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에 소개한 동양고전 50

만복사 저포기/ 김시습의 <금오신화>

김현거사 2015. 7. 30. 05:03

 

   만복사(萬福寺) 저포기(樗蒲記)/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로는 <금오신화(金鰲神話)>를 꼽는다.

 <금오신화>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나이 31세부터 37세까지 7년간 경주 남산 금오산에 은거할 때 쓴 한문체 전기(傳奇)소설이다. 소개하는 <만복사 저포기>는  <금오신화>에 실린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남염부주기(南炎浮洲記),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5편 중 첫번째 소설이다. 

  김시습은 세종 17년(1435년) 지금 명륜동에서 김일성(金日省)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태어난지 8개월만에 글을 알고, 3세 때 글을 지었으며, 5세 때 대궐에 불려가서 시를 지었다고 한다.

 세종이 박이창(朴以昌)을 시험관에게 재능을 시험케 했는데, '童子之學白鶴舞靑空之末(어린이의 글이 끝없이 푸른 하늘 끝에서 백학이 춤추는 것 같네') 하자, 시습이 '聖王之德黃龍飜碧海之中(임금님의 덕은 푸른 바다에 황룡이 띄어오르는듯 하옵니다) 라는 댓구(對句)를 올려 놀라게 했다고 한다. 세종이 상으로 비단 50필을 주어 가져가보라 했더니, 어린이가 비단의 끝과 끝을 매어서 한 끝을 끌고 돌아가, 그 지혜에 온 나라가 떠들썩 하였다고 한다. 

 21세 때 삼각산에서 학문을 닦다가, 세조의 단종 폐위 소식을 듣고, 3일간 통곡하다가 책을 불사르고 일부러 똥통에 빠져 미친 척 하였다. 그는 수락산(水落山)에 들어가 중이 된 후, 설악산 금오산 등에 노닐며 허무한 회포를 시로 달래고 살았다.

 나중에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꼽힌 그는 59세로 일생을 마쳤는데, 호는 매월당, 청한자(淸寒子), 동봉(東峰), 오세(五歲)가 있고, 법호는 설잠(雪岑)이며, 전해지는 저서로는 <금오신화>와 <매월당집>, <역대연기(歷代年紀)>가 있다.

 

 만복사(萬福寺) 저포기(樗蒲記)

 

 남원에 양생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일찍 어버이를 여위고 장가도 들지 못한채, 만복사 절간의 구석방을 얻어 외롭게 살았다.

 구석방 앞에는 배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었는데, 바야흐로 봄을 맞아 활짝 꽃을 피워 뜰안이 은세계인듯 하였다. 양생은 외로움을 억누르지 못하여 밤마다 배나무 밑을 거닐며 시를 읊어 자신을 달랬는데, 어느 날, 별안간 공중에서,

'진정 그대가 좋은 배필을 얻고자 하면, 무슨 어려움이 있으리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튿날이 마침 3월24일이라, 마을의 청춘남녀들이 해마다 하던대로 만복사를 찾아와 저마다 소원을 빌고 갔다. 저녁예불 끝나자, 양생도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소원을 빌었다.

 '부처님! 오늘 저녁 저는 부처님과 저포놀이(일종의 주사위놀이)를 한번 하려 합니다. 놀이에서 소생이 지면, 소생은 법연을 베풀어 부처님께 갚고져 하오며, 만약 부처님께서 지시면 저의 소원인 예쁜 아가씨를 배필로 내려주소서.'

 라고 축원한 다음, 저포를 던졌더니, 양생의 승리였다. 이에 양생은 부처님 앞에 끓어앉아 다시 한번 소원을 빈 후, 불탁 아래서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자 얼마 않되어 과연 한 아가씨가 들어오는데, 나이는 열대여섯 쯤 되어보이고, 새카만 머리에 고운 얼굴이 마치 선녀 같았다. 그는 백옥 같은 손으로 등잔불을 켜고, 향로에 향을 꽂은 뒤, 세 번 절 하고 끓어앉아, 축원문을 꺼내어 불탁 위에 올린 후,

'아아 사람 목슴이 어찌 이다지도 짧으오이까?' 

하며 흐느껴 울었다.

 이 광경을 엿본 양생은 더 이상 자신을 가눌 수 없어 뛰쳐나가,

'아가씨, 당신은 도대채 누구이며, 방금 불전에 바친 내용은 무슨 내용입니까?

