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우중(雨中) 산행

김현거사 2011. 1. 1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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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雨中) 산행|隨筆
김현거사 | 등급변경 | 조회 47 |추천 0 |2009.07.21. 10:16 http://cafe.daum.net/namgangmunoo/5gNC/218 

 

우중(雨中) 산행


장마라 간혹 빗방울 떨어지는데 우산을 지팡이 삼아 산을 오르니,의외로 좋다.비는 올듯말듯 하고,구름은 따가운 햇볕 가리고,땅은 촉촉이 젖어있다.등산하기 최적이다.

산 속의 개구리밥 가득한 연못에 홍련 백련 두 종류 수련이 피었다.하얀 해오라기가 고기를 엿보고,자라가 물가에서 햇볕을 쬐는 연못이다.

인도에서 붉은 연꽃을 <파드마>,흰연꽃을 <반메>,푸른 연꽃을 <가마라>라 부른다.묘법연화경을 백련(白蓮)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처염상정(處染常淨)이란 말을 떠올려 본다.연꽃은 더러운 늪에 자라지만,청정하고 깨끗한 꽃을 피운다.속세의 우리도 연꽃을 닮으라고 불교는 가르친다.육신은 어지러운 늪에 담을지라도,정신은 연꽃처럼 청정해야 한다고 설한다.연꽃 보면서 자신을 돌아본다.


평범하던 광교산이 빗속에 문득 생기를 찾는다.비는 처음에 무성한 나무잎만 적셨을 것이다.나무를 다 적신 후에 땅을 적시고,땅을 적신 후에 개울을 적신다.메말랐던 개울은 졸졸졸 맑은 물소리 내며 흘러간다.개울가에 작은 폭포가 생기고 새 여울이 생긴다.개울이 물소리 내면 산이 더 산 답고 더 운치있고 더 유정해진다.산은 비를 기다리면서도 보채지 않고 말없이 기다리는 점이 배울 점이다.개울가에서 손도 씻고,등산화 바닥의 흙도 씻었다.만난 모든 인연을 정화하는 물의 공덕을 헤아려본다.

장마로 산길에 이름 모를 버섯이 여기저기 솟았다.젖은 갈참나무 숲에 손바닥만한 큼직한 하얀 버섯이 솟고,죽은 나무가지에 구름같은 운지버섯이 소복히 피었다.어릴 때 많이 먹던 싸리버섯 생각난다.어머님이 소고기와 함께 볶아주시던 쫄깃하고 쌉싸롭한 싸리버섯 맛과 향이 생각난다.잊혀진 어머님의 손맛이 그립다.그 흔하던 지리산 석이버섯 목이버섯은 요즘 서울의 이름난 요리점 가도 구경하기 어렵다.


내고향 7월은 폭우가 내리고,태풍이 지나갔다.태풍은 강물을 흙탕물로 만들고,대밭을 미친 듯이 흔들고,집마다 선 감나무 둥치를 뽑을 듯 흔들고,휘이잉 휭휭!전기줄과 양철지붕을 무슨 악기인양 날카롭게 울렸었다.소년에게 원시본능 일으키던 50년 전 태풍 불던 밤이 그립다.새벽에 천전초등 교정 과수원에 가면 감이 무수히 떨어져 있곤 했다.잎과 감이 둥글면 단감이고,잎과 감이 뾰쪽하거나 납작하면 떪은 감이다.떪은 감 소금물에 담아 홍시 만들어 먹던 그 시절이 그립다.


광교산에도 태풍이 지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해보곤한다.남태평양서 올라온 그 강렬한 태풍 맞으며 자란 남도 사람은 대개 정이 깊고 강렬하다.

약수터에서 땀 씻고 시원한 샘물로 목 축이고,널판지에 누워보면 그리 시원할 수 없다.안개 속 하늘엔 키다리 굴참나무 이슬방울이 차갑게 얼굴에 떨어진다.‘나무잎이 푸르던 날에 뭉게구름 피어나듯 사랑이 일고...’ 옛날 젊은 시절 부르던 최무룡의 <꿈은 사라지고> 노랠 외어본다.맑은 산속 공기 맡으며 체조도 해보고 평행봉도 해보면 소년 때처럼 힘이 불끈 솟는다.


