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에 소개한 동양고전 50

스님의 봉변/ 성현의 <용재총화>

김현거사 2015. 7. 31. 11:57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

 

 성현(成俔)은 연산군 때 학자요, 시인이요, 음악이론가다. 유자광(柳子光)과 함께 음악의 집대성인 <악학궤범(樂學軌範)>을 편찬했으며, 예조, 공조판서, 대제학을 지냈다.

<용재총화>는 역사·지리·종교·학문·음악·서화(書畵)·유명 인사와 하층민의 음담패설도 포함시켜, 사람들의 심신을 유쾌하게 할만한 것은 가리지 않았던 일종의 수필집이다.

 그의 호는 용재(慵齋), 허백당(虛白堂), 부휴자(浮休子) 등이 있으나, <용재>란 명예와 이욕을 좇아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속적인 삶과 거리를 두며 살겠다는 뜻으로 ‘게으를 용(慵)’자를 취한 것이다.

  이 책은 1525년(중종 20) 경주에서 간행되어 3권 3책의 필사본으로 전해오다가, 1909년 조선고서간행회에서 간행한 대동야승(大東野乘)>에 수록되었다.

 스님에 관한 해학적인 글부터 소개한다.

 

     스님의 봉변

 

 상좌(上座)가 사승(師僧)을 속이는 것은 옛날부터 흔히 있는 일이다.

 옛날에 어떤 상좌가 있었는데 그의 사승에게 말하기를,

“까치가 은수저를 입에 물고 문 앞에 있는 가시나무에 올라 앉아 있습니다.”

하니, 중이 이를 믿고 나무를 타고 올라가니 상좌가 크게 소리질러 말하기를,

“우리 스승이 까치새끼를 잡아 구워 먹으려 한다.”

하였다. 중이 어쩔 줄을 몰라 내려 오다가 가시에 찔려 온몸에 상처를 입고 노하여 상좌의 종아리를 때렸더니, 상좌가 밤중에 중이 드나드는 문 위에 큰 솥을 매달아 놓고, 큰 소리로,

 “불이야.”

하였다. 중이 놀라서 급히 일어나 뛰어나오다가 솥에 머리를 부딪혀서 까무러쳐 땅에 엎어졌다가 오래된 뒤에 나와보니 불은 없었다. 중이 노하여 꾸짖으니 상좌는,

“먼 산에 불이 났기에 알린 것뿐입니다.”

하였다. 중이 말하기를,

“이제부터는 다만 가까운 데 불만 알리고 반드시 먼데서 난 불은 알리지 말라.”

하였다.

 

  이웃집 과부

 

 어떤 상좌가 사승을 속이기를,

'우리 집 이웃에 젊고 예쁜 과부가 있는데 내게 말하기를, 절의 정원에 있는 감은 너의 스님이 혼자 자시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스님이 어찌 혼자만 자시겠습니까. 매양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하였더니, 그 과부가,

‘네가 내 말을 하고 좀 얻어 오너라. 나도 감이 먹고 싶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중이 

'만약 그렇다면 네가 따서 갖다 주어라.'

 하였더니, 상좌가 모두 따다가 제 부모에게 갖다 주고는 돌아와서 중에게,

'여자가 매우 기뻐하며 맛있게 먹고는 다시 말했습니다. 옥당(玉堂)에 차려놓은 흰 떡은 너의 스님이 혼자 자시느냐.’

하기에, 내가,

 ‘스님이 어찌 혼자 자시겠습니까. 매양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하였더니, 과부가

 ‘그럼 내 말을 하고 좀 얻어 오너라. 나도 먹고 싶다.’

하였습니다.  중이 그 말을 듣고,

'만약 그렇다면 네가 거두어서 갖다 주어라.'

고 했다. 그러자 상좌가 모두 제 부모에게 주고는 중에게 가서,

'과부가 매우 기뻐하며 맛나게 먹었습니다.'

