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심매도

산림청 땅 경매 참가기(2)

김현거사 2017. 11. 8. 08:11

 

  산림청 땅 경매 참가기(2)

 

 마음은 이미 굳혔지만, 온김이다. 사북면 오탄리, 남산면 광탄리, 남산면 행촌리 등 몇군데 더 들렸다. 그런데 되는 집은 가지나무에 수박 열린다. 행촌리가 기막히다.

 도면 보니 사방이 가파른 등고선이고 지방도에선 잘 뵈지도 않는데, 자그마한 실개천을 따라 경운기 한 대 겨우 다닐 길로 들어가보니, 거기 넓은 별천지가 있다. 이런 곳을 연화만개형(蓮花滿開形)이라 부른다. 연꽃이 만개한듯 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들어오는 입구는 좁다. 그것도 맘에 드니, 물이 빠지는 수구(水口)가 좁게 단단히 맺어진 것은 풍수에선 귀하게 여긴다. 물은 재물 의미하는데, 쉽게 빠져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지세는 서북방에서 동남간으로 흘렀으니, 북쪽 현무(玄武)가 남쪽 주작(朱雀) 보다 높아 이치에 맞다.

 거기다 동네 이름 행촌(杏村) 아닌가. 행(杏)은 살구나무니, 복숭아꽃 살구꽃 피는 동네다. 행인(杏仁)은 변비와 기침에 쓰는 약이다. 사람 장수할 땅 이요, 복지(福地)다.

 여기 한 필지 천 4백 평이 2백 4십 만원인데, 일이 되느라 그랬던 것 같다. 땅 보고 있는데 마침 여든 넘은 동네 영감 한 분 나타난다.

'어르신 바나나 하나 드십시오.'

바나나 권했더니,

'산 보러 왔소?' 

 묻는다. 

'예' 

'어제 춘천 사람이 산소 쓴다고 산 보고갔는데, 손바닥만한 산은 사서 뭣하려고? 논이나 사지. 팔려고 내놓은 거 있는데....'

 평 당 얼마냐고 물으니 5백원 이란다. 이 무슨 새가 뒤집어 날라가는 소리더냐? 정신이 뻔쩍 난다. 임야가 평당 천 7백원인데 논이 5백원 이라니 귀가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논 한 평이 5백원이라고요?'

 재차 물어도 그렇단다.

'전부 몇 마지기 되는데요?',

'저기서 저기까지 한 스므 마지기 되나?'

 영감이 손으로 가르키는데 한없이 넓다. 논두렁만 스므 개 넘는다. 갑자기 가슴이 뛰기시작했다. 평당 5백 원이면, 한마지기가 10 만원이다. 스므 마지기 4천 평이 4백 만원이다. 

'메뚜기 미꾸라지도 있습니까?'

'많지.' 

자신있게 대답한다. 농약 적게 쓴다는 이야기다. 

'집도 지을 수 있나요?'

'저기 저 위가 전에 집터 자리여.'

'논을 왜 파는데요?'

'자식들 다 춘천 나가고, 내가 농사짓긴 스므 마지기가 벅차.' 

 파는 건 확실하다.

'토지대장 있습니까?'

 이렇게해서 노인 집에 가서 칡차 마시며 토지 대장 확인했다.

'어르신 그럼 5월 4일에 와서 계약 하겠습니다.'

그날 오전이 춘천국유림사업소 임야 경매일 이다.

 허허허! 일타이매(一打二枚), 한번 때리자 두 장이 엎어진다. 기막힌 땅 두 개 내 손 안에 들어왔다.

 

 

 

'어이 김교수! 이딴 논 사서 뭐할려고? 쌀농사가 얼마나 어려운데?'

'연꽃 심고 논고동과 미꾸라지 키울라고.'

 주렴계의 '애련설(愛蓮說)' 유명하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자라되 더러움에 물들지않고, 맑은 물결에 씻었으되 요염하지 않고,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겉은 딱딱하되 속이 빈 것이, 군자가 겉 행실은 근엄하지만, 속마음은 사리에 통달하고 빈 것 같다.'

 

 사방이 산으로 병풍을 친 이런 데 연꽃 가득 심어놓고 정자 하나 지어놓고 글 쓰고 책 읽으며 살면 어떤가. 다도(茶道) 하는 사람은 연잎에 고인 이슬 모아 차를 다린다. 향기 얻으려고 밤엔 연꽃 속에 차 봉지 넣어 둔다. 대붕의 뜻을 연작이 어이 알리.

 '부동산 하는 정사장 있잖아? 그가 창녕 연꽃 심는 동네 가봤는데, 년 수입이 벼 농사보다 낫다고 하더라. 쌀 농사는 수고 하지만, 연 뿌리는 한번만 심으면 만사 오케이다'.

 '논에서 쌀은 몇 가마 나올까?'

'한 마지기 두 가마 치면, 4십 가마지. 농협 대리농작 제도 이용하면 된다. 동기들 서너명 명단 만들어라. 추수할 때마다 쌀을 가마니로 보내줄께.' 

이렇게 인심까지 써가며, 그날 서울로 돌아왔다.

