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 제4편 서문

'무경칠서(武經七書)' /손자병법(孫子兵法). 오자병법 (吳子兵法). 손빈병법(孫臏兵法) 편

김현거사 2016. 3. 6. 21:38

 

'무경칠서(武經七書)' 제1편

손자병법(孫子兵法). 오자병법 (吳子兵法). 손빈병법(孫臏兵法)

 

'손자병법(孫子兵法)'은 제갈량, 당태종, 이순신 장군이 탐독했고, 나폴레옹, 모택동, 독일 황제 빌헬름 2세,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도고 헤이하찌로가 애독했다. 1772년 프랑스 신부 아미오(P. Amiot)가 불어로 번역했고, 1906년 영문판이 나왔다

 현재 전해지는 병법은 조조가 해석을 붙인 '위무주손자(魏武註孫子)' 13편이다. 조조는 손자병법에 주석을 달고 후에 '맹덕신서'라는 병서를 저술하기도 했다.

 

 손무(孫武)는 기원 전 559년에 태어나 공자와 동시대를 살았다. 선조 진완(陳完)은 진(陳)나라 공자로  제(齊)나라에 피신해 성을 전(田)씨로 바꾸었다. 할아버지 전서(田書)는 전쟁에서 공을 세워 제 경공(景公)으로부터 손(孫)이란 성을 하사받았다. 손무는 내란이 일어나자 오나라로 망명하여, 합려(闔慮)를 도와 3 만 군사로 30 만 초나라 군대를 대파하고, 병가에서 불후의 명저로 꼽히는 '손자병법'을 완성했다. 말년에 산속에 들어가 은둔의 삶을 살다가 기원전 470년에 75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고 한다.

 

  합려(闔閭)가 손무를 기용할 때 에피소드가 재미있다.

 합려는 오자서를 통해 손무의 명성을 익히 들었지만, 지휘 능력을 보고 싶었다

'실제로 군대를 훈련시켜 보일 수 있겠소?

'좋습니다.'

'여자라도 상관 없을지?'

'상관 없습니다.'

 합려는 궁녀 180 명을 불러 내었다. 손자는 궁녀를 두 편으로 나누고, 갑옷과 투구를 착용시키고 검과 방패를 들게 한 뒤, 총희 두 사람을 각각 대장으로 삼았다. 그리고 북소리에 따라 진퇴, 좌우, 회선()하는 군율()을 일러주었다.
'북을 1번 치면 모두 일어나고, 2번 치면 큰소리를 외치며 전진하고, 3번 치면 전투대형으로 전개한다. 내가
‘좌로’ 하면 왼손을 보고, ‘우’로 하면 오른손을, ‘앞으로’ 하면 앞을, ‘뒤’로 하면 등 쪽을 보아라.'

 그리고 북을 치면서 ‘우로’라고 호령하자, 궁녀들은 까르르 웃기만 했다. 이에 손무는,

'명령이 분명치 않고 호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은 장수의 잘못이다.'

라고 말한 후, 친히 북채를 잡고 북을 울리며 재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설명한 후 ‘좌로’하고 호령했다. 그러나 궁녀들은 여전히 입을 가리고 웃기만 했다. 그러자 손무가 집법에게 지시했다.

'부질()을 대령하라!'
부질은 사람의 목과 허리를 짜르는 도끼와 그 밑받침 이다. 집법에게 물었다.
'금령()이 명확치 않고 하명()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장수의 죄다. 그러나 이미 금령을 내리고, 되풀이하여 분명히 명했는데도 병사가 군령을 좇아 진퇴를 않았으니, 이는 부대장의 죄다. 군법에 따르면 어찌 해야 하는가?'

'마땅히 참수()해야 합니다.'

그러자 손무는,

'모든 사졸을 참할 수 없다. 그 죄는 두 대장에게 있다. 군령에 따라 즉시 두 대장을 참하라!'

좌우에 늘어선 아장들이 즉시 합려의 두 총희()를 끌어내어 결박했다.

합려는 대 위에서 이 광경을 보고 대경실색했다.

'과인은 이미 장군의 용병술을 보았소. 과인은 그들이 없으면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니 참수하는 일은 하지 마시오.'

 그러나 손무는,
'장수는 군대에서 법을 집행할 때 군주가 설령 하명할지라도 이를 접수하지 않는 법입니다!'

