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에 소개한 동양고전 50

도산십이곡 / 퇴계 이황

김현거사 2015. 9. 14. 08:43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 퇴계(退溪) 이황(李滉) 

 

 퇴계(退溪), 퇴도(退陶), 도수(陶叟), 청량산인(淸凉山人)이, 동방 유학의 성사(聖師)라고 불리는 이황(李滉, 1502-1571)의 호다. 영남학파의 창시자 이언적 뒤를 이은 퇴계의 직제자는 동인 당수였던 김효원과 유성룡, 김성일 등이다.

그가 기대승(奇大升)이라는 학자와 전개한 사단칠정(四端七情)의 학설, '四端은 理가 發한 것이요, 七情을 氣가 發한 것이다(四端是理之發, 七情是氣之發)'이라는 이 12자의 결론은, 조선의 가장 주목할만한 성리학의 핵심이다. 

 박종홍(朴鐘鴻) 박사는 <퇴계문집> 해제에서 퇴계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퇴계에 의하면, 우리는 모든 이치를 다 알고나서 행하는 것도 아니요, 다 행하고 나서 아는 것도 아니다. 앎과 행동은 서로 돕고 서로 전진하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길을 걸을 때 두 다리가 서로 번갈아가며 앞서고 뒤서는 것과 같다.

 근본이 되는 것은 진실하고 망령됨이 없는 참(誠)이라고 한다. 참 자체는 하늘의 도요, 참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거니와, 스스로 힘써 참 되려는 것이 다름아닌 경(敬)이다.

철두철미 진실로 경을 다하면 이치가 밝게 드러나게 되니, 치지(致知) 하는 데도 근본은 경(敬)이요, 역행하는 데도 근본은 경이다.

이 경(敬)을 칠십 평생 실천궁행한 분이 다름 아닌 퇴계선생 이셨다.'

 

 <주자서절요>, <사단칠정분리기서> 등 저서와, <성학십도>, <자성록>, <퇴계집>, <도산십이곡> 같은 작품을 남겼다. 

요즘 와서 퇴계학 연구가 한.중.일에서 활발하지만, 철학자 아닌 비 전문가 입장에서 이해하기란 그림의 떡 이다. 우선 그의 시서(詩書)와 행적을 통해 접근해 본다.

 

 먼저 행적을 살펴보면,  김성일(金誠一)은,

'선생님의 거처 주위는 항상 정숙하게 정돈되어 있었으며, 책상은 반드시 밝고 깨끗했다. 도서가 가득 차 있었으나 언제나 흐트러진 책이 없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면 반드시 향을 피우고 정좌하셨고, 종일 책을 보아도 나태한 모습을 보이는 일이 없으셨다.'

하였고, 이덕홍(李德弘)은,

'선생께서 전에 월란사(月瀾寺)에 계실 때 어떤 사람이 낙지를 보내오자, 이웃 노인들에게 나누어 보내고는 비로소 맛을 보셨다.

선생께서는 제사나 시향(時享, 철 따라 모시는 제사)에는 아무리 춥고 더운 때라도 병 들어 눕지 않은 한 반드시 친히 가서 제물을 바쳤으며, 남에게 시키지 않으셨다. 또 선생께서는 새로운 물건을 얻으면 반드시 종가(宗家)에 보내어 사당에 올리게 하셨다.'

고 말했다. 이안도(李安道)는,

'선생께서 풍기 군수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갈 때의 행장은 홀가분 했으며, 책 몇 짐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집에 가자, 그 책을 담았던 나무 상자들을 관졸들에게 부쳐 도로 돌려주었다.'

하였다.

 

 *청렴한 군자의 기상이 어떤 것인지, 대략 짐작된다.

젊은 시절 퇴계의 심정은 그가 36세 때 쓴 <연말에 고향 편지를 받고>와 <봄철에> 라는 두 시에 잘 나타나 있다.

 

연말에 고향 편지를 받고

 

고향에서 보내 온 편지 열 장 남짓, 글자마다 넘치는 친구의 사연. 새벽에 일어나 펼쳐보며, 읽고 또 읽고 되풀이해 읽어본다.

고향 어른 평안타 함이 어찌 기쁘지 않으리요만, 이 곳 나의 심정은 더욱 우울해지네. 돌이켜보니, 내 어머님 곁을 떠나 객지에서 찬바람 부는 중양절(重陽節, 9월9일)을 몇번이나 보냈는가.

서울에 와서 한 일 없이, 관리가 되어 공무에 쫒기는 몸, 어머님 병환 걱정할 틈도 없었네. 세월은 빨라 벌써 연말 그믐은 닥쳐오는데, 객지 베갯머리에 근심만 많고, 마음은 먼 고향으로 달리네.

