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꽃|

김현거사 2011. 1. 19. 11:29

 
 
 
|隨筆
김현거사 | 등급변경 | 조회 56 |추천 0 |2009.05.14. 19:36 http://cafe.daum.net/namgangmunoo/5gNC/192 


소년 땐 잉그릿버그만이나 셔리맥레인을 좋아하여 밤에 그들이 나온 영화 포스트를 떼어오곤 했다.그러나 요즘은 예쁘지도 젊지도 않은,꽃 잘 가꾸던 타샤튜더란 미국 할머니를 더 좋아한다.


봄이면,나는 양재동 꽃시장에 간다.꽃 구경하고,꽃시장 온 사람 구경한다.나이 들수록 학처럼 더 고고해지는 사람이 있다.소녀처럼 깔끔한 할머니가 꽃 사들고 가는 모습처럼 세상에 아름다운 모습은 없다.온화한 마음이 겉에 비친 모습을 보면,내면은 얼마나 아름다우실까 싶어 나는 시선을 떼지 못한다.


네댓살 때 처음 기억한 열매가 구기자다.본성동 우리집 대문 옆에 빨간 구기자가 주렁주렁 열려,화자란 또래 여자애와 그 열매 따먹으며 놀았다.후에 선배와 결혼하여 동문들 산행에 나타나는 화자를 보면,그와 따먹던 빨간 구기자 열매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시절 망경동 우리집은 봉선화 달리아 천국이었다.닭똥 거름에,봉선화는 키가 가슴에 닿았고,달리아꽃은 어린애 머리통만 했다.우물가에 모인 동네 새댁들은 봉선화 꽃 따가서 손톱에 꽃물을 들였다.

중학생 때 큰 돌을 주워다 한쪽에 연못 만들고,붕어가 그늘에서 쉬라고 망진산에서 캔 싸리나무로 그늘을 만들었다.지금도 보랏빛 싸리꽃 보면,우리집에서 일하다가 지리산 둥구마천으로 시집간 필순이 누나 모습 선하다.

<母光華>란 佛名의 어머님 다니시던,청곡사 파초는 넓은 잎새가 선비 도포자락처럼 펄렀였고,법당 천정은 수없는 종이연꽃이 매달려 있었다.연꽃 필 때 양수리나 광릉 봉선사 연꽃 구경가면,절 좋아하시던 연꽃같던 어머님이 슬며시 떠오른다.

칠암동은 대밭이 무성했고,천전학교 교정엔 감나무가 많았다.그 소녀가 살던 집 담장은 하얀 탱자꽃 향기롭게 피었고,잠자리 잡으러 다닌 습천 못은 찔레꽃 만발했었다.도동 버들숲에 다정한 봄바람 불고,강물에 은어 올라올 때,배건너 총각들은 흐드러진 벚꽃의 낭만에 취해,당미 언덕에서 세레나데를 불러제꼈고,약골 우리 고모님 대밭에 칡꽃이 필 때,망진산 뻐꾸기가 뻐꾹뻐꾹 울었다.


시골 출신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여 신기하게 처음 본 꽃은,본관 게시판 옆 보랏빛 라일락이다.후에 동문인 아내와 결혼한 후,둘이 모교에 가서 재학 때부터 낮익은 사진사 영감님 낡은 카메라로 찍은 사진엔 그 라일락꽃이 피어있다.

원고지 들고 미조로 간 것이 제대 후 일이다.키다리 나리꽃에 곱게 박힌 주홍빛 반점 보면,그 때 민박집 돌담 생각나고,책갈피에 끼웠던 애처러운 작은 제비꽃 보면,그때 함께 산책 다닌 금순이란 아이가 궁금하다.


기자 때 원고 청탁 다니던 동승동 이희승 선생님 댁 입구 오동꽃은 얼마나 그윽하던가.사당동 예술인촌 서정주 선생님 댁 파초는 얼마나 푸르던가.한분은 인자하셨고,한분은 유정하셨다.一石은 젊은 기자에게 담배와 자장면 권하셨고,未堂은 목탁 두드려 사모님께 차를 내오게 하셨다.쌍계사 白雲스님께 난을 배웠고,고결한 하얀 풍난 키우시던 중앙포교사 金魚水선생은 청빈한 시인의 마음을 배워주었다.


꽃은 말 없는 말 던지고 철 따라 피고지지만,어떤 꽃은 꽃 대신 사람 이미지로 변해갔다.세월에 흘러간 사람,그립고 보고싶은 사람,존경하고픈 사람이 꽃의 사연이 되었다.꽃을 사랑하고,추억하고,꽃에 얽힌 사람의 사연 간직한 사람이 걸어간 길이 <꽃길>이다.사람은 이별한 그 추억의 꽃길에 떠오르는 실루엩이다.얼마나 슬프고 아름다운가.한번 흩어진 그리운 인연들이 해마다 꽃에 다시 핀다는 사실이.

                                                                                                                    (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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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09.05.14. 23:37
고모님 대밭에 칡꽃이 필때 망진산 뻐꾸기가 뻐꾹뻐꾹 울었다 / 거사님은 꽃도 좋아하시고 구름도 바람도 다 좋아하십니다 무욕의 경지에서 관조하시는 모습 정말 멋집니다 봉화
 
 
천성산 09.05.15. 04:09
산을 오르다가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작은 들꽃에 눈이 갔을때 정원에 잘 가꾸어진 꽃에서와는 다른 애정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초영 09.06.21. 00:14
넘 넘 멋지신 거사 거사님! 또 한 수 배우고 다녀갑니다. 오늘도 건안, 건필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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