 하고 총희 둘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에 궁녀들은 새파랗게 질려 감히 손무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손무가 다시 북채를 잡고 지휘하자, 대오는 좌우 진퇴가 명하는 대로 정확히 이루어졌다. 웃기는커녕 기침소리 한번 없었다.

 이때 오자서가 합려에게 간했다.
'신이 듣건대 용병은 흉사()니 헛되이 시험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용병하는 사람은 함부로 시험하지 않는 법 입니다. 지금 대왕은  초나라를 치고 천하의 맹주가 되어 제후들을 호령하고자 합니다. 만일 손무를 장수로 삼지 않으면 누가 회하()와 사수()를 넘고 천리를 달려가 작전을 펼 것입니까?'
 
  이 말을 듣고 합려는 손무를 상장()으로 삼은 뒤 군사()의 예로 대우했다.
 

  

'손자병법(孫子兵法)'

 

총 13편으로 되어있다.

 

 제1편 시계(始計)


 싸움은 속임수이다.(兵者 詭道也). 그러므로 능하면서도 능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준다. 쓰면서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여준다(用而示之不用).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게 보이게 하고, 멀리 있으면서도 가깝게 보이게한다. 이롭게 하여 유인한다(利而誘之). 어지럽게 하여 취한다(亂而取之). 실하면 대비한다(實而備之). 강하면 피한다. 성내게하여 동요시킨다(怒而撓之). 비굴하게 굴어서 교만하게 한다편안하면 수고롭게 한다(佚而勞之). 적들이 친밀하면 이간질한다(親而離之). 대비하지 않는 곳을 공격하고, 뜻하지 않는 곳을 친다.

 
제2편 작전(作戰) 

싸움은 비용을 계산해야 한다. 질질 끌면 패망한다. 날카로움이 꺾이고 힘이 꺽하고 재정이 고갈되면, 다른 제후들이 그 틈을 타서 일어날 것이다.
싸움은 신속해야 한다고 들었으나 교묘하게 오래 끌라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지혜로운 장수는 적의 물자를도록 힘쓴다. 현지 조달이 전략이다. 적의 말 먹이 한 석은 본국의 이십 석과 맞먹는다.

 

제3편 모공(謀攻)

최고의 전술은 적의 계략을 깨뜨리는 것이고, 다음은 적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이고, 그 다음은 적을 군사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싸울 수 있을 경우와 싸울 수 없는 경우를 아는 자는 승리하고, 많은 병력일 경우 전술과 적은 병력일 경우 전술을 두루 아는 자는 승리하고, 상하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승리하고, 조심하여 경계하면서 적이 경계하지 않기를 기다리는 자는 승리하고, 장수가 유능하고 군주가 간섭하지 않으면 승리한다. 이 다섯가지는 승리하는 길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을 모르고 나를 알면 한 번은 이기고 한 번은 진다.(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적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매번 싸울 때마다 위태롭다.(不知彼不之己 每戰必殆)

 

제4편 군형(軍形)

 
옛날에 전쟁을 잘한다고 일컬어졌던 자들은 모두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추어 놓고 적과 싸워 쉽게 승리하였다. 잘 싸우는 자는 패배하지 않을 위치에 서서 적의 패배를 놓치지 않는다. 승리하는 군대는 전투하기 전에 먼저 유리한 위치를 얻은 다음에 싸우며, 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싸우면서 승리를 구한다.

 

제5편 병세(兵勢) 

적에게 패하지 않으려면 정상적인 공격과 변칙적인 공격을 모두 할 줄 알아야 한다.
변칙 공격을 잘 쓰는 자는 천지와 같이 끝이 없으며 강하와 같이 마르지 않는다.

세차게 흐르는 물길이 돌(石)을 뜨게 하는 것은 기세다. 매가 다른 새의 목을 꺾는 것은 절도다. 그러므로 잘 싸우는 자는 기세가 험하고 절도가 빠르다. 기세는 쇠뇌를 당겨놓은 것과 같고, 절도는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같다.

 

제6편 허실(虛實) 

싸움터에 먼저 나아가 기다리는 자는 편하고, 뒤늦게 싸움터에 달려가는 자는 수고롭다. 
적이 편안하면 수고롭게 만들고, 배부른 것을 배곯게 하고, 안정된 것은 흔들리게 한다.
공격을 잘하는 자는 적이 지켜야 할 곳을 모르게 하고, 수비를 잘하는 자는 적이 공격할 곳을 모르게 한다.

