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강의 노래/ 소동파의 적벽부
고려와 요나라까지 알려진 천하의 명문장 적벽부(赤壁賦)는 지금부터 약 8백년 전 1082년, 소동파가 유배지인 호베이성(湖北省) 황저우(黃州)의 한천문(漢天門) 밖 장강(長江,양쯔 강) 암벽 아래 배를 띄워 적벽 아래 선유하면서 지은 것으로, 음력 7월에 지은 〈전적벽부〉와 음력 10월에 읊은 〈후적벽부〉가 있다.
전편은 적벽에서 벌어졌던 삼국시대의 고사를 생각하고 덧없는 인생에서 벗어나 자연과의 합일을 노래한 것이고, 후편은 적벽야유의 즐거움을 구가한 것이다.
소동파(蘇東坡)의 이름은 식(軾)이고, 호가 동파(東坡) 이다. 아버지 소순(蘇洵), 동생 소철(蘇鐵)과 함께 '삼소(三蘇)'라 불리며, 당송8대가 중 한 사람이다.
전적벽부(前赤壁賦)
임술년 7월 보름 다음 날, 나 소동파는 손님과 함께 배를 띄워 적벽 아래에서 노는데. 맑은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고, 물결은 잔잔하였다.
잔 들어 손님에게 권하며, '시경'의 시를 읊조리고 있노라니, 잠시 후 달이 동산 위에 솟아 북두칠성 사이를 배회하는데, 하얀 물안개 강을 가로 지르고, 물빛은 하늘에 닿아있다. 그 가운데 갈대잎 같은 한 척 작은 배로 만이랑 창파를 넘어 아득히 가노라니, 호호하기 허공에 의지해 바람 타고 멈출 바 모르는 듯 하고, 표표하기 속세를 떠나 홀로 서있는 듯 마치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된 듯 싶다.
술을 마시고 흥이 올라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였다. '계수나무 노여, 목란 삿대여! 물에 비친 달을 치며 흐르는 빛 거슬러 오르네. 아득하구나 나의 회포여, 하늘 저편 임을 기다리네'.
마침 손님 중에 퉁소 부는 이가 있어 노래에 화답하는데, 그 퉁소 소리 구슬퍼 누구를 원망하듯, 그리워하듯, 우는 듯 하소연 하는 듯, 남은 음이 가냘프게 이어져 실처럼 끊어지지 않으니. 그 슬픈 가락 깊은 골짜기에 잠긴 교룡을 춤추게 하고, 외로운 배의 과부를 눈물짓게 할만했다.
그래 내가 옷깃 바로하고 정색하여 객에게 묻되, '퉁소를 어찌 그리 부시오?' 하니, 그가 말하길,
'달 밝아 별빛 드물고, 까막까치 남으로 날아가는 건 옛날 조조가 시 아닙니까? 서쪽으로 하구를 바라보고, 동쪽 무창을 바라보니, 산천은 서로 엉겨 울창하고 푸르디 푸른 곳, 이곳은 조조가 주유한테 곤욕을 치른 곳 아닌가요?
조조가 바야흐로 형주를 격파하고 강릉으로 내려와, 순풍을 타고 동으로 진군할 때, 배의 선미와 선수를 이은 대선단(大船團)은 천리에 뻗치었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지요. 그때 조조가 창을 옆에 끼고 강을 바라보며 술잔 들고 시를 읊었으니, 참으로 일세의 영웅이었지요. 그런데 지금 그는 어디 있습니까? .
그대와 나는 강변에서 나무하고 고기 잡으며, 물고기와 새우, 고라니와 사슴 벗하며. 일엽편주를 타고 조롱박 술잔을 들어 서로 권하고 있으니, 이는 천지간의 하루살이, 바다 속 한알 좁쌀같은 존재지요.
그래서 우리네 인생의 수유처럼 짧음을 슬퍼하고, 장강(長江)의 영원한 흐름을 한없이 부러워하면서, 우리가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닐며, 명월(明月)을 안고 길이 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음을 알기에, 이 슬픈 노래를 가을 바람에 날려보낸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말했다.
'그대는 저 강과 달을 아시지오? 강물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으나 일찌기 돌아온 바 없고, 달은 차고 비움이 저와 같지만, 결국 본체는 소멸(消滅) 증장(增長) 하는 것 아니겠소? 모든 것은 변한다는 현상에서 보면, 천지 역시 한 순간도 변하지 않음이 없으며. 변하지 않음에서 보면, 만물과 내가 무한하여 다함이 없는 것인데, 하필 무엇을 부러워 하겠소?
