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
산책길에서 해당화를 발견했다. 저절로 난 것은 아닐테고 누군가가 심었을 것이다. 양양 낙산사 홍련암에 정말 멋진 향기를 지닌 해당화가 있다. 그걸 같이 구경하던 사람 생각난다. 그래서 해당화가 더 반갑다.
산책길에 작은 개울이 있어서 좋다. 물 속에 피래미 헤엄치는 걸 구경한다. 동우대 강의하던 시절 차 몰고 가다가, 인제나 원통, 혹은 내린천 어느 이름 없는 물가에서 황혼에 물 위로 점프하는 피래미 구경했다. 개울에 피래미가 많아서인지 항상 오리와 해오라비가 보인다. 그걸 보는 것이 산책의 즐거움이다. 오리는 맑은 물 위를 매끄럽게 헤엄치는 모습이 볼만하고, 해오라비는 하얀 한복 차림의 여윈 선비처럼 의젖한 모습이 볼만하다. 사진 찍으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모델비 안준다고 그런지, 새들이 수줍어서 그런지 자꾸 도망가버린다.
철학과 선배들은 산책을 즐겼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푸라톤도 그렇다. 그들을 소요학파라고 한다. Academy 라는 말의 기원은 플라톤이 철학을 가르쳤던 고대 아테네 교외의 올리브 숲 이름에서 유래한 다. 거기 산보하며 철학을 논한데서 비롯된다. 칸트도 산책으로 유명하다. 매우 규칙적인 사람이어서, 쾨니히스베르크 시민들은 그의 산책에 맞춰 시계를 맞추었다고 한다. 칸트는 80세까지 살았지만, 나도 4년 후면 80세 된다.
산책길에 접시꽃이 무성하다. 올 여름 내내 구경했다. 해당화를 본 후 나도 생각을 고쳐먹었다. 개천가에 복숭아씨 40개와 살구씨 60개를 심었다. 밭에 심었던 복숭아씨가 몇 년 뒤 엄청 잘 큰 걸 본 후, 나는 복숭아나 살구 먹고나면 항상 씨를 냉장고에 보관한다. 내년에도 복숭아 많이 먹고 더 심을 것이다.
우공이산(愚公移山) 고사 생각난다. 열자 탕문편에 보면 북산에 살고있던 우공(愚公) 이라는 노인이 높은 산에 가로막혀 왕래하는 데 겪는 불편을 해소하고자 두 산을 옮기기로 하였는데, 친구인 지수(智叟)가 말리자, '나는 늙었지만 나에게는 자식과 손자가 있고, 그들이 자자손손 대를 이어나갈 것이다. 하지만 산은 불어나지 않을 것이니, 대를 이어 일을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산이 깎여 평평하게 될 날이 오겠지.' 하였다. 산신령에게 이 말을 전해들은 옥황상제가 산을 멀리 옮겨주어 노인의 뜻은 성취시켜주었다.
고향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복숭아꽃 살구꽃 피는 곳이 고향 아닌가. 복숭아를 씨로 심으면 야생이 된다. 꽃도 더 곱고, 약효도 더 많다. 살구도 먹음직한 과일이다. 과육이 매실보다 더 달콤하고 부드럽다. 이걸로 고향 만들어 보는 일도 뜻있다.
'제작 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국에 대한 몇가지 포인트 (0) | 2019.09.15 |
---|---|
불교신문에서 맺은 인연 (0) | 2019.09.03 |
고향의 작은 둠벙 (0) | 2019.08.20 |
46년만에 만난 스님 (0) | 2019.08.11 |
오사리(五士里)의 하루밤 (0) | 2019.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