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자전소설

진주라 천리길/4

김현거사 2014. 5. 11. 14:50


정수와 소희는 가끔 바둑을 두었다.달이 죽림을 배회하고,밤은 고요히 깊어갈 때,풍로에 차 끓이는 하얀 연기 올리며 바둑 두노라면,마음은 한없이 청아하였다.두 사람 바둑 두는 모습을 달빛만 와서 구경하곤 했다.

이땐 정수가 이태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을 읊었다.


꽃나무 사이 술 한 병 놓고 앉아

아무도 없이 홀로 술을 따르네

밝은 달 마주하여 잔 들어 올리니

나와 그림자와 달 셋이 되었네

달은 본디 술을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는 나를 따르는 흉내만 내네

잠시나마 달과 그림자를 벗하여

봄이 가기 전에 즐겨보리라

내가 노래하면 달은 거닐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따라 춤추네

깨어서는 함께 즐거이 마시고

취하면 헤어져 각기 흩어지네

무정한 교류를 영원히 맺었으니

서로 다음엔 아득한 은하에서 만나세


밤은 깊고 호젓하다.소희는 달빛을 향하여 청련(靑蓮)거사 이태백에게도 차를 올린다.도교에 심취하여 산 속 대숲에서 맹호연 등과 교류하며,지상에 귀양온 신선,적선(謫仙)이라 불리운 이태백이다.채석강의 달을 붙잡으려다 물에 빠져죽은 이태백이다.천년 전 시인이 옆에 있듯 다정하다.

소희는 감격에 겨운 눈빛으로 한참 정수를 쳐다보다가,느닷없이 달려들어 정수의 어깨에 얼굴 파묻고 흐느껴 울었다.

‘인생이 풀잎에 맺힌 이슬이란게 슬퍼요.’

이때 소희의 몸은 흥분하여 떨리고 난초처럼 깨끗한 머리칼이 정수의 뺨을 간지럽혔다.

‘서로 다음엔 아득한 은하에서 만나자는 귀절이 너무 아름다워요.저는 꽃 피는 봄,잎 지는 가을의 서럽고 야속한 시간 속에 산목련처럼 여기서 외롭게 살았지요.그러다가 선생님을 뵙게 됐고요.’

늦게 만나 서럽다고 했다.달빛 아래 꽃같은 소희 얼굴에 이슬 맺힌 모습은,심양강 달빛 속에서 비파 타는 여인의 슬픈 인생 이야기 들으며,비파 소리에 푸른 옷소매를 눈물로 축축히 적셨던 백락천의 ‘비파행(琵琶行)’을 떠올리게 했다.

정수는 다정히 소희의 어깨를 안아주고,그러면 소희는

‘교수님을 영원히 사랑해도 되지요?’

젖은 음성으로 몇 번씩 정수에게 다짐하곤 했다.


소희의 집은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 배경 같기도 했다.


‘임술년 가을에 손님들과 적벽강에 배를 띄우고 술을 마시며,흘러간 영웅들의 인생을 논하면서 인생의 짧음을 한탄하고,장강의 물과 명월의 영원함을 부러워하였다.그러나 장강의 시원한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은 아무리 보고 듣고 취해도 어느 누구 하나 시비하는 자 없고,아무리 사용해도 없어지지 않으니,이것이야말로 조물자의 무진장한 세계요,나와 그대가 마음으로 즐기면서 우리 인생이 원해야할 진정한 대상이다’


앞은 강이고 절벽은 강 위에 솟아있다.청풍명월은 항상 그 위로 지나가곤 했다.

절벽 위의 약수암은 이율곡의 <산중(山中)>이란 시 떠오르게 했다.


약초 캐다 홀연히 길을 잃었는데(採藥忽迷路)

봉우리마다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千峰秋葉裏)

산에 사는 스님 물 길어 돌아간 뒤(山僧汲水歸)

숲 끝에 피어오르는 차 달이는 연기(林末茶煙起)


둘은 밤 이슥하도록 배를 타고 함께 술을 마시며 은쟁반같이 맑은 달을 보기도 했다.

‘한문을 언제 그렇게 배웠소?소희씨가 율곡의 시 읽는 모습은 마치 월궁선녀같소!’

배 위에서 정수가 속삭였다.


