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禪詩) 소개 제1편 / 원효(元曉), 원광(圓光), 혜초(慧超), 대각(大覺), 진각(眞覺), 보각(普覺), 원감(圓鑑)
선시(禪詩)란 무엇인가? 출가 고승(高僧)들이 남긴 선미(禪味) 담긴 시를 말한다.
이 선시를 가장 정확히 표현한 분이 동국대 이종익(李鐘益) 교수다. 그는 '초목의 정기가 결집된 것이 꽃이라면, 패합(貝蛤)의 정기가 결정된 것이 진주이며, 진세(塵世)를 초월한 도승(道僧)의 정기가 문자로 빚어진 사리(舍利)가 선시'라 하였다.
불가의 시는, 고구려 백제 신라 때부터 시작해서, 만해(卍海) 한용운 스님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다. 자연을 노래한 것도 있고, 향수를 읊은 시도 있고, 오도송(悟道頌)과 임종게(臨終揭)도 있다.
이 중 오도송은 도를 깨친 순간을 읊은 희유한 것이고. 임종게는 부귀영화 버리고 출가한 고승이 임종에 남긴 게송(揭頌)이다. 둘 다 불입문자(不入文字)에 속해 이해하기 어렵지만, 속가의 글과는 달리 심오한 것이므로 여기서 우리는 확철대오(廓徹大悟)한 고승의 정신을 편모나마 접 할 수 있다.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
스님은 29세에 출가하였고, 공부를 배우려고 의상스님과 중국으로 가던 중 귀국하였다. 일설에는 요석궁 공주와 맺어지기 전에 스님이 다음 노래를 항간에 퍼트리자, 무열왕이 이 소식 듣고 공주와 인연을 맺아주어, 설총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자루 빠진 도끼(沒柯斧)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주겠는가.
나는 하늘을 바칠 기둥을 만드련다.
*자루 빠진 도끼는 과부인 요석공주를 의미하고 있다.
오도송(悟道頌)
첩첩한 푸른 산은 아미타불이 계신 굴(窟)이요
망망한 큰 바다는 석가모니불이 계신 궁전이다
원광법사(圓光法師, 542년 ~ 640년)
스님은 25세에 중국에 들어가 구사론(俱舍論), 성실론(成實論)을 배웠고, 신라 진평왕 22년에 귀국하여,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지어 화랑의 근본 사상을 세웠고, 걸사표(乞師表, 군사를 빌리는 표문)를 지어 수나라가 30만 군사를 보내 고구려를 치게했다.
백결선생 집에서
멋 속에 늙은 신선, 유불선(儒佛仙)을 다 통하고
큰 선비의 예리한 인품, 만 사람이 못 당하네
지혜보살 문수(文殊)란 이름으로 나를 놀리는데
선생의 넓은 방장실(方丈室)엔 언제나 손님이 있네
*금을 타며 인생의 희노애락을 표현한 경주의 낭산(狼山) 밑에 살던, 백결(百結 : 옷을 백 번 기웠다는 뜻)선생과 친했던 모양이다.
혜초(慧超, 704-787)스님
스님은 20세에 신라에서 당나라로 가서, 남해 바다로 인도까지 갔다. 부처님 유적지를 참배하면서, 동, 서, 중, 남, 북의 5천축(五天竺)을 둘러보고, 10년 만에 장안으로 돌아왔다. 727년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3권을 지었다. 천축국에서 쓴 시를 소개한다.
여수(旅愁)
달 밝은 밤에 고향을 바라볼 때, 뜬구름만 시원하게 돌아가네.
그 편에 편지 봉해 부치려 하니, 바쁜 바람이 듣고 돌아오지 않네.
고국은 하늘 끝 북쪽, 이곳은 땅의 끝 서쪽이네.
기러기도 날아오지 않는 더운 남방이라, 누가 경주 계림으로 날아가 주리.
북천축에서 고국으로 돌아가려다 병으로 죽은 스님에게
고향에서는 타향에 나간 사람을 위해 매단 등불이 주인을 잃고,
이곳에서는 보배 같은 분이 꺽이었구나.
신령스런 영혼은 어디로 갔는가? 옥 같은 그 얼굴 재가 되었네.
생각하면 슬픈 마음 간절하거니, 그대 소원 못 이룸이 못내 섧구나.
고향으로 가는 길을 누가 아는가? 부질없이 흰구름만 떠돌아 간다.
