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즐거운 무더위

김현거사 2011. 1. 1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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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무더위|隨筆
김현거사 | 등급변경 | 조회 43 |추천 0 |2009.08.15. 10:18 http://cafe.daum.net/namgangmunoo/5gNC/223 

즐그운 무더위


광교산 굴참나무 소나무 숲길 오르락 내리락 한시간 걸어 약수터 가면,온 몸이 땀으로 훔뻑 젖는다.이때 약수터 아래 돌확에 철철 넘쳐흐르는 물에 손목 담그면 하도 차그워 손등이 찌리리 하고,소매 걷고 팔뚝 씻으면 근육이 용솟음친다.땀에 훔뻑 젖은 얼굴 세수하면 모공 구석구석 스미는 시린 물의 감촉이 그렇게 좋다.천하가 내 것 같다.약수물 두어 모금 마시면 청량한 산기운 몸에 든다.이렇게 시원한 약수물 아래 살고있음이 행복이다.사람들은 이런 곳 멀리하고 어디서들 헤매나.나는 약수 옆 초막 하나가 평생 소원이다.

다시 지리산 달빛초당 생각한다.은하폭포 아래 커다란 바위 있고,이끼 낀 바위 아래 대나무 홈통으로 떨어지는 작은 샘 있다.주인은 그 물로 초당에서 차 마시고 시 쓴다.삼베옷 입고 목침 베고 누우면,시시한 세상사 알 것 없다.땀난다고 귀찮다고 하는가.시원한 폭포 물 맞으며 세상에 비밀로 감추던 그놈까지 내놓고 은하폭포 쏘에서 가재하고 유유히 놀고싶다.나는 항상 그가 부럽다.


폭염이 좋다.폭염 덕에 감이 주먹덩이만 해진다.배는 정구공만해졌고,모과도 슬슬 럭비공같은  덩치 만들고,대추도 야물게 조롱조롱 열렸다.시시한 볕으로 열매가 커겠는가.뜰에 향 피워놓고 혼자 심호홉 하는 이 재미 사람들 모른다.과일이 무럭무럭 자람을 지켜보는 재미 사람들 모른다.소나무 분재 촉촉히 물 주는 재미 사람들은 모른다.시절 인연 따라 잊혀진 사람 되어 초야에 은거하는 재미 사람들은 모른다.


한낮에 먼지처럼 쌓이던 마음 속 욕심을 새벽마다 씻는다.매일 소나무 분재처럼 맑은 물 그리워한다.<色卽是空 空卽是色> 불교철학 배운 청년 때부터 천번만번 이 도리는 깨쳤지만,아직 미련둥이 고집퉁이 소에 불과하다.아는 것과 그리 됨의 차이다.번잡한 시내에서 버스 타거나 어디서 누굴 기다리는 시간,항상 허리 곧추 세우고 심호흡 하면서,손은 부처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하고 속으로 반야심경 천번만번 외지만,아직 멀다.황진이에게 농락당한 지족화상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 생각난다.둔근기인 나는 40년 마음공부해도 아직 나무아미타불 아닌가.

당연한 일이다.높은 설산을 찾아가 고행한 라마승도 있었고,고통스런 송곳 위에 누워 수행하는 요기도 있었고,석굴 속에 들어가 10년간 묵언으로 지낸 스님도 있었고,20년간 앉아서 눕지않은(長座不臥) 독한 스님도 있었다.그들조차 다 얻은 것이 아니다.바둑 친구 술친구 만나러 다닌 나야 꿈에 떡맛 보듯 쬐끔 맛뵈기만 얻어도 다행이다.중생은 어리석은 제 자신 알고 그저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시지도 않고 군내부터 풍겨서야 되겠는가.못나고 옹졸한 자신이다.항상 참회하는 자세 필요하다.


감 배 모과 대추처럼 폭염 속에 묵묵히 익어간다.속에 향기를 품으며 큼직한 과일처럼 익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들이 진정한 나의 스승과 도반일지 모른다.매일 아침 뜰에서 이들 과일 모습에서 배우고,낮엔 광교산 시원한 약수에 마음 씻고 온다.힘들다고 무더위 탓하랴.좀 있으면 봄꽃보다 아름다운 단풍 물드는 가을 올 터이니,흰 눈 나목에 쌓이는 겨울 올 터이니,동토에서 새싹 솟는 봄 올 터이니,사철이 의연히 제자리로 운행함을 즐겨보자.무더위야!싫컿 뜨거워라.치열하게 몸과 마음 영글게 하는 무더위도 좋다.

(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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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시스 09.08.15. 10:30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천성산 09.08.15. 10:57
사람 사는 가운데에 부처님이 계신다는 생각을 문득하였습니다. 이 나이 되도록 저 산사에서 만나는 부처님 상이 부처님인줄 알고 있었는데...... 검현거사가 뭔가 깨쳐 준것 같아요.
 
 
봉화 09.08.15. 11:43
댓글을 어떻게 달아야할지 정신이 아득해옵니다 거사님의글은 접할때마다 득도의 경지에 이른분의 독한 냄새에 취하고맙니다 봉화
 
 
이영성 09.08.15. 12:33
광교산이 있어 즐거운 거사님. 달빛초당의 풍취를 그리며 폭포수 소리를 들으니 더운 여름 시원히 지내시겠소. 몸과마음이 영그는 무더위도 좋다는 결구에, 대자리 깔고 늘어지게 잠만 자는 이몸이 조금 부끄럽소이다.
 
 
초영 09.08.20. 21:45
수필의 그윽한 향기에 취해, 심신을 수련하며 다녀갑니다. 울 선배님! 건필하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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