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원의 어부사(漁夫辭)
동양에서 절개를 논하려면 반드시 알아야할 문장이 있다. 굴원의 어부사(漁夫辭)다. 그래 탁영(濯纓)이니, 창랑(滄浪)이니 하는 단어도 존중되었으니, 연산군 때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에 실어 무오사화의 피해를 입은 김일손 선생 호가 탁영(濯纓)이며, 1950년대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씨의 호가 창랑(滄浪)이다.
창랑이나 탁영이란 말은 기원 전 3세기 초(楚)나라의 대시인이었던 굴원의 어부사에서 유래된다.
'창랑지수(滄浪之水)가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겠다'는 구절이다. 세상에 도가 행해지면 머리를 감고 갓끈을 씻고 의관을 정제하고 나가서 벼슬 하고, 도가 행해지지 않는 세상이라면 거기다 발이나 씻고 벼슬자리 버리고 초야에 묻혀, 청탁(淸濁)에 맞게 처신하겠다는 것이다.
- 굴원은 주나라 말기 전국시대 초나라의 왕족이다. 견문이 넓고 기억력이 뛰어났고 역대의 치란(治亂)에 밝아 회왕(懷王)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삼려대부가 되어 초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 헌령(憲令)을 기초하였다. 그런데 상관대부 늑상이 그걸 가로채려 하자 거절하였고, 이에 늑상은 '굴원을 학식이 빙자하여 믿고 대왕을 업신여기며 무엇인가 딴마음을 품고 있는 듯합니다' 하고 회왕에게 참소하였다.
현명치 못한 회왕이 그 말을 믿고 굴원을 멀리하자, 굴원은 비통해하면서 장편의 시를 지어 울분을 토로하니 이 시가 유명한 '이소(離騷)'이다.
그후 초나라는 진나라의 장의가 6백리의 땅을 베어 주겠다는 미끼에 속아 제나라와의 친교를 끊자 끊임없이 진나라의 침략을 받게 되어 고립무원의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굴원을 다시 불러들여 굴원이 수도인 영으로 돌아왔으나 재차 녹상의 참소를 입어 강남지방으로 추방되었다. 이때 굴원은 상수(湘水)가를 방황하면서 '천문(天問)'을 써냈다. 172가지 문제를 제기하여 비통한 울부짖음으로 천지에 의문을 호소하였다.
그후 경양왕 27년(B.C. 278)에 진나라 장수 백기(白起)가 드디어 초나라 수도 영을 함락시키고 선왕의 무덤인 이릉(夷陵)을 불태워버리니 이 소식을 듣고 굴원은 '어부사'를 남기고, 분연히 음력 5월 5일 돌을 품고 멱라수(호남성 상수의 지류)에 몸을 던져 순국(殉國)하였다. 그의 나이 62세 때 였다.
- 현재 호남성 도강현 굴원이 투신한 멱라수 옆에는 그의 무덤과 사당이 세워져 있다. 굴원이 죽은 음력 5월 5일은 단오절(端五節)이라 하는데, 매년 이 제일(祭日)이 오면 사람들은 뱃머리에 용 머리를 장식한 용선(龍船)의 경주를 성대히 벌이고, 갈대잎으로 싼 송편을 멱라수 물고기에게 던져 주고 있다.
어부사(漁父辭)
굴원이 이미 쫓겨나 강담(江潭)에서 노닐고 못가를 거닐면서 시(詩)를 읊조릴 적에 안색이 초췌하고 몸이 수척해 있었다. 어부(漁父)가 그를 보고는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닌가? 어인 까닭으로 여기까지 이르렇소?'
굴원이 대답했다.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만 홀로 깨끗하고,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으니, 그래서 추방을 당했소이다.'
어부(漁父)가 이에 말했다.
'성인(聖人)은 사물에 얽매이거나 막히지 않고 능히 세상을 따라 옮기어 나가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혼탁하면 왜 그 진흙을 휘젖고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으며,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있으면 왜 그 술 지게미를 먹고 박주(薄酒)를 마시지 않고, 무슨 까닭으로 깊은 생각과 고상한 행동으로 스스로 추방을 당하셨소?'
굴원이 이에 대답하였다.
'내 듣기로, 막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드시 관(冠)을 퉁겨서 쓰고, 막 목욕을 한 자는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 하였소이다. 어찌 몸의 반질반질 깨끗한 곳에 외물(外物)의 얼룩덜룩 더러운 것을 받겠소? 차라리 상강(湘江)에 뛰어들어 물고기의 배속에 장사(葬事)를 지낼지언정, 어찌 희디흰 순백(純白)으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 쓴단 말이요?'
이에 어부는 빙그레 웃고는 배의 노를 두드려 떠나가며 노래를 불렀다.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내 갓 끈을 씻을 것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을 것이요(滄浪之水淸兮 可以濁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그리고 떠나가고 굴원은 다시 그와 더불어 말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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