돌이켜보면, 재주 없고 부끄럽기만 한 이내 몸, 나라에 보답도 못하거늘, 어찌 일찍이 맘 편하게 거두어 가난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고. 내 힘으로 농사 지어 어른께 올리고, 어머님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바로 내 분수에 맞거늘, 오래 망설이며 결단을 못하고는 뻔뻔하게 명리(名利) 덤불 속에서 헛되게 넋을 잃고 있는가.

술미치광이라도 되고싶으나 그 비결을 배울 수 없구나. 살림 군색하여 떨어진 옷도 전당 잡혀야 하고, 쌀독에는 약식이 떨어질 지경이니, 벼슬살이 열번이고 사직하고서, 고향에 가고픈 맘 끝이 없어라.

관록(官祿)엔 뜻이 멀고, 물질을 바라지 않지만, 아이들은 내 뜻을 어찌 알리요. 까닭없이 과일 달라고 졸라만 대네.

책상 앞에 벼루와 붓이 있어, 이렇게 읊조리며 써 보네.

 

*이 시는 선생의 부친 찬성공(贊成公)이 선생이 출생한지 일곱 달 만에 별세했고, 32세로 과수가 된 모친 박씨가 넉넉치 못한 살림 속에서 막내인 퇴계를 비롯하여 8남매를 어렵게 키운 점을 생각하면, 제대로 이해될 것이다

 

봄철

 

맑은 봄날 아침, 하릴없이 아무렇게나 옷을 걸치고 서헌(西軒)에 앉으니, 머슴은 뜰을 쓸고는 적요하게 문을 도로 닫더라.

세초(細草)는 섬돌에 돋아나고, 아름다운 나무들 뜰에 찼어라. 살구꽃은 비에 떨어진듯, 복숭아꽃은 밤새 더욱 피어난듯. 붉은 벚꽃잎은 눈처럼 휘날리고, 흰 오얏꽃은 은빛 바다인양 출렁이며. 새들은 저마다 자랑하듯 새벽에 요란하다.

세월은 머무르지 않고 흐르니, 말 못할 가슴 속 회포여.3년 여의 서울 생활, 멍에 맨 망아지 신세, 덧없이 아침 저녁으로 나라에 부끄럽구나.

나의 고향 물 맑은 낙동강 기슭, 한적하고 평화로운 마을, 이웃에서 봄 농사하면 닭과 개가 울타리를 지켜주네. 책이 놓인 청정한 책상머리러 내다보이는 강과 들은 봄안개에 아롱거리며, 시냇가에는 물고기와 새들이 날고, 소나무 그늘에 학이 노닌다.

시골의 즐거움이여, 나도 귀거래사(歸去來辭) 읊으며 돌아가 조용히 술잔이나 들고져.

 

*퇴계는 27세에 향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28세에 진사시험에 합격했지만, 정작 과거에 급제한 것은 34세 였다. 그렇게 늦게 벼슬살이에 들어가 16년간 몸 담았다가 50세에 퇴계라는 곳에 은퇴하였다. 퇴계에 한서암(寒棲庵)을 짓고 독서와 사색에 잠기며 후진 양성을 하였는데, 명종은 그가 출사를 계속 거절하자 근신들과 함께 ‘초현부지탄(招賢不至嘆)’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짓고, 몰래 화공을 도산으로 보내어 풍경을 그려오게 하여 완상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송인(宋寅)이란 사람을 시켜 도산기(陶山記) 및 도산잡영(陶山雜詠)을 써넣은 병풍을 만들게 하여, 그걸 보며 선생을 흠모했다고 한다.

 

한서암(寒棲庵)

 

맑은 시내 서쪽 가에 초막을 지었으니, 속객이 어찌 사립문 두드리고 찾아오리.

산 남쪽에 은퇴해 계신 노선백(老仙伯, 이현보(李賢輔)를 말함)께서 만발한 꽃을 누비며 견여(肩輿) 타고 오시었네.

 

한서(寒棲)

 

띠풀을 엮어 숲속에 초막 세우나니, 집 아래로는 차가운 샘물이 넘치누나.

늦게 들어 살지만 족히 즐겁고, 사람 없이도 한이 되지 않더라.

 

어부(漁夫)

 

산협(山峽)의 강에는 풍파가 일어 끝없이 차거운데, 일엽편주를 푸른 물굽이에 묶어, 생생한 고기를 잡아 서행객(西行客, 서울 가는 손님)에게 팔아넘기고, 웃으며 구름안개 자욱한 속으로 사라지더라.

 

소나무를 읊다(詠松)

 

돌 위에 자란 천년 묵은 불로송, 검푸른 비늘같이 쭈굴쭈굴한 껍질, 마치 날아 뛰는 용의 기세로다.

밑이 안 보이는 끝없는 절벽 위에 우뚝 자라난 소나무, 높은 하늘 쓸어낼 듯, 험준한 산봉을 찍어 누를 듯.