 

제7편 군쟁(軍爭)


사기가 날카로운 적은 공격하지 말고, 유인하는 적은 쫒지 말고, 돌아가려는 적은 끊지 말고, 포위된 적은 한 쪽을 터놓고, 궁지에 몰린 적은 끝까지 압박하지 말라. 싸움은 속임수로서 성립되고, 유리하도록 움직이고, 분산과 집합으로 변화한다. 그러므로 그 빠르기가 바람과 같고, 고요하기가 숲과 같고, 쳐들어 갈 때는 불길과 같고, 묵직하기가 산과 같고, 알 수 없기가 어둠과 같고, 움직임은 벼락과 같다.

제8편 9변(九變)

 진퇴가 용이한 곳은 빼앗아 봐야 뺏기기도 쉬우므로 싸움보다는 교섭하여 얻는다.

보급이 어려운 곳에서는 머물지 말고, 사방이 막힌 포위된 곳은 벗어난다.

싸움은 적이 오지 않을 것을 믿지 말고 내가 대비해야 하며, 적이 공격하지 않을 것을 믿지 말고 그들이 나를 공격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아야 한다.


제9편 행군(行軍) 

산에서는 시야가 트인 높은 곳으로 행군하며, 높은 곳의 적은 올라가서 치지 않는다.

이것이 산에서의 행군이다.

물에서는 적의 병력 절반이 건널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다. 상류의 적을 거슬러 치지 않는다. 이것이 물가에서의 행군이다.


제10편 지형(地形)

 

나도 갈 수 있고 적도 올 수 있는 곳을 통(通)이라 한다. 통형(通形)에서는 높고 양지 바른 곳을 먼저 차지하고 보급선을 튼튼히 해두고 싸우면 이롭다.
갈 수는 있으나 돌아오기가 어려운 곳을 괘(掛)라 한다. 괘형(掛形)에서는 적이 준비가 없으면 나가서 이길 수 있으나, 만일 적이 준비가 되어있으면 이겨 돌아오기 어려우므로 불리하다.

내가 나가기에 불리하고 적이 나가기도 불리한 곳을 지(支)라 한다. 지형(支形)에서는 적이 비록 나를 이롭게 하더라도 나가지 말아야 하며, 그 적을 반쯤 나오게 하여 치면 이롭다.

 

제11편 9지(九地)

 
용병을 잘하는 자는 적으로 하여금 앞뒤가 상응치 못하게 하며, 대부대와 소부대가 서로 믿지 못하게 하며, 장교와 사병이 서로 구원하지 못하게 하며, 상하가 서로 돕지 못하게 하고, 병사가 흩어져 모이지 못하게 하며, 모인다 하더라도 질서가 잡히지 못하게 한다
잘 싸우는 자는 솔연(率然)과 같다. 솔연은 상산(常山)에 사는 뱀으로 그 머리를 치면 꼬리가 덤비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덤비고, 그 중간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함께 덤빈다.

처음에는 얌전한 처녀처럼 시작하지만, 문을 열면 뛰쳐나온 토끼처럼 적이 미처 항거하지 못하게 한다.

 

제12편 화공(火攻)

 

화공은 불이 안에서 일어나면 밖에서도 호응하여 공격하고, 불이 났는데도 적진이 고요하면 때를 기다려서 공격하고, 불이 바람부는 위 쪽에서 일어났으면 바람부는 아래 쪽에서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


제13편 용간(用間)

 
장군이 뛰어난 성공을 거두는 까닭은 적정을 먼저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향간(鄕間)은 지역 사람을 쓰는 것이고, 내간(內間)은 상대 국가의 벼슬아치를 쓰는 것이고, 반간(反間)은 적국의 간첩을 역이용하는 것이고, 사간(死間)은 일부러 정보를 노출하여 간첩이 속아서 적에게 알리도록 하는 것이며, 생간(生間)은 적지에서 생환하여 돌아와 보고하게 하는 것이다.
치고자하는 성(城)이나 사람이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먼저 장수와 좌우의 측근, 당번, 문지기, 심부름꾼 이름을 아군 간첩으로 하여금 찾아서 알아내야 한다. 

 

 오자병법 (吳子兵法)

 

 '오자병법(吳子兵法)'은 '손자병법'과 함께 중국의 양대 병법서로 꼽힌다. 

  이순신 장군이 전투에서 한 말, '살기 바라는 자는 죽고, 죽기 각오한 자는 산다(必生卽死 必死則生)'는 말은 '오자병법'에 나온다.

 오기(吳起)는 어떤 사람인가. '사기(史記)'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을 소개한다.

