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

산수화 화법과 수필 작법(2)

김현거사 2012. 12. 18. 06:58

   산수화 화법과 수필 작법(2)
 원(元)나라 하문언(夏文彦)은 말하였다.

'기운이 생동하여 천품(天稟)에서 나오고, 그 교묘한 것을 다른 사람이 배울 수 없는 것을 신품(神品)이라고 하고, 필세(筆勢)와 묵색(墨色)이 탁월하며 채색하는 법이 알맞음을 얻어 여운이 있는 것을 묘품(妙品)이라고 하고, 그림이 그 물형(物形)과 같고, 법식에 틀리지 않음을 능품(能品)이라고 한다. 이 삼계급의 구별은 동서를 막론하고, 모든 예술 어디에도 잘 들어 맞을 것이다.

 

 붓을 회롱한다고 다 문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쓴다고 모두 신품이나 묘품이나 능품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런 높은 경지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청나라 때 만들어진 '패문재서화보'에는 산수화가(山水畵家)가 그림을 그릴 때 피해야 할 12가지가 있다.<회종(繪宗)12기(忌)>.

  

 구도가 몹시 혼잡한 것을 꺼리고<포치박새( 布置迫塞 )>, 먼데도 가까운 데도 한 모양으로 구별이 없음을 꺼리고<원근불분( 遠近不分 )>, 산과 산에 연속되는 기맥이 없이 산산히 떨어짐을 꺼리고<산무기맥( 山無氣脈 )>, 물에 수원과 하류와의 구별이 없음을 꺼리고<수무원류( 水無源流 )>,  경치에 평탄한 데와 험조(險阻) 한 데의 구별이 없을을 꺼리고<경무이험( 境無夷險 )>, 도로에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곳이 없는 것을 끼리고(숲에 가리운 낭떠러지를 보이게도 하여, 단속(斷續)의 정취가 있는 것을 좋게 여긴다는 것), <노무출입( 路無出入 )>,  돌이 입체적이지 못하고 한 면만 보이고 있는 것을 꺼리고<석지일면( 石止一面 )>, 수목이 사방으로 나아간 가지가 없음을 꺼리고<수소사지( 樹少四枝 )>, 인물은 고사 일인(逸人)을 생각하게 하고 천격이 됨을 꺼리고<인물구루( 人物 傴僂)>, 누각은 규구(規矩)가 바르지 않을을 꺼리고<누각착잡( 樓閣錯雜 )>, 햇무리 달무리같은 훈(暈)의 농담(濃淡)이 잘 맞지 않음을 꺼리고<농담실의(濃淡失宜)>, 점태(點苔) 와 채색이 법식에 맞지 않음을 꺼린다<점염무법( 點染無法 )>고 하였다. 

(*이 글은 원(元)나라 요자연(饒自然)의 설이라는 판본도 있다.) 

 

 이 기피 사항들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화법상의 법칙이다. 이것을 깨고, 또는 전혀 마음에 두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그린 화가도 얼마든지 있었다. 대체로 특출한 천재 화가는 처음에 배운 화법에 얽매이지 않고 독창적인 화법(畵法 )을 스스로 만들었다 

 

  어쨌던 그림과 마찬가지로 수필도 꺼려야 할 점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구도가 혼잡하거나, 글의 연속성과 맥이 산산이 떨어져 있거나, 글이 입체적이지 못하여 너무 평이 하거나, 소재가 천격이고 고아한 맛이 없거나, 기량이 떨어진 문장은 당연히 꺼리는 대상이 될 것이다. 소식(蘇軾, 1036~1101)은 왕유(王維)의 시와 그림을 보고,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라고 평하였다. 마음 속에 시가 있은 연후에라야 이런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작가 마음 속에 먼저 시가 없다면, 아무리 문장을 다듬어본들 무엇 하겠는가. 헛수고일 것이다. 서예가인 지영(智永) 스님은 글씨를 배우는데, 붓의 털이 닳아 못쓰게 된 것이 열 독이 넘었다고 한다. 이것을 땅에 묻고 이름하여 퇴필총(退筆塚)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붓 하나를 털이 닳아 못쓰게 되려면 수천번 수만번 사용했을 것이다. 그 붓을 담은 독이 열 독을 넘었다니, 지영 스님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알 수 있다. 글 쓰는 사람이 옷깃을 가다듬고 마음 속으로 새겨두어야 할 전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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