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심매도

송광암(松廣庵) 참선여행(1)

김현거사 2017. 11. 4. 06:11

 

 송광암(松廣庵) 참선여행(1) 

 

 남해 바다에 있는 섬이라서 였을까. 참선수련회라는 말 때문이었을까. 법보신문에서 '진리의 섬에서 파도소리를 관(觀)하라'는 기사를 본 순간, 마음은 이미 바다 위에 떠있다. 남해 바다 한번 보고싶다는 마음과 제비집처럼 작은 암자 찾아가 마음 씻어보고싶다는 두 가지 욕구 이미 있던터라 시절 인연(因緣) 제대로 익었구나 싶다.   

 소리를 단순히 듣는 것은 청(聽)이고, 모습 보는 것은 견(見)이다. 관(觀)은 소리나 모습 듣고 보라는 것 아니다. 범어(梵語)의 비발사나(Vipasyana. 毘鉢舍那), 모든 걸 멈추고(止), 선정(禪定)의 지혜로 상대경계를 식별하라는 것이다.   

 송광암이라면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선풍(禪風) 드날린 승보(僧寶)사찰 송광사(松廣寺) 말사 쯤 될 것이다. 한여름 무더위에 참선으로 위명 자자한 조계산 선방(禪房) 출신 선승(禪僧)의 서슬 푸른 칼날과 맞대면 하는 것도 시원한 일이다. 전화해서 가는 길 물으니, 저쪽 목소리는 반가운 한가한 목소리다. 

 

 장마가 오락가락하면서 새벽 5시에 천둥 번개 치는 것이 속진(俗塵) 속 몸 참선으로 때려부시고 오려는 출행(出行) 분위기에 꼭 맞다. 대전에서 호남선으로 빠져, 광주서 남해고속도로로 옮겨, 순천 벌교 지나 밑으로 고흥반도까지 단숨에 밀고 내려가니, 옆에 시퍼런 청옥(靑玉) 부서지는 순천만 보성만 득량만 세 바다가 덕지덕지 때묻은 내몸 씻으려고 안달내며 파도를 철썩거린다. 하늘은 시커먼 구름, 느닷없는 소낙비, 이글거리는 햇볕 번갈아 내 자동차 유리창에 쏟아붇는 품이 오래부터 이때 벼른 기미다. 그만치 내 업보(業報) 깊은 것이다.  

 

 

 한하운시인이 문둥이가 되어 하루밤 자고나면 썩어떨어지는 손가락으로 전라도 황토 천리길을 필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걸어간 소록도가 눈 앞에 보이는 고흥반도 끝이 녹동 항구다. 지금은 아스팔트 포장이지만, 녹동에 서린 문둥이의 한이 비내리는 포구 수면 위에 어리어 있다. 밤새 술잔 비우며 전라도 여자 서편제 슬픈 가락에 울고가야 직성 풀릴 녹동항구다. '애수의 소야곡' 젓가락 장단치며, 잔 잡고 떠난 사람 생각할 녹동항구다.  

 카페리에 차 싣고 바다에 뜨니 작은 군도(群島) 거느린 나란한 세 섬이 거금도(居金島) 금당도(金塘島) 금일도(金日島)다. 옛사람들 이름 허투로 짓지않는다. 여기 필시 금(金)이 나거나 부처님 모신 금당(金堂)이 많거나 둘 중 하나다.   

 내가 가는 거금도 적대봉(積臺峰)은 해발 592미터로 비단결같은 바다 위 산 정상에 흰구름 덮혀있고, 산허리에는 바다안개 자욱하다. 내려다보는 바다 풍경 좋지만, 오르는 비포장 산길은 자동차도 숨가쁘다. 

 

 

 이윽고 산길 대숲에 묻히는 곳에 기와지붕 일각 보인다. 산문 입구에 버티고 선 것은 둘이 친구 쯤 될만한 융단처럼 퍼런 이끼 둘러쓴 몇백년 된 아름들이 느티나무와 구름같은 운지(雲芝)버섯 돋아난 죽은 나무다. 삶과 죽음이 이렇소하고 두 나무가 법문(法文)하고 있다. 

