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

취중방담

김현거사 2013. 1. 15. 09:48

 

 

 

 

    취중방담

 

  요지음은 일주일에 한번 토요일 바둑친구들과 겨우 막걸리 두어잔 하고 돌아올 때면 간혹 마음이 좀 처량하다. 이제 나이 들어, 친구도 나도 술은 피한다. 혼자 쓸쓸히 밤전철 타면,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막걸리 잘 해야 대접해주던 동네가 있었다. 그 동네 응원가는 ' 마셔도 사내답게 막걸리만 마신다. 맥주는 싱거우니 신촌골로 돌려라. 부어라 마셔라 취하도록, 너도먹고 나도먹고 다같이 마시자'다. 2절 끝에는 '이대생은 우리 것, 숙대생도 양보 못한다.'는 맹랑한 구절도 있다. 이 동네서 조지훈 국어 교수는 강의실에 취한채 들어왔고, 그걸 탓하는 사람 아무도 없었다. 되려 존경하였다. 여기서 닦은 실력으로 나는 군에 가서 한 말 주량으로, 항만사령부 229 자동차 대대 800중대, 랭킹 2위 였다. 존경하는 1위는 한 말 반 주량의 인천 출신 상병 정봉율 이었다.

 술은 취하려고 먹는다. 맹숭맹숭 할려면 돈이 아깝다. 그러다보니 잘못 투성이다. 직장 시절 실수담 이다. 딱 한번 카바레에 가 본 적 있다. 영동대교 건너에 있던 곳이다. 동료인 남상무와 2차를 하고, 아직 기가 펄펄해,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고 간 곳이다. 양주와 과일 안주 푸짐히 시키고, 술을 마시며 남녀가 껴안고 빙빙 돌아가는걸 구경 하다가, 둘이 화장실에 간 것이 잘못이었다. 화장실은 밖에 있었다. 취한 사람이 뭐 번그럽게 다시 입장하여 아까운 돈 계산할 것 있던가. 희희낙낙하며 택시 타고 집으로 와버렸다.

  한번은 남의 양주를 병째 축 낸 적도 있다. 한남동에 '필하모니'란 노래방이 있었다. 3차 들렸는데, 취중에 아는 얼굴이 보였다. 그 테이불에 앉았는데, 앉아보니 아뿔싸 이를 어쩌나? 알기는 아는 얼굴인데, TV에서 자주 본 국회의원 이다. 그러나 '선량께서는 지붕 위 감처럼 바라만 보고 아끼던 이쁜 안암골 아가씰 독차지 하셨군요?'  수작을 건네자, ' 안암골 출신이시군요, 반갑습니다' 동행한 여인이 아는체 해준다. ' 63학번 손숙씨 맞지요? ' ' 네, 그래요.' ' 알만한 손님 왔으면 잔 부터 한번 챙겨주시기요.' 나는 잔 내밀었고, 그때부터 손은 붓고, 나는 마셨다. 곧 이어 사회자가 노모씨를 무대로 올라오라고 부른다. 나도 같이 올라가 두 곡 합창했다. 노모씨가 의리는 있다. 오기인지 기분인지, 내 노래 두 곡도 둘이 제스쳐까지 모범적으로 써가며 열창했다. 병이 바닥 났을 때 동료들이 찾아와 사과했다. '죄송 합니다. A 그룹 중역인데, 술이 과해서... 오늘 계산은 저희가 하겠습니다.' 그러자 노씨 통 크게 나온다. '아닙니다. 나도 술 좀 아는 사람입니다. 계산 필요 없습니다.' 그 점은 지금도 좋게 생각된다. 나중에 이 양반이 청와대 주인 되자, 손씨를 장관에 앉힌다. 허어 그 것 참! 

 두당 백만원 하는 룸싸롱 간 적 있다. 부동산 하는 동기가 계열 건설사에 3백억짜리 계약을 성사시킨 것이다. 작게 잡아 복비가 2억, 백만원은 푼돈 이다. '나도 의리가 있지, 복비의 반은 자네 것이야.' 이렇게 말한 동기와, 술 맛 안날 사람, 천하에 없다.

  전철을 타고오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그래도 술 취해 파출소 끌려간 적 없고. 고주망태였어도 어떻게 돌아왔는지, 이튿날 아침에 차는 항상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 있었지!' '그렇게 자주 퍼마시고도, 어떻게 그리 큰실수 없이 살았을까?' 박카스신에게 살째기 고마운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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