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심매도

송광암(松廣庵) 참선여행(3)

김현거사 2017. 11. 4. 06:22

 

 

 송광암(松廣庵) 참선여행(3) 

 

 

 이튿날은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꿈결에 법당 목탁소리 염불소리 들린다. 차가운 샘물에 세수하고 캄캄한 어둠 속에 올라가니, 법당은 향냄새 만당하고, 황촛불 위로 아미타불 조용히 웃고 계신다. 디잉디잉! 새벽 첫 타종(打鐘)은 삼라만상을 깨우며 낮게 조용히 울린다. 이슬비는 어둠 속 하얀 치자꽃 적시고 있다. 번뇌(煩惱) 씻는 청신사(淸信士) 청신녀(淸信女) 백팔배 올리는 모습 신비에 쌓인다. 우물은 밤새 조용히 가라앉은 첫새벽 정화수(井華水)가 제일 맑다. 새벽 참선에 들어갔다. 

   

 스님은 참선자세를 대략 이렇게 설명한다. 허리 곧추세우고 결가부좌 한채, 두 손은 아랫배 단전 아래 엄지를 서로 대삼마야인으로 모우고, 혀는 입천장에 대고, 시선과 호흡과 생각 하단전에 놓고, 화두(話頭) 참구하라고 한다.

 

 

 

 사람이 가장 편한 자세가 선 것도 누운 것도 아닌 중간 자세인 다리 포개고 앉은 결가부좌라 한다. 부처님이 서른다섯에 득도할 때, 앞에 네란자라강이 잔잔히 흐르는 맑게 개인 날, 샛별이 하나 둘 솟기 시작하던 숲 속 커다란 보리수 아래에서의 자세도 이 결가부좌였다고한다.

 

 우리에게 내려진 화두(話頭)는 '이 뭣고(是甚麽)?' 다. 기뻐하고 노하고 슬퍼하고 즐그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심내는 이 마음이란 놈이 도대채 뭣이냐는 것이다. 화두나 공안은 무엇인가?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子樹)', '마삼근(麻三斤)', '개도 불성이 있느냐?' 등 옛부터 전등록에 실린 이런 조사(祖師)공안은 1천7백이나 된다. 

 그런데 성철스님은 파계사에서 8년 눕지도 않고 장좌불와(長坐不臥) 했는데,  결가부좌 한지 10분도 않되어 다리에 쥐가 난다. 이젠 도저히 못참겠다 싶어 벌떡 일어나려는 그 순간, 다행히 딱! 하고 죽비소리 난다. 5분간 휴식 시간에 밖에 나오니 희부연히 여명(黎明)은 밝아오고, 먹구름 깔렸던 하늘 어느새 얇고 흰 비단구름으로 바뀌었다. 먼 바다 섬들은 그림 같고, 산새 울음 바람 타고 정토(淨土)로 날라온다.

 

 6시에 아침공양 마치고 10시까지 울력이다. 나는 경내 잡초를 뽑았다. 모든 법(諸法)이 빈 것(空相)이라 더럽고 깨끗한 것이 없다(不垢不淨). 삼라(森羅)가 부처라면서 잡초는 왜 뽑는가. 잡초인들 부처 아니요. 망상인들 법(法)이 아니랴. '모든 것이 공(空)인 까닭에 바라밀다(波羅蜜多)에 의지해 마음에 걸림 없다'반야심경(般若心經)에 떠억 써놓고 잡초는 왜 괄시 하는가?

 

 10시에 조계종 창시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의 '수심결(修心訣)' 공부했다.

 

 '마음 밖에 부처가 있고, 성품 밖에 법(法)이 있다고 고집하며 불도를 닦는다면, 그런 사람은 티끌처럼 많은 세월 지나도록 몸을 사르고 팔을 태우며 뼈를 부수어 골수를 내고 피를 내어 경전을 쓰며, 항상 눕지않고 하루 한끼 먹으면서 대장경 줄줄 외우고 온갖 고행 닦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마치 모래로 밥을 지으려는 것 같아서 아무 보람이 없고 수고롭기만 할 것이다. 자기 마음을 알면 수많은 법문(法文)과 한량없는 진리를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게 될 것이다. 모든 중생을 두루 살펴보니 여래의 지혜와 덕을 고루 갖추고 있다.'

 

 점심공양이 끝나고 선체조(禪體操) 향공(香功)을 배웠다. 중국서 전해져 온 명칭들이 재미있다. 금룡이 꼬리를 흔드는 금용파미(金龍擺尾), 불탑에 향이 피어오르는 불탑표향(佛塔瓢香), 연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풍파하엽(風擺荷葉), 달마대사가 배를 흔드는 달마탕주(達磨蕩舟), 나한이 호랑이를 항복시키는 나한복호(羅漢伏虎). 그 중 배병기(拜病氣)란 것 신비롭다. 손바닥을 펴고 머리 위에 흔드는 것인데, 실시를 해보니 머리의 열이 시원히 가라앉는다.   

 선체조 끝나자 행선(行禪)에 들어갔다. 적대산(積臺山) 오르는데, 시키는대로 묵언하며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여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면서, 나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화두를 놓지않으니, 이상하게도 몸도 마음도 가볍고 힘든 줄 모르겠다.

 하늘은 푸르고, 숲은 우거지고, 들꽃은 피어있다. 산정은 목화송이 같은 구름과 안개에 덮혔는데, 청신녀들은 몸이 가벼워 빨간 산딸기 따먹으며 잘도 오른다.

 

 그 날은 산 위에서 결가부좌하고 참선했고, 이튿날은 붉은 능소화꽃과 단감 주렁주렁 달린 흙담장 골목길 지나 금장리 몽돌 해안에 가서 파도를 관(觀)하며 참선했다. 사람이 악도(惡道) 벗어났더라도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사람으로 태어나도 육근(六根) 온전히 갖추기 어렵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여섯 감관 온전히 갖추었을지라도 부처님 세상 만나기 어렵고, 부처님 세상 만났을지라도 수행자 만나기 어렵고, 수행자 만났다 하더라도 신심(信心) 내기 참으로 어렵다.

  그런 점에서 전국 각지에서 만나기 어려운 도반(道伴) 모인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사바(裟婆)가 그처럼 슬픈 곳이었더냐. 대구서 온 삼십대 여인은 화두에 간절한 질문을 던졌고, 안양서 온 초노의 보살은 완벽한 결가부좌 자세와 묵언을 행했고, 순천서 온 처사(處士)는 단군과 고조선 상고사에 해박했고, 그 밖에 동국대 교수, 30년 카토릭서 불교로 개종한 부산 분, 판소리 배운다던 전라도 처녀, 서울서 온 여행이 취미라던 37세 두 노처녀. 고모 따라온 서울 대치동의 동자 부처님 같던 중학생, 건망증 걸린 노할머니 등 남녀노소가 서로 합장하고 법의 문(門) 앞에서 끝없이 경건했다.

 3박(泊) 마지막 밤은, 두시간 참선 마치고 스님 법담(法談) 들으며 각자 진지한 질문 던지노라 자리에서 일어설 줄 몰랐다. 시간은 자정 지나 황촛불 가물가물 끄져가고, 달빛은 휘영청 밝은데, 법담에 취한 도반들 얼굴이, 달 속에 사는 항아(姮娥)도 찾아와 동참한 기분이다.

 

 

  돌아오는 길에 녹동 항에서 달콤한 백도(白桃)를 사먹었다. 문득 선계(仙界)의 천도(天桃)를 먹는 기분이었다.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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