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종사의 차맛
수종사는 북한강과 남한강 두 물이 합수되는 양수리 내려다보는 경치 좋은 곳이다. 이 곳을 서거정은 ‘동방 제일의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 했다. 겸재 정선의 경교명승첩이란 화첩에 독백탄(獨栢灘)이란 그림이 있는데, 이곳 ‘양수리’를 그린 고화다. 거기 삼정헌(三鼎軒)이란 다실은 차문화와 인연 깊다. 양수리 못미쳐 능내라는 곳에서 태어난 정약용이 다선(茶仙)으로 불린 해남 대흥사 초의를 불러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내려다보면서 차 마신 곳이다.
그런데 우연히 절 이야기 하다 친구 정순석 회장이 왕년에 거기서 고시공부 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럼 수종사 내력 잘 알겠군. 거기 굴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나던가?'
'아니, 그건 못들었고, 세조가 금강산 다녀오다 양수리에서 자던 중 밤 중에 종소리 듣고 조사시켜보니, 운길산 바위굴 안에 18 나한(羅漢)이 있고, 굴 안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종소리처럼 울리더란 이야긴 들었어.'
인연은 이래서 얽힌다. 설 지난 후 이종규장군과 최상호 박사 등 네 사람이 수종사 찾아갔다. 가서는 네사람이 아직 해탈하긴 이르지만, 일단 해탈문을 통과는 해보았다.
시간이 주지 스님과의 약속 보다 일러 우선 종각부터 둘러보았다. 거기 나한(羅漢) 신종(神鐘) 종신(鐘身)에 뜻밖에 정회장 이름 새겨져 있다.
양각으로 크게 새겨놓았을 땐 필시 까닭이 있다. 시주 했느냐 물어보니, 5천만원 했다고 한다. 먼저 금액 등록해놓고 월부금 갚는 식으로 갚았다고 한다. 평소 살아온 길 몰랐다가 알고보니 돋보인다.
12시 예불 끝난 주지스님과 공양 같이 한 후 차담 나누었다. 스님은 종교는 기독교나 불교나 근본이 다 같다는 견해 가졌다. 철학 전공인 나와 같다. 불교신문 시절 인터뷰한 영국서 온 성공회 주교도 그랬고, 송광사 구산(九山)스님한테 선(禪) 배우러 한국에 온 하바드 출신 수행자도 그랬다. 무식하면 제종교만 앞세운다. 오현스님 임종게(臨終偈)가 화제에 올랐다. '천방지축(天方地軸) 기고만장(氣高萬丈)/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다보니/온 몸에 털이 나고/이마에 뿔이 돋는구나/억!'
시를 쓰던 오현스님은 불교신문 자주 드나들었다. 아는 스님이라 내가 속초 있을때 걸레스님 중광을 소개 받았다. 문대통령이 '스님께선 서울 나들이 때 막걸리 잔 건네주시기도 하고, 슬쩍 주머니에 용돈 찔러주시기도 했다' 한다. 딴 건 맘에 안들지만 그 말은 맞다. 나도 스님과 곡차(穀茶) 했고, 내 차 기사에게 봉투 주시기도 했다. 춘원 이광수 사촌 형 봉선사 운허스님 이야기, 최근 조계사서 단식투쟁한 법주사 설조스님 이야기 하던 중 벽에 걸린 족자를 보니, 무릅을 탁 칠 정도로 반갑다.
'비단 사자 노는 데가 어찌 동이야 서야 구별하는 경계일까. 바다 가운데 진흙소(泥牛)가 말 없는 산을 끌고간다.'
두보는 진체사(眞諦寺)란 절에서 선승을 만나 이런 시 썼다.
산 높은 곳의 절
안개와 구름은 몇 겹인가
얼어붙은 샘물은 작은 돌에 의지했고
개인 날 흰눈은 키다리 소나무에서 떨어진다
법을 물어 시(詩)의 허망함 알고
일신(一身)을 관(觀)하니 술도 시들해
처자와의 인연을 끊지 못하여
저 봉우리 근처에서 살지못함이 오직 한일뿐.
하산 전에 잠시 삼정헌(三鼎軒)에 들러 이벤트 하나 하고왔다. 아래로 양수리가 보이는 그 공간에서 차 마시며 단소 소리 들으면 신선향에 간 거나 다름없다. 차실 관리하는 보살에게 나는 양해 구하고 최박사는 단소 부니, 사람들이 찻 잔 놓고 귀 기울이더니, 끝나자 박수 세례 보낸다. 오십대 여성 한 분은 곁에 와서 다음에 한번 더 와서 연주해달라고 아예 통사정 한다. 그 바람에 명함 주고왔다. 이곳이 속칭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사의 찻집이란다. 거기 솔바람 보다 맑은 단소 소리 남겨두고 왔다. 맑은 바람 일으킨 김에 북한강 최고 풍광인 서종면까지 쌩하니 돌아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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