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에 소개한 동양고전 50

선시 소개 제4편/ 경허, 만해, 용성

김현거사 2015. 8. 26. 10:52

  선시(禪詩) 소개 제4편/ 경허(鏡虛), 만해(卍海), 용성(龍城)

 

 경허스님(鏡虛, 1840-1912)

 

 경허 스님은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시킨 선지식이다. 만해(卍海) 스님은 평하기를  '그의 문(文)은 선(禪) 아님이 없고, 구(句)가 법(法) 아님이 없다' 하였다.

  전주 사람으로 법호는 경허(鏡虛), 법명은 성우(惺牛)이다. 9세 때 과천 청계사에서 출가하였고, 1880년 서산 연암산 천장암의 작은 방에서 1년 반동안 치열한 참선을 한 끝에 확철대오. 수제자로는 '삼월(三月)'로 불리우는 수월, 혜월, 만공이 있다. 

 개심사 부석사 간월암 등지를 오가다가, 돌연 환속하여 박난주(朴蘭州)로 개명하였고, 서당의 훈장이 되었다. 함경도 갑산(甲山) 도하동(道下洞)에서 1912년 4월 25일 새벽 임종게 남긴 뒤 입적하였다. 나이 64세, 법랍 56세이다. 저서에 <경허집>이 있다..

 

공림사(公林寺)에서

 

첩첩 산 속 걸어 공림사에 다다르니, 절간은 바로 속세와 다르구나. 층층 봉우리에 푸른 이내 내리고, 향내 짙은 옛 절엔 한낮이 한가하다. 짧은 지팡이 걸고 나 또한 늙나니, 큰 일 이뤘으나, 누구와 돌아갈꼬? 시냇물은 경계 밖으로 흐르나니, 아롱진 이끼돌에 추연히 앉아본다.

 

언뜻 떠올라 읊다(偶吟)

 

어느새 석양인가 쓸쓸한 빈 절. 두 다리 뻗고 한가히 잠들었네. 바람소리에 놀라 깨어났나니, 단풍 든 잎이 뜰 안에 가득하네. 시끄러히 떠들음이 침묵만 하겠는가? 어지러히 소란 피움이 잠자기만 못하네. 쓸쓸한 산에 밤도 길어라. 베갯머리에 달빛이 환하네. 저 휜구름은 그 무슨 일로 날마다 이 산으로 날아드는가? 저 티끌세상 나쁜 일 꺼리어 나를 따라 산으로 돌아오는듯, 옳고 그름, 명예와 이익의 길, 마음은 어지러히 미친듯 달려간다. 이른바 이 세상 영웅이란 사내들, 이리저리 헤매며 돌아갈 곳 모른다.

 

 한암스님(漢巖重遠)에게 준 전별사(餞別辭)


'나는 천성이 인간 세상에 섞여 살기를 좋아하고 겸하여 꼬리를 진흙 가운데 끌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다만 스스로 절룩거리며 44년의 세월을 보냈는데 우연히 해인정사에서 원개사(遠開士)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성행(性行)은 순직하고 학문이 고명하였다. 함께 추운 겨울을 서로 세상 만난 듯 지냈는데 오늘 서로 이별을 하게 되니, 아침저녁 연기구름, 멀고 가까운 산과 바다. 실로 보내는 회포를 뒤흔들지 않는 것이 없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진실로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랴’ 하지 않았던가. 슬프다! 원개사 아니면 내가 누구와 더불어 지음(知音)이 되랴! 그래서 시 한 수 지어 뒷날에 서로 잊지 말자는 부탁을 하노라.

 

 '북해에 높이 뜬 붕새 같은 포부 변변치 않은 데서 몇 해나 묻혔던가.

 이별이란 예사라서 어려울 게 없지만, 뜬세상 흩어지면 훗날 기약은 묘연하구나.'

 

한암스님 답시(答詩)

 

서리 속 국화와 설중매는 이미 졌지만, 어찌 더 오랫동안 모실 수 없을까요?

만고광명(萬古光明) 마음 달에다, 뜬세상  뒷날 기약만 남깁니다.