대각국사(大覺國師, 1066-1101)
대각국사 의천(義天)은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11세에 중이 되었다. 30세에 송나라에 들어가 화엄(華嚴)과 천태(天台)를 공부한 후 귀국하였다. 흥왕사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두고, 요나라, 송나라, 일본에서 경서를 수집하여 <속장경>
4740 권을 간행하였다. 시호는 대각국사이며, 비(碑)는 통도사에 있다.
자성(自省)
도망간 염소를 찾아나섰다가 갈림길에서 양을 잃듯,
말에 가지가 무성하여 도(道)를 잃었다.
정신이 입신(入神)의 경지에 들어가야 비로소 깨닫게 되나니,
아득해라, 어떻게 하면 온갖 의심을 깨트리나.
*여기서 염소란 본래 자기 자신을 뜻한다.
국원공(國原公)의 시에 답함
온갖 생물 다 죽은 듯, 밤은 더 맑은데, 베개 높여 한가히 마음 닦기 알맞아라.
소나무 우거진 창가에는 차갑고 외로운 등불 그림자요, 바람 부는 뜰에는 쓸쓸히 나뭇잎 지는 소리.
난간을 둘러싼 수풀과 샘은 맑은 취미 비치고, 문가에 앉은 새들은 조용한 마음의 벗이다.
정처없이 떠다니다 홍련사에 들었나니, 세상의 부귀영화야 하나의 지프라기.
진각국사 혜심(眞覺國師 慧諶, 1178-1234)
우리나라 최초의 선시(禪詩) 창시자로 불리는 무의자(無衣子) 혜심은, 고려 신종 4년에 진사에 급제하였고,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스님이 되었다.
지리산에서 좌선할 적에는 눈이 내려 이마까지 묻히도록 움직이지 않고 마침내 깊은 뜻을 깨달았으며, 큰 바위에 앉아 밤낮으로 선정을 닦았는데, 5경(五更)이면 게송을 읊으니, 그 소리가 십리에 들렸다고 한다.
저서로는 선문강요(禪門綱要), 선종 초기의 공안을 모은 선문염송(禪門拈頌)이 있다.
송광사 광원암(廣遠庵)에 진각국사 탑비가 있고, 강진 월남사지(月南寺址)에 비(碑)가 있다.
사검(思儉)대선사를 위해
대나무 그림자가 뜰을 쓸어도 티끌은 까딱 않고
달빛이 바다를 뚫어도 물결에는 흔적이 없네.
보조국사(普照國師) 가신 날
한 봄의 절간은 청정 그대로인데, 조각조각 지는 꽃 푸른 이끼 점 찍는다.
그 누가 달마(達摩)가 수도하던 소림(少林) 소식 끊어졌다 하는가.
저녁 바람 때때로 꽃바람 보내온다.
백운암(白雲庵)에서
시자 부르는 소리 송라(松蘿) 안개 속에 울리고, 차 달이는 향기 돌 층계에 퍼져온다.
백운산 밑 길로 겨우 들어섰는데, 암자 안의 노스님을 벌써 찾아뵈었네.
* 이 시는 우리나라 작설차의 원조인 진각국사가 섬진강 백운산 밑에서 스승인 보조국사 지눌이 시자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단박에 지은 게송이다.
부채
예전에는 스승님 손에 있더니, 지금은 제자의 손바닥 안에 있네.
무더위에 허덕일 때 만나게 되면, 맑은 바람 일으킨들 방해 않으리.
*여기서 부채는 선풍을 전하는 도구를 의미한 듯. 진각스님이 위의 백운암 게송을 바치니, 보조국사가 매우 기뻐하며 부채를 선물 했는데, 그때 올린 게송이다.
선당(禪堂)에서
수도승의 벽안(碧眼)으로 푸른 산을 마주할 때, 한 티끌도 그 사이에 용납 않된다.
맑음이 뼈 속까지 사무치나니, 무엇하러 다시 열반(涅槃)을 찾으랴.
보각국사 일연(普覺國師 一然, 1206-1289)
고려가 몽고에 항쟁하던 시기에, 경북 군위군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찬술한 일연스님은 경주 출신으로 정림사, 선월사, 오어사, 운문사에서 현풍(玄風)을 드날렸다. 시호는 보각(普覺)이고, 100여 권의 책을 저술했는데, <삼국유사>와 <중편조동오위>가 현재 전하며, 그 외 <어록> <게송잡저> <조파도> <대장수지록> <제승법수> <선문염송사원> 등이 있다.
돌아오지 못한 스님네
천축의 하늘은 멀고, 산들은 첩첩, 유학승들은 힘들여 떠났도다.
저 달은 몇번인가 외로운 돛배가 떠남을 보았으나,
구름 따라 돌아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못보았네.
