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자전소설

진주라 천리길/3

김현거사 2014. 5. 11. 14:52


그 뒤부터 정수는 진주에 내려가면 의례 소희 집에 머물었다.소희 집엔 강돌로 만든 낮은 꽃담 속에 아담한 작은 별채가 있었다.앵두나무 심어진 우물 옆 담 중간을 뚫은 협문을 통과하면 방형의 연못이 있고,연못 속 석가산에는 오래된 한 그루 매화가 있다.당(堂) 앞에는 커다란 석류나무가 있고,창문을 열면 전원 풍경이 그림같았다.끝없이 넓은 탐스러운 반송(盤松) 키우는 묘판과 배나무 과수원이 펼쳐져 봄에 배꽃 피기가 기다려지는 곳이었다.정수가 묵은 별채는,소희 아버지가 살던 집이었다.

소희 아버지는 산천재에서 남명(南冥)의 학문을 배우던 선비였다고 한다.지금 이 자리에서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면서,은초(隱樵) 정명수 선생과 효당(曉堂) 최범술 스님과 교류하였다 한다.비봉루 은초선생은 진주의 재력가로서 가난한 추사(秋史) 제자들을 불러서 사랑방에 몇 달씩 숙식시키며 함께 묵향을 즐기던 서예 대가였고,진주 해인대학 학장이던 효당은 다도(茶道)에 밝아,근세의 다도 명인은,영남의 효당(曉堂),호남의 의재(毅齋) 허백련이었다.정수는 효당이 쓴 <한국의 차도(茶道)>란 책을 가지고 있다.그것은 초의선사 이래 한국 다도에 대한 최고의 이론서다.

소희는 교육자 집안에 출가했다가,청상으로 혼자 남은 것이다.


둘은 봄에 매화 향기를 찾아 매화여행을 떠나곤 했다.단속사(斷俗寺) 정당매(政堂梅),남사마을 예담촌의 원정매(元正梅),산천재의 남명매(南冥梅)가 유명한 ‘산청 삼매(三梅)’다.

정당매는 폐허가 된 단속사지(趾)에 있고,단속사에서 공부한 통정공 강희백이 나중에 정당문학(政堂文學) 대사헌이 되었기 때문에 정당매라 부른다.소희는 강희백의 손자 강희안이 그린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의  배경이 자기 집 앞 약수암 절벽 밑 남강을 닮았다고 하였다.

원정매는 고려말 하즙(河楫)이 한옥촌인 남사마을 고가에 심은 매화다.지리산에서 흘러온 강이 뒤에 흐르고,집 앞에 하마비가 세워져 있었다.그러나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7백년 된 고매(古梅)는 용틀임한 채 고사한 상태로 세월의 흔적만 깊었다. 

아버지가 산천재(山天齋)에서 공부했기에 소희는 특별히 남명매에 애착을 보였다.나무에서 남명의 체취를 맡으려는듯 매화나무 허릴 껴안아도 보고,오래동안 얼굴에 대고 있기도 했다.그 꽃잎을 따와 매화차 향기를 즐기기도 하고,씨를 가져와 손자뻘 매화를 키우기도 하였다.산천재 벽에 그려진 허유와 소부가 영수에서 귀 씻던 그림처럼,소희는 세속을 멀리하고 청빈을 사랑하였다.


만추의 계절이 오면 진주는 예술의 향기로 덮힌다.우리나라 예술제의 효시인 개천예술제가 열리면,진주성은 단풍으로 곱게 물들고,국화꽃 가득한 거리는 몰려온 인근 사람들로 인산인해다.가장행렬과 브라스밴드 파레이드 보려고 일치감치 길가에 신문지 펴고 앉은 사람들,각종 먹음직한 먹거리 늘어놓은 불 밝힌 수백대 포장마차 정리하느라 교통경찰은 정신이 없다.남강은 크고작은 등불 화려하게 수놓아지고,하늘엔 폭죽이 터진다.리오의 삼바축제처럼 사람은 낭만에 들뜨고,도시는 흥분에 술렁인다.진주 밤거리는 시와 음악과 무용과 낭만이 가을바람 낙엽처럼 흩날린다.전국의 문인들이 초대되어,진주 청년들은 여기서 시나 소설로 작가로 등단한 경우가 많았다.


둘은 포장마차에서 잔 술을 마시고 그 속을 헤매다녔다.

‘우리 학생 때는 자기가 정성드레 만든 유등을 강물에 띄웠어요.어둠 속에 동원된 학생들은 서로 좋아하는 이를 찾아 이리저리 몰려다녔고,유등에다 흠모한 상대의 이름과 자기 이름과 나란히 적어 강물에 흘려보냈어요.’

