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

산수화 화법과 수필 작법(3)

김현거사 2012. 12. 25. 10:23

 

 

   산수화 화법과 수필 작법(3)  

 

 산수화 이론을 보면, 산을 그린다고 눈에 보인대로 다 그린 것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산에는 삼원(三遠)이 있다. 밑에서 꼭대기를 쳐다보는 것을 고원(高遠)이라 하고, 앞에서 산의 뒤쪽을 미루어 보는 것을 심원(深遠), 가까운 산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것을 평원(平遠)이라 한다. 고원의 기세는 돌올(突兀)하게 솟아 청명한 것을 폭포를 그려놓아 표현하고, 심원의 뜻은 산 밖의 산들이 중첩한 것인데 구름을 그려 넣어 표현하고, 평원의 운치는 표묘(縹緲)한 데 있어 역시 안개나 구름을 그린다.' 

산을 바라보는 안목을 말해주고 있다. 글 쓰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눈에 보인대로 그린다고 그림이 아니며, 쓴다고 다 글이 아니다. 그림도 글도 먼저 사물을 바라보는 깊은 안목이 있은 연후에 가능함을 느끼게 한다.

'고인(古人)은 좋은 산이 있어도 좋은 로(路)가 없다고 하였다. 길은 산이 좋게 되느냐 나쁘게 되느냐의 분계를 짓는 중요한 것이다. 산길은 그윽한 은자가 산에 숨어 살고 있음을 암시해주는 것이다. 길은 구불구불 굽이굽이 숨었다가 보였다가 해야한다, 톱니처럼 삐쭉비쭉 해서도 안되고, 꼿꼿이 죽은 뱀처럼 그려서도 안된다. 구름은 산천에 비단 수를 입히고, 청청한 산은 더욱 한가롭게 하는 것인데, 산에 문득 백운이 가로질러 걸리어서, 층을 이루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흥을 더욱 솟구치게 한다. 그래서 산은 운산(雲山), 물을 운수(雲水)라 부르는 것이다.' 

 산길을 그림에 은자가 숨어 살고 있음을 암시하는 산길, 살짝 제멋대로 곁가지 나가는 산길의 자유분방함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고, 구름을 그림에 산에 비단 옷 입히는 구름, 산을 더욱 청정하게 하는 구름의 한가함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이런 산길과 구름의 태(態)를 얻어와야 비로서 산수화에 격조가 묻어나오는 것이다. 

 '산을 봄에 있어서 주산(主山)은 높이 솟아야 좋고, 구불구불 연락되어야 좋고, 훤하게 트이어 널찍해야 좋고, 옹골차게 두툼해야 좋고, 세(勢)가 우람한 기상이 있어야 좋다. 위에는 덮은 데가 있고, 아래는 그것을 받드는 데가 있으며, 앞에는 손잡아 주는 데가 있으며, 뒤에는 의지되는 데가 있어, 산의 혈맥이 통하여야 한다.' 

 산 그리는 방법이 마치 수필 다듬는 과정같다. 구성면에서 본다면 글이나 그림 모두 공동 운명체인지 모른다. 무턱대고 그린 그림은 앞뒤가 혼잡하여 오직 답답할 뿐이다. 주제가 무엇이고, 연결이 무엇인지가 뚜렷해야 한다. 글맛의 변화도 논해주고 있다. 때에 따라서 은은한 시적 분위기도 있어야겠고, 올골차고 두툼하고, 우람한 세력도 있어야 할 것이다. 글귀는 때론 중첩으로 서로 덮어주고, 때론 아래서 받들어주고, 앞에서 손잡아 주고, 뒤에서 의지해주어 혈맥이 통해야 한다. 

마힐(摩詰)은 '산을 그리는 법에는, 먼저 기상(氣象)을 살피고, 청탁(淸濁)을 분변하고, 주빈(主賓)의 조읍(朝揖)을 정하고, 군봉(群峰)의 위의(威儀)를 차리는데, 많으면 난(亂)하고, 적으면 엉성(慢)하다' 하였다.

마힐(摩詰)의 설은 수필가에게 좋은 참고가 되지만, 특히 마지막 구절, "많으면 난(亂)하고, 적으면 엉성(慢)하다'는 대목이 백미이다. 이처럼 산수화에는 법이 있음을 귀히 여긴다. 그러나 때로는 법이 없음을 귀히 여기기도 하여, 궁극에는 유법(有法)의 극치에서, 다시 무법(無法)으로 돌아간다.   

'송(宋)나라 종병(宗炳)이라는 사람은 늙고 병들면 명산을 두루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노년에 누워서 보기 위하여 유람했던 곳을 모두 그림으로 그려 방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은일고사들이 이런 경우가 많았다. 도연명의 은거를 꿈꾸는 사람은  귀거래도(歸去來圖)를 걸어놓았고, 왕유 같은 별서(別墅)를 꾸미고 살고싶은 사람은 망천도(輞川圖)를 걸어놓았으며, 왕휘지처럼 곡수(曲水)에 술잔을 띄워 시를 짓고 싶으면, 난정(蘭亭)을 그린 그림을 구해와서 완상하였다. 조선 초기 채수(蔡壽)라는 사람은 집에 돌로 만든 인공 석가산(石假山)을 만들었는데, 산은 높이가 5척이고 둘레가 7척이며 폭포는 2척 남짓이고 나무는 4~5촌이었다. 사람 키만 한 높이의 석가산에 조그만 나무를 심었고, 특히 대통을 이용해 물길을 땅속으로 끌어와서 갑자기 연못 한가운데 있는 석가산 꼭대기에서 폭포가 되어 떨어지게 하였다.'

이렇게 사람이 산수를 완상하는 데도 나름대로 보이지않는 법식이 있었다. 이런 법식과 안묵이 없이 수필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모든 수필가가 철학자가 되어 인생을 관조할 수 있거나, 시인이 되어 시어(詩語)로 인생의 희노애락을 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필가가 필력이 약하여 주변 일상을 보고서나 일기장처럼 써놓는 일은 피해야 한다. 기험(奇險)과 신기(神氣)가 없어 답답하고, 고졸한 아취가 부족하여 취할 바가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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