 오기는 위(衛)나라 사람인데 공부는 증자(曾子)한테 배웠다. 젊었을 적에 집안에 천금이 있었으나, 벼슬 얻지 못하고 파산하자 마을 사람들이 비웃었다. 이에 오기는 비방한 30여 명을 죽이고 위()나라 성문을 빠져나갔다. 그때 어머니와 헤어지면서 자기 팔을 깨물며 '저는 재상이 되기 전에는 위()나라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라고 맹세했고, 그후 얼마 뒤 어머니가 죽었지만, 오기는 끝내 돌아가지 않았다. 

 오기가 노나라로 갔을 때, 노나라는 제나라의 침공을 받고 있었지만, 노나라 군주는 오기의 아내가 제나라 사람이라 장군으로 임명하기를 주저하였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오기는 집으로 와 아내 전씨에게 물었다.

'남편이 적군과 싸워 대공을 세우고, 만석의 국록을 받고 이름을 천추만세에 남긴다면 이는 집안을 크게 일으키게 되는 것이오. 부인은 내가 그리되기를 바라오?'

'남편이 그리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오기는,

'지금 제나라가 노나라를 치고 있소군주는 나를 대장으로 시킬 생각이지만 내가 제나라 전씨 집안에 장가 들었다는 이유로 머뭇거리고 있소.'

하고는 칼을 뽑아 아내의 목을 치고 비단으로 아내의 머리를 싼 뒤 노목공을 찾아갔다.

 이에 노목공이 오기를 대장으로 삼자, 오기는 제나라를 물리쳐 상경 벼슬을 얻었. 그러나 오기는 '모친이 죽었는데도 분상(奔喪)하지 않고, 자신의 처를 죽이면서 장수가 되고자 한 각박한 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으므로 노나라 군주도 끝내 오기를 해임했다.

 그후 오기는 위()나라 문후(文侯)를 섬기면서, 진()나라 성 다섯 개를 빼앗았다.

장군이면서 병사들과 똑같이 옷을 입고 밥을 먹었다. 잠을 잘 때 자리를 깔지 않고, 행군할 때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자기가 먹을 식량은 직접 들고 다니며 병사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한번은 종기가 난 병사가 있었는데, 오기가 그 병사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주었다. 병사의 어머니는 그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 했다. 옆에서 그 이유를 물었다.

 '당신 아들은 졸병에 지나지 않는데 장군께서 직접 고름을 빨아주셨소. 그런데 어찌 그토록 슬피 우시오?'
그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에 장군께서 애 아버지 종기를 빨아준 적이 있었는데, 남편은 장군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몸을 돌보지 않고 싸우다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 아들 종기를 빨아 주셨다니, 그 애 또한 곧 죽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는 것입니다.'
 
 문후는 오기를 서하(西河)의 태수로 임명했는데, 재상에 전문(田文)을 임명했다. 오기는 전문을 찾아갔다.
 '당신과 공로를 비교해보고 싶은데 어떻소? 삼군(三軍)을 다스리는 장수가 되어 병사들에게 기꺼이 목숨을 바쳐 싸우게 하고, 적국으로 하여금 우리를 넘보지 못하게 한 점에 있어서 당신과 비교하면 누가 더 낫소?'
 '내가 당신만 못하지요.'  

'관리를 다스리고 국민과 화합하며 나라의 창고를 가득 채운 점에서는 누가 더 뛰어나오?'

'내가 당신만 못하지요.'

'서하를 지켜 진나라 군사들이 동쪽으로 쳐들어 오지 못하게 하고, 한나라와 조나라를 복종시킨 점에서는 누가 낫소?'

'내가 당신만 못하지요'

오기가 다시 물었다.

'이 세 가지 점에서 당신은 모두 나보다 못한데, 윗자리에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그러자 전문이 대답했다.

'왕의 나이가 어려 나라가 안정되지 못하고, 신하들은 왕의 말을 듣지 않으며, 백성들은 왕을 믿지 못하고 있소. 이런 시기에 재상 자리를 당신이 맡는게 좋겠소, 내가 맡는게 좋겠소?'

 이에 오기는 한참 동안 조용히 있다가,

 '당신이 맡는게 낫소.'
 하고 말했다.  

 

 문후(文侯)가 죽자 오기는 그 아들 무후(武侯)에게 신임 받았으나, 간신들 농간으로 초나라로 망명하였다. 

