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옛 친구

김현거사 2011. 1. 1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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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친구|隨筆
김현거사 | 등급변경 | 조회 40 |추천 0 |2009.04.12. 13:51 http://cafe.daum.net/namgangmunoo/5gNC/184 

 

       옛 친구

 


 그는 내가 내려가면 벚꽃 만발한 경주의 보문호수로 안내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둘이 가보니 지는 해는 산 위에 커다란 붉은 접시마냥 걸려있고, 봄이 지나간 호수는 하얀 눈처럼 분분히 꽃잎만 차창 밖에 날린다. 철 지난 벚나무 가로수도 그렇고, 물 위에 비치는 등불도 애처럽다. 천년 고도의 낙화시절에 70 앞 둔 낙화인생 둘이 만난 것이다.

바람결에 그의 소식 듣고 5시간 달려간 울산은 태화강 푸른 물에 흰갈매기 나르고 노란 유채꽃 만발하였다. 서로 학창시절에 책 읽기 좋아했고, 노년에 분재 좋아한다는 점이 그와 나의 공통점이었다. 울산 시외버스 터미널에 마중 나온 그의 얼굴 윤곽은 50년 전 모습이 조금 남아있었다. 세월은 그의 눈가에 잔주름 만들고 눈빛을 좀 차급게 했으나 쉽게 옛모습은 알 수 있었다. 그는 바닷가로 차를 몰더니 경주로 가는 해변 옆 어디 갯마을에서 장어요리 시키고 자기 표현대로 세월에 거칠어진 손으로 내 잔을 채워주었다.

바다는 천년만년 파도를 바위에 부딪치고 있었으나, 우리 인생은 얼마나 남았을까. 우리 앞으로 자주 연락하자, 자주 만나자는 말은 했지만, 실상은 둘 다 먼 거리라 여생에 한두번 만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둘은 토함산을 오르며 차 속에서 젊은 시절 부르던 <Love me tender>를 같이 불렀다. 고향 진주도 이맘 때면 산은 벚꽃이 피었고, 달은 남강에 비쳤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봄철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릴 때 친구들 이야기, 이미 고인이 된 친구 이야기, 들국화 핀 강 언덕 달려가던 <금발의 제니>같이 아름다웠던 첫사랑 소녀 이야길 했다. 그는 아쉽다며, 왜 과감히 대쉬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추억은 진주 칠암동 탱자꽃처럼 그렇게 하얗고 순결한 향기를 지닌 것이다. 나는 그에게 비장의 히든 카드 하나를 보여주었다. ‘남강물 참을 찾아 끊임이 없고,두류산 바라보는 충의의 고을...’  55년 전 천전초등학교 교가였다. 동기인 그는 깜짝 놀래며 몇구절 따라하며 신기해 했다.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흩어져 산 인생이다. 그는 울산, 나는 서울에 뿌리 내리고, 그동안 세월은 흘렀고 우리는 늙었다. 그러나 세월 저쪽 그와 나의 청춘시절 기억은 우리가 나중에 차를 대고 별빛 이울도록 지켜본 장생포 바닷가 달빛처럼 맑고 쓸쓸한 것이었다.

아침에 본 그의 삼층집은 쓸쓸했다. 모든 노년들이 그러하듯 자식들은 떠나고 그곳엔 추억만 있었다. 생전에 아내와 가꾼 뜰의 비단잉어 키운 연못은 물이 없고, 돌다리 위에 핀 야생초만 하얀 꽃 피우고 있었다. 호랑가시나무는 너무 무성했고, 시늇대 아래 흐르던 폭포는 물이 흐르지 않았다. 부부 의사로 타지에 사는 아들은 아파트로 옮겨 가시라고 말하지만, 그는 그 집을 떠나지 않았다. 사업은 몇 년 전에 문 닫았다고 한다. 30여년간 취미로 키운 100여점 분재를 두 동 온실에 키우고 있으나, 이젠 힘이 부쳐 임자 나서면 전량 매각할 예정이라고 했다.모든 사랑하던 것은 인연 따라 흩어지는 법이었다.

그는 나에게 맘에 드는 분재를 하나 고르라고 했다. 혼자 산다는 일은 쓸쓸한 일이다. 더더구나 우리 모두 곧 떠날 나그네 인생길 아닌가. 이 생에서 만나 서로 보고싶던 벗인 것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 마음 속으로 그가 끝까지 건강하게 살았으면 싶었다. (09년 4월) 


그는 내가 내려가면 벚꽃 만발한 경주의 보문호수로 안내해주고 싶었다고 했다.그러나 둘이 가보니 지는 해는 산 위에 커다란 붉은 접시마냥 걸려있고,봄이 지나간 호수는 하얀 눈처럼 분분히 꽃잎만 차창 밖에 날린다.철 지난 벚나무 가로수도 그렇고,물 위에 비치는 등불도 애처럽다.천년 고도의 낙화시절에 70 앞 둔 낙화인생 둘이 만난 것이다.

