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심매도

송광암(松廣庵) 참선여행(2)

김현거사 2017. 11. 4. 06:19

 

  

 송광암(松廣庵) 참선여행(2) 

 

 

 법당 뒤 산에는 미당(未堂) 서정주옹이 호들갑 떨던 선운사 동백같은 짙푸른 동백 몇그루가 가지를 늘여 지붕을 덮었다. 벽에는 붉은 천도복숭아 나무와 구부러진 지팡이 짚고 호랑이 거느린 산신도(山神圖) 그림  그려있다.

 담 아래 이슬 머금은 토란잎 사이 길로 가보니, 대로 엮은 작은 문 뒤에 '니우선원(泥牛禪院)'이란 현판 붙은 건물이 보이는데, 조용히 쉬고 있는지 졸고 있는지 사람은 보이지않고 대청끝에 발목만 보이는데, 마당에 누워있는 누런 늙은 개 선정(禪定)에 들어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 읊고, 절개 십년이면 염불외는가. 속인이 싫은지 인기척에 고개 한번, 동자(瞳子) 한번 돌리지 않는다.

 니우(泥牛)라면 물 속에 들어가면 금방 풀어지는 진흙소를 말한다. 사람도 영겁(永劫) 시간 속에서 보면 금방 풀어지는 진흙소와 같다. 육신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흩어지고, 마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물건인고? 니우(泥牛)란 선원(禪院) 이름만으로 한소식 올만하다.

 

 

 저녁 공양(供養) 알리는 세 번 목탁소리에 대중은 벽을 등지고 합장한채 나란히 앉았다. 발우공양(鉢盂供養) 시작된 것이다. 발우공양은 일반 절에서는 대개 생략하는데 이 참에 좋은 경험이다. 식욕도 욕망인데 산중에서는 색욕(色慾)보다 강하다는 식욕(食慾)을 어떻게 처리하나.

 삼십대 중반 주지스님은 체격 좋고 얼굴 잘생긴 편인데, 옆으로 찢어진 눈의 안광이 선방 출신답다.

 '소승은 여러분들처럼 많이 배우지도 않았고, 아무 것도 모르지만, 바다 안개 피어오르는 송광암의 이 맑은 공기와 자연 속에 마음을 섞는 자체로 많은 정진이 되실 것입니다.'

 한때 판소리도 하고 문학도 했다는 일선(一善)스님이 이렇게 인사하고, 식사 당번 청소 당번 신청을 받는데, 제일 하기싫은 절에서 해우소(解憂所)라 부르는 화장실 청소당번 자청하는 사람 둘이나 됨은 벌써 이타행(利他行) 시작된 증거다. 나는 마음밭에 돋아난 망상(妄想)을 뽑으려고 뜰의 잡초 뽑는 일 맡았다. 쉬는 시간은 노동을 하는 울력 시간이다. 앉아서 하는 것이 좌선이고 밭갈고 일하는 것은 동선(動禪)이다.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행주좌와(行住坐臥),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조용히 하는 어묵동정(語默動靜)  모두 선(禪)이다. 

  

 울력 끝나고 공양 들어가자, 상석에 앉은 스님이 죽비(竹篦)를 딱! 때린다. 각자 일어서 선반에서 발우를 내려보니 옻칠한 나무대접 네 개 들어있고, 헝겁천 안에 옻칠한 나무 수저가 싸여있다. 먹물 들인 보자기 펼치고, 그 위에 발우를 놓았다.

 딱! 죽비 울리자 대중 하나가 차례로 천수물 부어주는데, 서로 합장한 후 발우 내밀어 물을 받되, 발우를 흔들면 물도 그친다. 사찰 공양은 묵언(默言)으로 한다. 눈 지긋이 내려깔고 허리 꼿꼿이 세운채 한다.

 발우 네개를 차례로 물로 흔들어 헹구는 것은 우선 발우의 먼지를 씻고, 나중에 밥이나 반찬이 그릇에 붙지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물은 네번째 발우에 담아두고, 공양 끝난 후 다시 밥과 국과 반찬 담았던 발우를 씻은 뒤 회수해간다. 그 물은 마당가 둥근 골기와 두 개 땅 속에 묻은 곳에 버리는데, 지하세계 아귀 축생이 그 물로 목을 축인다고한다.