초나라 도왕(悼王)은 오기를 재상에 임명하자, 오기는 법령을 자세히 밝히고, 필요하지 않은 벼슬을 없애고, 부강병책을 실시했다. 주변국을 제압하고 국세를 떨쳤지만, 도왕이 죽자, 평소 오기를 미워하던 대신들과 왕족들이 일제히 오기를 공격했다. 오기는 쫒기다가 가망이 없자, 도왕의 시신 뒤에 엎드렸다. 오기를 공격하던 무리들은 여기다 화살을 쏘아댔다. 화살은 오기를 죽였지만, 도왕의 시신까지 꿰뚫었다.

 도왕의 장례식이 끝나자, 새 임금이 된 태자는 왕의 시신에 화살을 쏜 자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도록 하였다. 이 때문에 멸족의 화를 입은 집이 70여 세대나 되었다. 죽음까지도 전략을 택한 오기였다.

 

 오기(吳起)는 기원전 440년 위(衛)나라에서 태어났으며, 노(魯)나라에서 첫 벼슬을 하다가 위(魏)나라를 거처 초(楚)나라 재상으로 있다가 기원전 381년에 살해되었다.

 춘추시대 주인공이 손자라면 전국시대는 오자가 주인공이다. 오기는 76번의 큰싸움에서 64번의 완전승리와 12번의 무승부로 위나라의 영토를 사방 천리나 넓혔다.

 '오자병법'은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48편이라 했으나, 현재 6편이 남아있다.

 

 오자병법(吳子兵法)

 

 1 도국(圖國)

 

군주가 각별히 유념해야 할 4가지

 

 나라가 하나로 결속되어 있지 아니하면, 군대를 출진시켜서는 아니된다.

()이 하나로 뭉쳐있지 아니하면, 부대를 움직여서는 아니된다.

진영(陣營)이 단합되어 있지 아니하면, 나아가 싸우게 해서는 아니된다.

전투에 임하여 일사불란하지 아니하면, 결전을 해서는 아니된다.


전쟁을 해서는 안될 시기

 

 통치자와 국민이 화합하지 못할때, 군대의 상하가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이루지 못하여 불화할때, 투입된 부대가 상호협조하지 못하고 불화할때, 공격중 부대가 일치단결하지 못하여 불화할때.

제2편 요적(料敵)

 

의 핵심전력으로서 선별하여 아끼고 우대해야 할 병사

호랑이처럼 용맹한 자. ()이 남다른 자. 매우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자. 적의 군기를 빼앗고 적장을 사로잡을 수 있는 자.

 

교전을 피해야 하는 경우

 

국토가 넓고 인구가 많으며, 경제력이 풍부할 때.

군주가 어질고 현명하여 정치가 잘 이루어질 때.

신상필벌이 공정하고 엄격할 때.

전공을 세운 자가 높은 지위에 오르고, 인재가 적재적소에 배치될 때.

병력이 많고 군비가 충실할 때.

외교에 능하여 유사시에 인접국이나 강대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때.

 

지체없이 공격해도 무방한 경우

 

겨울날 이른 아침에 적이 얼어붙은 강을 도강하려 하는 경우.

여름날 오랜 강행군으로 적의 말과 군사들이 갈증과 허기를 느낄 때.

적이 출병한지 오래되어 식량이 떨어졌으며백성들이 원망하고 불길한 조짐들이 나타남에도 군주가 이를 무마 못할 때.

적의 군수품이 고갈되고 땔감이 부족한데, 날씨마저 악천후가 거듭되어 현지조달이 어려울 때.

적의 병력이 부족하고 수질과 지형이 나빠 군사와 말들이 질병에 시달리는 데도 증원군이 오지 않을 때.

오랜 행군 중에 병사들은 지치고 사기가 떨어졌으며, 귀찮은 나머지 식사도 하지 않고 갑옷을 벗고 쉬려고만 할 때.

지휘관은 무능하고 간부들은 경솔하며, 병사들은 단결되지 않아 상호간에 협조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진지 배치가 불안정하고 숙영상태도 어수선하며, 지형을 높은 곳에 선정해 절반 이상이 노출되어 있을 때. 

 

3 치병(治兵) 

 

 무후(武侯)가 물었다. 

'용병에서 우선시 해야 할 것은 무엇이 있소?' 
오기(吳起)가 대답했다. 
'먼저 사경(四輕), 이중(二重), 일신(一信)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슨 뜻이오?'