바람결에 그의 소식 듣고 5시간 달려간 울산은 태화강 푸른 물에 흰갈매기 나르고 노란 유채꽃 만발하였다.서로 학창시절에 책 읽기 좋아했고,노년에 분재 좋아한다는 점이 그와 나의 공통점이었다.울산 시외버스 터미널에 마중 나온 그의 얼굴 윤곽은 50년 전 모습이 조금 남아있었다.세월은 그의 눈가에 잔주름 만들고 눈빛을 좀 차급게 했으나 쉽게 옛모습은 알 수 있었다.그는 바닷가로 차를 몰더니 경주로 가는 해변 옆 어디 갯마을에서 장어요리 시키고 자기 표현대로 세월에 거칠어진 손으로 내 잔을 채워주었다.

바다는 천년만년 파도를 바위에 부딪치고 있었으나,우리 인생은 얼마나 남았을까.우리 앞으로 자주 연락하자,자주 만나자는 말은 했지만,실상은 둘 다 먼 거리라 여생에 한두번 만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둘은 토함산을 오르며 차 속에서 젊은 시절 부르던 <Love me tender>를 같이 불렀다.고향 진주도 이맘 때면 산은 벚꽃이 피었고,달은 남강에 비쳤었다.우리는 우리 인생의 봄철 이야기를 나누었다.어릴 때 친구들 이야기,이미 고인이 된 친구 이야기,들국화 핀 강 언덕 달려가던 <금발의 제니>같이 아름다웠던 첫사랑 소녀 이야길 했다.그는 아쉽다며,왜 과감히 대쉬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추억은 진주 칠암동 탱자꽃처럼 그렇게 하얗고 순결한 향기를 지닌 것이다.나는 그에게 비장의 히든 카드 하나를 보여주었다.‘남강물 참을 찾아 끊임이 없고,두류산 바라보는 충의의 고을...’ 55년 전 천전초등학교 교가였다.동기인 그는 깜짝 놀래며 몇구절 따라하며 신기해 했다.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흩어져 산 인생이다.그는 울산,나는 서울에 뿌리 내리고,그동안 세월은 흘렀고 우리는 늙었다.그러나 세월 저쪽 그와 나의 청춘시절 기억은 우리가 나중에 차를 대고 별빛 이울도록 지켜본 장생포 바닷가 달빛처럼 맑고 쓸쓸한 것이었다.

아침에 본 그의 삼층집은 쓸쓸했다.모든 노년들이 그러하듯 자식들은 떠나고 그곳엔 추억만 있었다.생전에 아내와 가꾼 뜰의 비단잉어 키운 연못은 물이 없고,돌다리 위에 핀 야생초만 하얀 꽃 피우고 있었다.호랑가시나무는 너무 무성했고,시늇대 아래 흐르던 폭포는 물이 흐르지 않았다.부부 의사로 타지에 사는 아들은 아파트로 옮겨 가시라고 말하지만,그는 그 집을 떠나지 않았다.사업은 몇 년 전에 문 닫았다고 한다.30여년간 취미로 키운 100여점 분재를 두 동 온실에 키우고 있으나,이젠 힘이 부쳐 임자 나서면 전량 매각할 예정이라고 했다.모든 사랑하던 것은 인연 따라 흩어지는 법이었다.

그는 나에게 맘에 드는 분재를 하나 고르라고 했다.혼자 산다는 일은 쓸쓸한 일이다.더더구나 우리 모두 곧 떠날 나그네 인생길 아닌가.이 생에서 만나 서로 보고싶던 벗인 것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마음 속으로 그가 끝까지 건강하게 살았으면 싶었다.(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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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09.04.12. 15:48
지나간 인연을 이은 두 분의 우정이 훈훈하게 그려졌습니다. 그 분이 사랑하고 아끼던 분재를 다 처분한다는 그 구절이 무척 씁쓸합니다.남의 일이 아니니까요.월계.
 
 
천성산 09.04.12. 18:22
옛친구 이야기에 " 모든 사랑하던 것은 인연 따라 흩어지는 법이었다" 가 어쩐지 목에 가시처럼 걸려요. 정말 그럴까요 인연따라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우정이 묻어나 눈시울이 시큼 했어요.
 
 
봉화 09.04.13. 08:05
거사님은 만남보다 헤어짐에 무게를 둔것 같습니다 너무 쓸쓸합니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만남에 감사하며 살고 싶습니다 요즘 거사님의 거동이 많이 수상합니다 인연따라 흩어지는 쪽에 너무 기울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세상에는 감사할일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아시면서 ...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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