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심매도

산림청 땅 경매 참가기(1)

김현거사 2017. 11. 8. 08:09

  산림청 땅 경매 참가기(1)

 

  나는 20년 전에 산림청 짜투리 땅 공매 공고를 보고 보러 다닌 일 있다. 춘천 홍천 삼척 강릉 함양 등 전국 26개 국유림관리소 임야 사진과 지번, 입찰 예정일, 전화번호 등이 실려있어 그걸 스크랩 해놓고 열심히 연구했다. 직장 다닐 때는 사람 속에 살면서 사람의 능력과 품격을 따졌다. 그러나 은퇴 후는 나르던 새도 해가 지면 둥지로 돌아간다고,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처음 관심을 둔 곳은 삼척 궁촌리와 매원리다. 궁촌리는 이름이 어찌 궁하게 궁촌린가 싶었으나 예전에 궁궐과 관련 있었다는 곳이다. 임야 2천 2백 87 평이 예정가격 125만원, 평당 547원 이다. 공짜면 소도 잡아먹는데, 평 당 천 원 미만이다. 궁촌리, 매원리 두 땅 열 필지 1만 8천 평 계산기 두드리니 천만 원 쯤 된다. 

 가만 있자, 롯데 신격호 회장 동경 교외 저습지 샀다가 횡재했고, 증권계 큰 손 '광화문 곰'도 서울 외곽 싼 땅 샀다가 횡재했지 않았던가. 큰 돈이면 엄두 못내지만, 까짓 천만원에 그 땅 못사면 바보다.

 

 지도 펼쳐 보니 궁촌리 매원리는 삼척과 울진 사이다. 해수욕장 표시한 비치파라솔이 맹방, 궁촌, 용화, 양정에 많다. 해수욕장 뿐인가. 삼척에는 죽서루와 촛대바위 있고, 울진에는 불영계곡과 덕구온천 있다. 주변도 좋다. 사실 궁촌리(宮村里)란 이름도 맘에 든다. 이성계의 선조 목조 능과 공양왕릉이 근처에 있다. 매원리(梅院里)란 이름도 매화 피는 동네란 뜻이다. 

 아는 지인 압구정동 아파트 산다고 기 죽을 필요 없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남진 노래있잖은가. 열 필지 어디 한 곳에 샘물이나 퐁퐁 솟아봐라. 앞으론 물이 돈 이다. 물이 석유처럼 귀한 시대 온다. 생수는 지금도 병에 넣어 판다.

 사실 서울 사람들은 불쌍하다. 강남 살면 뭘 하나. 팔당호 물 쓰지만, 그건 가축 분뇨, 공장 폐수로 오염 심각하다. 호수 밑바닥 침전물 켜켜이 쌓여있다. 공중은 중국에서 황사와 스모그 날라온다.  빗물조차 의심스럽다. 빗물 먹고 자란 채소 께름칙하다. 서울 사람은 어항 속 금붕어 신세다. 신선한 공기 그리워 입 뻐꿈뻐꿈 벌리고 사는 셈 아닌가.

 그런데 단 돈 천만원에 생수 나오는 땅 확보해보라. 1천 가구 아파트에 물 공급하면, 한 집에 만원씩 받아 한 달 천만원 들어온다. 차, 기사, 휘발유, 총 지출 5백 만원이면 뒤집어 쓰니, 쉽게 월 수입 5백 된다.

 만약에 샘물 나오는 곳이 없다치자. 그러면 소나무는 많겠지. 소나무 많으면 거기 송이(松耳) 난다. 산에 장뇌 키울 수 있다. 송이 안주에 장뇌 술 먹을 팔자 된다. 산이 초지(草地)라 치자. 초지라면 말 키울 수 있다. 제주도 조랑말 좋다. 승마 배운다고 보증금 2백에 월 회비 50 만원 내고 승마장 회원될 필요없다. 그냥 바닷가 목초지에서 아침에 달려보라. 승마가 얼마나 몸에 좋은가. 허리 운동 되고, 폐활량 증가한다.

