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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州 八景

김현거사 2015. 3. 10. 13:09

   

   진주(晉州) 팔경(八景)

 

 일찌기 소주(蘇州)에서 상유천당(上有天堂) 하유소항(下有蘇杭)이란 말을 들은 적 있다. 하늘에 천당이 있고, 땅에 소주와 항주가 있다는 말이다. 소주는 곳곳에 운하가 그물처럼 연결되어있고, 태호(太湖)라는 호수가 있고, 쌀과 차, 비단, 물고기가 풍부해서 ‘어미지향’(魚米之鄕)이라 불리는 곳이다. 거기다가 그곳 문필가 위치우위(余秋雨)란 사람이 ' 물은 너무나 맑고, 복사꽃은 너무나 아름다우며, 먹거리는 너무나 달고, 여인은 너무나 곱다' 고 표현해놓은 바람에 더 그럴듯 했다.

 그래 나는 진주도 누가 그런 멋진 표현을 해줄 사람 나타나지않나 기다려 보았다. 진주 역시 지리산에서 흘러온 남강물은 너무나 맑고, 신안동  들판  끝에 피는 복숭아꽃은 너무나 아름다우며, 삼천포 생선은 너무나 맛 나고, 여인은 너무나 곱기 때문이다. 또 진양호란 큰 호수가 있고, 최상의 비단을 생산하는데다, 쌀과 과일, 채소와 물고기 풍부하니, 그야말로 ‘어미지향’(魚米之鄕)이기 때문이다.

  그 뒤 항주에 가서 서호(西湖) 10경(景)을 자랑하는 것은 본 적 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첫째 백락천이 만든 물 위에 걸친 아취형 돌다리에 눈 쌓인 모습이 아름답고, 둘째 호수 안에 외로히 떠있는 고산(孤山)의 누대에 뜬 가을 달이 곱고, 세째 연꽃 활짝 피는 5월 술집 뜨락에서 피어난 술 향내가 정원의 연꽃 향기와 함께 바람에 떠다니는 기막힌 분위기. 네째 소동파가 만든 여섯 개의 아름다운 다리 아래로 봄날 물안개 피는 새벽에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가 늘어진 가운데 하얀 북숭아 꽃잎이 살짝 물 위에 뜨있는 경치. 다섯째 추석날 배를 띄우고 달과 인공섬인 소영주(小瀛洲) 석등에 켜진 불이 셋으로 보이는 모습. 여섯째 서호 남쪽 호반의 정원에 모란꽃이 활짝 피고, 화려한 색 뽑내는 비단잉어 노니는 모습. 일곱째 남녂 골짜기에 운무가 끼어 마치 구름에 봉우리가 꽃혀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 여덟째 석양의 남병산(南幷山) 정자사(淨慈寺)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 아홉째 우뚝 솟은 영봉산(靈峰山) 뇌봉탑(雷峰塔) 너머로 지는 노을. 열번째 물 오른 버들잎이 봄바람에 살랑일 때 듣는 꾀꼬리 울음소리가 그리 굉장하다는 것이다.

 무슨 이야긴가해서 곰곰히 씹어보니, 그런 면은 진주도 항주 비슷하다. 첫째 너우니 습지원 돌다리 근처 무성한 대밭에 눈 쌓인 모습이 볼만하고, 둘째 진양호 호수 안 외로운 섬을 비치는 가을 달 곱고, 셋째 호수 근처 술집 뜨락의 꽃 향기와 술 향기가 바람에 떠다니는 기막힌 분위기, 넷째 봄날 물안개 피는 새벽에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하얀 복숭아 꽃잎이 살짝 물 위에 뜨있는 경치, 다섯째 추석날 배 띄우고 보는 촉석루와 의암 바위에 비치는 달빛, 여섯째 신안동 들마을 농가 뜰에 모란꽃이 활짝 피고, 그 아래 남강에 수박냄새 싱싱하게 풍기는 은어가 헤엄치며 올라와 노니는 모습, 일곱째 망진산 절벽에 운무가 끼어 마치 구름에 봉우리가 꽃혀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 여덟째 석양에 성곽 안 호국사(護國寺)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 아홉째 진달래 붉은 뒤벼리 절벽너머로 지는 노을, 열번째 물 오른 버들잎이 봄바람에 살랑일 때 천수교 근처서 듣는 꾀꼬리 울음소리를 꼽을만한 것이다.