하면서, 

‘과부가 무엇으로써 네 스승의 은혜를 보답하겠느냐? 기에 내가, 우리 스님이 만나보고 싶어합니다.’

하니, 과부는 흔연히 허락하며 말하기를,

‘우리 집에는 친척과 종들이 많으니 스승이 오시는 것은 불가하고 내가 몸을 빼어 나가서 절에 가서 한 번 뵈옵겠다. 하므로, 내가 아무 날로 기약했습니다.”

하고 거짓말을 하니, 중은 기쁨을 견디지 못하였다.

 그 날짜가 되어 상좌를 보내어 맞아 오게 하였더니, 상좌가 과부에게 가서 말하기를,

'우리 스님이 폐(肺)를 앓는데 의원의 말이 부인의 신발을 따뜻하게 하여 배를 다림질하면 낫는다 하니 한 짝만 얻어 갑시다.'

하니, 과부가 드디어 주었다.

 상좌가 돌아와서 문 뒤에 숨어서 스님을 보니 중이 깨끗이 선실(禪室)을 쓸고 자리를 펴놓고 중얼거려 웃으며 하는 말이,

'내가 여기에 앉고 여자는 여기 앉게 하고, 내가 밥을 권하고 여자가 먹으면 여자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서 서로 함께 즐기지.'

하였다.

 그때 상좌가 갑자기 선실로 들어가서 신발을 중 앞에 던지면서 말하기를,

“모든 일이 끝장났습니다. 내가 과부를 청하여 문까지 이르렀다가 스님이 하는 소행을 보고 크게 노하여 하는 말이, 네가 나를 속였구나. 네 스승은 미친 사람이구나 하고, 달아났습니다. 내가 쫓아갔으나 따르지 못하고, 다만 신발 한 짝만 가지고 왔습니다.'

하였다. 이에 중이 머리를 숙이고 후회하며 

'네가 방정맞은 내 을 쳐라.'

고 말하니, 상좌가 목침(木枕)으로 힘껏 쳐서 이빨이 다 부러졌다.

 

 도수승(渡水僧)

 

 어떤 중이 과부를 꾀어 장가들러 가는 날 저녁이 되었다. 상좌가 속여 말하기를,

'생콩을 물에 타서 마시면 매우 양기(陽氣)가 좋아집니다.'

 하였다. 중이 그 말을 믿고 그대로 하였다. 그런데 과부집에 갔더니, 배가 불러 간신히 기어서 들어가 휘장을 내리고 앉아 발로 항문을 괴고 꼼짝하지 못하였다.

 조금 있다가 과부가 들어왔으나 중이 꿇어앉아서 움직이지 못하자, 과부가 말하기를,

'어찌 이처럼 목우(木偶 나무로 만든 인형) 모양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는 손으로 잡아 끌어 중이 땅에 엎어지면서 설사를 해버리니, 방 안에 구린내가 가득 찼다.

 중은 매를 맞고 내쫓겼는데, 밤중에 혼자 가다가 저쪽에 희뿌연 것이 길을 가로질러 있었다. 중이

 ' 옳지, 시냇물이구나,'

생각하고 바지를 걷어올리고 들어가니, 그건 메밀 밭이었다.

 중은 성이 났는데, 이번엔 또 흰 기운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중이 

'또 메밀밭이구나,'

싶어 옷을 벗지 않은 채 뛰어 들어가니 이번엔 물이었다.

 중은 옷이 젖은 채 다리를 지나가는데 아낙네 두어 명이 시냇가에서 쌀을 일고 있었다. 중이 그 옆을 지나가며 혼자 낭패해서 고생한 일을 생각하며,

'시다 시다. 시큼시큼하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부인들이 떼지어 와서,

'술 담글 쌀을 이는데 어찌 시큼시큼하다는 말을 해요.”

하고, 옷을 다 찢고 중을 때려 주었다.

