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전통 문화 속에는 '태극'이라는 오래되고 현묘한 단어가 있다. (현재는 이 태극의 개념은 동이족 단군 고조선에서 중국으로 간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음) 우리나라 국기도 태극기지만,
중국 무술에는 태극권과 태극검이라는 것이 있고, 명승 고적 가운데도 태극묘(太極廟)나 태극동(太極洞)이라는 곳이 있다.
태극으로부터 나온 명사 술어는 그 수를 분명하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태화(太和)니 태중(太中)이니 태청(太淸)이니
태허(太虛)니 하는 것들이 있다. 주로 도가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태극은 도대체 어떠한 것일까?
태극은 처음에는 철학 술어였는데, 고대의 사상가들은 그것을 세계의 본원으로 간주했으며, 세상의 만사와 만물이 모두 태극으로부터 발전해 나온 것이라고 인식하였다.
천백 년 동안 많은 학자들이 태극의 연구에 주력했으며, 형형색색의 견해를 낳았다.
그 중 가장 권위 있고 영향력 있는 견해는 송대의 저명한 철학가 주돈이(周敦?)의 태극 학설을 꼽을 수 있다.
주돈이(1071-1073)는 자가 무숙(茂叔)이고 도주(道州) 영도(營道: 지금의 湖南省 道縣) 사람이다.
그는 관료 지주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별세한 뒤에는 집안이 갈수록 기울어져서, 어머니는 그를 데리고 이모부 정향(鄭向)에게 몸을 기탁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용도각학사(龍圖閣學士)를 맡고 있던 정향은 주돈이의 총명함과 학문적 재능을 발견하고는, 그를 키워 훌륭한 대학자로 만들고자 생각하였다.
학문에 전념한 주돈이는 마침내 이모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당대의 저명한 철학가가 되었다.
주돈이의 지식은 매우 광범했으며, 온갖 지식과 사리에 정통한 그는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다.
그의 철학 사상은 유가 학설을 위주로 하면서 불학과 도가의 학술을 겸비하여, 후세 학자들에게 큰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송대의 저명한 이학의 대가 정호(程顥)·정이(程 ) 형제는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문하생이다.
주돈이의 인물됨은 그의 학문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온화한 성품에 행동거지가 신중하여 유학의 대가로서의 기질을 갖추었다.
그러면서도 또 불교와 도교의 명사들과 폭넓게 교유함으로써 불교의 기풍과 도교의 분위기도 농후하게 겸비하였다.
이러한 개인적 품성은 그의 독특한 사상 풍격과 잘 어우러져서 중국 고대 사상사의 미담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주돈이의 가장 큰 공적은 정교한 『태극도설』을 창립한 것이다.
옛날에 도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각종 신비한 도식을 그려서 선도(仙道)의 형성 과정을 표시하는 데 능하였다.
그 가운데 구상이 정묘한 도식들은 세계의 기원 과정을 해석하는 데 이용되곤 하였다.
도교의 경전 속에는 '무극도(無極圖)'가 있는데, 세계의 기원에 관한 도교의 가장 권위 있는 해설이라고 한다.
오대(五代)·송초(宋初), 저명한 도사 진단(陳 )은 일찍이 사람을 시켜 이 '무극도'를 화산(華山)의 험준한 석벽에 새겨서
사람들로 하여금 우러러보도록 하였다.
여러 해가 지난 뒤 벼락이 쳐서 이 석벽이 훼손되면서 무극도도 거의 실전될 뻔하였다.
다행히도 누군가 이 그림을 베껴 두었기에, 북송 중기에 이르러 우여곡절 끝에 주돈이의 수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몇 년 동안 줄곧 세계 기원 문제를 연구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던 주돈이는 뛸 듯이 기뻐하였다.
'무극도'는 그가 꿈속에서나 구할 수 있었던 진귀한 문헌이었던 것이다.
그림이 일단 손에 들어오자, 그는 즉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후 이를 바탕으로 한 폭의 '태극도'를 창작하고
200여 자의 설명을 첨부하였다.
후세의 학자들은 이 그림에 설명까지 합하여 『태극도설』이라 이름지었다.
이 설명은 글자 수는 별로 되지 않지만 주돈이가 여러 해 동안 쏟아 부은 심혈이 응축되어 있으며, 그 속에는 심오한 철학
사상이 담겨 있다.
주돈이는 태극은 무극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였다.
무(無)는 무변무제(無邊無際)·무형무상(無形無象)의 뜻이다.
극(極)은 극한을 가리킨다.
태(太)는 지고무상을 상징하고 있다.
태극은 바로 지고무상의 무극이며, 그것은 우주 안의 모든 사물을 주재하고 있다.
태극은 매우 추상적이고 허황하여 단순히 사람의 육체 감관에 의해서 포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어떠한 구체적인 사물로써 그것을 형용할 방법이 없다.
태극은 세계를 창조하였다.
그것이 움직일 때 양기(陽氣)가 탄생하며 가만히 있을 때 음기(陰氣)가 탄생한다.
음기와 양기가 모이고 변하여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의 오행이 생겨났다.
오행은 일정한 순서와 배열에 따라 사시(四時) 즉 봄·여름·가을·겨울의 네 계절을 낳았다.
만물도 이로부터 생겨났다.
주돈이는 음기·양기와 수·화·목·금·토 오행 속의 가장 정교한 부분을 '정기(精氣)'라고 불렀다.
이것은 늘 일종의 기묘한 응집과 분산의 상태에 놓여 있는데, 이러한 상태는 건도(乾道)와 곤도(坤道)로 나뉘며, 건도는
남자를 낳고 곤도는 여자를 낳았다.
이렇게 하여 '인간'의 창조 과정이 완성되었다.
주돈이는 또 사람이 만물 가운데 가장 탁월한 부분이며, 사람들 중에도 성인과 범인의 구별이 있다고 인식하였다.
성인은 곧 인중지걸(人中之傑), 즉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
범인은 성인이 되고 싶으면 유가의 도덕 기준에 따라 언제나 끊임없이 몸과 마음을 닦아야 하며, 한편으로는 도가의 처세
준칙에 따라 욕망과 추구를 버리고 늘상 청정자연(淸靜自然)의 경지에 놓여 있어야 한다.
그제서야 비로소 범속함을 초월하는 경지에 도달하여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태극도설』은 대단히 흥미로운 책인데, 그 안에는 '성인'이라던가 '수신양성' 따위의 유가의 사상이 있을 뿐만 아니라
'무욕무구(無欲無求)'나 '청정자연' 등의 도가 사상도 담겨 있다.
주돈이는 유가와 도가 학설의 정수를 교묘하게 융화시켜 우주와 사회 그리고 인생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을 형성하였다.
이 그림과 설명은 매우 높은 학술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후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 고대 철학의 최고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송대 이학이 바로 『태극도설』을 토대로 탄생한 것이다.
물론 우주 기원과 인류 기원에 관한 주돈이의 해설은 과학적 근거를 결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는 오로지 역사적인
한계로 돌릴 수밖에 없다.
『태극도설』이 철학사에 기여한 공헌은 주로 동(動)과 정(靜), 변화와 생성 및 음양오행의 상호 작용 등의 변증법적 관점을 이용하여 세계 기원의 과정에 대하여 진지하고도 심도 깊은 탐구를 한 점인데, 이는 인식 수준이 높지 않았던 고대에는 실로 대단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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