'땅이 말을 가벼이 여기고, 말이 수레를 가벼이 여기며, 수레가 사람을 가벼이 여기고, 사람이 싸움을 가벼이 여기도록 해야 합니다. 지휘관이 지형을 잘 선택할 수 있다면 말이 경쾌하게 달릴 수 있을 터이니 땅이 말을 가벼이 여길 것이요, 제때에 먹이를 주면 힘이 넘치므로 말은 수레를 가벼이 여길 것이며, 바퀴 축에 기름칠을 충분히 하면 수레는 사람을 가볍게 여길 것이고, 병기와 갑옷이 예리하고 튼튼하면 병사들은 싸움을 가벼이 여길 것이니 이를 사경(四輕)이라 합니다. 

 나아가 싸운 자에게는 큰 상을 주고, 뒤로 물러난 자는 무거운 형벌을 내려야 합니다. 이를 이중(二重)이라 하는 것입니다.

상벌의 시행이 공정하고 분명하여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이를 일신(一信)이라 합니다.

이러한 이치를 헤아려 시행하는 것이 바로 승리의 원동력입니다."

 

 잘 육성된 군대 

 

 잘 육성된 군대란 평상시에는 예절이 깎듯하고, 일단 움직였다 하면 위풍 당당하여 공격에 당할 상대가 없고, 후퇴하면 쫓아오지 못합니다. 전진과 후퇴에 절도가 있고, 좌우 이동이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지면, 설령 부대가 단절되더라도 진을 유지하고, 분산되어 있더라도 대오를 갖추게 됩니다. 또한 상하가 동거동락하고, 생사를 함께 합니다.

 이러한 군대는 흩어지는 일이 없으며, 전투가 벌어지면 지칠 줄 모르므로 어디에 투입해도 천하에 당할 자가 없습니다. 이를 일컬어 '부자지병(父子之兵, 부자간처럼 끈끈한 정으로 이뤄진 군대) 이라 합니다.

 전쟁터란 항상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죽기를 각오한 자는 살고, 요행히 살아남기를 바라는 자는 죽습니다(必死卽生, 幸生卽死). 훌륭한 장수는 그 임전 태도가 마치 물이 세어 침몰하는 배나 불에 타 무너지는 집에 있는 사람처럼 결연합니다.' 

 

 4 논장(論將)

 

 오자(吳子)가 말하였다. 

 문()과 무()를 겸비하는 것은 지휘관의 요건이요, 강()과 유()를 겸용하는 것은 용병의 요건입니다.   사람들이 장수를 논할 때 흔히 용()만을 보는 경우가 많지만, 은 지휘관의 덕목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용장(勇將)은 무턱대고 적과 싸우려고만 하는 법입니다. 경솔하게 싸울 줄만 알고 득실을 살필 줄 모른다면, 훌륭한 장수라 할 수 없습니다.

 

  장수는 일단 출전명령을 받으면, 집에 알리지 않고 나아가 적을 무찌른 후에 돌아왔다고 말하는 것이 지휘관의 자세입니다.  

 

 전투의 승패를 가늠하는 요소 네 가지

 

 첫째가 기세(氣勢)이고, 둘째가 지세(地勢)이며, 셋째가 용병술(用兵術)이고, 넷째가 전투력(戰鬪力)이다. 

백만 대군이라 하더라도 그 위용과 사기는 지휘관의 역량에 좌우된다. 이를 '기세'라 한다. 

길이 좁고 험하며 큰 산이 가로막고 있는 지형은 열 명이 지켜도 천 명의 적이 지나가지 못한다. 이를 '지세'라 한다.

첩자를 잘 이용하고 기동부대를 적절히 운용하면 적의 병력을 분산시킬 수도 있고, 군신 상하간을 반목시킬 수 있다. 이를 '용병술'이라 한다.

전차나 배를 튼튼하게 만들도 잘 손질하며, 병사들에게 전투기술과 진법을 숙달시키고, 말이 잘 달릴 수 있도록 조련하는 것을 '전투력'이라 한다. 이 네 가지를 잘 아는 자라야 지휘관으로 삼을 수 있다.

 
 적진의 파악

 

 전투의 요결은 반드시 먼저 적장(敵將)이 어떤 인물인지 판단하고 그 능력을 관찰해 보는 것입니다. 

적장이 만약 어리석고 남을 잘 믿는다면 속임수를 써서 유인합니다.

