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자전소설

첫사랑/1

김현거사 2014. 5. 11. 14:42

첫사랑/1


사랑이란 무엇일까?봄언덕에 지나간 한줄기 바람이었을까?물에 비친 한가닥 달빛이었을까?환갑 지난 초로(草露) 인생이 소년에서 만났던 한 소녀를 회상함을 용서해주기 바란다.


소녀의 이름은 김혜정이었다.초등학교 동창회가 열렸던 천전 교정에서 처음 만났다.왕년의 코흘리개 동창들은 어느새 열일곱 미묘한 사춘기였고,졸업한지 4년만에 만난 여자애들은 꽃봉오리 같은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몸매로 변하고 있었다.가슴은 풋봉숭아처럼 작게 볼룩해지는 참이었고,이성의 신비한 느낌 때문에 남학생을 곁눈질하며 공연히 깔깔 대면서 웃고 얼굴 붉히곤 했다.코밑 수염이 살짝 나기 시작한 남학생들은 어른스럽게 보일려고 몇몇은 담배를 물고 있었다.검정빛 교복은 어깨에 심을 넣었고,신발은 낡고 투덜투덜한 중고품 웍화였고,모자챙은 손때 묻어 반질반질했다.

 

곁눈으로 살펴보니,운동선수 정란이,전매청 옆에 살던 전자,습천 못가 영자,도가집 딸 인순이가 중심인물이고,혜정이는 한쪽에 얌전히 서 있었다.그러나 혜정이를 본 첫순간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된다.혜정이의 갸름한 얼굴과 부드럽고 긴 머리칼 늘인 모습은 도브의 샘가에 핀 수선화 같고,가는 눈섶 아래 눈빛은 호수같았다.위즈위스나 섹스피어 작품에 감격하던 시절이다.혜정이는 그 명작 속의 소녀처럼 보였다.주변의 소녀들과 전혀 다른 기품이 있었다.

 

혜정이를 처음 본 순간,나는 갑자기 커다란 펀치로 머리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할까,불시에 화살을 맞은 표범처럼 놀랐다고 할까.좌우간 나는 수십만 볼트의 전류가 짜릿짜릿 전신을 엄습하면서 홍수처럼 내 내부로 격렬하게 흐름을 느꼈다.쿠핏트가 감나무 푸른 잎새 사이로 소년의 가슴을 화살로 정통으로 명중시킨 것이다.


혜정이를 본 그 순간 이후 나는 아무 것도 기억이 없다.내 신경이란 신경은 모두 혜정이한테 집중되었고,아무리 하찮은 움직임이라도 혜정이 움직임 하나하나는 커다란 감동으로 내마음을 민감한 악기의 현처럼 바르르 떨게하였다.그날 동창회가 어떻게 끝났는지도 몰랐다.나는 다만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교실 밖에 나가 감나무에 기대고 서있다가,동창회가 끝나고 혜정이가 사라지는 뒷모습만 먼발치에서 꿈결인양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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