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 제4편 서문

그윽한 대숲에 나홀로 앉아/ 시불(詩佛) / 왕유

김현거사 2016. 5. 14. 06:04

 

 

   시불(詩佛) 왕유(王維)

 

  왕유(王維)는  과거에 장원 급제했으나 당 현종(玄宗)의 눈에 벗어나 제주(濟州)에 귀양살이를 한데다, 그를 후원해준 장구령이 간신 이임보에게 밀려 파면 당하는 것을 보고, 실의에 빠져남산 기슭 남곡천(藍谷川) 흐르는 곳에 망천장(輞川莊)이란 별장에 은거하여 불교의 참선 수행에 심취하였다.

 자는 마힐(摩詰)인데 고승 유마힐(維摩詰)을 닮고자 그리 정했다고 한다.

  <구당서(舊唐書)>에 의하면, '왕유는 망천 계곡 어구에 있는 송지문(宋之問)의 남전별장을 샀는데, 망천의 물이 집 둘레를 감싸며 흘렀다. 따로 물을 끌어 대나무와 꽃 언덕을 축조하고, 함께 수도하던 친구 배적(裵迪)과 더불어 배를 띄워 왕래하고, 거문고를 타고 시를 지으며 종일토록 읊조리고 노래하였다. 망천계곡 경치가 뛰어난 20경(景)을 택하여 5언절구로 각각 20수를 읊어 총 40수 의 시를 모아서 <망천집>이라 이름하였다. 조정에서 파하고 돌아오면 향을 피우고 홀로 앉아 참선독경을 일삼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소동파(蘇東坡)는 왕유의 시를 평하기를, '시 가운데 그림이 있다(詩中有畵)'고 하였다. 시론(詩論)에서 최고 품격으로 삼는 시화일치론(詩畵一致論)이 여기서 비롯된다.
 왕유는 망천장 벽에 망천계곡 20경을 그려 놓았는데, 그림에도 뛰어나 왕유의〈망천도>는 남종화의 시조가 된 그림이다.

청(淸)나라 황배방(黃培芳)은 왕유의 시를 평하기를,  '한가로운 정경은 속세의 먼지와 소음에 찌들어 있는 자들이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는가? 오직 평정한 마음에서만 경물 묘사가 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라 하였다.

신운설(神韻說) 시론으로 청나라와 우리 북학파(北學派, 박제가, 박지원)에 큰 영향을 준 왕사정(王士禎)은 왕유의 시에 대하여, '송(宋)의 엄우(嚴羽)는 시선일치(詩禪一致)를 주장하였으나 왕유와 배적의 망천(輞川) 절구(絶句)는 글자마다 선(禪)에 들어가 있다'고 평하였다.

 

 

鹿柴(사슴 울타리)

 

空山不見人  텅 빈 산에 사람은 않보이고
但聞人語響  어디서 사람 말소리만 들리는데
返景入深林  지는 햇볕 깊은 숲에 스며들어
復照靑苔上  다시 파란 이끼를 비추고 있다

 

* 이 녹채(鹿柴)란 시가 문제의 시다.  왕유의 시 가운데 가장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 시며,  언외(言外) 선미(禪味)가 가득하여, 그를 시불(詩佛)이라 칭하게 한 시다.

<당시전주(唐詩箋注)>에는 이 시를 '인적이 없다'와 '사람의 말소리 들린다'라고 한 것은 숲이 깊기 때문이다. 숲이 깊어 햇볕이 덜 들면 이끼가 자라기 쉽다. 저녘에 되비치는 빛이 스며들고 빈 산이 고요하니, 노루가 살기에 알맞다. 시가 매우 섬세하다'고 평하고 있다. 

 

田園樂(전원의 즐거움)

 

桃紅復含宿雨   붉은 복숭아꽃 간밤 빗물 머금었고
柳綠更帶春烟   푸른 버들잎 봄안개 감고 있다.
花落家僮未掃   꽃은 떨어져도 동자는 아직 쓸지 않았고
鶯啼山客猶眠   꾀꼬리는 울건만 산사람은 아직 자고 있다

 

終南別業(종남산 별거)

 

中歲頗好道   중년 되어 불도를 좋아하다가
晩家南山陲   만년에 종남산에 집을 지었다.
興來每獨住   흥이 일면 매번 혼자 나서는데
勝事空自知   즐거운 일 그저 혼자 알 뿐이네
行到水窮處   다니다가 샘 솟는 곳에 이르면
坐看雲起時   앉아서 구름 일어나는 때를 보고
偶然値林叟   우연히 숲 속 늙은이 만나면
談笑無還期   담소하다가 돌아갈 걸 잊노라.


答張五弟(장오제에게 답하여)

 

終南有茅屋 종남에 초가집 있어
前對終南山 앞으로 종남산 마주보고 있
終年無客長閉關 
해가 가도록 찾는 손님 없어 문은 오래 닫혀있
終日無心長自閒  
종일 무심하여 마음 항상 한가하
不妨飮酒復垂釣  
음주나 낚시에 방해 받지 않으니
君但能來相往還   
그대가 와서 서로 오고 갈 수 있었으면.

 

臨湖亭(호수가 정자에서)

 

輕舸迎上客  가벼운 쪽배에 객을 태우고
悠悠湖上來  한가로이 호수 위로 건너와서.
當軒對樽酒  난간에 기대어 술 통 마주하니
四面芙蓉開  사방에 연꽃이 피어 있구나.

