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자전소설

진주라 천리길/마지막회

김현거사 2014. 5. 11. 14:49

다도하는 사람들이 간혹 소희 집에서 차모임을 갖곤 했지.’

정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한 비구니스님을 주축으로 열리는 다도회 회원들은 올 때마다,푸른 대숲 속 한옥의 분위기가 차 마시는데 적격이라고 소희를 부러워했다.차라는 것은 안개와 이슬 많은 곳,달빛과 물빛 맑은 곳이 운치를 더하는 법이다.솔바람 소리나 대나무에 비 맞는 소리 들리거나,죽로(竹爐)에 차 끓이는 소리 잘 들리는 곳이 최상의 장소다.

 

차의 명인 최범술스님과 교류한 소희 아버지가 거처하던 방 기둥에는  추사 글씨 주련(柱聯)이 붙어있다.‘靜坐處 茶半香初(조용히 앉은 곳에 반 쯤 익은 차의 첫향기가 일어나고). 妙用時 水流花開(묘용을 얻은 때에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이 글은 글씨도 글씨지만,추사같이 차의 묘미를 꿰뚫은 사람 아니고는 읊을 수 없는 글이다.명상에 들어 마음이 고요하지 않으면 미묘한 차의 향기는 알 수 없는 법.추사와 교류한 초의선사는 차와 선(禪)을 한 경지로 보았다.차선일미(茶禪一味)를 주창한 것이다.선에서 지관(止觀)이란 것은,우리의 마음과 몸이 한 경지에 이른 경우를 지(止)라 하고,우리 생활에서 일어난 일체 현상을 깨우친 상태로 보는 것을 관(觀)이라 한다.중국의 조주(趙州)선사가 제자들이 불교의 적적대의를 물으면 <끽다거(喫茶去=차나 한 잔 마시고 가게)>라 한 선문답도 다 이같은 차와 선의 오묘한 경지를 표현한 말이다.

 

다도회 사람들은 모두 추사의 주련을 보물같이 귀하게 여겼다.소희 아버지가 남긴 차반(茶盤)도 예사 물건이 아니었다.그것은 오래 땅 속에 묻혀 서 지열로 석탄처럼 광택이 나는 참나무 매목(埋木)으로 만든 차반이다.소희는 정수와 차 마실 때 이 보물같이 희귀한 차반에 이조다완처럼 생긴 백자잔에 차를 내곤 했다.

 

최범술스님은 젊은 시절 박열의사와 일본천황 암살 계획을 세워 상해에서 폭탄을 운반해오고,조선불교청년 중앙집행위원장을 역임한 분이지만,나중에 <한국의 차도>란 저술로 초의스님 이래로 흩어진 차 이론을 본격적으로 정립한 분이다.조선의 차승으로 함허(涵虛),청허(淸虛),초의스님을 꼽았다.그 외는 초의스님과 교류한 다산과 완당을 꼽았다.

그는 차와 선(禪)을 동일시하는 불교적 시각으로 차를 정신 쪽으로 깊이 다루면서,화로에 불 피우고,물 끓이고,물 끓는 소리에서 솔바람 소리를 듣고,찻잔을 씻고,다실을 청소하며,다기(茶器)나 서화 정원의 멋을 감상하면서,달과 흰구름 벗삼는 고요한  사색의 생활을 주장하였다.그래서 진주 차도인들은 대개 효당(曉堂)스님의 맥을 따르는 편이다.


‘소희는 아버님이 남긴 차반처럼 보물 여인인데....’

이야기는 대략 끝난 듯 했다.정수는 여기서 말을 끊었다.

‘소희란 고향 여인이 차 마실 때 옆에 놓이는 차화(茶花)같이 향기롭구만!아!서울 보다 진주 여인이 얼마나 순하고 다정하고 고전적이냐 말이다.’

A시인의 말이다.

‘김교수!소희 스토리 현재진행형이야 과거완료형이야?님을 따르면 가정이 울고,가정을 따르면 님이 울고...결론을 못내렸군?’

기자 출신 J의 말이다.

‘아따 이 나이엔 무조건 소희 쪽이지!이 나이에 볼 것 뭐 있나?그렇게 멋진 여자와 신선같이 한번 살아본다면 후회할게 뭐있나?나는 정수가 부럽다.’

가부장 권위 빳빳한 Y사장 이야기.

‘요즘 사내들 설거지나 하고 마눌님 눈치나 보고....오죽하면 젊잖은 김교수께서 이러시겠나?그런데 칼로 무우 자르듯 이야길 여기서 끝내면 어떡해?좀 더 화끈한 장면은 없었나?’

P 병원장 코멘트.

‘그게 문학의 한계였어.더 나가면 외설이지.’

김교수 응답.

‘결혼제돌 확 바꿔버려야 해.한 20년 살고 알콩달콩 맘 맞을 상대와 한번 더 결혼하라고 확 입법을 해버리던지...법이 바뀌면 여성 쪽에서 더 좋아할 껄?입만 뻥긋하면 웬수같다잖던가?’

동대문서 부동산 하는 L이야기다.

‘아예 서울 동기들 전부 귀향하여 소희같은 진주 여인 찾아서 단체로 여생 새로 시작해버리라고!’

단체 생활 익숙한 L 장군 코멘트.

‘나무관세음보살!생주괴공(生住壞空)은 연(緣)에 의한 것.늘상 마누라 바꾸자는 입버릇의 H 생각나는군.’

불교 냄새 풍기는 C의 말.

‘김교수!이 이야기 혹시 전원지향 현대판 귀거래사 아니야?그 있잖아?<어려서부터 세속과 맞지 않고 타고나길 자연을 좋아했네.어쩌다 세속의 그물에 떨어져 어느듯 삼십년이 흘러버렸으니,조롱속의 새 옛 숲 그리워하고 연못의 고기 옛 웅덩이 생각하듯이,남쪽 들 가장자리 황무지 일구며 본성대로 살려고 전원에 돌아왔네.>도연명의 시 같은 거?‘

정릉 K교수 의견.

‘<진주라 천리길 내 어이 왔던가.연자방아 돌고돌아 세월이 흘러가듯 인생은 오락가락 청춘은 늙었더라.늙어가는 이 청춘에 젊어가는 옛추억.아! 손을 잡고 헤어졌던 그 사람.그 사람은 간 곳이 없더라.>남인수 노래 대사같은 건지 모르지.아련한 고향 처녀에 대한 향수.’

유행가 빙자한 우리 김교수 대답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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