 

법어(法語)

 

사람의 머리는 날마다 희어지고, 산빛은 언제나 푸르러 있다.

사람과 산을 모두 잊어버리면, 흰 것도 푸른 것도 없네.

천만번 이리저리 다듬고 화장한들, 어찌 그 천진의 본래 모습만 하랴.

뿔 난 사자는 발톱이 필요없고, 여의주 가진 용은 그물에 안 걸리네.

만사를 모두 연분에 맡겨두고, 옳고 그름에 아예 상관하지 말아라.

먕녕된 생각이 갑자기 일어나거던, 곧 일도양단(一刀兩斷) 하라.

 

게송(揭頌)

 

一步二步三四步 不落左右前後去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 좌우에도 전후에도 떨어지지 말고

若逢山畵水窮時 更加一步是好處   산이 그림 같고 물이 막다른 곳에 이르러,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간 곳이 좋은 곳이네

*4계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변화하고 있지만, 실제 우주의 실체는 변하는 것이 아니다. 선은 온갖 설론(舌論)과 문자를 내버리는 방하착(放下着)의 무중력 공간이다. 이것을 불교에서 생명의 실체, 진여, 우주 만물의 실상이라 한다. 

 

오도송(悟道頌)

 

海底燕菓鹿抱卵  바다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낳고

火中蛛室漁前茶  타는 불 속 거미집엔 고기가 차 달이네

此家消息誰能識  이 집안 소식을 뉘라서 능히 알리오

白雲西飛月東走  흰 구름은 서쪽으로 달은 동쪽으로 달리네. 

임종게(臨終偈)

 

吾說一切法 都是早抭悊  내가 말한 모든 법은 다 군더더기

苦問今日事 月印於千江  궂이 오늘의 일을 묻는다면, 달은 천강에 비치네 

*입적 전에 시봉들이 '스님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남기시렵니까?" 하니 "나는 군더더기 소리 안할란다. 이제껏 한 말들도 다 그렇고 그런 소린데……' 하며 어린애처럼 웃었다고 한다.

 

경봉스님(鏡峰, 1892-1982)

 

광주 김씨. 속명은 용국(鏞國). 호는 경봉(鏡峰), 시호(諡號)는 원광(圓光). 밀양 출신.

15세 되던 해 모친상을 겪고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16세때 양산 통도사의 성해(聖海)를 찾아가 출가했다. 1908년 9월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에서 청호(淸湖) 스님을 계사(戒師)로 사미계를 받았다.
 통도사 불교전문강원에 입학하여 불경을 공부 중 하루는 불경을 보다가 '종일토록 남의 보배를 세어도 반푼어치의 이익이 없다(終日數他寶 自無半錢分).' 는 구절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해인사 퇴설당(堆雪堂), 금강산 마하연(摩訶衍) 석왕사(釋王寺) 등 선원을 찾아다니며 공부한 후, 통도사 극락암으로 자리를 옮겨 3개월 동안 장좌불와(長坐不臥) 정진하다가, 1927년 11월 20일 새벽에 방안의 촛불이 출렁이는 것을 보고 깨달아 다음 게송을 지었다.
 

 

我是訪吾物物頭  내가 나를 바깥 온갖 것에서 찾았는데
目前卽見主人樓  눈앞에 바로 주인공이 나타났도다
呵呵逢着無疑惑  하하 이제 무얼 만나도 의혹 없으니
優鉢花光法界流 우담바라 꽃 빛 광명법계에 흐르는구나

 

저서로는 법어집 <법해(法海)>, <속법해(續法海)>와 한시집 <원광한화(圓光閒話)>, 유묵집 <선문묵일점(禪門墨一點)>, 서간집 <화중연화소식(火中蓮花消息)> 등이 있다.

1982년 입적할 때 명정스님이 '스님 떠나신 후 뵙고싶으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묻자, '야반삼경에 문빗장을 만져보거라'라는 화두(話頭)를 남겼다.


매화

 

逈脫根塵事非常 뿌리부터 티끌까지 모두 철저히 멀리 벗어나려면
緊把繩頭做一場 고삐를 바짝 잡고 한바탕 일을 치러야 하네
不是一番寒徹骨 매서운 추위가 한번 뼈에 사무치지 않았던들
爭得梅花撲鼻香 매화가 어찌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

 

*통도사 하면 매화가 유명하고, 매화의 향기 하면, 도인의 이 시를 음미해볼만 하다.

 

허수아비

 

창문 밖에 한 뙈기 콩밭이 있는데, 산새와 산짐승이 침해하기 때문에 마른 풀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밭 가운데 세웠더니, 많은 산짐승들이 사람이라 의심하여 들어가지 않았다.