진주는 전원도시다.둘은 진양호에 가서 유람선도 타고,뒤벼리도 가보고,호국사 의곡사도 찾아갔다.새벽 종소리 들으며 평거 들판과 서장대를 거닐기도 하고,촉석루와 의암,대숲과 백사장을 산책하기도 했다.


촉석루를 다산 정약용은 이렇게 읊었다.


왜적들의 바다를 동으로 바라보고 숱한 세월 흘러

붉은 누각 우뚝히 산과 언덕을 베고 있네.

강물에 그 옛날 꽃다운 가인의 춤추는 모습 비치고,

단청 새긴 기둥엔 길이 장사들의 시가 쓰여있네.

옛 전쟁터에 봄바람 불어 초목을 휘어감고,

황성에 밤비 내려 안개 낀 물살에 부딪히는데

지금도 영롱한 영혼이 남아있는 듯

삼경에 촛불 밝히고 강신제 지내네.


안종창은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해서 죽은 의암(義岩)을 이렇게 읊었다.


여인이 의를 위해 죽었으니 두가지 덕을 이루었네.

맑고 옥같은 자태에 늠름한 눈서리 같은 지조로다.

왜적 하나 죽였다고 말하지 마라.

모든 간담이 하나같이 철렁했으리라.

여인이라고 작다고 말하지 마라.

만명 장부의 팔같이 휘둘렀네.

강물에 바위돌 닳지 않아 천년 세월 의리가 남아있다네.


촉석루 벼랑에는 진주 기생 산홍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논개를 기리기 위한 의기사(義妓司)에는 산홍의 충절을 읊은 매천(梅泉) 황현의 시와  산홍의 시가 나란히 걸려있다.<매천야록>에는 그가 내무대신이던 매국노 이지용의 잠자리를 거절하고 스스로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진주 출신 작가 이재호는 산홍을 그리워한 ‘세세년년’이란 노래로 한 때 대중의 가슴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산홍아 너만 가고 나는 혼자 버리기냐

너 없는 내가슴은 눈 오는 벌판이다.

달 없는 사막이다 불 꺼진 항구다.


지리산에서 내린 강물은 부드럽게 시가지를 통과하고,시내 사람들 인심은 물처럼 순했다.두사람은 맛있는 진주비빔밥 진주냉면 집들을 찾아다니기도 하였다.

둘은 촉석공원 아래 골동상가에서 한번은 오래된 청옥 쌍가락지를 발견했다.

‘이 옥반지가 왜장을 껴않고 강물에 뛰어들 때 논개의 그 섬섬옥수에 끼었던 것이 아닐까?’

정수는 그 푸른 희귀한 옥가락지를 사서 소희 손가락에 끼워주었다.진주가 아니고 소희같은 진주 여인 아니라면 가질 수 없는 행복이었다.  

진주 일대는 일본이 국보로 꼽는 이조다완 원산지다.고령에서 하동까지 무진장한 고령토 광맥이 뻗어있다.아직도 도자기를 굽는 가마들이 산재해있고,많은 도예가들이 모여있다.음식점 그릇도 작가들이 구운 백자인 경우도 많다.산수 맑은 안의 거창 일대는 강굽이마다 정자가 있고 선비가 살던 고가가 많다.안의에서 병아리 키우던 울타리 바람막이 한지가 대원군 난초 그림이었다고 한다.합천 어디서는 음식점 멍멍이 밥그릇이 가야토기였다고 한다.대가야 유적지이기 때문이다.

‘성종이 있지?그가 어릴 때 자기집에 제기 만들 종이가 무진장으로 많다고 늘상 자랑했잖아?’

정수가 이렇게 말하자,

‘맞아!종이 부친이 정인보 선생과 교류하던 대한학자 아니셨나?’

‘종이가 나중에 이 고서들은 몽땅 그가 음악선생으로 근무하던 학교 도서관에 기증하였지.’

친구들이 종이 이야길 한다.사실 이 자리 친구들 중에 진주 인근에 고택(古宅)을 가진 유서깊은 집 출신이 두엇 있었다.

옛부터 ‘북평양 남진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조선 팔도에 명성 자자한 진주다.경치 좋고,인물 많고,선비 많은 고장 진주다.

(4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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