대채로 하늘과 땅 사이 만물에 각기 주인이 있어, 진실로 내 소유가 아니면 비록 터럭 하나라도 취해서는 않되지만, 오직 강 위 맑은 바람과 산 속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음악이 되고 눈으로 만나면 빛을 이룹니다. 이를 취하여도 누구 하나 금하지 않고, 또 아무리 사용해도 없어지는 법이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조물주의 무궁무진한 세계 아니겠소? 그래 그대와 내가 이 세계를 함께 즐겨야 하지 않겠소?'
객이 이 말을 듣고, 웃으며 잔 씻고 다시 대작하니. 안주와 과일은 이미 다 떨어지고, 잔과 쟁반은 어지럽게 흐트러졌다. 두 사람이 배안에서 함께 팔베개 하고 누웠다가, 동쪽 하늘이 하얗게 밝아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후적벽부(後赤壁賦)
임술년 10월 보름에 설당(雪堂)에서 걸어서 임고정(臨皐亭)으로 갈 때 두 객(客)이 나를 따라왔다. 황토 언덕 지나니 서리와 이슬 이미 내리고, 나뭇잎은 다 떨어졌고, 사람 그림자 땅에 비쳐 있다. 우럴러 밝은 달 보며 길을 걸으며 노래부르니 객도 화답한다.
잠시 후 내가 '객(客)은 있는데 술이 없고, 술은 있는데 안주거리 없구나. 달 밝고 바람 시원한 이처럼 좋은 밤을 어이 보낼꺼나?' 탄식하자, 객이 말하기를 '오늘 어스럼 저녁에 그물로 고기를 얻었는데, 주둥아리가 크고 비늘이 가는 걸 보니 영락없이 송강(松江)의 명물 송어 같습디다. 그런데 어디서 술을 구하지요?' 한다.
내가 돌아와서 부인에게 상의하니, 아내가 '영감이 불시에 찾을 때가 있지싶어 내가 술 한 말을 감춰둔지 오래되었지요.' 한다.
그래 술과 농어를 가지고 적벽강(赤壁江) 아래로 가니, 강은 소리 내어 흐르고, 깍아지른 절벽은 천 길 높이로 솟아있다. 까마득히 높은 산에 자그마한 달이 걸렸고, 물 빠지자 바위가 들어났다. 도대채 세월이 얼마나 갔기에 이렇게 강산이 알아볼 수 없게 변한걸까.
내가 옷자락 걷어잡고 높은 바위를 밟고 우거진 풀 속을 헤치고 올라가, 호랑이 표범 모양의 바위에 걸터앉아보고, 꿈틀대는 이무기 모양의 괴목(怪木)에 걸터앉아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찔한 송골매가 살고 있는 위험한 둥지에 기어올라가, 풍이(馮夷)의 그윽한 용궁을 굽어보니, 두 객(客)은 나를 따라오지 못한다.
길게 휘파람 불어보니 초목은 진동하고, 산이 울리자 골짜기가 대답한다. 바람 일자 물결이 춤 추는데, 시릴 정도로 맑고 차거운 느낌에 나 역시 슬며시 숙연하고 두려운 맘이 들어, 거기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몸을 돌려 배에 올라 강 한복판에 배를 띄우고, 물결 치는대로 배를 내버려 두고 물소리를 듣는데, 야반 넘어 사방을 돌아보니 적료하고 고요함 뿐이다.
그때 동쪽에서 마침 외로운 학 한 마리가 강을 가로질러 오니, 날개는 수레바퀴 같고, 검은 치마 흰 옷 입은듯, 길게 한울음 울면서 내 배를 스쳐 서쪽으로 사라져 버린다.
잠시 후 객은 떠나고 나는 잠들었는데, 꿈에 우의(羽衣)를 입은 도사를 만났다. 그가 임고정(臨皐亭) 아래에 와서 나에게 읍하고 말하기를 '적벽강(赤壁江)의 뱃놀이 즐거웠소이까?' 하고 물어, 그 이름 물었으나 고개 숙이고 대답은 않는다. '오호라 알겠구나! 그대는 지난 밤 길게 울며 내 옆을 스쳐간 학이 아니신가?' 물으니, 도사가 돌아보며 빙그레 웃는다. 나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창을 열고 밖을 보았으나, 그가 간 곳을 모르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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