 해가 중천에 높이 뜨오르자, 중은 배가 고파 참을 수 없어서 마를 캐어 씹고 있으니, 갑작스레 수령의 행차가 닥아왔다. 중은 수령에게 밥을 구할 생각으로 수령이 옆에 오자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말이 놀라 수령이 땅에 떨어졌으므로 크게 노하여 매를 때리고 가버렸다.

중이 기진맥진하여 다리 옆에 누워 있었더니, 순찰관 두어 명이 지나가다가 보고,

'다리 옆에 죽은 중이 있으니 몽둥이질 연습을 하자.'

다투어 몽둥이로 매질하였다. 중은 숨도 쉬지 못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들고 말하기를,

'죽은 중의 양근(陽根)이 약에 쓰일 것이니 잘라서 쓰자.'

고 하므로 소리 지르며 달아나서 저물녘에야 절에 도착했다. 문이 잠겨 있어 소리를 높여 문을 열라고 하니,

상좌가 나오더니,

'우리 스님은 과부집에 갔는데 너는 누구이기에 밤중에 왔느냐.'

 하고, 나와 보지도 않는다. 중이 개구멍으로 들어가니 상좌가,

'뉘 집 개냐. 간밤에 공양할 기름을 다 핥아 먹더니 이제 또 왔느냐.'

하며, 몽둥이질을 하였다.

 여기서 오늘날도 낭패하여 심한 고생을 한 사람을, <도수승(渡水僧, 물 건너간 중)>이라고 한다.

 

 장님과 절세미녀

 

  장님이 있었는데 이웃 사람에게 부탁하여 미녀에게 장가들려 하였다.

 하루는 이웃 사람이 그에게 말하기를,

 “우리 이웃에 진짜 절세 미녀가 있는데, 그대의 말을 그 여자에게 들려주면 흔연히 응할 것 같으나, 다만 재물을 매우 많이 달라고 할 것 같소.”

하였다. 장님은,

“만약 그렇다면 재산을 기울여 파산(破産)에 이를지언정 어찌 인색하게 하리요.”

하고 그의 아내가 나가고 없는 틈을 타서, 주머니와 상자를 찾아 재물을 모두 꺼내주고 만나기를 약속하였다. 날이 되어 장님은 옷을 잘 차려 입고 나가고, 아내 역시 화장을 고치고 그의 뒤를 따라가서 먼저 방에 들어가 있으니, 장님은 아무것도 모르고 재배(再拜) 성례(成禮)하였다. 밤에 함께 동침하는데, 그 아기자기한 인정과 태도가 평상시와 달랐다. 장님은 아내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오늘 밤이 무슨 밤이기에 이처럼 좋은 사람을 만났을고. 만약에 음식에 비유하면, 그대는 웅번(熊膰,곰의 발바닥)이나 표태(豹胎,표범의 태)와 같고, 우리 집사람은 명아주국이나 현미 밥과 같구나.”

하였다.

 새벽이 되어 아내가 먼저 집에 가서 장님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묻기를,

“어젯밤에는 어디서 주무셨소.”

하니 장님은,

 “아무 정승집에서 경(經)을 외다가 밤추위로 인하여 배탈이 났으니, 술을 걸러 약으로 쓰게 하오.”

하였다. 이에 아내가 말하기를,

 “웅번ㆍ표태를 많이 먹고 명아국과 현미 밥으로 오장육부를 요란하게 하였으니,어찌 앓지 않을 수 있겠소.”  장님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그제야 아내에게 속은 줄을 알았다.

 

 장님의 아내

 

  한 장님이 있었는데, 어떤 젊은이와 사이 좋게 지냈다.

 젊은이가 하루는 말하기를,

“길에서 나이 어린 예쁜 여자를 만났는데 그와 잠깐 이야기를 하고 싶으니, 주인께서 잠시 별실(別室)을 빌려줄 수 없겠습니까.”

 장님은 허락하여 주었다.

 젊은이는 장님의 아내와 별실에 들어가 곡진하고 애틋한 정을 서로 나누는데, 장님이 밖을 돌면서 말하기를,

“어째서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 빨리 가거라. 집사람이 오면 그야말로 큰일이니 반드시 욕 먹을 것이다.”

