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무란 친구는 약간 기인이다. 친구들 사이에선 그를 간첩이라 부른다. 그가 평생 무슨 일을 하며 살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부동산 했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전국에 돈을 깔아놓고 다니는 일수놀이라는 설도 있다. 압구정동 큰손 기둥서방일거라는 설도 있다.
어쨌던 광무가 간혹 나한테 전화를 한다. 전화오면 나는 의례히 '그동안 어찌 지냈나?' 하고 묻고, 그는 그때마다 속초 강릉이라던지, 부산 울산이라던지, 아니면 남해 거제도를 들먹이고, 사시미가 좋다느니 해싸면서, '김교수! 지금 막 사시미 시켰는데, 자네 잠시 여기 다녀갈 수 없겠나? 친구 사이에 음식 시켜놓고 묵어보란 말도 않고 먹으면 섭섭할 거 아닌가?' 요런 전화를 잘한다.
이번에도 전화를 해서는 '부안 다녀왔지. 섬이 참 좋더라' 하길래, '섬이면 위도인 거 같구나. 좌우지간 자네 팔자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상팔자다. 맨날 전국 방방곡곡 시도 때도 없이 여행만 다니니.' 하고 추켜주니, ' 하기사 내 자랑은 아니지만 내가 역마살이 끼여서 그런지 몰라. 우리 동창 중에서 내가 제일 상팔자지. 자네하고 둘이 말이지만 술도 한 잔 제대로 먹을 줄 모르면서 돈 좀 모았으모 머하노? 음식도 나처럼 전국 방방곡곡 별미 먹어본 사람 있으면 손 들고 나와보라고 해. 김교수! 자네는 내 말 어떻게 생각해?'
하고 묻는다. 하기사 말이사 맞다. 이태백의 춘양원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를 보면, '덧없는 인생이 마치 꿈과 같으니 즐거워 할수 있음이 얼마나 되는가(而浮生若夢, 爲歡幾何). 옛사람이 촛불을 켜고 밤에 놀았다 하니, 과연 그 까닭이 있음이로다.' 하였지 않던가? 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같은 존재다.그 의미를 모르면 돈도 학문도 구상유취에 불과하다.
그는 자기 표현대로 전국구다. 안가는데 없다. 대한민국 방방곡곡 헌 길 새 길 다 안다. 음식 맛있게 하는 맛집도 귀신같이 안다. 광무가 소개한 홍천의 추어탕집, 하진부의 산채비빔밥집 예사집이 아니었다. 음식 고르는 수준이 거의 식도락가에 가깝다.
한번은 그와 고속버스를 탄 적 있다. 친구 사이에 광무 별명은 간첩이다. 통화하면 항시 여행 중이다. 울산 부산 남해 속초 강릉 안가는 곳 없다. 혹자는 전국적으로 돈을 깔아놓고 일수놀이 한다는 사람도 있고, 전호항시'맞아 어쨌던 귿언사실 지금 우리 나이가 몇이고? 살면 얼마나 더 살끼고?'
고등학교 동창인 하종인 스님과 경마장에 가서 50만원 벌어 같이 영도의 횟집에 있다느니, 외항선 타고 돌아와 울산서 보신탕집으로 잘나간다는 필수와 한 잔 하는 중이라는 둥 건나풍류부터 혹은 필수를 만났다느니, 종인이 만났다느니 동창들 만난 이야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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