 묻고, 글을 읽어보니,

'저는 00동네에 사는 00라는 소녀인데, 왜구가 쳐들어와 가족들이 흩어지고, 소녀의 몸으로 깊숙한 초야에 숨어들어 3년을 지냈은 즉, 모처럼 좋은 배필을 내려주십사'

하는 내용이었다. 글을 읽은 양생은 얼굴에 기쁨을 가득 띄고 여인더러 자기의 거처로 가자고 권하였다. 이 때 절은 퇴락하여 스님들은 한 모퉁이 방에 옮겨 살았고, 양생은 행랑채 끝 좁다란 판자방에 살았다.

여인이 사양하지 않고 따라와서 두 사람은 부부의 정을 나누게 되었다.

 밤이 깊어 달이 동산에 떠오를 때, 문득 어디선가 발자국 소리가 나서, 문을 열고 내다보니, 한 시녀 아이가 서 있다. 여인이

'어떻게 여기를 알고 찾아왔느냐?'

고 묻자,

 '아가씨는 평소 문밖에 나가시지 않더니, 오늘은 어이 이곳에 계시오니까?

하고 반문했다.

'오늘 높으신 하느님과 자비로운 부처님께서 님을 점지하여 주시어 백년 해로의 가약을 맺게 되었다. 미처 알리지 못함은 예도에 어긋나나, 꽃다운 인연을 맺게된 것이 평생의 기쁨이니, 돌아가서 주안상을 차려오거라.'

 시녀가 얼마 후에 돌아와, 뜰어서 잔치를 벌이니, 밤은 자정에 가까웠다.

 양생이 주안상의 그릇들을 살펴보니, 무늬가 특이하고 술잔에서 기이한 향내가 진동하는 것이, 아무래도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닌듯 했다. 여인의 말씨와 몸가짐도 매우 얌전하여, 아무래도 어느 명문집 딸이 한 때의 정을 걷잡지 못하여 밤에 뛰쳐나온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 아이는 옛날 곡 밖에 부를 줄 모르지만, 청컨대 당신께서 저를 위해 노래를 하나 만들어, 이 아이에게 부르게 하여 주소서.'

 여인이 양생에게 술잔을 올리면서 권주가를 청하자, 양생이 쾌히 허락하고, 곡조를 지어 시녀로 하여금 부르게 하였다. 여인은 그 노래를 다 듣고 슬픈 얼굴로 말했다.

 '당신을 진작 만나지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다만 그래도 이렇게 만나 것이 어찌 천행이 아니오리까?

 그때 마침 서쪽 봉우리에 지는 달이 걸리고, 먼 마을에서 닭의 홰치는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먼동이 희끄무레 트기 시작하는 때 였다.

 술상을 거두라는 여인의 말에 시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때 여인이 입을 열어 양생에게 말했다.

'꽃다운 인연이 맺어졌으니, 당신을 모시고 집으로 갈까 하옵니다.'

양생이 흔쾌히 승락하고, 여인의 손을 잡고 걸어갔더니, 마을을 지나는데, 사람들이 길에 나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상하게도 양생과 함께 있는 여인을 보지 못했다.

'양 총각, 새벽에 혼자서 어딜 다녀오시오?'

하고 물어본다. 참으로 해괴한 일이었다. 이상하게도 울타리 밑에서 개들이 유난히 짖어댄다.

 여인은 양생을 데리고 이슬이 길을 가득 덮은 깊은 숲을 헤치고 가길래,

'여인이 사는 곳이 어찌 이리 황량하오?'

 물어보니,

'노처녀 거처란 으례 그러하옵니다.'

하고 대답한다.

 이윽고 쑥이 가득한 속에 한 채의 집이 나타나자, 여인이 양생을 그리로 안내했다. 방에는 휘장이 쳐있고, 밥상은 엊저녁 차림처럼 훌륭한 것이었다. 이렇게 기쁨과 환락으로 사흘을 즐겼을 때, 여인이 양생에게 말했다.

'이 곳의 사흘은 인간계의 삼년에 해당되옵니다. 가연을 맺은 지가 잠깐인듯 하오나 오래 되었사오니, 서운하긴 하지만, 이제 당신은 인간 세계로 돌아가시어야 합니다.'

그러고는 이별의 잔치를 베풀려고 했다.

'오늘 못다 이룬 소원은 내세에 다시 이룰 수 있사옵니다. 다만 이곳의 이웃 동무들도 인간 세계와 같사오니, 한번 만나보고 떠나심이 어떠하올지요?'