 * 쪽배와 술, 그리고 연꽃의 조화는 미술의 구도를 시에 도입한 기법으로, 호수를 바탕으로한 한 폭 그림을 그려놓았다.

 

竹里館(대숲 속 집)

 

獨坐幽篁裏  그윽한 대숲에 나홀로 앉아
彈琴復長嘯 
문고도 타보고 긴 휘파람도 불어본다
深林人不知  깊은 숲이라 사람들은 모르는데
明月來相照. 밝은 달 찾아와 서로를 비춰준다

 

春日上方卽事(봄날 상방에서)

 

好讀高僧傳  <고승전> 읽기 좋아하고
時看辟穀方  때때로 곡식 먹지않고 솔잎 대추 먹는 벽곡 처방 본다.
鳩形將刻杖  비둘기 모양을 지팡이에 새기고
龜殼用支牀  거북껍질을 써서 침상을 괴었다.
柳色春山映  버드나무 빛 봄산에 비치고
梨花夕鳥藏  배꽃 사이에 저녁 새 숨어든다.
北牕桃李下 북쪽 창가 복숭아 자두나무 아래
閒坐但焚香  한가히 앉아 다만 향불 피운다.

 

酬張少府(장소부에게 드리며)

 

晩年惟好靜  만년에 오로지 고요함이 좋아
萬事不關心  세상만사에 관심 두지 않았노라
自顧無長策  스스로 돌아봄에 생계의 방책 없고
空知返舊林   헛되이 아노매라 옛 숲으로 돌아가는 것.
松風吹解帶  솔바람 시원해 허리띠 풀어놓고
山月照彈琴  산 달은 비치노라 거문고 타는 이
君問窮通理  그대는 묻는가 궁통의 이치
漁歌入浦深  어부의 노래소리 포구에 들리네.


過香積寺(향적사를 지나며)


 

不知香積寺  향적사가 어디인지 알지 못한채

數里入雲峰  구름 덮힌 봉우리 몇 리 들어가니

古木無人逕  고목 울창한데 사람 다닌 길 없고

深山何處鐘  깊은 산 속 어디서 종소리 울려오네

泉聲咽危石  샘물 소리 가파른 바위에 흐느끼고

日色冷靑松  햇살은 푸른 솔숲에 차갑도다.

薄暮空潭曲  황혼의 텅 빈 연못가에서

安禪制靑龍  좌선하며 망념을 씻어내리라.

 

早秋山中作(초가을 산에서)

 

無才不敢累明時   재주 없어 관직에 머물러 있을 수 없으니

思向東溪守故籬   동쪽 냇가 돌아가 옛 울타리 지키고 싶어라.

不厭尙平婚嫁早  상평이 자식 혼사 일찍 마치고 유람 떠난 일 멋지고

卻嫌陶令去官遲  도연명이 관직 버림을 미적거린 것 밉도다.

草堂蛩響臨秋急  초당의 귀뚜라미 울음 가을이 급하고

山裏蟬聲薄暮悲  산 속 매미소리 저녁이 슬퍼진다.

寂寞柴門人不到  적막한 사립문에 오는 사람 없는데

空牀獨與白雲期  텅 빈 침상에서 혼자 흰구름과 약속한다.

 

秋夜獨坐(가을밤 혼자 앉아)

 

獨坐悲雙鬢  홀로 앉아 희끗희끗한 양 귀밑머리 슬퍼할제

空堂欲二更  빈 집은 이경(二更, 밤 9-11시)이 되어가네

雨中山果落  빗속 산 과일 떨어지고

燈下草虫鳴  등불 아래 풀벌레 울고 있네.

白髮終難變  흰머리는 끝내 검어지기 어렵고

黃金不可成  금단의 선약은 만들 수 없네

欲知除老病  늙음과 병듬 없애는 법 알려면

唯有學無生  오직 삶과 죽음 초월하는 법 배움에 있네.

  

山居秋暝(산속의 가을 저녂)

 

空山新雨后   빈 산에 새 비 내린 후
天氣晩來秋   날씨는 어느새 가을이구나
明月松間照   밝은 달 소나무 사이로 비치고
淸泉石上流   푸른 샘 돌 위로 흘러간다
竹喧歸浣女   대숲 소란터니 빨래하던 여인들 돌아가고
蓮動下漁舟   연잎 흔들리더니 고깃배 지나간다
隨意春芳歇   봄향기 제맘대로 시들어가도
王孫自可留   왕손은 의연히 머물만 하네


送別(송별)

 

山中相送罷   산에서 그대와 서로 이별한 후
日暮掩柴扉   날 저물어 집에 와 사립문 닫네
春草明年綠   봄풀은 내년에도 푸르련마는
王孫歸不歸   귀한 그대 한번 가면 다시 오려나.


送別(송별)                            

  

下馬飮君酒  말을 내려 그대에게 술을 권하면서
問君何所之  어느 곳을 가시려나 그대에게 물었더니
君言不得意  그대는 말하네 세상 일 뜻대로 않돼
歸臥南山陲  종남산 근처로 돌아가 누우려 한다고
但去莫復問  그러면 가시게 더 묻지 않으리
白雲無盡時  흰구름 무궁무진 다할 때 없으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