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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리(五士里)의 하루밤

김현거사 2019. 8. 2. 16:34

오사리(五士里)의 하루밤

 

 '봄에 꽃 피거든 한번 내려오소. 명색이 수필가란 사람이 집에만 틀어박혀 있지말고...' 정모 고향 선배님 전화다. 그는 포항에 '00기업'이란 포철 협력사를 세운 분이다. 노후에 수필가로 변신하여 글 쓰는 걸 낙으로 삼는데, '여기 와서 백두대간 구비구비 잔설 녹을 때 피어나는 화신(花信)도 보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경주 화산 숫불갈비집 한우고기 육즙 맛 좀 보라'는 그 말씀이야 나로서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다.

 

 사실 겨우내 방안에 갇혀 갑갑하던 차에 초청도 고맙고 그 분도 뵙고 싶었다.  정회장은 1973년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박정희 대통령은 노쇠했으니 물러나고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쿠데타 모의 혐의로 수감될 때 그의 비서실장이었다. 서빙고 보안사 분실에서 고문을 받고 몸속의 뼈 몇 개 철사로 고정시킨채 불명예 제대 당했지만, 43년 지난 2016년에 법원에서 전역무효 판결 받아낸 의지의 사나이다.

 

  그분이 포항에 회사 세운 이야기도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전역하자 생계 막막한 정회장은 만신창이 몸을 이끌고 포항제철 박태준 회장을 찾아갔다고 한다. 박회장은 윤필용 장군과 막역한 사이였다. 그러나 박회장은 공과 사가 분명한 분, 아는 사람 접근이 더 어려웠다. 할 수 없이 하찮은 잡일을 얻어 세월을 보냈는데, 그 후 박회장이 포철에서 타의로 물러나 미국 따님 집에 가 계실 때 기회가 찾아왔다고 한다. 

 박회장은 대통령이 제철소 만들라는 특명을 내리자, 직원들에게 '우리가 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일사분란하게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자'고 선언한 후, 결국 세계가 놀랄만한 철강공장을 만든 분이다.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가 35년 만에 1000만t 능력을 갖췄는데, 포항제철 박태준은 25년 만에 2100만t을 달성했다.

 그는 1992년 2100만t 생산체제를 구축하자 10월 3일 국립묘지 박정희의 묘역을 찾았다. 그리고 한지에 붓글씨로 쓴 보고문을 낭독했다. '박태준은 각하의 명을 받은 지 25년 만에 포항제철 건설의 대역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삼가 각하의 영전에 보고를 드립니다. 혼령이라도 계신다면 살펴보아 주시옵소서.'  

  그런 존경하는 분을 찾아 그 오지를 찾아간 정회장은 그렇다치자. 거기서 정회장 만난 철강왕 박태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흔히 아이언맨을 냉정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3천도 용광로 쇳물 같은 뜨거운 열기를  속에 간직한 남자들이다. 박회장은 떠나는 그를 동네 어귀에 나와 배웅했다고 한다. 그 후 박회장은 포철 회장으로 복귀했다.

 

  두 여류시인과 경주 정회장이 안내한 한우갈비집에 가서, 명품 한우고기가 왜 멀쩡한 서울 유명 요리점 다 제쳐놓고 거기 있는지 모르겠단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경주 갈비가 그렇게 좋은 줄은 예전엔 미쳐 몰랐다.

 식사후  정회장 회사에 가서 '초한지(楚漢志)소설에나 나올 풍경 하나 보았다. 회장실에 윤필용 장군 사진이 걸려있었다. 출근 때  그 앞에 가서 경례 붙인다고 한다. 주군에 대한 의리는 은퇴 후도 계속되고 있다.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누군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소문 났던 분이다. 비서실장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다.

 

  유리창 너머로 산수유와 개나리가 보였다. 덤불 사이로 부스럭거리며 떼지어 부지런히 이동하는 건 오목눈이다. 딱새, 곤줄박이, 참새도 보인다. 정회장이 출근하여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나무에 매달아놓은 그릇에 콩, 조, 잣, 해바라기씨 담아주는 일이라 한다. ‘휘휘익--’ 휘파람을 불면, 대밭에서 잠 자는 비둘기와 꿩도 날라와 야단법석 치고 겁 없이 잔디밭 걸어 다닌다고 한다.

 노병의  일상이 인상적이었다.