본성이 원래 울긋불긋 사치를 좋아하지 않으니, 도리(桃李, 복숭아와 자두나무) 제멋대로 아양떨게 내버려 두며, 뿌리 깊이 현무신(玄武神, 북쪽을 지키는 신)의 기골을 키웠으니, 한겨울 눈서리에도 아랑곳없이 지내노라.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초야우생(草野愚生, 초야의 어리석은 사람)이 이럿타 엇더하리.

하물며 천석고황(泉石膏肓, 자연을 그리는 고치기 어려운 병)을 억지로 고쳐 무엇하리.

연하(烟霞, 안개와 노을)로 집을 삼고, 풍월(風月, 바람과 달)로 벗을 삼아, 태평성대에 병(病)으로 늙어가니, 이 중에 바라는 일은, 허물이나 없고져. 

순박한 풍조(淳風)이 죽었다 하는 말, 진실로 거짓말, 인간 품성이 어질다 하는 말이 진실로 옳은 말이다. 천하에 허다한 영재(英才)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 그윽한 난초(幽蘭)는 골짜기에 있으니(在谷), 자연히 냄새가 좋고, 백운(白雲)이 산에 있으니(在山), 자연히 보기 좋구나. 이런 속에 저 한 분 임금님(彼 一美人)을 더욱 잊을 수 없구나.

산전(山前)에 낚시터 있고(有臺), 대하(臺下)에 물 이로다(有水). 떼 많은 갈매기는 오명가명 하는데, 어찌하여 저 흰 망아지(皎皎白駒)는 멀리 뛰어갈 생각 하는가.

춘풍에 꽃이 산에 가득하고(花滿山), 추야(秋夜)에 달빛이 누대에 가득하니(月滿臺), 사철의 아름다운 감흥(四時佳興) 사람과 한가지구나. 하물며 고기가 뛰고 솔개 날고(魚躍鳶飛,) 구름 그림자 하늘 빛(雲影天光,) 이야 어디에 끝이 있을고.

천운데(天雲臺) 돌아들어 완락재(玩樂齋) 깨끗한데, 만권(萬券) 책 벗 삼은 생애 즐거운 일(樂事) 무궁하여라. 이 중에 바깥 오가는 풍류 일러 무엇 하겠는가. 천둥소리(雷霆) 산을 무너뜨리어도(破山) 귀머거리(聾者)는 듣지 못하며, 밝은 해(白日)가 하늘 높이 솟아도 장님은 못 보는 것이니, 우리는 귀와 눈이 밝은(耳目聰明)자로 되어서 귀머거리 장님은 되지 말아야 한다.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옛 성현을 뵙지 못하네. 그러나 옛 성현을 뵙지 못해도, 바른 길 우리 앞에 남아있다. 바른 길 앞에 있으니 행하지 않고 어이 할 것인가. 당시에 행하던 길 몇 해 씩 버려두고, 어디 가 다니다가 이제사 돌아왔는고. 이제라도 돌아왔으니, 딴 마음 두지 않으리.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萬古)에 푸르르며, 유수(流水)는 어찌하여 주야(晝夜)에 그치지 않는고. 우리도 그치지말아 만고상청(萬古常靑) 하리라.

어리석은 사내(愚夫)도 알아서 하거니 그 아니 쉬운가. 성인(聖人)도 다하지 못하시니 그 아니 어려운가. 쉽거나 어렵거나 간에 늙은 줄을 모르겠네.

 

 *끝으로 퇴계 선생 하면, 당신이 48세에 부인과 아들을 잃고 홀로 단양군수로 부임하여 만났던 18세의 관기(官妓) 두향(杜香)이와의 사랑을 빼놓을 수 없다. 두향은 풍기군수로 떠나는 선생에게 매화를 선물했고, 선생은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거쳐 69세에 고향 안동에 돌아와 임종할 때까지 그 매화를 곁에 두고 끔찍이 아꼈고, 임종시에도 '매화에 물을 주라'란 말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두향은 남한강 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다가, 부음을 접하자, 4일간을 걸어서 안동을 방문하고 돌아와, 곡기를 끊고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선생은 91수의 매화시를 담은 매화시첩(梅花詩帖)을 남겼으니, 그 중 두 편만 소개한다.

 

첫 편

 

一樹庭梅雪滿枝  뜰앞에 매화나무 가지 가득히 눈꽃 피니

  風塵湖海夢差池  풍진의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

  玉堂坐對春宵月 옥당에 홀로 앉아 봄밤의 달을 마주하니

  鴻雁聲中有所思  기러기 슬피 울어 생각이 산란하네

 

둘째 편

 黃卷中間對聖賢 누렇게 바랜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며

虛明一室坐超然 비어 있는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梅窓又見春消息 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을 다시 보니

莫向瑤琴嘆絶絃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