 뷔페의 원조가 불가의 공양이다. 딱! 죽비 소리에 밥통이 앞에 오고, 합장한 후 스스로 밥을 담지만 양은 속가(俗家)의 반도 않된다. 배식 끝나자 딱! 또한번 죽비소리에 일제히 밥그릇을 눈섶 높이로 올린다. 가지런할 제(齊), 눈섶 미(眉), 제미(齊眉)다. 우리나라 양반가에서 부인이 음식상을 이처럼 눈섶 높이까지 받들어 올리고  깊은 경애의 뜻을 표시하던 시대가 있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내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여기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이 음식을 듭니다.'

 서원을 왼다. 밥그릇을 이마까지 올리라 할 때는 이거 좀 우섭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엄숙히 서원을 외고나니 마음이 정화된다. 놀랍다. 형식이 내용 결정한다.

 

 수행자는 발우(托鉢)로 음식 얻는 대신 깨달음을 돌려주므로서 욕망의 화택(火宅)에 빠진 중생을 구해준다. 다른 건 몰라도 하산하면 식탁 위에 이 서원은 써붙이고 실행하리라 결심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신 하늘에 계신 우리 주 예수 크리스도에게 감사'하는 크리스챤의 기도와  비슷하다. 

 백장청규(百丈淸規)에 의하면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이니,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스님 말씀 따르면 '우리 속가 음식은 양이 많아, 그 에너지 대부분은 음식 소화하는데 들어가고, 일부만 활동하는 에너지로 소모되며, 나머지는 위장에 남아 우리 몸을 썩고 병들게 한다'고 한다.  이 무슨 생각없는 짓인가.

 음식 귀하고 감사한 줄 알아야 한다. 절에선 공양 끝엔 김치쪽 하나로 발우를 숭융으로 말끔히 씻어서 후루루 들이마신다. 밥알 한알 반찬 하나까지 남기지않고 넘긴다. 남은 음식 찌꺼기 하나 없으니 싱크대 필요없다.  

 식사 후 발우 씻은 물 모두 통에 모으니, 스님이 통에 밥알 하나라도 빠졌나 검사한다. 밥 알 한 알이라도 나오면 대중이 그 천수물을 다 마시는 벌이 있다. 곡식 한 알이 농부의 땀이기 때문이다. 이윽고 공양 끝나자, 행주로 발우를 딱아 선반에 올리고, 딱! 죽비소리에 합장하고 끝난다.

 

  7시 저녁예불 목탁소리 울리자, 섬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흰고무신 신고 뜰을 건너 법당 입제식에 참석했다. 부처님 앞에서 불자 오계(五戒)가 낭송되었다. 생명을 괴롭히거나 살생을 않는 자비, 무소유의 풍요함, 맑고 고요한 청정함, 거짓말 않는 진실, 깨어있는 지혜의 삶을 서약했다. 자신을 가장 낮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자기과시를 삼가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부드럽고 고운 말씨로 대하고, 스님과 법우들을 공경하며, 예불 드리러 갈 적에 기러기처럼 한 줄로 서서 걸으며, 신발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성스러운 침묵을 지키겠다는 수련생 청규도 낭송했다.

 

 우리말 천수경도 낭송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修里修里 摩訶修里 修修里 娑婆訶)대신 '입으로 지은 업, 맑아지이다' 읊었고,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南無 三滿多 沒馱南 奄 度魯度魯 地尾 娑婆訶) 대신 '귀의하노니 원만하고 높은 자여 원컨데 신성하고 신성함을 밝혀 이룰지어다' 읊었다. 조계종 소의경전(所衣經典)인 반야심경도, '물질은 허공과 다르지 않고, 허공은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물질이 곧 허공이요, 허공이 곧 물질이다' 한글로 왼다.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같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한문 아니다.

 

 절하며 염불 외는 사이에 분위기 고조된다. 근대 선승(禪僧) 경허스님 참선곡, '모두가 꿈이로다. 부귀문장 소용없다. 황천객을 면할손가? 오호라 나의 몸 풀 끝의 이슬이요, 바람 속의 등불이라.'라는 대목에서, 저만치 구석에 앉은 젊은 숙녀 손수건 꺼내 눈물 딱고 있다. 

 밖은 내리는 빗소리와 간혹 뗑그렁 떵그랑 풍경소리 들리고, 불전 황촛불은 휘황한데, 하얀 비단 너울같은 바다안개는 무시로 법당을 들락거린다. 느티나무 고목과 골기와 지붕은 안개에 묻히고, 비와 안개는 마음을 속세와 차단하여 피안(彼岸)에 놓는다.

 밤 10시, 처마의 풍경소리 들으며 입제 첫날 예불 끝내고 뜰에 나서니, 먼 섬의 불빛이 그리도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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