하산 길 벽산아파트 단지에 무궁화가 피었다.여름 꽃 중에 무궁화처럼 화려한 꽃이 없다.자미화(紫微花)로 불리는 목백일홍 빼고는 석 달 동안 무궁무진 싱싱하게 피는 꽃은 무궁화 밖에 없다.하와이의 하이비스커스꽃과 중국의 부용화가 무궁화 사촌들이다.영어로는 샤론의 장미(The rose of Sharon),샤론은 크리스챤의 성지인 이스라엘의 지중해쪽 가장 비옥한 땅을 말한다.

공항에서 북경 시내로 들어오는 도로는 커다란 무궁화 가로수 길이다.우리나라 포푸라 가로수같이 큰 무궁화나무가 여름 석 달 엄청난 무궁화꽃의 향연을 벌린다.일본 가께시마시는 100만주의 무궁화를 심어놓았다고 한다.시장이 지휘하여 무궁화를 심고 그 군락의 화려함을 주변에 자랑한다고 한다.중국과 일본은 무궁화의 참모습을 알고,그 꽃이 국화인 우리만 정작 모르고 산다.

외국에 망신스럽지 않으려면,최소한 인천 공항에서 서울 오는 길은 무궁화 부터 심어야 할 것이다.


샤론의 장미는 홑꽃 겹꽃,흰색 연분홍색 보라색 자주색 청색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장미과라 진드기가 있지만,얼마나 끈덕지게 많은 꽃을 피우는가.뿌리는 각종 위장병과 피부병 치료제이고,껍질은 닥나무 칡넝쿨과 함께 제지 원료로 썼다.고문서에는 근역(槿域)엔 무궁화 나무가 많아,고조선의 백두산족은 무궁화 껍질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고 적혀있다.무궁화 껍질은 아마 삼이나 무명,모시 이전 재료일 것이다.

벽산아파트 내려오며 어려서 술래잡기 할 때처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도 외고,<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꽃.피었네 피었네 우리나라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꽃> 동요도 불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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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09.07.21. 22:17
박식하기 그지없는 거사님의 입담을 벗삼아 지팡이 짚고 함께 산행해 보고싶군요 산속의 모든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풀냄새도 코끝에 스치웁니다 봉화
 
 
천성산 09.07.23. 09:43
그 어느날 외손녀 따라 광교산에 올랐다가 길을 잃고 애를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비올까 우산 짚고 산에 오르면서 구름이 햇볕을 가려줘서 좋다는 그 유유 자적이 부럽습니다.
 
 
동림 09.08.02. 23:44
<남강문학> 편집 일에 좀 바쁘다가 이제 여유를 찾아 오랫만에 김현거사의 굵으면서 섬세한 터치의 잘 그린, 해박한 풍경화 수필을 잘 읽었습니다......좀 핀트가 어긋난 느낌이지만, 좋은 작품 쓰실 때 뛰어쓰기에서 문장부호 <, . ? 등등> 다음 글자를 띄어쓰기 해야 되지 않을까? 하고 기우를 가져봅니다. 컴퓨터에 맞춤법 검사를 하면 붉은 점선줄이 나타나거든요. 행여 옥에 티가 되지나 않을까 하여 의논드리는 말입니다.
 
 
김현거사 09.08.03. 19:08
동림선배님 지적 감사합니다.한때는 신문 교정도 봤는데 요즘은 영 자신이 없습니다. 다행이 출판 할 때는 출판사 젊은 분들이 교정을 봐주니 하고 그럭저럭...게으름 피우고 있습니다.
 
 
일경 09.08.11. 07:32
빗속에 산길을 걸으면서 떠오르는 온갖 사념들. 하나 하나 떼어놓아도 시가 되고 수필이 되겠군요. 얼마 전 동해안 울진군의 '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에 다녀왔는데 7번국도 길가에 하와이무궁화 하이비스커스가 곱게 피어 있더군요. 무궁화는 영어로 보통 '로즈 어브 샤론(샤론의 장미)'이라고 하는데 따로 althea(엘시어)라고도 부르지요. 김현거사의 섬세한 관찰과 번뜩이는 생각들이 늘 좋은 글로 열매맺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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