 

 마음 공부

 

 공부를 하는 사람은 마음 움직이지 않기를 산과 같이 해야 하고, 마음을 넓게 쓰기를 허공과 같이 해야 하며, 지혜로 불법을 생각하기를 해와 달같이 해야 하며, 남이 나를 옳다고 하는지 그르다고 하든지 간에 곧은 마음을 끊지 말라.
 다른 사람이 잘하고 잘못하는 것을 내 마음으로 분별하여 참견하지 말고, 좋은 일을 겪든지 좋지 아니한  일을 당하든지, 항상 마음을 평안히 하고 마음을 무심히 가지라.

 또한 숙맥같이 지내고, 병신같이 지내고, 벙어리같이 소경같이 귀먹은 사람같이 어린아이같이 지내면. 마음에 절로 망상이 없어지리라.

 

 참선곡

 홀연(忽然)히 생각하니 모든 게 꿈 이로다. 만고 영웅호걸 북망산(北邙山)이 무덤이요,부귀 문장(文章) 쓸데없다 황천객을 면할소냐. 오호라 이내 몸이 풀 끝에 이슬이요, 바람 속에 등불이라. 

삼계(三界)의 큰 스승 부처님이 이르시대, 마음 깨쳐 성불하여 생사윤회 영원히 끊고, 불생불멸 저 국토(國土)에 상락아정(常樂我淨) 무위도(無爲道)를 사람마다 다할 줄로 팔만대장경 전해온다. 사람 되어 못 닦으면 다시 공부 어려우니 나도 어서 닦아보세. 닦는 길을 말하려면 허다히 많건마는 큰 줄거리 추려 적어보세. 

 앉고 서고 보고 듣고, 옷 입고 밥 먹는 것, 사람 만나 이야기 함,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운 것, 지각하는 이것이 무엇인고? 몸뚱이는 송장이요 망상번뇌 본래 공한 것이고, 천진(天眞) 면목 (面目) 나의 부처, 보고 듣고 앉고 눕고 잠도 자고 일도 하고, 눈 한번 깜짝할제 천리만리 다녀오고, 허다한 신통묘용(神通妙用) 분명한 이내 마음 어떻게 생겼는고?

의심(疑心)하고 의심하되 고양이가 쥐 잡듯이, 주린 사람 밥 찾듯이 목마른 이 물 찾듯이,육칠십 늙은 과부 외동 자식을 잃은 후에 자식 생각 간절하듯, 생각생각 잊지 말고 깊이 연구하되, 일념(一念)이 만년(萬年) 되게 하여, 자고 먹는 일조차 잊을 지경이 되면, 대오(大悟)하기 가깝도다. 

홀연히 깨달으면, 본래 생긴 나의 부처 천진면목(天眞面目) 절묘하다. 아미타불 이 아니며 석가여래 이 아닌가? 젊도 않고 늙도 않고, 크도 않고 작도 않고, 본래 생긴 자기의 영험스러운 빛, 하늘을 덮고 땅을 덮고, 열반(涅槃)의 진실 낙(樂)이 가이없다.

지옥천당이 본래 공(空)하고 생사윤회 본래 없다.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분명하고 명확히 인가(印可) 맞아, 다시 의심 없앤 후에 세상만사 망각하고, 인연을 따를 뿐 까리낌 없이 지내가되, 빈 배 같이 떠놀면서 인연 있는 중생 제도(濟度)하면, 부처님 은혜 보답함이 아닌가? 

일체 계행(戒行) 지켜 가면 천상인간(天上人間) 복(福)과 수(壽) 얻고, 큰 원력(願力)을 발(發)하여서 항시 불학(佛學) 따를 것 생각하고, 대비(大悲)의 마음먹어 가난하고 병든 걸인 괄세 말고,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색신(色身) 생각하되, 거품같이 보고, 바깥으로 역순경계(逆順境界) 몽중(夢中)으로 관찰하여, 기뻐하거나 성내는 마음 내지 말고, 텅 비고 신령한 이내 마음 허공과 같은 줄로 진실히 생각하여, 여덟 바람과 다섯 욕심, 일체 경계(境界)에 부동(不動)한 이 마음을 태산같이 써 나가세. 

