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 제4편 서문

하늘의 뜻은 헤아리기 어렵다/ 홍자성의 <채근담>

김현거사 2016. 4. 2. 06:59

 

 하늘의 뜻은 헤아리기 어렵다/ 홍자성(洪自誠)의 채근담(菜根譚)

 

 십대는 톨스토이의 <인생 독본>이란 책을 좋아했다. 그 속의 톨스토이의 인생관과  세네카, 아우렐리우스, 파스칼, 루소의 사상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삼십대는 동양에도 이런 책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채근담(菜根譚)이란 책이다. <인생독본>이 라일락 향기라면, <채근담>은 매화 향기였다.  

 채근담(菜根譚)은 명나라 때 홍자성(洪自誠) 저술이다. 호는 환초도인(還初道人)인데, 그는 '사람이 미미(美味)를 탐하지 않고 순무 혹은 풀잎과 뿌리 같은 거친 음식(粗食)도 달게 먹을 수 있을 때, 세상에 임함에 지조를 세울 수 있다'고 했다. 당시 감탄고토(甘呑苦吐) 세태 맛보던 신문기자 때라 채근(菜根)이란 말에 더 끌렸던지 모른다.

 

 도덕을 지키는 자는 한때 적막하나 권세에 아부하는 자는 만고에 처량하다. 달관한 사람은 물욕 밖의 진리를 보고 죽은 후의 명예를 생각하니, 차라리 한 때 적막할지언정 만고에 처량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맛있는 술과 기름진 고기, 매운 것 달콤한 것 등의 조미(調味)가 진미는 아니다. 진미는 단지 담박한 맛이다. 신기하거나 탁이(卓異)한 사람은 도의 극치에 이른 사람이 아니다. 지극한 사람은 다만 평법해 보인다.

 

 명아주 잎으로 국을 끓이고, 비름 같은 나물로 배를 채운 사람은 마음이 얼음처럼 맑고 구슬처럼 고귀하다. 반면 미의미식(美衣美食) 하는 사람은 권세와 명예 앞에서 노비가 무릎을 꿇고 얼굴빛을 다듬는 것 같이 비굴한 경우가 많다. 대개 지조는 담박한 생활 속에서 길러지고, 기름진 고기와 맛있는 음식을 취하는 데서 기개는 상실되고 만다.

 

 하늘의 뜻은 헤아리기 어렵다. 어떤 때는 역경에 사람을 몰아넣기도 하고, 어떤 때는 순경(順境)으로 사람의 숨을 터 준다. 영웅호걸들도 별도리 없이 이 속에 부침한다. 그러나 군자는 천운이 역으로 올 때도 이것을 순하게 받아들이고, 평온할 때도 위험한 경우를 잊지않고 조심하며 조금도 당황하지 않으므로, 하늘도 그들에게만은 영향력을 구사할 수 없다.

 

 복더러 와달라고 아양 떨 필요없다. 복이 와서 상주할 환경을 만들면 되는데, 기쁜 마음과 명랑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화더러 떠나달라고 빌 필요는 없다. 화가 와서 기댈 환경이 아니면 되는데, 즉 남을 해칠 마음을 없애고 평온한 것이 화를 면하는 첩경이다.

 

 천지의 기운이 따뜻하면 곧 만물이 살아나고, 차가우면 죽는다. 성품이 냉혹한 사람은 복이 적고, 화기와 온정이 넘치는 사람은 하늘이 복을 내린다. 땅은 약간 더러워야 만물을 생산하나니, 물이 너무 맑으면 오히려 고기가 살지 못한다. 군자는 마땅히 더러움도 용납하는 도량이 있어야 하며, 깨끗하기만 하고 자기만 지조를 지키려 하지는 않는다.

 

 바람이 대밭에 불면 소리가 요란하다. 하지만 바람이 지난 뒤에는 다시 고요하다. 기러기가 못 위를 날 때, 못 속에 기러기 떼가 어지럽다. 그러나 기러기가 날아간 뒤에는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군자의 마음도 이 대나무밭이나 연못과 같다. 어떤 일이 생기면 마음에 반영하지만, 그 일이 다 끝나면 마음은 다시 고요함으로 돌아간다.