어느 날 밤에 소가 밭에 들어가 콩과 허수아비를 의심없이 다 먹어버렸다.

그래서 손뼉을 치며 크게 웃고 시를 지었다.

 

참소식

 

달빛은 구름과 어울려 희고, 솔바람 소리는 이슬에 젖어 향기롭다.

좋구나, 이 참소식이여! 머리를 돌려 자세히 보라.

 

눈으로 직접 보는 거기에 도(道)가 있다

 

밥과 떡은 물과 함께 희고, 감과 대추는 붉다.

상에 채린 음식 빛은 노랗고 검고 또 푸르기도 하다.

형형색색의 물건은 각기 육미(六味)를 갖췄고, 모두 입 안에 들고나면 돌아간 흔적 없다.

바람은 차고, 얼음은 옥과 같고, 눈은 내리는데, 매화는 향기를 뱉네.

티끌세상의 수행하는 자들이여, 이 좋은 풍경과 빛을 잘 보라.

 

오도송(悟道頌,1927년)

 

천지를 삼키니 큰 기틀이로다. 돌 토끼 학을 타고 진흙 거북 쫓아가네.

꽃 숲엔 새가 자고 강산은 고요한데, 칡덩굴 달과 솔바람 뉘라서 완상하리

 

열반게(涅槃偈)

 

身在海中休覓水         몸이 바다 가운데 있으니 물을 찾지 말고  

日行嶺上莫尋山         하루 하루 고개 위 산을 찾지 말지어라   

鶯吟燕語皆相似         꾀꼬리 울음과 제비 지저귐 모두 비슷하니  

莫問前三與後三         지나간 삼 일과 돌아올 삼 일 묻지 말게나

 

*일화

 

* '물 법문'

스님이 기거하던 극락암 앞 약수터에 이런 글이 있다.

'이 약수는 영축산의 산 정기(精氣) 된 약수이다. 나쁜 마음을 버리고 청정한 마음으로 먹어야 병이 낫는다. 물에서 배울 일이 있으니, 사람과 만물을 살려주는 것은 물이다. 갈 길을 찾아 쉬지 않고 나아가는 것은 물이다. 맑고 깨끗하며 모든 더러움을 씻어주는 것은 물이다. 넓고 짙은 바다를 이루어 많은 고기와 식물을 살리고 되돌아 이슬비가 되나니, 사람도 이 물과 같이 우주 만물에 이익(利益) 주어야 한다.'

이 글을 읽고 자살(自殺) 하려던 많은 중생들이 발길을 돌렸다는 전설을 남긴 '물 법문'이다.

돌에 새겨진 다음 시(詩)도 속세를 벗어난 것이었다. '영축산이 깊으니 구름 그림자 차겁고, 낙동강 물이 넓으니 물빛이 푸르도다.'

 

* 검소함

스님이 어느 날 법상에 올라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

'일본 조동종(曹洞宗)의 사찰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인기라. 한 수좌가 보자니까, 살림을 맡고 있는 원주스님이 매일 밤 자정쯤 되면, 아무도 모르게 무엇을 끓여서 혼자만 먹는 거라. 그래 수좌가 조실스님께 이 사실을 일러바쳤다.

조실스님이 그날 밤 숨어서 지켜보고 있노라니, 과연 원주스님이 한밤중에 혼자 일어나서 남모르게 무엇을 끓여 먹는 것이. 그래 ‘ 이것 봐라, 너 혼자만 먹지 말고 나도 좀 먹어보자’ 했더니, 원주가 별수 없이 먹던 것을 조금 나누어 주는데, 먹어보니 냄새가 고약해서 먹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이게 대체 무슨 음식이냐?’ 고 원주에게 물었더니‘공양주들이 누룽지와 밥풀 아까운줄 모르고 하수도에 버리니, 그걸 주워다가 끓여먹는 것입니다’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어.

원주소임 맡았으면 그만큼 쌀 한 톨, 밥풀 하나라도 귀하고  소중하고 무섭게 알아야 하는기라. 그래서 선문의 규범에 이르기를 '쌀 한 톨이 땅에 떨어져 있으면 나의 살점이 떨어져 있는 것과 같이 여기고, 한 방울의 간장이 땅에 떨어지면, 나의 핏방울이 떨어진 듯이 생각하라'고 이른 것이야.

 

*겸손

 스님은 시·서·화 삼절에, 선(禪)과 차(茶)까지 두루 갖춰 오절(五絶)로 불렸을 정도의 명필이다. 그러나 명필인 사형 구하스님에 대한 예를 다하기 위해 구하스님 생전에는 글씨자랑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