 헛튼 소리 우시개로 이 날 저 날 다 보내고, 늙는 줄을 망각하니 무슨 공부 하여 볼까. 죽을 제 고통 중에 후회한들 무엇 하리. 사지(四肢)를 백 줄기로 오려내고, 머릿골을 쪼개는 듯, 오장육부 타는 중에 앞길이 캄캄하니, 한심하고 참혹한 내 노릇이 이럴 줄을 누가 알꼬?

저 지옥과 저 축생(畜生)에 나의 신세 참혹하다. 백천만겁(百千萬劫) 미끌어지고 넘어져 뜻 이루지 못하니, 다시 사람 몸 받기가 아득하다. 

 참선(參禪) 잘한 저 도인은, 앉아 죽고 서서 죽고, 앓도 않고 선탈(蟬脫)하며, 오래 살고 곧 죽기를 마음대로 자재(自在)하며, 항하(恒河)의 모래알처럼 많은 신통묘용(神通妙用) 임의쾌락(任意快樂) 소요(逍遙)하니, 아무쪼록 이 세상에 눈코를 쥐어뜯고 부지런히 하여 보세.

 오늘 내일 가는 것이 죽을 날에 당도하니, 푸줏간에 가는 소가 자욱자욱 사지(死地)로세. 

 예전 사람 참선할 제 잠깐(寸陰)을 아꼈거늘 나는 어이 방일(放逸)하며, 예전 사람 참선할 제 잠 오는 것 성화하여 송곳으로 찔렀거늘 나는 어이 방일하며, 예전 사람 참선할 제 하루해가 가게 되면 다리 뻗고 울었거늘 나는 어이 방일한고?

무명(無明) 업식(業識) 독(毒)한 술에 혼미하여 깨닫지 못하고 지내다니, 오호라 슬프도다. 타일러도 아니 듣고 꾸짖어도 조심 않고, 심상(尋常)히 지내가니, 혼미(昏迷)한 이 마음을 어이하야 인도할꼬?

쓸데없는 탐하는 마음, 성내는 마음 공연히 일으키고, 쓸데없는 허다분별(許多分別) 날마다 어수선하고 소란하니, 우습도다 나의 지혜 누구를 한탄 할꼬? 지각(知覺)없는 저 나비가 불빛을 탐하여서 제 죽을 줄 모르도다.

내 마음을 못 닦으면 계행(戒行) 복덕(小分福德) 도무지 허사로세. 오호라 한심하다.

 이 글을 자세히 보아 하루에도 열두 때며, 밤으로도 조금자고 부지런히 공부하소.

이 노래를 깊이 믿어 책상 위에 펼쳐 놓고, 시시 때때 경책(警策)하소. 할 말을 다하려면 바다물을 먹물로 써도 다 말할 수 없으니 이만 적고 끝내오니, 부디부디 깊이 아소. 다시 할 말 있사오니 돌장승이 아이 나면 그때에 말 할테요.   

 

 오도송

 

홀연히 사람에게서 고삐 뚫을 구멍(無鼻孔) 없다는 말 듣고

삼천 대천 세계가 이 내 집임을 몰록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들 사람 일이 없어 태평가를 부르네

 

사육언(四六言)

 

누가 옳고 뉘 그른가, 꿈 속의 일인 것을. 북망산에 한번 가면, 누가 너며 누가 나랴?

 

열반송

 

마음의 달(心月)이 홀로 둥그니, 빛(光)이 만상을 삼켰구나

빛의 경계를 모두 잊으면, 다시  이 어떤 물건인고?

 

만해 한용운( 卍海,韓龍雲,1879~1944)

 

 본관은 청주(淸州). 홍성 사람으로, 용운은 법명이며 법호는 만해(卍海).

 18세 때 1905년 백담사에서 김연곡에게 득도. 1917년 12월 오세암에서 좌선하던 중 바람에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진리를 깨우쳤다고 한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고, 1931년 김법린·최범술·김상호 등이 조직한 청년법려비밀결사인 만당(卍黨)의 당수로 추대되었으며, 44년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기 싫다며 북향으로 지은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집에서 66세의 나이로 입적했다.
논저로는, 불교의 교리와 승단의 제도와 의식, 사찰의 조직, 승려의 취처 문제까지 다룬 <조선불교유신론>과,〈유마힐소설경강의(維摩詰所說經講義)>,〈조선독립이유서>가 있고, 1973년 신구문화사에서 <한용운전집〉 전6권이 간행되었다.