 

 귀는 마치 회오리바람이 골짜기에 소리를 울림과 같은지라 지나게 하고 남겨 두지 않으면 시비도 함께 사라진다. 마음은 마치 연못에 달빛이 비치는 것과 같아 텅 비게 하고 잡아 두지 않으면 외물(外物)과 나를 모두 잊게 된다.

 

 보잘것 없는 초가라도 잘 보살피면 아담한 맛이 생기고, 시골 촌부라도 잘 다듬으면 멋이 풍기는 법이다.

 학문과 덕을 수양한 군자는 어쩌다 불우한 처지에 빠져도 자포자기 하지않고 학문과 덕을 굳건히 지킬 것이다. 이 때는 비록 군색할지라도 범인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다.

 

 평민이라도 기꺼이 덕을 심고 은혜를 베풀면, 이것이 곧 재상이나 임금보다 백 배나 높은 것이다. 사대부라도 한갓 권세나 탐내고 이익을 위해 아첨이나 하면, 작(爵)이 있는 걸인과 다름 없다.

 

 권력을 쫓고 세력에 붙는 재앙은 참혹하고 아주 빠르며, 고요함에 살고 편함을 지키는 맛은 가장 맑고 가장 오래 간다.

 권세 있고 부귀한 사람들은 용처럼 다투고 영웅과 호걸들은 호랑이처럼 싸우는데,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면 마치 개미떼가 비린내 나는 고깃덩어리에 모여드는 것과 같고, 파리떼가 다투어 피를 빠는 것과 같다. 
 

 관원에는 두 마디의 말이 있으니 오직 공평하면 밝은 지혜가 생기고, 오직 청렴하면 위엄이 생긴다.
 가정에는 두 마디의 말이 있으니 오직 용서하면 불평이 없고, 오직 검소하면 살림이 넉넉하다.

 

 춥고 배고프면 돈푼이나 있는 자에게 달라붙고, 배부르면 떠나가고, 따뜻하면 따라오고, 추우면 언제 보았더냐 싶게 길에서 만나도 인사조차 않는 것이 동서고금의 인정이다.

 

 한 집의 가장이 집안을 통솔함에 너무 엄격해도 안되고 너무 너그러워도 못쓴다. 너무 노골적이어도 반발을 사기쉽고, 너무 서둘러도 역효과가 나기 쉽다. 대체적으로 화락한 분위기 속에서 만사를 원만하게 처리함이 좋다.

 

 허물을 꾸짖을 때 너무 엄격하게 나무라지 말고,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남에게 선을 베풀 때 지나치게 고상하게 행동하지 말고, 그 사람이 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높은 관직에 있더라도 자연에 묻혀 사는 풍취를 지녀야하고, 자연에 묻혀 있어도 국가에 대한 경륜을 품어야 한다. 

 

 매는 새 중의 왕이지만 평소에 조는듯 느릿느릿하고, 호랑이는 백수의 왕이지만 걷는 모습이 느려 보인다. 군자는 마땅이 매와 호랑이처럼 평소에는 자신의 총명이나 재주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 마치 무능한 사람처럼 보이다가, 일단 큰일을 당하면 책임을 두 어깨에 메고 천하국가를 위한 위대한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역경은 영웅호걸은 단련하는 하나의 용광로요 쇠망치다. 그 용광로에 불 피우고 그 쇠망치에 얻어맞는 동안 무쇠 속의 모든 불순물이 증발되고 단단한 강철이 되는 것이다.

 역경을 돌파한 인물은 마치 강철처럼 몸이 건강하고 의지가 굳다. 그런데 몸이 단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마치 달구지 않은 무쇠 같아서 심신이 유약하여 아무 쓸모없는 인물이 될 것이다.


 낮은 곳에 살아 본 후에야 높은 곳에 오르는 일이 위태로움을 알게 된다. 어두운 곳에 처해 본 후에야 밝은 곳의 눈부심을 알게 된다. 고요함을 지켜 본 후에야 분주한 움직임이 헛수고임을 알게 된다. 침묵해 본 후에야 말 많은 것이 시끄러움을 알게 된다. 