탐욕스럽고 명예를 가볍게 여기면 재물로 매수합니다.
변덕이 심하고 책략이 없으면 피로하게 만들어 곤경에 빠뜨립니다.
상관은 넉넉하고 교만한데, 부하들은 궁핍하고 불평하면 그 사이를 이간시킵니다.
진퇴에 결단력이 부족하여 부하들이 믿고 따르지 못하면 놀라게 하여 도망치게 합니다.
병사들이 지휘관을 경시하고 향수에 젖어 있으면 평지를 차단하고 험지를 열어놓아 요격합니다.
 
제5편 응변(應變) 

 

 무후(武侯)가 물었다. 

'만약 적이 아군보다 수가 많을 때는 어찌하오?'

오기(吳起)가 대답했다. 

 '평탄한 지형을 피하고, 험한 지형에서 적을 맞아야 합니다. 옛말에 하나로 열을 치는데는 좁은 곳이 가장 좋고, 열로 백을 치는 데는 험한 곳이 가장 좋으며, 천으로 만을 치는 데는 막힌 곳이 가장 좋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소수의 병력이 좁은 길에 있는 적에게 갑자기 징과 북을 울려댄다면 적은 아무리 병력이 많다 해도 혼비백산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대부대를 거느리면 평지를 차지해야 하며, 소부대를 거느리면 험지를 차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좌우에 높은 산이 있고, 지형이 아주 협소한 곳에서 갑자기 적과 마주쳐 공격도 후퇴도 여의치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오?'

오기(吳起)가 대답하였다. 

 '이러한 경우를 곡지전(谷地戰)이라 합니다. 이때는 병력이 많아도 쓸모가 없으므로, 유능한 병사들만을 가려 적과 상대해야 합니다.

몸이 날랜 병사들에게 예리한 무기를 주어 앞에서 싸우도록 하여, 적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그동안 전차와 기병은 분산시켜 사방에 숨겨두고, 멀찍이 간격을 띄워서 적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합니다.

 적은 필시 진지를 강화하느라 전진도 후퇴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틈을 이용하여 본대는 대열을 갖추고 유유히 빠져 나와 산 밖에 진을 칩니다. 이렇게 되면 적은 틀림없이 깜짝 놀라고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때 전차와 기병을 움직여 계속 공격을 가함으로써 적에게 숨돌릴 여유조차 없게 만듭니다. 이것이 곡지전의 요령입니다.'

 

 6 여사(勵士)

 

 여사(勵士)병사들을 격려한는 뜻이다

 무후가 물었다.

'상벌을 엄정하게 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소?'

'제가 생각하기에는 군께서 평소에 전공자를 우대하여 잔치를 베푸시되, 전공이 탁월한 자들은 앞줄에 앉혀서 고급 기물과 최고의 음식을 올리고, 약간의 공이 있는 자들은 가운데 줄에 앉혀서 조금 못한 기물과 음식을 꾸며주며, 공이 없는 자들은 뒷줄에 앉히고 평범한 식탁을 차리며, 연회가 끝나고 나가려 할 때, 상금을 하사하고, 해마다 그 부모를 위로하면 될 것 입니다.

 무후는 오기의 이 말을 3년간 시행하였는데, 후에 진(秦)나라가 침범했다. 위나라 장정들은 이 소식을 듣자 동원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스스로 갑옷을 입고 달려가 용감히 싸워 진나라 군대를 격퇴하였다.

진나라를 격퇴한 후 무후가 오기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가르침대로 해서 일이 잘 이루어졌소.'

오기가 대답했다.

'죽음을 각오한 도적 한 명이 벌판에 숨어 있다고 한다면, 천 명 인원도 그를 겁먹을 것 입니다. 죽기로 작정한 도적처럼 싸움에 임하였으니 아무도 상대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손빈병법(孫臏兵法)

 

 *손빈병법은 무경칠서는 아니지만 소개한다.

 

손무가 죽고 백 오십 년 쯤 지나, 손빈(孫臏)이라는 후손이 나타났다. 사마천의 <사기>에 등장하는 또 다른 손자(孫子)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중기 제(齊)나라 손빈이다. 젊어서 손빈과 방연 두 사람은 은자인 귀곡자 밑에서 병법을 배웠다고 한다.

 

*귀곡자는 전국시대 중기 천하를 풍미한 종횡가의 시조로 알려진 인물이다. '일통지(一統志)'에 귀곡자의 이름을 왕훈(王訓), 왕선(王禪), 왕후(王栩), 왕후(王詡) 등으로 기록해놓았다. 지금 하남성 일대인 초나라의 운몽산(雲夢山)에 들어가 약초를 캐면서 수도했고영천(潁川)과 양성(陽城) 근처에 소재한 귀곡(鬼谷)에 은거한 까닭에 ‘귀곡선생’으로 불렀다고 한다.