 

 이런 온갖 공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사실 땅이사 가만히 쥐고 있으면, 썩기를 하나, 도둑이 들어와서 훔쳐가기를 하나, 공산품처럼 재고 걱정을 하나,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다.

 양양군 강현면 물치리 소재 가옥도 경매 나왔다. 대지 53 평, 건평 10 평 집이, 천 5백 만원 이다. 양양은 한계령 밑, 오징어와 활어가 펄펄 뛰는 대포항 옆 이다. 천 5백에 별장 하나 얻는 것이다. 서울 가까운 강화도, 진주 가까운 함양 입맛 다시며 검토하다가 결국 춘천으로 낙점했다. 춘천은 냇 천(川) 자가 든 곳이라 물 많은 곳이다. 기암절벽이 아기자기한 팔봉리, 강 낚시 명소 모곡리도 있다. 서울 가까워 나중에 물장사 해볼 수도 있다.

 

 

 '어이! 오사장 시험 잘 쳤제?'

  오사장은 60 억 하는 공장하다가, IMF로 공장과 가락동 60 평 아파트 경매로 날린 후, 부동산 해본다고 공인중계사 시험 쳤다.

 '까짓거 머 설마 붙겠지.'

 '당연하지. 그러나 부동산이 자격증만 있음 되나? 현장 공부 차 오늘 나하고 실습 나가자.'

 '백수가 뭔 돈으로?'

'이 사람아 IMF로 나라가 어려워 땅까지 파는데, 백수라고 가만 있으면 되나? 십시일반이라고 쬐끔이라도 땅 좀 사줘야지.'

 이렇게 둘이 춘천 국유림관리사무소 찾아갔다. 후평동 건물은 오래되어 절간처럼 퇴락했고, 그늘에 세운 공무원 자가용만 호강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국유림에 나무 심고 물 주다가 도 통했는지, 옷차림 수수하다. 

 관리과에 짜투리 땅 경매 건으로 왔다니, '이리 오세요.' 콧날 오뚝한 아가씨가 임야도(林野圖)와 등고선 표시된 위치도(位置圖) 든 책 3 권을 건네준다. 매각 조서 읽어보니, 소재지, 지번, 지목(임야), 지적(평방미터), 예정가, 교통편이 적혀있다. 내가 노리고 간 것은 춘천시 사북면 가일리 산 **번지. 두 필지 천 2백 평 예정가 2백 50 만원 짜리다. 임야도, 위치도 부탁하자 아가씨가 싹싹하게 복사해준다.

 소양호 밑에서 막국수 먹고 덕우고개 넘어가니 비포장 길 험하다. 차 하나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 돌이 드르륵 차체 밑바닥 긁는다. 

'부동산은 이렇게 비포장일 때 사야 값이 싸다.'

오사장이 아는 체 한다.

 고개 중턱인데 사람 보이지 않고, 프라이드 아토스 같은 소형차만 많이 보인다.

'산나물 캐는 사람도 차 몰고 나오니, 이렇게 흥청망청 사니... 당연히 IMF 오지'.

  고개 위 길은 낙엽 썩은 부엽토로 시커멓다. 숲속에 원추리, 참나물, 곰취, 다래순 같은게 많다.

'와! 산나물만 뜯어도 땅 값 뽑고 살것다.'

'저 싱싱한 곰취 봐라. 곰취 장조림 하나 있으면 밑반찬 걱정 없다'.

 

 호수가 보이는 길목에 집이 있었다. 생나무 얼기설기 엮은 황토집이 어설퍼 오히려 멋 있다. 프라스틱 통에는 어디서 끌어온 샘물 힘차게 철철 넘치고 있다. 우리가 차를 세우자,

'어디서 왔소?'

드르륵 방문이 열리더니 구리빛으로 탄 얼굴의 노인이 내다본다.

'어르신 참 좋은 동네 사십니다. 집도 멋있고...'

'멋 있기는...그냥 내 손으로 지었소.'

