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에 소개한 동양고전 50

달은 천강에 비치고/ 세종대왕의 <월인천강지곡>

김현거사 2015. 8. 2. 09:20

달은 천강(千江)에 비치고

 

세종대왕의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1446년에 소헌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세종대왕이 수양대군에게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주요 설법을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한 책이 석보상절(釋譜詳節)이다.  세종이 이를 다시 찬불가로 만든 것이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이란 원래 달은 하나지만 천강에 비친다는 뜻으로, 부처의 본체는 하나이지만, 백억 세계에 화신으로 나타나서 만백성을 교화한다는 뜻이다.

 <석보상절>은 원래 24권의 방대한 분량이고, <월인천강지곡> 역시 비슷한 분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둘 다 완본은 전해지지 않고 부분만 남아있다.

<월인천강지곡>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다.

 

 높고 높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그지없고 가이없는 공덕을 어찌 다 말씀할 수 있으리까?

 세존이 평생 하신 일을 사륄 것이니, 만리 밖의 일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 같이 여기시옵소서. 몇 천년 전 일이나 세존의 말씀 여쭙겠으니, 직접 귀에 듣는 것 같이 여기시옵소서.

 

 탄생

 

 수십만 겁 이전에 한 임금이 나라를 아우에게 맡기고 자기는 정사(精舍)를 짓고 도를 닦고 있었다. 그런데 오백 세 전의 원수가 나라의 물건을 훔쳐 이 정사 곁을 지나가 포졸들이 도둑의 자취를 따라갔다가, 잘못 오인하여 그 형을 잡아죽였다. 그때 대구담(大瞿曇)이 그 피로 남녀를 만들어내니, 구담씨(瞿曇氏), 감서씨(甘庶氏)다. 이가 석가모니의 조상이다. 

 보광불(普光佛)은 아득한 미래에 선혜(善慧) 선인이 석가불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선혜가 공양할 꽃을 구하러 다녔는데, 그 때 나라 임금 역시 꽃을 구하고 있어 꽃 구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때 구이(俱夷)라는 꽃 파는 여자가 선혜에게 나중에 아내로 삼아줄 것을 약속 받고 꽃을 올렸다. 구이는 그 인연으로 선혜의 아내가 되었다.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부인이 동산을 구경하러 가다가 무우수(無憂樹) 밑에 갔을 때, 나무 가지가 절로 굽어왔다. 가지를 잡을 때 오른 쪽 옆구리에서 석가모니가 탄생하였으니, 이 날이 4월8일 이다.

 태자는 태어나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 걷고, 손으로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에서 오직 나만이 높다(天上天下 唯我獨尊)'고 외쳤다.

 용이 그를 씻기고 채녀(綵女, 비단 옷 입은 여인)들이 깁에 싸서 안고 어머님께 오니, 대신들이 모셨다.

 그때 이루 셀 수 없을 많은 상서들이 나타났다.중국에서는 주(周) 소왕(昭王) 때 그 상서가 나타난 신기한 일이 있었으므로, 사자를 인도에 보낸 일이 있다.

 

 출가(出家) 

 

 석가모니가 탄생하자 그 아버지 정반왕은 매우 기뻐하여 관상쟁이에게 상을 보였더니, 모두 출가(出家) 성불(成佛) 할 것이라 하였다.

 난 지 이레 된 4월 보름에 어머니가 하늘로 오르셨다.

 정반왕이 아들 이름을 지으려고 바라문에게 물었더니, 모두 살파실달(薩婆悉達)이라 하는 것이 좋다하였으니, 이는 일체를 성취한다는 뜻이다. 또 천중천(天中天)이라고도 불렀으니, 하늘 가운데 하늘이라는 뜻이다.

 밀다라(密多羅)를 태자의 스승으로 삼았는데, 나중에 태자는 스승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알았다.

 태자가 출가하면 자손이 끊어질 것을 염려한 임금은 며느리를 구하기로 하였다. 그 때 태자가 아내 될 사람의 금상을 만들었는데, 야수타라(耶輸陀羅)가 이와 같았으므로 약혼의 표시로 수정을 보냈다.

 태자의 재주를 모르는 야수타라의 아버지가 거절하여, 태자는 여러 사람과 힘 겨루기를 하여 번번히 이겼다. 코끼리를 넘어뜨리고, 한 화살로 스물여덟 북을 꿰뚫는 등 그 재주가 신기했다. 이리하여 혼례가 성립되었다.

 태자는 인간세상에 낙을 붙이지 않았다. 정거천(淨居天, 가장 높은 신)도 이를 알고 도왔다. 태자가 사문(四門)을 나갔을 때, 생노병사의 괴로움을 보고, 출가를 결심케 한 것도 정거천이다. 

 태자가 출가하려고 아버님께 청하니, 왕이 태자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태자가 나가지 못하게 성문을 잘 지키게 하고, 고운 여자, 아름다운 음악으로 마음을 끌고자 하였다.

 태자는 왕을 안심시키려고 부인의 배를 가리키며 임신을 알렸고, 부인도 태자 곁을 지키며 시중 들고 태자의 뜻을 꺽으려고 노력하였다.

 왕과 태자의 뜻은 이렇게 달랐으니, 왕은 천하를 다스리라는 것이요, 태자는 정각을 이루어서 대천세계를 밝히려는 것이었다.

 태자비 야수타라는 전생에 어머니에게 잘못한 죄의 응보로 6년 동안 아기를 뱃속에 가졌다가 나운(羅雲)을 낳으니, 사람들이 모두 의심하여, 의심을 풀려고 아기를 안고 물에 들어갔는데, 아기는 물에 뜨고, 연꽃이 피어, 사람들이 의심을 풀었다.

