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봄이 지나가고 있다.|

김현거사 2011. 1. 1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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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지나가고 있다.|隨筆
김현거사 | 등급변경 | 조회 75 |추천 0 |2009.04.19. 20:32 http://cafe.daum.net/namgangmunoo/5gNC/188 

봄이 지나가고 있다.

                                                                                                                        김창현


뜰에 하얀 딸기꽃 피면 봄이 반쯤 지나간 것이다.구례 산동마을 노란 산수유와 섬진강 다압마을 매화는 지고,쌍계사 십리벚꽃 화려한 장관도 끝났다.간 봄은 서럽고 올 봄은 안타깝다.  

뜰에 부드러운 오가피 새싹이 한참이다.술 담그라며 오색온천에서 설악산 가시오가피 열매를 팔길래 가져와 싹 틔운지 5년 되었다.한 줌 뜯어,바나나 한 개,우유 한 잔과 믹서에 갈아서 마시니 쌉스럼한 향기가 좋다.나무인삼으로 불리는 오가피를 이렇게 매일 먹을 수 있는 것은 아파트 일 층 사는 덕이다.


텃밭에는 작년에 심은 마늘 푸르고,보랏빛 제비꽃 옆에 고추 모종들 잘 자란다.하얀 백목련은 가슴 아프도록 뚝뚝 하염없이 지고말았으나,그 싱싱한 보라빛 꽃술에 볼이라도 비비고싶은 자목련은 지금 한창이다.앵두꽃 바람에 흩어진 서운함을 새로 피는 연분홍 모과꽃이 달래준다.꽃이 차례로 피고지고 봄이 지나가고 있다.천지가 심포니 연주처럼 일사분란하게 연주된다.꽃은 여배우 같다.저마다 화려한 의상 입고 차례로 무대에 등장했다가 사라진다.새들은 노래하고 벌 나비는 춤을 춘다.천지는 연출자,사람은 관객인지 모른다.


나무는 시인보다 섬세한 시를 쓰고,꽃은 화가보다 화려한 빛깔을 그린다.그래 나는 이 天衣無縫 화가들 시인들과 뜰에서 은밀한 친교의 시간을 많이 보낸다.사람은 목단의 진홍빛 꽃잎과 화사한 향기를 제대로 그릴 수 없다.나는 우리집 목단이 작년에 인간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화려한 꽃빛과 향기로 일주일간 나를 황홀경에 빠트린 것을 기억한다.목단은 천재 화가이다.

초록색 가지 끝에 맺히는 은방울꽃의 순결한 흰빛,홍자색 금새우난초의 고결한 품위,은은한 푸른 작은 유리등 같은 꽃 총총히 단 현호색,독일 붓꽃의 오만에 가까울 정도로 고귀한 청자색 푸른 빛에 나는 항상 깊은 감동을 느낀다.이 아름다운 빛들은 직접 유화를 그려본 사람 아니고서는,인간 손으로 그 신비한 칼라의 재현이 불가함을 모를 것이다.신비한 빛을 그리는 화가들이 철 따라 내 뜰에 꽃을 피움을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나는 고대광실은 사양하지만,뜰이 넓은 집은 항시 동경한다.가능하면 섬처럼 고립된 영토에서 한 여인과 오직 꽃과 나무만 사랑하며 살고 싶다.

(사진은 현호색꽃)

 

나는 사람 경탄시키는 보랏빛 오동꽃의 기막힌 향을 향수보다 좋아한다.찔레꽃 하얀 향기,장미꽃 농염의 향기에 늘상 반하고,야래향 천리향 만리향을 화분에 정성드려 키운다.그 나무들을 세련된 향수 뿌린 개성있고 섬세한 여인처럼  사랑한다.오렌지 향 바람에 날리는 한낮,이슬에 장미 향 풍기는 아침,夜來香 향기 온 집안 가득한 밤이면,나는 이들 향기 풍기는 나무 옆에 정겨운 연인마냥 닥아간다.


작년 초여름은 뜰의 살구를 주워 술 담고 향기로운 살구잼 만들어 친지에게 노놔주었다.추석에 배가 노랗게 익었었고,낙목한천까지 노란 모과와 붉은 홍시의 정취를 만끽하였다.정말이지 농익은 노란 살구 향과 붉은 대봉시 맛은 잊을 수 없다.봄엔 아침마다 상치 뜯어왔고,여름엔 풋고추와 도마도 오이 따고,가을엔 고구마 배추 무우 수확했다.땅은 참으로 은혜롭고 불가사의하다.땅은 햇볕과 물을 만나 감미롭고 향기로운 과일을 만든다.땅은 수많은 꽃과 채소와 과일을 품에서 내놓았다.땅은 신들의 나라,유토피아를 선뵈이는지 모른다.


올해도 봄이 지나가고 있다.오월이면 딸기가 빨갛게 익을 것이다.딸기가 기특하다.금년부터 나는 태고의 동굴에 살던 원시인처럼 되려한다.'神市記'에 살던 사람처럼 땅의 神을 믿고,高矢氏 神農氏에게 기도하고,고수례도 지키고 싶다.(09년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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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시스 09.04.19. 22:35
김현거사님 잘지내시죠? 거사님의 항상 유유자적한 생활이 부럽군요~
 
 
천성산 09.04.20. 03:07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진 날 나는 봄을 여윈 서름에 잠길테요
 
 
동림 09.04.20. 05:39
항상 느낌이긴 하지만....거사님의 군더더기 없는, 그러면서도 템보가 빠른 문장력에........게다가 부처님의 達觀을 담고 있는 觀照의 세상을 거닐며........同病相憐之情을 가슴에 담아봅니다.
 
 
김현거사 09.04.20. 10:06
벽오동 심는 뜻은 봉황을 그리는 것.허나시스 천성산 동림 선배님! 댓글로 응원해줘서 힘이 납니다.
 
 
봉화 09.04.20. 12:38
태고의 동굴에 살던 원시인 / 거사님에게 어울릴법도 합니다 땅의신을 믿고 ..공감대 ...며칠전 남이섬 가는길에 수종사를 잠시 들렸습니다 거사님의 수종사의 차맛을 떠올리며 경내를 한바퀴 돌았습니다 언제나 느끼지만 글을 읽을때마다 거사라는 호칭이 참 잘 어울립니다 해박한지식과 관조의 세계를 함께 거닐어봅니다 고맙습니다 봉화
 
 
달빛차 09.05.01. 02:04
 
 
김현거사 09.04.21. 09:21
꽃과 나무를 시인 화가로 생각하고 여인으로도 생각하고 연인처럼 사귀자는 뜻입니다.
 
 
달빛차 09.04.21. 03:15
인재 강희안의 <양화소록>을 방불케하는 멋들어진 작품이었습니다. 안에는 뜻이 깊고, 밖에는 멋이 뜨고, 일상 속에서 낚아 올리시는 글고기가 은비늘 번쩍이는 大魚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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