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

나애심과 송민도

김현거사 2013. 3. 11. 10:32

     

 

    

             나애심과 송민도

 

 

 요즘 우리나라 젊은 가수들이 노인들을 놀래게 한다. 한류니 뭐니 하면서, 세계를 누빈다. 월요일 밤 KBS 가요무대만 즐기는 나로서는 젊은이들 노래가 어느 수준인진 잘 모른다. 하여간 그들이 세계의 주목을 받아 흐믓하다. <K-POP>이니, <소녀시대>니, <비>니 하는 가수들이 중국을 위시한 동남아 베트남 태국 일본에선 스타인 모양이다. 동양뿐만 아니라 프랑스 영국 등 구라파, 미국과 브라질같은 남북 아메리카 대륙도 휩쓴다고 한다. 뉴스를 보니, 파리나 런던 뉴욕 공항에 그들이 나타나면 그곳 청춘남녀들이 꺅꺅 기성을 지르면서 숨 넘어가는듯 아우성 친다. 이를 통한 한국의 국가브랜드가 얼마나 올라가는지는 불언가지(不言可知)다. 40 여년전 클립리쳐드 내한공연 때 일 생각난다. 지금은 할머니가 된 아가씨들이 팬티나 브라지어까지 챙피한줄 모르고 벗어 던지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최근엔 싸이가  <강남스타일>이란 풀래시 한방으로 세계적인 홈런을 쳤다. 흉내 귀신인 일본에선 짝퉁 한류까지 생겼다고 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언제부터 이런 놀라운 끼를 숨기고 있었을까.

 이쯤에서 우리 가요사 족보를 한번 뒤적거려볼 필요가 생긴다. 세계가 우리 음악에 놀라는데, 우리만 서산 마애불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을 수는 없잖은가. 프랑스에 샹숑이 있고, 이태리에 칸쇼네가 있디. 라틴 아메리카에 탱고가 있고, 우리나라엔 트롯트가 있다. 미국엔 엘비스프레슬리가 있고, 프랑스엔 이브몽탕이 있다. 우리나라엔 윤심덕 이애리수 이난영 남인수 나애심 송민도가 있다. 한류는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닐터 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가 양은 주전자 놓고 막걸리 따르며 듣던, 이들 한류의 원류를 만날 수 있다.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고향이 진주이다. '가요계의 황제' 남인수 노래를 좋아한다. 그의 <애수의 소야곡> <추억의 소야곡>은 내 비장의 십팔번이다. 여가수로는 나애심과 송민도를 애낀다. 두 분 다 고급 허스키를 구사하시던 분이다. 나는 녹음시설 빈약한 그 당시 유성기의 노이즈 낀듯한 LP판 소리를 사랑한다. 바로 오랜된 느낌 그 자체에서 추억을 맛본다. 

 나는 한때 서양물이 들어 이브몽탕과 에딧삐아프를 좋아했다. <장미빛 인생>을 노래하는 에딧삐아프의 부드러운 바이브레이션에 한없이 탄복했다. <고엽>도 마찬가지다. 이브몽탕의 콧소리에서 세련된 샹숑의 멋에 취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체된 새 고전을 즐긴다. 나애심과 송민도다. 나애심의 <과거를 묻지 마세요>를 한번 살펴보자.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은 풀려, 어둡고 괴로웠던 세월도 흘러....한 많고 설움 많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 여기 마지막 대목, '한 많고 설움 많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를 한번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애심의 허스키, 놀랄만한 바이브레이션이 이 대목에 몽땅 들어있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삼각지>를 부른 배호가 저음 허스키라면, 나애심은 고음 허스키다. 나애심의 창법은 마치 벨칸토 같다. 뱃속까지 깊이 들이킨 숨을 비공과 몸 전체를 통해서 소리로 낸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성량이 나온다. 가날픈 여인이 그러니 더 매력적 이다. 성량이 부족한 가수가 혀 끝 기교로 내는 소리 하고는 비교가 안된다. 그 나애심의 허스키는 독특하다. 음역이 끝간데 모를 고음으로 탁 터져 시원하면서도,  완벽한 바리브레이션을 구사하는 허스키인 것이다. 참으로 통쾌하다. 목 메인듯  애수 담긴 허스키, 이게 나애심의 특징이다. 이 매력은 <백치 아다다> <미사의 종>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이 나애심이 나를 샹숑에서 토롯트로 귀환시킨 장본인이다. 나는 그를 한국의 에딧삐아프라 생각한다. 당시 예술가들도 그에 대한 관심이 깊었던듯 하다. 그의 허스키, 혹은 미모에 끌려선지, 그를 주연으로 영화를 제작한 일도 기억해둘만 하다. 

 

 

                    나애심

 

 

 송민도는 경기도 수원군에서 감리교 목회자의 딸로 출생했다. 이머니는 이휘호여사와 이화학당 동기동창이고, 그 역시 이화학당 출신이다. 그는 알토 허스키 보이스다. 현악기로 치면 첼로 같고, 관악기로는 크라리넷 비슷하다. 화려한 소프라노는 아니다. 그러나 음정은 드럼같이 정확하다. 그는 우리나라 가수 중 클래시컬 창법을 처음 시도한 사람으로 불린다.  1947년 이화를 졸업한 그 해 단발머리로 한국방송공사의 전신 중앙방송국 전속가수 모집에 응시하여 1기생으로 발탁되었다. 가성을 사용하지 않는 창법은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어, 서구식 음으로 우리 가요 수준을 한단계 올려놓았다는 평을 받기도 하였다. 데뷰곡은 <고향초>이고, <나의 탱고> <캬츄샤의 노래> <목슴을 걸어놓고> <여옥의 노래> 등이 있다.  그의 음은 은은한 한지 바른 창문 밖에서 듣는 가야금 소리다. 흐름은 비단이 부드럽게 스쳐가는 것 같고, 떨림은 옥구슬이 산산히 깨어지는듯 하다. '초록바다 물결 위에 황혼이 오면, 사랑에 지고새는 서귀포라 슬품인가.'<서귀포 사랑>의 첫구절에서, 바다위에 내리는 황혼같이 스러지는 그의 부드러운 바이브렛에 반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목석일 것이다. 듣는 사람을 물새처럼 만들어, 짭자롬한 소금냄새와 해조음을 만나게 한다. 애상적인 면에서 송민도 노래는 이베트지로 같다. '남쪽나라 바다 멀리 물새가 날면' 그의 데뷰곡 <고향초>도 마찬가지다. 송민도가 처음 발표하자, 장세정 주현미 이미자 홍민 등이 리바이벌 했다. '후루사토구사'란 제목으로  일본 노래로 번안되기도 하였다. 그의 <청실홍실>은 대한민국 드라마 주제가 1호이며, 그의 노래 <나 하나 사랑>은 영화화 되었고, <여옥의 노래> 는 <산유화>의 주제곡이 되었다. 

 옛날에는 집에 있던 민화나 오래된 도자기를 골목에서 가위를 쩔렁거리던 엿장수 엿과 바꿔 먹었다. 그것이 얼마 후 비싼 골동품 대접을 받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가요에 뽕짝이라는 비하적 표현을 썼다. 대중가요라는 굴레를 씌웠다. 그러나 이제 우리 생각을 바꿀 때가 되었는지 모른다. 선별해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야 될지 모른다. 아직 철이 좀 이른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제 에딧삐아프, 이베트지로와 나애심, 송민도를 슬며시 비교할 때가 온 것이다.

 

               이화학당 시절 송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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