'저 황토방 원적외선 많이 나오겠습니다.'

'겨울에 군불 넣고 지지면 삭신이 잘잘 녹지.'

 툇마루 나무 결에서 진한 송진냄새 난다.

'물맛 좋지요?'

'물맛이야 천하 제일이지. 한 바가지 마셔보시오.'

 한모금 마시니 오장육부가 다 시원하다. 물은 콸콸 바위 옆으로 흘러간다. 바위엔 이끼 푸르다. 호수엔 물새가 날고, 물 위엔 빈 배 하나 고요히 있다. 좌대 있는걸로 보아 쏘가리나 붕어가 잡히는 모양이다. 파도는 발 밑에 밀려와서 찰랑거리고, 산나리꽃 아름답다. 이 동네는 육지인데 호수 속의 섬 같다. 건너편에 긴 허리를 물에 담근 신록 덮힌 능선이 있는데, 거울같은 물 속에 반이 아롱아롱 비치고 있다.

'허! 사람 잡는군! 신선 노름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겠다.'

'오늘 그랜져 기름 값은 제대로 뽑는군.'

 땅은 두 필지인데, 윗쪽 필지에는 폐가가 있다. 

'수자원보호지역이면 골치 아픈데, 저런 폐가 있으면, 용도지역은 몰라도 증개축이 가능할거야. '

'폐가 리모델링 하면 건축비 않들겠고... 그 아래 5백 평에 몽땅 복숭아 나무 심으면 좋것다.'

 '채마밭엔 약초 심고, 울타리엔 줄장미 심고 무릉도원 만들고'.

  

 나는 전에 퇴촌에 있는 모 제약회사 회장 별장에 가본 적 있다. 발 밑에 잔잔히 밀려오는 호수가 이니스프리 같았다. 능내 정주영씨 별장도 가 본 적 있다. 팔당호에 드리운 소나무가 인상적 이었다. 그런데 여긴 더 좋다. 호수, 산나물, 청정옥수 다 있다.

 인체는 수분이 7-80%를 차지한다. 상 다리 부러지게 진수성찬 차려봐야 별건가. 저 청정옥수 한 모금 산나물 한 접시보다 못하다. 돈에 대한 허욕만 버리면 말 이다. 

'그대는 아는가 저 남쪽 나라를 ...’ 카프리 섬 읊은 괴테 심정이 이랬을까.  

 역시 부동산은 발로 뛰어야 한다. 그동안 이런 곳 찾기 위해 얼마나 헤맸던가. 전원주택 기사 연재하던 중앙일보 기자 따라 답사 다녀봤고, 양수리 문호리 전원주택 돌아댕겼다. 그 십여년 결실 본 느낌이다. 이젠 더 이상 딴 곳 가볼 필요 없었다. 

 두근거리는 가슴 진정시키며 마침 동네 청년 만나자, '여기 붕어 좀 잡힙니까?' 하고 물어보니, 그 대답이 기대 이상이다.

 '월척 붕어 나옵니다.'

 '그렇다면야...붕어찜 요리부터 배워야지'

 건설 상무 때 부안 현장소장 안내로 가본 그 호숫가 붕어찜 얼마나 황홀했던가.

 '산나물도 많습디다. 손바닥만한 곰취도 보이고...'

'잎 넓직하고 큰 거 곰취 아니래요, 산에 크는 우엉이래요.' 

'우엉이 야생이요? 뿌리가 되게 향기롭겠다,'

 '산이 온통 나물 천지라요. 반찬 하면 좋아요.' 

 

  부정탈까 경매 건은 일부러 묻지도 않았다.

 이제 남은 일은 시인 예이츠처럼 꿀벌 한 통 들고 여기 이사올 일 뿐이다.

 

'나 이제 일어나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나무 가지 얽고, 진흙 바른 작은 집 지어, 아홉 이랑 콩밭 갈며, 꿀벌도 치며, 벌 소리 잉잉대는 숲 속에 홀로 살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