  보조국사가 세 마리 새를 날리니 한 마리는 송광사, 한마리는 송광암, 한마리는 여수 금오도(金烏島)에 앉아 그 세 곳에 절을 지었다한다. 

 기와 얹은 낮은 돌담 위에 보라색 도라지와 붉은 봉선화 피고 떨어져 가고 옴의 무상함을 일깨우고, 파란 불등화(佛燈花) 무성한 언덕에 놓인 샘물 철철 넘치는 돌확은 두어 개 표주박 띄워 찾아오는 갈증난 이 목 축이게 해놓았다. 황토로 둑을 쌓은 작은 연못에 수련을 심어놓았는데, 꽃송이 반개(半開)한 붉은 수련이 막 향기 풍기려는 참이었다.   

 예서체(禮書體)로 청운당(靑雲堂)이라 판각한 현판 붙인 요사채에 머리 기른 우바새(比丘), 화장 이쁘게 한 우바이(比丘尼) 수십명이 납의(衲衣) 걸치고 대청에 쭈욱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늘어앉아, 반눈 감고 느티나무 가지 사이 동남쪽 바다 보고 있다. 왠 떼스님들인가. 서울 부산 광주서 참선 수련 온 재가(在家) 처사 보살들이다. 얼굴 해맑은 원주 비구니스님에게 접수하며 담배와 핸드폰 압수당하고, 납의 갈아입고 그들 틈에 앉았다.  

 안개는 비로 변하고, 녹색, 주황색, 청색, 빨강 등 원색 단청한 서까래 끝 골기와에서 빗물은 소리없이 떨어지는데, 느티나무 잎새에 두두둑 떨어지는 빗소리, 처마의 풍경(風磬)소리 청아하다.   

유리창 한지(韓紙)에 까만 먹으로 '묵언(默言)''하심(下心)' 종서로 두 글자 붙여놓았다. 말 삼가고, 마음 아래로 두어 겸손하라는 것이다.  

 마음이라는 놈은 절에서 소에 비교되는데, 잘난체하는 사람은 지옥에다 쳐박아버리고, 낮추고 겸손하면 등에 태우고 극락 들어간다. 손가락 한번 틔기는 시간이 찰라(刹那)인데, 허리 펴고 가부좌 하고 심호흡 몇번 단전에 모으는 사이, 소가 슬슬 극락 쪽으로 가는지 편안한 기분이 든다. 이놈의 소는 절에 오면 말도 잘 듣고 하심(下心)도 잘한다. 

 

  아미타불(阿彌陀佛) 모신 극락전(極樂殿)이 법당이다. 지붕은 맛배 지붕에 골기와를 단정히 얹고, 기둥과 처마 단청 깔끔하다. 어릴 때는 단청이 무섭더니만 지천명(知天命) 넘으니 단청 맛 알만하다. 키 넘게 자란 치자나무가 백장미처럼 흰 치자꽃 무수히 달고 향내 진동하는 법당 올라가는 석축에, 먹물 납의 때문에 얼굴이 더 희게 보이는, 도시 여인이 혼자 서있다가, 합장하며 길 비켜준다. 홍진(紅塵) 떠난 여인이 정토(淨土) 인도하는 기분이다. 

 측문으로 법당 들어가니, 선객(禪客)들 깔고앉는 방석 밑에 닳고닳은 바닥 송판결 거울처럼 반질반질하고 아름답다. 공간에 배인 향냄새는 이전에 이 공간에 와서 향 피우고 합장하고 수없이 절한 사람들 욕망과 비원(悲願)의 범벅이리라.  

 아미타불은 연화대에서 부드럽게 미소 띄며 시선을 아래로 내려깔아 중생의 상처 어루만져주고, 천정 기둥 위 여의주 문 네 마리 용 조각과 단청 나무랄데 없다. 탱화 속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과 아라한(阿羅漢)은 혹은 온화한 모습으로 혹은 창칼 든 모습으로 본존불(本尊佛) 호위하고 있다. 

  좌우로 늘어선 놋쇠 촛대에서 황촛불 허공을 비치는데, 사람 키만한 정교한 비천(飛天) 무늬 범종(梵鐘)과 법상(法床)에 놓인 사람 머리통만한 목탁 듬직해, 암자 살림 이만하면 옹골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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