 

 수도(修道) 고행(苦行)

 

 태자가 6년 고행하는 모습을 보면, 한자리에 너무 오래 앉아있어 머리에 까치가 새끼를 칠 정도였다.

 그를 따라다닌 교진여(憍陣如)가 그 소식을 왕궁에 알렸더니, 왕과 왕후가 슬퍼하며 많은 물건을 실어보냈으나 받지 않았다. 워낙 기운이 없어서 목욕을 하고나니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였다. 아이들이 나무로 얼굴을 건더리고, 하루 한 낱 쌀을 자셨으나, 마음은 변할 줄 몰랐다.

 그 후 태자는 고행 위주로 성도를 할려고 함이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한 장자의 딸이 죽을 바치니, 그것을 자시고 힘을 얻어 보리수 밑으로 가시었다.

 이 때 이미 성도할 기미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마왕이 태자가 정각을 이룰 것을 방해하려고 여러 꾀를 부렸으니, 고운 딸을 보내어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약을 먹이려고 했고, 독룡, 맹수 병사들을 보내기도 했다. 태자는 이 모든 유혹과 협박을 물리쳤으니, 계집들은 더러운 꼴로 바꾸었고, 그를 해치려고 온 병사들의 무기를 연꽃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드디어 2월8일에 정각을 이루어냈으니, 태자는 삼명(三明; 숙명명(宿命明), 천안명(天眼明), 누진명(漏盡明)), 육통(六通;천안통(天眼通) 이통(天耳通) 타심통(他心通)숙명통(宿命通)신족통(神足通) 누진통(漏盡通))을 얻으셨다. 지혜를 얻어 세상 모든 일을 알아보셨고, 지혜가 밝으시어 두려움이 없었다.

 태자는 성도하신 뒤, 부처가 되어 제일 먼저 녹야원(鹿野苑)에 가서 교진여 등 다섯 사람에게 설법했다. 녹야원은 석가모니가 무량겁 때부터 인연 깊은 곳이다. 녹왕이 되어 뭇 사슴을 거느리기도 했고, 인욕선인(忍辱仙人)이 되어 설법하던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 절을 세웠다.

 

 일화 

 

 마갈타국(摩竭陀國)에 배화교도 가섭(迦葉) 삼형제가 있었다. 그들은 제자가 많았으며 용으로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석가모니가 가섭에게 가서 방을 달라고 하니, 가섭은 일부러 독한 용이 있는 용당을 빌려주었다. 석가모니가 돌집에 들어가서 삼매경에 드니, 용이 불을 뿜었으나 그것이 꽃이 되어 떨어지고 찬 바람이 불었다.

 그 밖에 여러 신통력을 보였으니, 먼데 과일을 순식간에 따오고, 없던 바위와 연못을 만들어 내고, 물 속에 들어가니 물이 갈라지고 티끌이 난 적도 있다. 

 가섭 형제가 항복하고 제자가 되니, 그 제자들도 감복하여 나한이 되었다.

 죽원(竹園)이란 땅을 바쳐 전법케 하였으니, 세존이 죽원정사에 계실 때, 사리불과 목건련이 제자가 되었다. 

 

 출가한지 열두 해에 세존은 정반왕을 뵙고 대화를 나누게 된다.

'옛날 태자는 집을 칠보로 꾸미고 금수요를 깔았는데 지금은?'

'나무 아래 앉았으나 여러 하늘 신을 오시고, 천룡이 보상(寶床)과 가사를 바칩니다.'

'옷을 칠보로 꾸미고 모습이 미끈하더니, 지금은 머리를 깍고 누비옷을 입었으니 어찌 부끄러움이 없으신가?'

'마음을 닦지않고 옷만 꾸민 것을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진리의 옷이야말로 정말 옷입니다.'

'더위와 추위를 모르도록 삼시전을 꾸미고 채녀들이 쫓더니, 지금은 깊은 산골짜기에서 얼마나 두려우신가?'

'생사를 깨달아 시름이 없는데 두려운 뜻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정반왕은 세간의 티끌같은 일을 말하였고, 세존은 그것이 전혀 안중에 없었던 것이다.

 

 태자가 성을 넘어 출가한지 6년만에 태자비가 아들 나운을 낳았다. 사람들이 모두 의심하였으나, 세존이 연화좌에 앉아있을 때, 처음 보는 데도 나운이  태자 무릎에 앉으니, 모두 의심을 풀었다.

 세존이 목건련을 보내어 나운을 출가시키려 하였을 때, 태자비는 이렇게 말했다.

 '아내가 되어 남편을 하늘같이 섬겼더니, 3년도 채 못 되어 출가하여 산골에서 고행하다가, 6년 만에 돌아오시기는 했으나 꼭 남 대하듯 하셨어요. 이제 우리 모자는 손수 목슴을 끊지못해 살아가니, 사람이지만 짐승만도 못합니다. 그런데 서러움 중에 이별이 가장 고통스러운데, 어찌 아들마져 이별하란 말 입니까? 자기는 도를 닦아 자비를 펴신다 하시더니, 이것이 자비인가요?'

 그러나 정반왕이 달래고, 세존이 신통력으로 화인(化人, 영혼)을 보내 타이르니, 눈물을 흘리고 나운을 보내었다. 정반왕은 야수타라의 마음을 위로하려고, 석가씨 문중에서 영리한 아이 쉰 명을 가리어 나운과 함께 출가시켰는데, 나운은 설법은 잘 듣지않아 세존이 거듭 설명을 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