 

 그 후 나는 며칠 정신이 없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가일리 행촌리 이야기만 했다. 봄에 나물 뜯으러 산에 갈까, 알 밴 붕어 잡으러 호수에 갈까? 가일리 호수에 띄울 모터보트는 장만할려면 돈 얼마나 들까? 행촌리 연밭 옆에 잔디 심고 미들홀 두어 개 만들어야지. 골프 예약 못해 설설 기는 친구들 기절초풍 할꺼다. 하루종일 나는 행복했다. 꿈에서도 그 땅에서 놀았다. 'This Land is mine. God gave this Land to me.' 행복해서 앤디윌리암스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입찰 날 인감증명 주민등록 지참하여 참가했다. 혹시 한 사람 응찰하여 입찰이 유찰될까 해서 나는 가일리 예정가 두 배인 6백 만원을 쓰기로 하고, 둘러리 오사장은 3백을 쓰기로 했다. 입찰 보증금 5퍼센트 30 만원과 15 만원 예탁했으니, 털도 않뜯고 먹기 미안해 인심 좀 쓴 것이다. 그랬는데 막상 입찰장에 가보니 등록자가 몇 명 정도 있다.

 노타이 차림 산림청 공무원이 주의사항 알린다.

'입찰 물건 넘버를 분명히 써야 합니다. 넘버 틀리면 무효 입니다. 금액은 입찰 예정가 이상 써야 합니다. 그 이하는 자격 미달 입니다. 금액은 예치한 보증금 한도 내에서 써야 합니다. 한도 넘으면 무효 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입찰 시작 합니다.'

 한 사람씩 호명해서 당사자만 들어가게 했다. 이리 시작된 입찰이 그리 짜릿한 건 줄 예전엔 미쳐 몰랐다. 옆에 인주통 있다. 서류 기재하여 인감도장 찍고, 봉투에 서류 넣고 봉투 위에 인감 찍고 나왔다. 입찰 끝나자, 직원이 봉투 거두더니 넘버 별로 나눠놓는다. 아가씨가 가위로 봉투를 짤라 남자 직원에게 넘기자 남자가 금액을 전부 기재한 다음, 껀 별로 최고액 적은 사람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고스톱'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고요히 낙찰자 이름이 불리워졌다.

'입찰 넘버 16번 사북면 가일리 산 **번지 김**씨에게 낙찰 됐습니다. 입찰금액은 2천 7백 만원 입니다.'

 그 소리 듣고 나는 기겁 해버렸다. 딴사람이 된 것이다. 갑자기 눈앞이 뿌얘지며 천길만길 아래로 툭 떨어지는 기분이다. 설마 촌 사람이 2천 7백이란 거금을 쓸 줄 몰랐다. 믿던 도끼에 발등 찍힌 것이다. 그러나 후회해도 소용없다. 낙장불입(落張不入), 이미 패는 찍 눌린 후였다.  

 이 때 한 청년이 벌떡 일어나더니,'이장님! 우리가 낙찰 받았습니다.' 외친다. 그러자 어떤 아낙과 갓 쓴 호호야 시골 노인이 환성을 지르며 일어선다. 그들은 새벽에 이장 배 타고 호수를 건너왔다고 한다. 폐가는 원래 이장이 살던 집이고, 지상권도 이장 것이라 한다. 

 이렇게 파도 잔잔히 밀려오던 꿈같던 '이니스프리'섬은 나를 떠났다. 복숭아꽃 만발한 무릉도원도, 월척 붕어찜도  만사휴이(萬事休矣). 놓친 땅은 북한강 푸른 물 속에 영원히 잠겨버렸다. 

 

 '김교수. 이왕지사 이리 된 거. 빨리 행촌리 가보자.'

오사장 충고에 둘이 경매장을 나와 주차장에 갔을 때다. 거기 행촌리 그 노인이 보인다. 

'아니 어르신 여긴 웬 일이십니까?' 

'문중에서 행촌리 임야 입찰 해보래서 왔소.'

한다. 

 며칠 전 그 손바닥만한 땅을 사서 뭐할려냐고 묻던게 누구더냐? 그건 그렇다 치자.

'영감님! 행촌리 그 논은 팔거지요?'

'팔지.'

옳치 살았다. 그러나 혹시가 사람 죽인다.

'한 평에 5백 원 맞지요?'

재차 확인하니,

'누가 5백 원이라 했소? 5만 원이라 했지.'

 이 무슨 도깨비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갑자기 백 배 오른다. 영감은 그 말 하고 어떤 코란도 찦차 타더니 우리 시야에서 유유히 사라져 버린다. 괘씸하다기 보다 웃음이 나왔다. 촌영감이 우리한테 흔들고 피박 광박 씌운 것이다.

 일거에 두 토끼 다 놓쳐, 이제 논고동 잡을 일, 연잎 이슬로 차 끓일 일 일장춘몽 되고 말았다. 추수 때 맘에 드는 친구에게 쌀가마니 보낼 일도 공수표 되었다. 코란도가 사라지자 오사장이 중얼거린다.

'촌 닭이 서울 닭 눈깔 빼먹는다더니...쥑여준다!'

'... ... ...'

'어디서 막걸리나 한 잔 하자. 위로주는 내가 산다.'

두 사람은 구곡폭포 근처에서 닭 백숙 뜯다가 왔다.

(2016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