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 기행> (10) 마지막 훈장 <가족사 기행> (10) 마지막 훈장 정 태 수 진주 까꼬실과 촉석루를 둘러보며 파란만장한 농포공의 일생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았다. 그리고 지나온 나의 일생도 되돌아보았다. 농포공은 혼군을 만나, 청렴강직한 성품 때문에 화를 입으셨지만, 그 분의 피가 흐르는 후손답게 나는 떳떳.. 정태수 총장님 2012.08.09
(9) 왜 민립비인가 <가계사 기행> (9) 100년만에 귀환한 북관대첩비 정 태 수 2005. 10. 20일 오후 4시, 북관대첩비가 2005. 10. 20일 오후 4시 인천국제공항에 내렸다. 흰 천으로 만든 사각의 목곽에는 “100년 만의 귀환, 북관대첩비”라 쓰여 있었다. 태극기와 3군 군기, 국군 의장대와 정부요인까지 도열하고 있.. 정태수 총장님 2012.07.31
(10) 농포공 영정 제작의 체험 <가계사 기행> (10) 농포공 영정 제작의 체험 정 태 수 의정부 송산의 농포공 산소 앞에 충덕사忠德祠를 세우자, 사당에 안치할 영정 제작에 착수하였다. 요새 같이 사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 자료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400년 전 농포공 할아버지의 얼굴을 복원하는 일은 어려운 일.. 정태수 총장님 2012.07.31
(8) 북관대첩비 반환 시동기의 회상 <가계사 기행> (8) 일본서 반환받아 모셔온 북관대첩비 정 태 수 내 생애의 보람있던 일 중의 하나는 일본이 그들의 야스꾸니 신사에 숨겨놓았던 북관대첩비를 찾아서 국내로 모셔온 일이다. 이 대첩비의 비문에는 임란시 가등청정의의 왜군을 상대로 7전7승의 대첩을 이룬 농포공의 .. 정태수 총장님 2012.07.28
(7) 촉석루에 오르면 <가계사 기행> (7) 촉석루에 오르면 정 태 수 진주에 가면 저절로 발걸음이 남강과 촉석루로 옮겨진다. 촉석공원 주차장에 내려 입구의 훤칠한 문루를 넘어서면 절로 신발을 벗고 촉석루 누각 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푸른 강과 바위, 바위 위의 성벽과 강 건너 푸른 대숲은 언제 보아도.. 정태수 총장님 2012.07.26
(9) 홀로 남은 우국시비 <가족사 기행> (9) 홀로 남은 우국시비 정 태 수 할아버지 3대 기념사업 중, 문집 출판과 할아버지 묘 앞에 세운 계자훈비 건립은, 내가 살던 서울에서의 일이라 간편한 편이었다. 그러나 세 번째 사업인 시비 건립은, 고향 떠난지 오래되었고, 천리 먼 길 밖 일이라 좀 힘들었다. 그러나.. 정태수 총장님 2012.07.19
8) 마지막 훈장訓長 <가족사 기행> (8) 마지막 훈장訓長 정 태 수 지금까지 이야기는, 서울에서 살던 우리 해주 정가가 진주 까꼬실에 와서 살게 된 내력이다. 여행 3일째 날에는 할아버지가 뿌리내린 땅 월아산(달음산) 아래의 옛 동네 월아동(달음동)을 찾았다. 월아산 토박이말은 “달음산”인데 옛 진.. 정태수 총장님 2012.07.19
(7) 사후 개화 死後開花 <가족사 기행> (7) 사후 개화 死後開花 정 태 수 농포공의 시화사건 후, 우리 가문은 먹구름에 덮혀 거의 폐족廢族 지경에 빠졌으나,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 후 가로채고 묻혀졌던 농포공의 구국안민의 공훈은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하였다. 먼저 후임 북평사 이식李植과 그 아드.. 정태수 총장님 2012.07.19
가족사 2번 보충 <가족사 기행> (5) 눈물의 낙남落南 정 태 수 농포공農圃公이 시화詩禍로 억울하게 물고物故를 당하자,가족들은 혹독한 태형에 만신창이가 된 공의 시신을 의정부 송산 선영하에 아픈 마음으로 매장하고, 이듬해(仁祖 3년, 1625) 2월에 공의 아우(鄭文益)와 두 아들(鄭大榮, 鄭大隆)의 3.. 정태수 총장님 2012.07.15
가족사5 <가족사 기행> (11) 진주晉州 유학遊學 정 태 수 해방 5년 전인 1941년 3월, 초등 3학년을 수료한 나에게 중대한 일이 일어났다. 진주에 사시는 숙부(東隱公, 鄭錫宙)가 지수면 우금동의 우리 집에 오신 것이다. 할머니 어머니와 협의하고 나를 데리고 진주 숙부 집으로 데려가서, 진주봉.. 정태수 총장님 2012.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