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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풍토

김현거사 2017. 6. 6. 07:49

 

 문단 풍토

 

 이번 월간문학 6월호를 보니 강희근 선배가 金魚水 특집을 실어놓았다.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시인이고 흙 속에 묻힌 옥이란다. 

 대표작도 몇 편 소개되었고,  김어수론도 실어놓았다. 임종찬 부산대 교수는 김어수의 시조세계를 소개했고, 김영배 시인은 추모 글도 실었다. 그 뒤에 신대식 김대식 김어수 시인 선양회 초대 2대 회장 글도 실려있고, 영월 김어수 공원과 시비가 소개되고 있다.

 70년 초반에 나는 그분과 자주 만났다. 그 양반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그 분이 전에 스님이었다는 것, 조계종 상임포교사고,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위원이라는 것 정도였다. 

 이름이 魚자와 水자인지라 절에 있는 木魚가 생각나기도 했다.

 물욕이 없고 찢어지게 가난해서 한편은 존경스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간혹 불교신문에 시를 실고 원고료 받으러 오면 같이 커피를 마시곤 했다. 임종시에 조의금 봉투 들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텅 빈 초상집에 가서, 찢어지게 가난한 문인 되지않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이 양반이나 미당 선생은 신문 원고 관계로 더러 만났다. 날더러 시를 써보라고 권한 적 있다. 그때 못이긴 척 응했으면 경력 50년 원로시인일 것이다.

 

 그 뒷 페이질 보니 '이 시대의 창작의 산실'이란 제목 달아놓고 홍신선 시인 특집이 실려있다. 또 옛날 생각난다. 아는 이름같아 이력을 살펴보니, 동국대 국문학과다. 그럼 나와 불교신문 같이 만들던 선원빈 동기 틀림없다. 원빈은 미당 수제자로 동국대학교 학보사 편집국장 출신이었고, 그의 친한 친구였다.

 

 홍시인 년보를 보니 70년대 노향림 시인과 결혼했고, 동국대 예술대학장을 지냈다. 원빈이 요절하지 않았다면 아마 홍시인 보다 더 많은 문학상 받았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젊은 시절 가난한 문인의 길을 택해서 아내 고생시키지 않은 것이 잘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 정반대의 생각도 든다. 수필가로 문단에 나와보니 이 동네 사람들이 웃긴다. 작품이 아니라 등단 년도 따지는 풍토만 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