 

 산가(山家)의 흥취

 

개울가 두세 채 누구의 집인가. 낮에도 사립문 닫아 아지랑이 막았네.

돌에 앉아 바둑 두니, 대숲에 바둑돌 놓는 소리. 구름 속에 잔 들어 꽃 보며 마시네.

십년에 한번 나들이 어찌 꺼릴 것인가. 만사가 표주박이요, 공(空) 역시 좋네.

봄 수풀 황혼에 앉을만 하나니, 만산 신록 속에 나무꾼의 풀피리.

 

가을 밤 비

 

신(禪)의 맛은 물인듯 담담하고, 향불 다시 피우고 밤도 깊으려는데, 오동 잎새마다 쏟는 급한 가을비 소리, 텅 빈 창가의 옅은 꿈이 추워라.

 

한가히 읊음

 

중년에서야 세월의 아득함 알고, 산을 의지해 따로 집을 지었다.

섣달을 지나서는 잔설(殘雪)의 시를 쓰고, 봄을 맞아서는 꽃들을 논한다.

빌어오려면 열개 돌도 적고, 없애버리려면 한 점 구름도 많다.

마음이 거의 반이나 학이 됐나니, 이 밖에 할 일은 좌선 하는 일이다.

 

매화

 

매화가 어디 있느냐. 눈 쌓인 강촌에 많다.

금생(今生)에 차그운 얼음의 뼈, 전생(前生)에는 백옥(白玉)의 혼.

맵시는 낮에는 기고(奇古)하고, 정신은 밤에도 맑다.

철적(鐵笛)소리 멀리멀리 흩어지는듯, 따스한 날 선방이 향기롭다.

한 봄인데도 매화의 시(詩)는 차그웁고, 긴 밤에 술잔만 따스하다.

백매(白梅)는 왜 달빛을 띄느냐. 홍매(紅梅)는 아침 햇볕에 더욱 붉고녀.

그윽한 선비가 홀로 즐기나니, 시린 세상이라고 뭉닫아 걸지 않았다.

강남의 어지러운 일일랑 부디 매화에게 말하지 마소.

인간세상에 지기(知己)가 적거니, 매화와 상대하여 술잔을 기울이네.

 

먹구름 걷히고 외로운 달 뜨니


먹구름 걷히고 외로운 달 뜨니,
차거운 달빛 먼 나뭇가지 뚜렷히 비추네.
학이 날아간 빈 산에 꿈 마져 없는데, 깊은 밤 누군가 잔설 밟고 가는 소리.

 

나룻배와 행인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 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은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님의 침묵 (沈黙)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끝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의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 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에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봄물 보다 깊으리라 가을 산 보다 높으리라

달 보다 빛나리라 돌 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나니 잇거든 이대로만 말하리

 

 용성(龍城, 1864-1940)

 

  전북 장수 출신으로  1879년 16세 되던 해에 해인사로 출가하여 화월화상을 은사로, 상허혜조율사로부터 계를 받아 승려가 되었다. 법호가 용성이다. 1910년 한일합병을 계기로 이제까지의 수행과 참선을 중심으로 한 삶에서 사바의 현실로 눈을 돌렸다. 1919년 한용운과 함께 3.1운동 민족대표 33인에 불교 대표로 참가했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전남 장수 생가 터에 죽림정사(竹林精舍)가 있다. 대각교를 창시했으며, 한글본 <신역대장경>유학자들의 불교비판과 기독교도의 불교 비방을 반론한 <귀원정종>이 있다.

 

낙동강을 지나며

 

금오산(金烏山)에 천추(千秋)의 달이요, 낙동강에 만리(萬里)의 물결이네

고기잡이 배는 어디로 갔는가. 옛날 그대로 갈대꽃 속에 자네.

 

제목 없음(無題)

 

부처나 조사도 원래 모르고, 나도 얻은 바 없네.

봄 깊어 복사꽃 피고, 맑은 바람 가야산에 불어온다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