하고 묻는다. 양생이 허락하자, 정씨, 허씨, 김씨, 유씨 이웃 처녀들을 초대하였는데, 네 아가씨 모두 명문가 따님이어서, 천품이 유순하고 풍류가 놀라우며, 총명 박식하여 시부(詩賦)에 능하였다.

 술자리가 끝나고  친구들을 돌려보내자, 여인은 양생에게 은잔 한 벌을 내주면서 말했다.

 내일은 제 부모님께서 저를 위해 보련사에서 재를 베풀 것입니다. 당신이 저를 저버리지 않으신다면, 보련사 가는 길목에 기다려서 저의 부모님을 뵙는게 어떠하오리까'

 양생이 허락하고, 이튿 날 은잔을 들고 보련사 길목에 서 있었다. 그랬더니 어느 명문가 행렬이 다가오는데 딸의 대상을 치르려는 행렬이었다. 그런데 그 집 마부가 은잔을 들고있는 양생의 보습을 보고, 자기 주인에게, '아무래도 아가씨 장례식 때 묻었던 은잔이 벌써 도난당한 듯 하다'고 보고하였다.

주인이 말을 멈추고 보니 과연 그런지라, 양생에게 은잔을 갖게된 경위를 물었다. 양생이 아가씨와의 일을 빠짐없이 말하니, 주인이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내 팔자가 기구하여 슬하에 여식 하나만 두었더니, 왜란 통에 아이를 잃고 여태 정식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개녕사 옆에 임시로 묻어둔채, 오늘이 마침 대상날이라 부모된 도리로 보련사에 가서 재나 올릴까 해서 가는 참인데, 자네가 정말 그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려면 여식을 기다렸다 함께 오게.'

한다.

 양생이 혼자 아가씨를 기다리니 과연 여인이 시녀를 데리고 나타나 둘이 손을 잡고 보련사로 갔다. 그런데 여인이 절 문에 들어서서, 법당에 올라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휘장 안으로 들어갔으나, 친척들과 승려들 아무도 그녀를 보지 못한다. 양생만 그 아가씨를 볼 수 있었고, 둘이 저녁밥을 먹었는데, 잠시 양생이 밖으로 나와 그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자, 부모들이 휘장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랬더니 딸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다만 수저 소리만 달그락거릴 뿐이었다.

 부모들이 경탄하여 휘장 안에 침구를 마련하고 양생에게 딸과 함께 있도록 권했다. 그 후 아가씨가 양생에게 말했다.

 '저의 신세타령을 여쭙겠습니다.제가 예법에 어긋난 줄은 잘 알고 있사오나. 하도 들판의 다북쑥 속에 있다보니, 정회가 일어 이기지 못하였사옵니다. 뜻밖에 당신과 삼세의 인연을 맺아, 백년 절개를 바치고 지어미의 길을 닦으려 하였사오나, 애달프게도 숙명을 저버릴 수 없기에 이제 저승길로 떠나야 하겠사옵니다. 이제 한번 헤어지면 훗날을 기약할 수 없사오니, 이별에 임하여 무쓴 말씀을 드리겠나이까?'

하며 소리내어 울었다.

 이윽고 스님과 사람들이 혼백을 전송하니, 여인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슬픈 울음소리만 공중에서 은은히 들리다가, 곧  멀어져 갔다.  

 부모는 이 일이 참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양생도 그녀가 귀신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때 부모가 말하였다.

'은잔은 자네에게 맡길 것이네. 내 딸이 지녔던 밭과 시녀 몇 사람도 줄것이니, 그걸 가지고 내 딸을 잊지 말아주게.'

 이튿날 양생이 고기와 술을 가지고 아가씨와 지낸 곳을 찾아가니, 과연 묘가 하나 있었다. 양생은 음식을 차려놓고, 지전을 불사르며 조문을 외고 돌아왔다.

 그 뒤 양생은 집과 농토를 전부 팔아 저녁마다 제를 올렸는데, 하루는 공중에서 아가씨 말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당신의 은덕으로 먼 나라의 남자로 태어났습니다. 이제 유명의 간격은 더 멀어졌으나 당신의 두터운 정은 어찌 잊겠나이까? 당신도 여생의 길을 깨끗이 닦아 속세의 티끌을 벗으소서.'

 그 후 양생은 다시는 장가들지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면서 살았는데,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