이차돈(異次頓)
의를 위해 생을 버림은 놀라운 일이거니와, 하늘에서 꽃이 나리고 목에서 흰 젖이 솟았네.
갑자기 한 칼 아래 죽어간 이래, 뭇 사원의 종소리 서울을 진동했다.
임종게(臨終偈)
꿈에 청산을 다녀도 다리 아프지 않고, 나의 그림자 물 속에 들어도 옷은 젖지 않았다.
또 한 수,
즐겁던 한 시절 자취없이 가버리고, 시름에 묻힌 몸이 덧없이 늙었에라
한끼 밥 짓는 동안 더 기다려 무엇하리, 인간사 꿈결인줄 내 인제 알았으니.
원감충지 (圓鑑沖止, 1226-1292)
고려시대 승려로 시호는 원감국사(圓鑑國師). 19세에 문과(文科)에 장원,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고 일본에 사신(使臣)으로 다녀왔다. 41세에 김해(金海) 감로사(甘露寺)에 있다가 원오국사가 입적하매 뒤를 이어 조계(曹溪) 제6세가 되었다. 원(元)나라 세조(世祖)가 북경(北京)으로 청하여 빈주(賓主)의 예로 맞고 금란가사와 백불(白拂)을 선사하기도 했다. 시와 글이 동문선에 많이 실렸고, 고려 충렬왕(忠烈王) 18년에 입적, 세수 67세.
한가함
성질이 깊고 고독해 푸른 산 중턱에 살고 있나니.
세월은 흘러 귀밑털은 흰데, 살아가는 방도는 한 벌 누더기 뿐.
비를 맞으며 소나무 옮기고, 구름에 쌓여 대사립문 닫네.
산꽃은 수놓은 장막보다 곱고, 뜰 앞 잣나무는 비단휘장 같네.
번뇌 다하니 기쁨 슬픔 없고, 찾는 사람 없으니 배웅 마중 적네.
배 고프면 산나물 속잎이 부드럽고, 목마르면 돌 사이 샘물이 맑네.
조용히 향로에서 피는 가는 연기 마주하고, 한가로이 가파른 돌길 살찐 이끼 바라보네.
아무도 내게 와서 묻지를 마소. 일찍이 세상과 맞지 않았으니.
섣달 스무날에
미친 바람은 집을 흔들고, 눈은 처마에 쌓이는데, 날마다 편히 문 열어놓고 잠이 한창 달았었다.
생각하면 저 성 안의 벼슬아치 무리들은, 닭이 울면 허겁지겁 조회하러 달려가리.
창 밖에는 삭풍(朔風)이 부르짖고, 화로에는 나뭇가지 붉게 타고 있다.
밥 먹고는 옷 입은 채 누워 지나니, 멍청한 한 사람의 게으른 늙은이네.
우서(偶書)
부귀하면 다섯 솥의 음식도 가벼이 여기는데, 빈궁하매 한 도시락의 밥에도 만족하네.
모두가 한번 떴다 가라앉는 백년 동안 일이거니, 무엇을 잃었다 하고 무엇을 얻었다 하리.
비 오는 날
선방이 고요해 마치 스님도 없는 듯, 비는 나직한 처마 밑의 사철나무를 적신다.
낮잠 자다 놀래 깨니 날은 벌써 저물고, 사미승은 불을 켜러 탑등으로 올라간다.
한가한 중에 우연히 적다
배고파 밥 먹으니 밥맛이 더욱 좋고
잠 깨어 차 마시자 차 맛이 한층 달다
땅이 후져 찾아오는 사람 없고
텅 빈 암자에 부처님과 함께 있음이 기쁘다.
바다 가운데 있으면서
몸이 바다 가운데 있으니 물 찾기를 쉬고
매일 산 위를 다니면서 산을 찾지 말지어다
꾀꼬리 울음과 제비 지저귐이 서로 비슷하니
전삼(前三)과 후삼(後三)은 묻지 말지어다.
(계속)
'책 한 권에 소개한 동양고전 5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시 소개 제4편/ 경허, 만해, 용성 (0) | 2015.08.26 |
---|---|
선시 소개 제2편/ 태고, 나옹, 함허 (0) | 2015.08.22 |
아제아제 바라아제/ 현장스님의 <반야심경> (0) | 2015.08.07 |
북곽선생과 젊은 과부/ 박지원의 <열하일기> (0) | 2015.08.04 |
달은 천강에 비치고/ 세종대왕의 <월인천강지곡> (0) | 2015.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