정수가 낭만적이던 과거를 회상하면,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소희는 이형기의 <낙화>나,

‘그것은 머언 벌판에 눈이 오는 소리다.차라리 그것은 머언 벌판에 비가 오는 소리다.강물처럼 나직이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다.’

최계락의 <낙엽>을 외웠다.이형기 최계락 두 사람 다 진주 출신 시인이다.

둘은 달빛 아래 의암에 올라가 왜장과 논개처럼 서로 꽉 껴안아도 보고,손잡고 서장대를 거닐면서 안개 덮힌 망진산과 강건너 대밭을 조망하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소희는 호화저택과 고급차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판검사나 의사 사칭자에게 몸을 허락하는 도시 처녀도 아니고,화나면 늙은 남편 나몰라라 집에 두고 혼자 밖에 돌아다니는 도시 마님도 아니었다.소희는 어찌보면 이당(以堂) 김은호 미인도 속에 나오는 여인이었다.


소희는 새벽에 일어나 머리와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대밭을 지켜보는 습관이 있었다.정수가 옆에서 대밭을 지켜보니,화가들이 그린 풍죽도(風竹圖)처럼,이슬 젖은 댓잎,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가 그리 아름다울 수 없다.여기 죽림은 살아있는 풍죽도였다.

‘소희씨 때문에 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알았소.’

정수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화초 가득한 뜰보다 죽림이 청초한 멋이 있었다.새가 날라와 이리저리 지저귀는 모습을 단정히 창앞에 앉아 지켜보는 소희의 정갈한 모습은 그 자체가 하나의 그림이었다.


소희는 촉석공원 아래 골동가에서 커다란 백자 수반을 구해와 연꽃을 키웠다.7월이면 부드러운 넓은 연잎 속에서 붉은 연꽃이 피어오른다.그 그윽한 운치는 집 분위기까지 청정하게 만든다.

‘수반 속의 화분에 거름 대신 오징어 조각을 넣으면 연꽃이 더 소담하게 피지요.’

소희는 밤새 오무라지는 연꽃에 차봉지를 넣어두었다가 그 차 향기를 정수에게 권했다.

‘이렇게 한가닥 향을 향료에 피워놓고,소희씨와 남강의 새벽이 밝아오는 모습을 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최고의 기쁨이요.’

정수가 소희에게 속삭였다.

‘정말이예요?’

얼굴 붉히면서 되묻는 소희는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곱디고운 여인이었다.


두 사람이 다 목탁소리 듣기를 좋아하고,불경 외기가 취미였다.간혹 배를 타고 강 건너 약수암엘 갔다.부드러운 물살을 가르며 안개 낀 강을 건너노라면 피안으로 가는 느낌을 주고,부처님 전에 기도하면 마음이 그리 청량할 수 없었다.

‘우리 사랑이 꿈이라면,영원히 깨지말게 해주세요.’

자라를 사서 진양호에 방생하면서,두사람은 용왕님께 빌기도 했다.


소희는 백자를 사랑했다.특히 청화로 그려진 매화와 대나무 그림을 사랑했다.이조다완의 투박함과 찻잔에 담기는 작설차 향기를 즐겼다.아버님에게 물려받은 몇 개 작은 초화문 접시를 소장하고 있었다.철 따라 딸기나 자두 비파같은 과일을 그 백자에 담아 내놓으면,붉은 딸기와  자두,노란 비파가 너무 깔끔해서 예술품 같다.고결한 격조가 있었다.아침은 주로 검은 깨 뿌린 잣죽이고,저녁은 산채였다.잘 조성한 텃밭에서 키운 산파나 부추로 다진 조갯살 넣은 전,연한 산초와 오가피잎 튀김,향기로운 곰취 산마늘 참나물 같은 산채들이었다.

소희는 계절을 아는 여인이다.텃밭 옆에다 심은 무화과 복숭아 감이 가끔 나왔다.대나무 소쿠리에 딸기나 자두가 담겨나오면 여름이고,감이나 배가 나오면 가을이고,쟁반에 생강과 통계피 넣은 수정과 나오면 겨울이었다.

비 온 뒤엔 둘이 곁의 넓은 대밭으로 죽순 따러 다니기도 했다.

‘요즘 남강엔 은어가 귀해요.’

죽순회에는 은어가 제격인데,은어가 귀해졌다고 소희는 하소연하기도  했다.

음식은 정성의 산물이다.싱싱한 감자나 고구마,꽁치나 조개가 지천인 곳이 진주 중앙시장이다.소희가 정성껏 요리한 상 앞에 앉아 정수가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자태는 도시 여인들에선 볼 수 없는 그윽한 과거 속의 아름다움이었다.간혹 정수가 서울서 했던 것처럼 설겆이 하려고 부엌에 들어가면 소희는 웃으며 정수를 몰아내었다.

‘남자는 절대로 부엌에 들어오면 안돼요.’

(3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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