 글을 읽어도 성현의 뜻을 보지 못하면 종이와 붓의 노예에 불과하고, 공직에 있으면서 백성을 사랑하지 않으면 의관 입은 도둑에 불과하다.

가르치면서 몸소 실천하지 않으면 입으로만 참선하는 것과 같고, 큰일을 하면서 덕을 베푸는 데에 인색하면 한순간 피고 지는 꽃일 뿐이다.

 

 세상은 재주있는 사람은 칭찬해도 덕을 기리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다. 덕이 주인이고 근본이며, 재주는 종이요 지엽(枝葉)이다. 만일 재주만 있고 덕이 없으면, 마치 주인 없이 종이 위세부리는 식이요, 백주에 도깨비가 난장판 부림과 같다. 

 눈앞의 일에 만족하면 선경이지만 만족할 줄 모르면 속세이다.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인연은 잘 쓰는 사람에겐 생기가 되고 잘못 쓰는 사람에겐 살기가 된다. 갠 날 푸른 하늘이 갑자기 변하여 천둥 번개가 치기도 하며, 거센 바람, 억수 같은 비도 홀연히 밝은 달 맑은 하늘이 되나니 하늘의 움직임이 어찌 일정하겠는가.
 털끝만한 응체(凝滯)로도 변화가 생기는 것이니 하늘의 모습도 어찌 변함이 없겠는가. 털끝만한 막힘으로도 변화가 생기는지라 사람의 마음바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꽃은 반쯤 피었을 때 보고, 술은 적당히 취하도록 마시면 그런 가운데 아름다운 취미가 있나니, 만약 꽃이 활짝 피고 술에 흠뻑 취하면 문득 재앙의 경지에 이른다

 글자 한 자 모를지라도 시의(詩意)를 가진 자는 시가(詩家)의 참맛을 얻을 것이요, 게(偈) 한 구절 연구하지 않더라도 선미(禪味)를 가진 자는 선의 현기(玄機)를 깨닫는다.

 

 꽃은 화분 속에 있으면 마침내 생기가 없어지고 새는 새장 안에 있으면 문득 자연의 맛이 줄어든다. 이 어찌 산 속의 꽃이나 새가 한데 어울리어 색색의 무늬를 이루며 마음껏 날아서 스스로 한가히 즐거워함만 같을 수 있겠는가.

 

 나무는 무성한 잎이 져 뿌리만 남게 될 때에야 꽃과 잎사귀가 허망한 것임을 알게 되고, 사람은 죽어서 관 뚜껑을 덮은 뒤에야 자손과 재물이 쓸데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산중의 오막살이에서 갈대 솜을 넣은 이불을 덮고, 백설을 완상하며 뜬구름을 바라보면, 이욕(欲)에 물들지 않은 고요하고 맑은 야기(夜氣)를 훔뻑 보전할 수 있으며, 죽엽(竹葉) 술잔으로 마신 술에 도연히 취하여 청풍명월 노래하면, 속세의 모든 번뇌에서 깨끗이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대 울타리 엉성한 초가삼간에 한가로히 누웠다가 문득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더 없이 흐믓하여 마치 구름 속을 헤매는 것 같으며, 서재에 깊숙이 앉아 만권시서(萬券詩書)를 독파하는 중 은은히 들려오는 매미 소리, 까치 소리 들으면 뜻이 다없이 고고하여 태고적의 별천지에 사는 기분이다.

 

 차는 극상품만 바라지 않으면 찻단지가 마르지 않고, 술도 향기롭고 강렬한 것만 바라지 않으면 술통이 비는 일이 없으며, 변변찮은 거문고에 줄이 없어도 타면서 즐기고, 단소에 구멍이 없어도 유유자적 한다면, 비록 복희황제의 운치에는 미치지 못해도 죽림칠현 중 혜강(康)이나 원적(阮籍)의 멋에는 미치지 못하랴.

 

 옛날 고승이 말하기를 '대나무 그림자가 층계를 쓸어도 티글이 움직이지 않고, 달 그림자가 늪에 드리워도 물에 흔적이 없다'고 했다. 어떤 유학자는 '물이 아무리 급히 흘러도 주위는 고요하며, 꽃이 분분히 떨어져도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한가롭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