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심매도

화개동천 '달빛초당'(3)

김현거사 2017. 11. 1. 15:24

화개동천 '달빛초당'(3)

 세번째 방문은 숙대 김교수 부부와 함께 했다. 네 사람 다 대학 동문이라 스스럼 없다. 하기 휴가 때라 은하폭포에 가서 선녀들 목욕 한번 시킬 참이었다. 길가에서 수박과 참외 살 때다.

‘두분 선녀는 문덕산 세 개 폭포 중 제일 위쪽에서 목욕하고, 우리 나무꾼은 맨 밑에서 탁족이나 합시다.’
‘엉큼도 하셔라. 나무꾼들이 숨어서 볼려고...’
선녀들이 깔깔대고 웃었다.

 
‘여기 온 사람은 시험쳐서 합격한 사람 데리고 온 겁니다.'
어제 벽사(碧沙)와 김교수를 인사시킬 때 한 이야기다. 사실 아무 손님이나 함부러 데려올 수 없다. 마당 끝에 ‘백일기도 중’이라는 팻말이 놓여있다. 선방처럼 조용히 지내는 곳이다. 

 인사 끝내고 주인과 객이 폭포로 올라가니, 가는 날이 장날이다. 계곡물이 장마 뒤 격류다. 으르릉 쿵쾅 사납게 흐른다. '나무꾼과 선녀' 한다고 억지로 들어가면 용왕님 전으로 직행한다. 아쉽지만 관폭((觀瀑)으로 끝냈다. 그대신 우리는 연지(蓮池)를 구경했다. 커다란 반석(盤石) 아래 흙을 털어내고 조성하여 반석 위에 편하게 앉아 감상하기 좋다.

'여기다 연(蓮)을 심어야 한다.'

'잉어를 키워야 한다.'

'반석 위에 탑을 세워야 한다.'

우리 의견은 분분했다. 

 

 

 그 후 새로 일군 차밭 구경하고, 절벽 아래 만든 우물에서 석간수 마시고, 이리저리 한가히 거닐다가 계곡 옆에서 우람한 야생복숭아나무를 발견했다. 마침 곁에 커다란 반석도 있다. 

‘저 크다란 반석 위에 바둑판 하나 새겨야 한다.' 

'복숭아꽃 흩날리면 ’도화원' 따로 없겠다.'

‘봄밤에 저기서 달빛차 마셔야 한다.'

우리는 모두 의견을 내놓았다.

 


 '약초 전문가 최진규란 사람이 야생복숭아야말로 선도(仙桃)라 합디다. 유전자를 개량해 우리 입맛 노린 시중의 복숭아는 무의미하고, 수만년 본성대로 진화한 야생복숭아가 불로장생의 선도(仙桃)라고 하더군요.'

 

'그럼 내년에 돌복숭아로 술 담글테니, 술 익거던 오시지요.'

작년에 여기서 야생복숭아를 한 가마니나 땄다고 한다.

장마로 선녀 목욕은 접었지만, 기대할만한 약속 하나는 얻었다.

 

 밤에는 서재에서 차 마시며 바다에서 건진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50센티 쯤 되는 오래된 도기(陶器)와 추사 글씨 대련을 감상했다.  친한 스님이 가져온 것이라 했다. 도기는 그 용도가 화로로 쓰던 것인지, 물을 담아 관상어를 키우던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표면에 연꽃과 잉어 한마리와 게 한 마리가 새겨져 있어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추사 글씨 양각(陽刻)된 주련(柱聯)도 그냥 물건 아니다. 우선 글씨가 추사 글씨다. 내용도 범상치 않다. ‘부도신선댁(不道神仙宅)’, ‘하엽희운귀(荷葉戱雲龜)’란 글이 적혀있다. ‘신선 댁이 어딘지 묻지마라’, ‘연잎에 구름거북이 논다’는 뜻이다.
 벽사(碧沙)는 얼마 전에 거처가 좁아 새집을 지어 옮기면서 5백여권 고서(古書)를 남에게 넘겼다고 한다.가난한 시인의 희귀한 보물 누가 가져갔는지 모르겠다. 없어진 고서가 애석하였다.

 

 새벽에 일어나 혼자 초당 뜰을 거니니 희끄므레 밝아오는 허공에 물고기처럼 생긴 풍경(風磬) 홀로 울고있고, 돌축대에 난 푸른 이끼 위 이슬이 구슬보다 곱다. 종일 차밭 가꾸다 밤 8시에 잠들고 새벽 인시(寅時)에 참선하는 주인방에는 벌써 불이 켜졌고, 밤새 우뢰처럼 크게 울리던 물소리는 새벽 되니 조용하다.
 꿈결 헤매고 있는 두 선녀를 깨워볼까 하다가 혼자 계곡 옆에 앉으니, 바위 위에 피어난 몇그루 청초한 산나리꽃 혼자 보기 아깝다. 구름은 산봉우리를 덮었고, 물은 바위를 싸안고 이리저리 넘쳐흐르고, 석경(石經)의 맑은 바람은 새벽을 흔들고 있다. 길가 벚나무 터널은 봄에 화사한 벚꽃으로 천지를 수놓았더니, 무성한 잎새가 하얀 물안개 뒤집어쓰고 그림 같다.

 

 

 

 아침은 시인 부인이 내놓은 묵은지 하나로 공양 끝내고 바람처럼 떠났다. 연보라빛 자미화(紫微花) 꽃그늘 아래 시인을 남겨두고서.(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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