 

 손빈은 방연(龐涓)과 병법을 배웠는데, 방연은 공부를 마친 다음 위나라  혜왕(惠王)의 장군으로 등용되었다. 방연은 자신이 손빈만 못하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까닭에 혜왕이 손빈을 초청하자 용할 것이 두려워서 죄를 뒤집어 씌웠다. 손빈의 선조 손무가 남긴 병서를 손에 넣기 위해 손빈을 죽이지 않고 무릎 아래를 잘라내는 형벌인 빈형(臏刑)을 가해 앉은뱅이로 만들고, 손빈의 얼굴에다 경형(黥刑)까지 남겼다.

그러나 손빈은 제나라 사자의 수레에 숨어 탈출하여 제나라 전기(田忌)라는 장수를 섬겼다.

 때마침 전기는 공자들과 경마 내기를 즐기고 있었다. 손빈은 내기를 구경하다가 이기는 법을 간파하여 전기에게 일러주었다.

즉, 먼저 제일 못한 하등 말을 상대의 상등 말과 붙여서 한 판 져주고, 다음 상등 말을 상대의 중등 말과 붙여 한 판 만회한 다음, 상대의 하등 말과 내 중등 말을 붙이라는 것이다. 전기는 2승 1패로 내기에 이겨 천금을 얻자, 손빈을 신임하게 되었다. 손빈이 제기한 이 방법을 '삼사법(三駟法)'이라 부른다.

   

 훗날 위나라와 싸움을 하게 되어 손빈은 방연의 10만 군대와 마주치게 되었다, 손빈은 위나라 군사가 사납고 용맹스러워 제나라 군사를 깔봄을 알았다. 그래서 약한듯 보이고자 일부러 후퇴하면서 숙영지를 옮길 때마다 아궁이 수를 오늘은 5천 개 내일은 3천 개 하는 식으로 줄였다.

 이를 본 방연은 도망병이 속출한 것으로 판단하여, 보병을 떼어놓고 정예부대만 끌고 급히 추격했다.

 손빈은 방연의 진군 속도를 계산해보고, 그들이 저녁에 마릉(馬陵)이라는 곳에 도착할 것임을 알았다. 

 마릉은 길이 좁고 험한 산속이라 복병을 두기에 알맞았다.

 손빈은 길가 큰 나무에다 '방연은 이 나무 밑에서 죽으리라(龐涓死于此樹之下)'고 써두었다. 그리고 사람을 뽑아 활과 쇠뇌를 가지고 길 양편에 숨도록 한 후, '날이 저물어 이곳에 불이 밝혀지면, 즉시 일제히 쏘도록 하라.'고 명해 두었다.

 과연 날이 저문 후 방연이 그 나무 밑에 이르게 되었고, 거기 쓰여진 글씨를 보기 위해 불을 밝히게 했다. 그러자 미쳐 그것을 다 읽기도 전에 수많은 화살이 쏟아졌다. 방연은 더 이상 지혜를 써볼 수 없음을 알고, '내가 오늘 기어히 그 녀석 이름을 떨치게 만들었구나.' 하고 스스로 칼로 목을 쳐 죽었다.

 손빈은 이 승리로 이름이 천하에 알려졌고, 병법이 전해지게 되었다.

 

'손빈병법'은 30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 편명이 밝혀진 것은 금방연(擒龐涓), 위왕문(威王問), 진기간루(陳忌間壘), 찬졸(纂卒), 월성(月城), 팔진(八陳), 지보(地葆), 세비(勢備), 행찬(行纂), 살사(殺士), 연기(延氣), 관일(官一), 십진(十陳), 사간(士間), 약갑(略甲), 객주인분(客主人分), 선자(善者), 오명오공(五名五恭), 장의(將義), 장패(將敗), 기정(奇正), 모두 21편이다.

 금방연(擒龐涓, 방연을 잡다)은 '사기'에도 기록되어 있고 마오쩌둥의 논문에도 인용되고 있다. 진기문루(陳忌問壘, 진지를 굳건히 다져라), 위위구조(圍魏救趙, 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하라. 일종의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법이다), 감조유적(減灶誘敵, 솥을 줄여 적을 유인하라), 연기(延氣병사들 사기를 진작시켜라)와 같은 전법은 현재도 유용하다.