 이쯤 되니 소주 항주만 상유천당(上有天堂) 하유소항(下有蘇杭) 하긴 그렇고, 진주도 상유천당(上有天堂) 하유진주(下有晉州) 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또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란 그림을 보면 진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그림은 동정호(洞庭湖)와 그 남쪽 두 개 물줄기 소수(瀟水)와 상수(湘水)를 그린 여덟 폭 산수화인데, 원래 북송(北宋) 때 이성(李成)에 의해 처음으로 그려진 이래,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명종이 문신들에게 소상팔경을 소재로 글을 짓게 하고, 이광필(李光弼)이 그림으로 그리게 하였다. 그후 이인로(李仁老), 이규보(李奎報), 이제현(李齊賢) 등 문인들이 소상팔경에 대한 시를 남겼고, 조선시대는 안견(安堅)을 비롯하여 이징(李澄), 김명국(金明國), 정선(鄭敾), 심사정(沈師正), 최북(崔北), 김득신(金得臣), 이재관(李在寬)이 작품을 남겼다.

 그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가 진주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소상야우(瀟湘夜雨)라는 것은 동정호(洞庭湖)와 그 남쪽 두 개 물줄기 소수(瀟水)와 상수(湘水)의 밤에 비 뿌리는 풍경을 말함인데, 진주도 지리산에서 흘러온 덕천강과 경호강 두 강이 합수한 진양호(晉陽湖)가 있고, 소수(瀟水)와 상강(湘水)의 밤에 뿌리는 비가 있듯이, 덕천강 경호강 밤에 뿌리는 비가 있다. 동정추월(洞庭秋月)은 동정호에 뜬 가을 달을 말함인데, 그 넓은 진양호엔들 가을 달이 없는가. 원포귀범(遠浦歸帆)은 포구로 귀환하는 돛단배를 말하는데, 황혼의 섬 사이로 돌아오는 진양호의 낚시배가 황포돗배요, 평사낙안(平沙落雁)을 말하는데, 백사장이야말로 진주의 명물이다. 거기 가을철이면 수없이  떼 지어 내리는 것이 기러기다. 연사만종(烟寺晩鐘)은 안개 낀 절에서 들리는 늦은 종소릴 말하는데, 진주는 해만 지면 의곡사 호국사 종소리가 쌍으로 시내에 낭낭히 울려퍼진다. 어촌석조(漁村夕照)라는 것은 어촌의 저녁 노을인데, 뒤벼리에서 어옹이 석양의 조각배에 앉아 한가히 낚시하는 모습 항시 볼 수 있고, 강천모설(江天暮雪)은 강가에 내리는 저녁 눈을 말하는데, 10리 남강 대숲은 겨울만 되면 흰눈 내리는 풍경이 그대로 산수화다.

 끝으로 소상에 악양루 있다면, 진주엔 촉석루 있고, 소상반죽이라고 그쪽 선비들이 반죽(斑竹)으로 만든 대나무 담뱃대를 자랑한다면, 진주는 반죽, 왕죽. 오죽 모두 자랑하는 대나무 천국이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최근에 진주에 이상한 일이 하나 생겼다. 교포 사업가 김두용선생이 '소상팔경도' 8폭 병풍을 일본서 구해서 진주로 보내온 것이다. 이를 문화재청은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시키고 보물 제1864호로 지정했다. 아마 상천의 심오한 뜻은,  두 곳이 이렇게 닮았으니, 진주에 이 소상팔경도를 보내야겠다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하늘의 뜻에 호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외람됨을 무릅쓰고, 말석의 이 사람이 진주(晉州) 8경(八景)을 먼저 읊어보는 것이다.

 

 진주(晉州) 8경(八景)

 

矗石明月 촉석루의 밝은 달빛

義巖聞鐘 의암에서 듣는 종소리 

晉陽歸帆 진양호로 돌아오는 고기잡이 배

新安牧笛 신안동 들판 목동 피리소리 

飛鳳春曉 비봉산의 봄날  새벽 안개

望晉夏雲 망진산 절벽의 여름 구름

十里竹林  십리 남강에 펼쳐진 죽림

道洞釣魚 뒤벼리에서 고기잡는 노인

 

 

 

후대에 참고가 되었으면 싶다.

 

 

   안개 가득한 진양호에서 풍류객이 밤에 부르는 남인수 이봉조의 노랫가락, 망진산 절벽 위의 가을 달이 물에 비친 모습, 추석날 배를 띄우고 서장대 아래서 바라보는 천수교 야경, 불 밝힌 촉석루와 진주교 야경, 남강가로 고요히 울려퍼지던 호국사 종소리, 그 석류 속 같은 입술로 죽음을 입맞춤한 논개 사당 옆 붉은 석류꽃, 망진산 끝머리 당미언덕에 활짝 핀 벚꽃 모습, 운무 덮힌 선학산 밑 디벼리 절벽에 핀 이른 봄 진달래꽃, 10리 하얀 백사장 푸른 대밭 너머로 지는 저녂 노을이 생각나고, 그 밖에도 개천 예술제 떼 진주 남녀 학생들이 남강물에 띄어보내던 별처럼 깜빡이던 연등, 소싸움과 씨름대회 열리던 백사장, 겨울이면 하늘을 뒤덮고 날아다니던 갈가마귀 떼가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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