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에 소개한 동양고전 50

닭 중의 봉/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김현거사 2015. 7. 29. 07:20

 

  닭 중의 봉 /이규보(李圭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지금 강화읍에서 전등사 가는 길 길상면 목비(木碑)고개에는, 고려의 문장가 백운산인(白雲山人) 이규보의 묘가 있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1168년부터 1241년. 서양은 십자군이 성지 예루살렘을 회복하기 위하여 갑옷을 입고 유럽을 휩쓸던 때요, 고려는 몽고 친입을 받아 고종이 강화로 도읍을 옮겼던 시기다.

  그는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소문나 9세 때 경전이나 제자백가, 노자, 불경 등 문헌들을 모두 섭렵하였는데, 한 번만 읽으면 기억하는 재사였다.

 16세에 사마시에 응시하여 세 차례 낙방하고 21세에 장원을 하였는데, 24세에 아버지를 여의자 슬품을 안고 천마산에 들어가 스스로 호를 백운거사라 하고, 10년 동안 벼슬을 피하면서 <백운거사록(白雲居士錄)> 20권과 장편 민족서사시 <동명왕 편(東明王 篇)> 3권을 지었다. <동명왕편>은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주몽 유리왕 이야기다.

 그뒤 대장군 최충헌에게 재주를 인정 받아 벼슬길에 들었는데, 하반기 벼슬길은 순풍에 돛 단듯, 글 한 수에 벼슬 하나 얻는 문재로 관운이 트였다. 이규보의 모습은, 눈은 구슬처럼 빛났고, 살결은 희고 키도 후리후리하여, 뭇 사람 중에 섞여있어도 눈에 띄는 닭 중의 봉이요, 사람 중의 용이었다. 그가 일생 지은 시는 7-8천 수나 되었는데, 주필(走筆)이라 하여 옆에서 운(韻)을 부르면 즉시 시를 짓는 문인들 놀이를 즐겼다 한다. 

 1241년 7월 병을 얻었을 때, 최이(崔怡)가 그의 시문을 모아 판각케 하였는데, 그는 자기 문집을 보지 못하고 74세로 운명하였다. 이 문집이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인데, 총 53권의 방대한 저술이다.

 그의 시회집 속의 수필 몇 편을 소개한다. 1780년 연암 박지원의 연경 행이 그 보다 6백년 후 일이니, 아마 이규보를 한국 수필의 원조로 봄이 마땅한 것 같다.

 

 백사공과 뇌물

 

 내가 남쪽 지방을 여행할 때 체험한 일이다. 강을 건너가려고 나룻배를 탔는데, 마침 내가 탄 배 옆 배도 함께 출발했다. 두 배는 크기도 같고, 사공의 수도 같으며, 타고 있는 사람과 말의 수도 비슷하였다.

 그런데 한참 가다가 보니, 옆의 배는 나는 듯 가서 저쪽 기슭에 닿는데, 내가 탄 배는 머뭇거리며 속도가 늦었다.

 옆사람에게 그 까닭을 물으니, '저 배의 손님은 사공에게 술을 먹여서, 사공이 기분 좋게 있는 힘을 다하여 저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부끄러운 빛을 가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혼자 탄식했다.

 '이 조그만 갈대잎 같은 배가 가는 데도 뇌물이 있고 없는 데 따라 빠르고 느리고 앞서고 뒤서는데, 하물며 벼슬길 경쟁하는 마당에 내 손에 돈이 없었으니, 오늘까지 하급 관리직 하나 얻지 못하였던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였고나. 기록해 두었다가 훗날 참고삼아야겠다.'

 

 이상한 관상쟁이

 

 어떤 관상쟁이가 있었다. 그는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상서(相書)도 읽지 않고, 재래의 관상법도 본받지 않았으며, 이상하게 관상을 보므로, 사람들이 '이상한 관상쟁이'라 불렀다.

 고관, 남녀노유가 다투어 찾아가 관상을 보았는데, 그는 부귀스럽고 뚱뚱한 사람 상을 보고는 '당신의 얼굴이 매우 여위었고 천하기론 당신만한 이가 없겠소.' 하였고, 비천하고 여윈 사람 상을 보고는 '당신은 얼굴이 살쪘으니, 귀하기론 당신만한 이가 드물겠소' 하였다.

 장님을 보고는 ' 눈이 밝군.' 하였고, 얼굴이 이쁜 부인을 보고는 '혹 아름답고, 혹 추하오.' 하였고, 세속에서 너그럽고 어질다는 사람을 보고는 '만 사람을 상하게 할 분이로고.' 하였다.

