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

산수화 화법과 수필 작법(4)

김현거사 2013. 1. 7. 09:44

 

   산수화 화법과 수필 작법(4) 

 산중의 은자(隱者)는 반드시 그 마루와 안방을 들어가 본 뒤에 그 유정한적(幽靜閒寂)한 취(趣)를 보는 것이 아니라, 문에 들어가는 길에서 벌써 바라만 보아도, 도덕 높은 사람의 집임을 알게 되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흠모(欽慕)의 느낌을 일으킬만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수필도 첫 일필(一筆)에서 벌써, 필외(筆外)의 뜻(意)이 나타나, 첫구절을 읽으면 먼저 인물의 맑기가 학(鶴)과 같은 사람이 보여야 한다. 

 도연명이 '밝은 달 아래 호미 메고 돌아오거나',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면서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는' 모습, 마힐(摩詰)이 '우연히 이웃 동네의 수척한 노인네를 만나 담소하다가 돌아갈 줄을 모르는' 모습, 이태백이 '두사람이 술을 대작하매, 산꽃이 피어나는' 운치, 두보가 ' 맑은 날 창 아래서 들에 숨은 고사(高士)의 시편(詩篇)을 점 찍어 가면서 읽는', 그런 모습이 보여야 한다. 개자원 화보를 보면 고사들의 이런 모습을 논하고 있다. 명아주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여 샘물 소리를 듣는 모습, 천기 화창한 날에 피리 불거나, 거문고 타는 모습, 독좌(獨坐)하여 산밭에 핀 복숭아꽃을  보거나, 비 젖은 갈대 사립문에 핀 찔레꽃을 바라보는 모습, 달 밝은 물가 누각에 찾아가 시원한 바람을 쐬며 차를 다리는 모습, 나귀를 타고가며 시를 구상하는 모습, 갈대 우거진 곳에서 혼자 노를 젖는 모습, 비 개인 들판에 선 무지개를 바라보는 모습, 물 맑은 산골짜기에서 혼자 발을 씻는 모습이다. 이것이  동양 선비들이 수백년 추구해온 자연관이자 인생관 이다. 철학이자 격조이다.  

 요즘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곤 하나, 상기한 자연관, 인생관, 격조의 맥을 잇지못하고  망각되어 사라지고 있음은 슬픈 일이다. 수필가들이 그냥 시정(市井)의 기(氣)만 잔뜩 느끼게하는 글,  어디 해외 여행 다녀왔다는 천박한 자랑 글, 일상사를 지루하게 쓴 글을 보면, 참으로 답답하고 민망스럽다. 이리도 소재가 빈약하고, 격조가 없고, 운치를 모르고, 쓸 것에 궁핍한가 싶다. 

소재를 찾으려면 조금이라도 짬을 내어 고금의 문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글 중의 보배를 추려놓은 고문진보(古文眞寶)란 책을 보면, 애국충정 표본이라할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가 있고, 고고한 절개를 읊은 굴원의 어부사(漁父辭)가 있고, 천하미인 양귀비를 읊은 백락천의 장한가(長恨歌 )가 있고, 선비를 논한 도연명의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이 있고, 천하를 통일한 한고조의 대풍가(大風歌)가 있고, 학문을 권하는 진종(眞宗)황제의 권학문(勸學問)이 있다. 대개 이들 사(辭), 부(賦), 설(說), 론(論), 서(書), 표(表), 서(序), 기(記), 잠(箴), 명(銘), 문(文), 송(頌), 전(傳), 비(碑), 변(辯), 가(歌), 행(行), 곡(曲) 등은 전부가 수필인 것이다. 수필의 소재는 무궁무궁한 것이다. 이를 모르고, 현재 이름 있는 시인 소설가들은 물론, 수필가 자신들까지 합세해서 수필을 좁게 옭아맨다. 기껒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플라톤의 <대화편>, 몽테뉴의 <수상록(隨想錄)>, 루소, 찰스램, 프란시스 베이컨이 수필의 원조인양 치켜세운다. 이제현의 <역옹패설>은 설(說)이 아니고, 연암의 <열하일기>는 기(記) 아니던가. 역시 홍매(洪邁)의 <용재수필(容齋隋筆)> 은 수필이 아니던가. 시와 함께 가장 오래된 족보를 가진 수필을, 문학 장르 중에서 가장 늦게 탄생한 막둥이인양, 함부러 치부하는 현세태를 보면, 고소를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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