하였다. 조금 뒤 아내가 밖에서 들어오면서,

“그 새 어떤 손님이 왔었소.”

하며 일부러 성낸 듯 하니, 장님은,

“잠깐 내 말을 들으시오. 정오쯤에 동쪽 마을의 신생(辛生)이 나를 찾아왔을 뿐이었소.”

하였다.

 

 어우동(於于同)

 

어우동(於于同)은 지승문(知承文) 박 선생의 딸이다. 그녀는 집에 돈이 많고 자색이 있었으나, 성품이 방탕하고 바르지 못하여, 왕가 종실(宗室)인 태강(泰江) 군수의 아내가 된 뒤에도 군수가 막지 못하였다.

 어느 날 나이 젊고 훤칠한 장인을 불러 은그릇을 만들었다. 그녀는 이를 기뻐하여 매양 남편이 나가고 나면 계집종 옷을 입고 장인의 옆에 앉아서 그릇 만드는 정묘한 솜씨를 칭찬하더니, 드디어 내실로 이끌어 들여 날마다 마음대로 음탕한 짓을 하다가, 남편이 돌아오면 숨기곤 하였다. 그의 남편은 자세한 사정을 알고 마침내 어우동을 내쫓아 버렸다.

 어우동은 그후 방자한 행동을 거리낌없이 하였다. 그의 계집종 역시 예뻐서 매양 저녁이면 옷을 단장하고 거리에 나가서, 이쁜 소년을 이끌어 들여 여주인의 방에 들여 주고, 저는 또 다른 소년을 끌어들여 함께 자기를 매일처럼 하였다. 꽃 피고 달 밝은 저녁엔 정욕을 참지 못해 둘이서 도성 안을 돌아다니다가 사람에게 끌리게 되면, 제 집을 몰랐으며 새벽이 되어야 돌아왔다.

 길가에 집을 얻어서 오가는 사람을 점찍었는데, 계집종이 말하기를,

“모(某)는 나이가 젊고, 모는 코가 커서 주인께 바칠 만합니다.”

하면 그는 또 말하기를,

“모는 내가 맡고 모는 네게 주리라.”

하며 실없는 말로 희롱하여 지껄이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는 방산(方山) 군수와 더불어 사통하였는데, 군수는 나이 젊고 호탕하여 시(詩)를 지을 줄 알므로, 그녀가 이를 사랑하여 자기 집에 맞아들여 부부처럼 지냈었다. 하루는 군수가 그녀의 집에 가니 그녀는 마침 봄놀이를 나가고 없고, 소매 붉은 적삼만이 벽 위에 걸렸기에, 시를 지어 남겼다.

 

물시계는 또옥또옥 야기 맑은데 / 玉漏丁東夜氣淸
흰 구름 높은 달빛 분명하도다 / 白雲高捲月分明
한가한 방은 정밀한 향기 아직 남아 / 間房寂謐餘香在
마치 꿈속의 정을 그려놓은 듯 / 可寫如今夢裏情

 

 어우동은 조관(朝官)ㆍ유생(儒生)으로서 나이 젊고 무뢰한 자를 맞아 음행하지 않음이 없으니, 조정에서 이를 알고 국문하여, 혹은 고문을 받고, 혹은 폄직되고, 먼 곳으로 귀양간 사람이 수십 명이었고, 죄상이 드러나지 않아서 면한 자도 많았다. 의금부에서 그녀의 죄를 아뢰어 재추(宰樞)에게 명하여 의논하게 하니, 모두 말하기를,

“법으로서 죽일 수는 없고 먼 곳으로 귀양보냄이 합당하다.”

하였다. 그러나 임금이 풍속을 바로잡자 하여 극형에 처하게 하였다.

 양가(良家)의 딸로서 행실이 더러워 풍속을 더럽혔다는 죄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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