 

 포스코(posco)도 둘러보았다. 차로 공장을 안내했는데 포철 넒이가 여의도 3배란다. 설치된 철로 길이는 42킬로라고 한다. 철광석 하역 전용 부두까지 있다. 공장 하나가 도시 하나만 하다. 걸어서는 공장 전체를 구경할 수 없다. 그 넓은 부지와 엄청나게 큰 장비들 보자, 문득 영화 '자이안트'가 떠올랐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제임스딘처럼 보이기도 했다. 웅장한 남성의 일터였다. 이게 대한민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포철의 첫인상 이었다. 

 

 정회장의 '00기업'은 중장비로 원료와 쇳물의 이동을 책임진다고 했다. 초기에는 그걸 덤프카로 날랐는데, 어느 날 정회장이 미국 프랑스 독일의 선진 철강공장 첨단장비를 둘러보고 비디오로 찍어와서 ET-Car 도입을 회사에 건의하고, 개인이 먼저  한 대 20억이 넘는 300톤 쇳물 옮기는 ET-Car를 도입했다고 한다. 그 후 최신식 설비 갖춘 포철은 일거에 국제 철강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그런 근사한 이야기 들으면 좀이 쑤신다.   

'선배님! 건의 하나 해도 됩니까?'

'해보시요.'

'철강석을 호주 같은 먼 외국에서 가져오려면 운송비도 그렇고...이북 철강석 사오면 안됩니까? '

'철강산업이 중요 국가 기간산업이라 전적으로 이북에 의존하면 않되지만, 값 쳐주고 필요량 3분의 1 정도는 가져와도 되겠지요.'

'통일자금이란 게 있잖습니까? 그걸 이런 데 써야 합니다. 북에서 동해남부선 통해서 철강석을 포항으로 날라온다면 남북 평화 분위기 조성에도 큰 도움이 되고 그 상징적 의미 클 겁니다. 포철이 이 일에 앞장서면 국민 모두가 쌍수로 환영할 겁니다.'

'그렇지요. 대포나 미사일 만드는 일보다 그 일이 더 중요할 수도 있지요.'

 





  그 다음에 꽃 피는 오사리(五士里)로 갔다. 여긴 경북의 최고 오지로, 청송군 영덕군 인접한 고갯길은 진부령처럼 험하다. 태백산에서 맥이 흘러온 구암산은 용암분출로 생긴 분화구가 있다. 냇가엔 기묘한 바위가 많고, 논 녹은 산록에 울긋불긋 핀 산벚꽃은 아름답다.

 

 왜 교통 불편한 이런 오지에 공장을 세웠느냐고 물어보니 그 사연이 아름답다. 

 회사는 1999년 '일사일촌 운동'의 일환으로 오사리와 자매결연을 맺았는데, 직원들이 농번기 일손 돕기와 농기계 무상 수리 해주니, 시골 사람들이 답례로 된장 간장 고추장을 가지고 오더라고 한다.  오사리는 다른 작물은 어렵고 콩이 잘 된다고 한다. 그래 정회장이 대민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거기에 된장 간장 발효공장을 세웠다고 한다. 농민에게 콩을 심도록 권장해서 회사에 납품케 하고, 농한기에는 부녀자는 임시직으로 채용하여 일자리 준 것이다.  

 

 20만평 산을 확보하여 공장을 세웠다고 한다. 마당의 잘 생긴 진도개 세 마리는 된장 냄새 맡고 달려드는 산돼지 쫒는 외곽 보초고, 공장 안을 돌아다니는 네 마리 윤기 자르르 흐르는 이쁜 고양이는 들고양이 새끼를 먹이 주고 길들인 것인데, 콩 훔쳐가는 쥐 감시하는 실내 순찰병이라 한다. 

 

 그날 밤 오사리(五士里)의 밤이 잊지못할 밤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모두 정회장을 은인처럼 대하고 있었다. 순박한 음식도 좋았다. 더덕, 생표고, 두룹 싱싱하고, 머루주는 감미로웠다. 식후에 뜰에 나가니, 쟁반 같이 둥근 달이 동산 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달 아래서 거기에 공장 세운 정회장의 뜻을 한참 생각했다.

 

 이튿날, 경주역에서 서울 오는 KTX 타니, 창 밖에 복숭아꽃 만발한 과수원들 지나간다. 바람에 꽃잎 하늘하늘 떨어지는 풍경은 마치 한 폭 그림이다. '포항에 제철소만 있는 줄 알았더니, 의외로 가슴 뜨거운 남자들이  많군요' 동행했던 한 여류시인이 그런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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