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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이름도 없는 늙은 수필가가 요즘

김현거사 2017. 5. 14. 09:31

  산과 여인

 

  칠십 되어 하나 깨달은 게 있다. 산이 여자보다 좋다는 것이다.

 우선 산은 시들지 않는다. 여인은 백년 못되어 시드는데, 산은 시들지 않는다. 산은 오래갈수록 더욱 젊어진다. 두번째로 산은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인은 곁에만 가면 특허 낸듯 잔소리를 하는데, 산은 그런 적 없다. 고요한 침묵의 미학을 보여준다. 세번째 산은 우리로 하여금 그 무슨 위험한 폭발물처럼 조심조심 대하게 한 적이 없다. 여인은 아름다울수록 까다로운 장미 같다. 가시가 많아 방심하면 찌르지만 산은 그렇지 않다. 산은 아무 때나 찾아가도 우릴 반겨주고, 아무 때나 떠나와도 섭섭하단 말 한 적 없다. 그 위에 올라가면 가슴 탁 트이는 광활한 풍경을 보여주고, 귀 기울이면 청아한 새소리 들려주고, 눈 돌리면 신록과 아름다운 야생화 보여준다. 

 여인은 백화점 쎄일 때 사온 옷으로 몸을 휘감고 자랑하지만, 산은 아침 안개를 향불처럼 신비롭게 몸에 휘감지만 자랑하지 않는다. 여인은 물 한 잔 건넨 것도 생색내지만, 산은 사시사철 청류를 제공하지만 자랑한 적 없다.

 그래서 신선도에서 여인을 생략했는지 모른다. 암벽 아래 정자에 앉은 노인이 차를 끓이는데, 노인과 동자만 있고 여자는 없다. 허허허! 역시 옛사람들은 생각이 깊다. 

 

 

 엉뚱한 돈도 이름도 없는 늙은 수필가가 자주 가는 곳이 있다. 거기서 헤밍웨이나 빅톨유고 같은 대 작가의 작품을 감상한다. 단돈 2천원에 잉그릿버그만이나 캐서린햇번 같은 세기의 명배우와 두어 시간 만난다. 영화 끝나면 단돈 6천원에 냉면과 직화 불고기 너댓점 주는 '육쌈냉면' 먹고 돌아온다.

를 를 단돈 2천원에 상영하는 실버극장이다. 거기는 인사동과 탑골공원 중간 쯤에 있는데 전철 종3역에서 내리면 된다.

 생각해보면 인생이란 한편의 영화 같은 것이다. 내가 처음 진주서 통일호 기차를 타고 12시간 걸려 서울 올라왔을 때는 맨손이었다. 가정교사까지 해가며 대학 졸업하고 취직해서는 박봉에 무진 고생했다. 그러나 직장을 그만 둘 당시는 상황이 달랐다. 출근 때는 운전기사가 회사차를 집 앞에 대기 시켰고, 퇴근 때도 그랬다. 시시한 골프장은 그러나 화무십일홍. 는 대기업 중역진 거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불알 두 쪽 밖에 없었다. 올 때는 기차로 12시간 걸렸다.근처에 있는데데,

 

 연꽃이 피는 철에

 

비우고 비운다고 다 비워지던가요

씻고 또 씻는다고 다 씻어지던가요

마음을 다스린다고 청정해지던가요

 

덮히고 쌓인 것이 진흙탕 보다 깊고

얽히고 설킨 것이 칡넝쿨보다 많아

마음을 다스린다고 고요해지던가요

 

 

연꽃이 피는 철에 연꽃을 바라보면

영산회상 법좌로다 처염상정(處染常淨) 그 모습에

가섭의 염화미소(拈華微笑)가 저절로 떠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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