 그의 관상법은 현재 모습과 반대였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사기꾼이라 하여, 국청(鞠廳)에 잡아다가 다스리려 하였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그만 두시오. 대개 말이 먼저 거슬리면 뒤에 순한 것이 오는 경우가 있고, 밖으로 가깝고 안으로 먼 것이 있다. 그 사람도 눈이 있는데, 어찌 살찐 자, 여윈 자, 눈 먼 자를 모르겠는가? 이리 말하는 데는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그리고 목욕 재계하고, 의관 정제하고, 관상쟁이가 묵고 있는 곳을 찾아갔다. 

 '그대가 누구누구 상을 보고 무엇무엇이라 말하였음은 어찌 된 것인가?'

 하니 그가 대답했다.

 '대개 부귀하면, 교만하고 건방지며 남을 능멸하고 업신여기는 마음이 자라나니, 죄가 승하여 하늘이 반드시 뒤집을 것이요, 그래서 앞으로는 겨 죽도 못 먹게 될 때가 있겠기로 여위었다 하였고, 장차는 몰락하여 보잘 것 없는 천한 몸이 되겠기로 천하겠다 하였소.

 반대로 빈천하면 뜻을 겸손히 하고, 자기를 낮추어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닦고 살피게 되니, 부괘(否卦)가 극하면 태괘(泰卦)가 오는 법이라, 고로 살찌겠다 하였으며, 장차는 만석십륜(萬石十輪)의 귀함이 있겠기로 귀하겠다 하였소.

 그리고 장님을 보고 눈이 밝다고 한 것은, 요망한 자태와 아름다운 색을 보고, 진귀한 것을 탐내며 사람을 혹하게 하는 것이 곧 사람의 눈이다. 이 눈 때문에 불측한 욕(辱)에 이르지 않고, 어진 이, 깨달은 이처럼 행동할 수가 있으므로 눈이 밝은 이라 하였소.

 얼굴 이쁜 부인보고 '혹 아름답고, 혹 추하오' 라고 한 것은, 대개 색이란 것은 음란하고 사치하여, 이상한 것을 좋아하는 자가 보면 구슬이나 옥처럼 예쁜 것이로되, 순박하고 검소한 자가 보면, 진흑처럼 추한 것이다. 그러므로 혹 아름답고 혹 추하다 한 것 입니다. 

 그리고 어진 사람은 죽을 때에 사람들이 미련이 많아 울며불며 슬퍼함이, 마치 어린애가 어머니를 잃음과 같기에, 만 사람을 상하게 하는 이라 하였고, 나쁜 사람은 죽으면, 마을에서 다행으로 여겨, 양을 잡고 술을 마시며 서로 치하하여 웃고 춤추겠기에, 만 사람을 기쁘게 할 이라 하였소.

 하였다. 이에 나는 

 '과연 그대는 기이한 관상쟁이다. 그대의 말은 가히 명(銘)을 삼을 만 하고 표어를 삼을 만하다. 어찌 이를 겉 얼굴 따라 귀함을 말하는 상례에만 감돌아 사는 수준이면서 제가 거룩한 체, 영리한 체 하는 자들과 비할 수 있는가?'

 하고 돌아와서 그의 말을 적어놓았다.

 

 이옥설(理屋說=집을 수리하고 느낀 것)

 

 행랑채가 허물어져서 어쩔 수 없이 수리하였다. 그런데 그 중에 두 칸이 장마에 물이 샌 지가 오래되었는데,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가 손을 대지 못했고, 한 칸은 비를 한번 맞고 서둘러서 새 기와를 갈아 넣었다.

 그런데 수리하려고 본 즉, 비가 샌 지 오래된 두 칸은 서까래, 추녀, 기둥 모두 썩어서 못쓰게 되어 수리비가 엄청나게 들었다. 그러나 나머지 한 칸은 재목들이 모두 완전하여 다시 쓸 수 있어서 경비가 적게 들었다.

 나는 여기서 느낀 것이 있었다.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다. 잘못을 알고 바로 고치지 않으면 나쁘게 되는 것이, 마치 나무가 썩어서 못쓰게 되는 것과 같다.  잘못을 알고 즉시 고치면 건강을 지탱하게 되는 것 역시 재목과 같다.

 이런 점은 나라의 정치도 마찬가지다. 백성에게 해로움을 끼치는 정책을 바로 개혁하지 않고 머뭇거리다가, 나중에 백성이 못살고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이 되어 그때 고치고 만회하려도 해도 소용없다. 대개 모든 건 징후가 나타나는 즉시 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